그런 날이 있다. 뭔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살짝 틀어진 것 같은. 이번 주 수요일 내가 그랬다. 현관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자마자 알았다. 입 주변이 허전함을.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 이럴 수가? 할 수 없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약국에 들러 마스크를 샀다. 일주일에 한차례 마치 예배를 보듯 하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포장지를 보니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상이 맞았다. 작고 좁다. 낀 것은 할 수 없고 나머지 두개는 환불을 해야지. 카드와 영수증을 내고 돌아서 지하철역까지 왔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그렇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지갑을 열어 영수증을 보니 아뿔싸 지불한 카드와 환불한 카드가 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재난지원금을 전용으로 쓰기 위해 따로 카드를 사용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곧 마스크는 지원금 카드로 사고 환불은 일반 카드로 한 것이다. 안 쓰던 카드를 쓰다 보니 생긴 실수다. 


다시 발길을 돌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벌써 진이 다 빠진 느낌이 들었다. 어찌어찌 해결 아닌 해결을 하고 걸어 나오면서 이런 날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평소의 루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주일에 한 번씩 들르는 곳이 있다. 이곳에 갈 때는 옷차림이나 외모에 신경을 쓴다. 가방도 다른 것을 들고 간다.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는데, 그날도 그랬다. 이런 저런 작은 실수가 자잘하게 이어졌다. 


우연히 유튜브 채널에서 기아 타이거즈의 전 투수 윤석민씨가 하는 말을 들었다.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던 그는 그 활약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팀으로도 선발되었다. 팀에서는 선발이었지만 대표 팀에서는 중간계투로 뛰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4일이나 5일에 한 번씩 오르는 습관과 경기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투입되는 건 하늘과 땅차이다. 경기결과는 좋았지만 이때의 일이 그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알게 모르게 몸에 배린 루틴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는 중간에 던지게 되면 유니폼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운명을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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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한국일보와 뉴욕타임즈. 아니,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 내가 그렇다. 정성껏 읽는 건 아니다. 아침에 대충 큰 제목과 사진 정도만 보고 만다. 그렇게만 보고 버리기 아까워 오랜만에 책상위에 일주일치 신문을 쌓아두고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이상하다. 잘 읽히지가 않는다. 눈이 나빠져서 인가?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보다 구체적인 원인이 있을 것 같은데, 라고 곰곰 생각하다 앗하고 떠올랐다. 종이신문은 신체, 특히 눈의 구조와 맞지 않는다. 기사들이 이곳저곳 전사들의 시체처럼 잘린 채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신문은 그 정도가 심하다. 글 말미에 relate라는 단어가 신호등처럼 대기하고 있다. 곧 기사 하나를 제대로 읽으려면 몇 페이지를 이동하면서 보아야 한다. 그나마 온전히 한 면에 볼 수 있는 건 광고나 사설 정도가 전부다. 


반면 인터넷 신문은 온전히 한 번에 볼 수 있다. 쓸데없이 제목 따위를 크게 해서 눈을 현혹하지도 않는다. 그냥 리스트에 올라와있는 타이틀을 보고 클릭하면 그만이다. 보다 큰 장점은 심층 읽기가 가능하다. 한 기사를 읽고 관심이 생긴다면 관련 글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손가락 놀림 몇 번만으로 찾아 볼 수 있다. 도대체 지금까지 왜 이런 불편한 종이신문을 읽어왔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이유는 없다. 대체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이에 이거저것 잡다하게 읽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나온 고육지책이다. 그나마 우리 신문이 가로체제로 바뀌면서 가독성이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참고로 여전히 세로쓰기를 고집하는 일본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까무러칠 지경이다. 기사를 하도 잘게 잘라 여러 지면에 싣는 바람에 보물찾기가 따로 없다. 기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면 종이신문은 이미 사명을 다했다, 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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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 비오티 : 바이올린 협주곡 22번
모차르트 (Mozart) 작곡 / PHILIPS / 199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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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미오의 비오티는 하루에 수십 번 반복해서 들어도 지루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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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 비오티 : 바이올린 협주곡 22번
모차르트 (Mozart) 작곡 / PHILIPS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클래시컬 애호가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취향은 아니다. 지휘자만 해도 카랴안을 숭배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카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은 쇼쟁이일뿐이야. 연주자도 마찬가지다. 글랜 굴드야말로 바흐 음악의 재림이라고 칭송하는 분들도 있고 흥얼거림을 천재라고 여기는 미치광이라고 외면하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그는 아르투르 그뤼미오다. 


나는 헨델의 연주음반으로 그뤼미오를 처음 접했다. 깜짝 놀랐다. 평소 바이올린 하면 떠오르면 신경을 거슬리는 혹은 절정이라고 부르는 고음이 부담스러웠다. 웬만하면 독주 연주를 듣는 건 피해왔다. 그러나 그뤼미오는 전혀 달랐다. 마치 비올라를 떠오르게 하는 부드러운 저음과 그렇다고 바이올린 특기인 자유자재의 움직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헨델의 바이올린 연주가 이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그뤼미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비오티의 바이올린 협주곡 22번>은 소품음반이다. 사실 이 두 곡을 선택한 기준도 애매하다. 왜? 그럼에도 고른 이유는 비오티 때문이다. 그의 바이올린 곡은 연주자에 따라 수준차이가 많다.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뤼미오가 딱이다. 이 곡만 하루에 수십 번 반복해서 들어도 지루함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음반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표지 때문이다. 사실 전집을 구하면 이 두 곡 말고도 더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바이올린 활을 사선으로 세운 장면은 어느 유명화가의 작품 못지않게 멋있고 근사하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값어치는 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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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게 다 돈이다 


살다보면 집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건 없건. 잠깐 방심하다가 어어 하다보면 어느 순간 쓸데없는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다. 최근 들어 택배와 배달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박스나 비닐을 바로바로 버리지 않으면 며칠도 되지 않아 쓰레기통이 가득찬다. 음식물 또한 골칫거리다. 새로운 아파트먼트에서는 자체 분쇄기가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모아서 처리해야 한다. 마침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질을 하듯이 습관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 모으는 물건들도 문제다. 나 같은 경우는 책과 음반이 그렇다. 사실 이 둘만 어떻게 처리해도 공간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왠지 단 한 권도 단 한 장도 버리질 못한다. 왜 그럴까? 지적 허영이 있기 때문인가?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낀다. 언젠가는 읽을 거야. 반드시 들을 거야, 라고 다짐하며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일주일 정도를 고민하다가 내 방에 있는 짐들을 싹 들어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는 더욱 힘든 공사였다. 거실이 거의 꽉 찰 지경이었다. 혹시 내가 저장강박증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별별 쓸모없는 것들 천지였다. 서너 시간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옮기고 나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바로 누워 보았다. 내 방이 이렇게 넓었나?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젠 거실 내보낸 짐들을 처리했다. 정말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버릴 것과 다시 보게 될 것들을 분류하고 쓸고 닦았다. 새로 이사 온 집을 청소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살림의 정석은 버리는 것이다. 그게 다 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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