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면 누구든 다른 사람보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더 많은 법이야. 나한테는 함께 잘 수 있는 귀여운 아가씨는 없지만, 해 질 녘에 리버사이드 도로를 따라 굴러가는 대형 화물차는 몇 번 더 보고 싶다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살아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그곳에 있을 수 있느냐가 문제지 - 그게 정말로 슬픈 거라고." _ 필립 딕, <시간 여행자를 위한 작은 배려> 가운데 _ 


2020년 4월 3일 현재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을 등진 이들은 174명이다. 나이가 드신 분이든 기저질환이 있었든 혹은 다른 이유가 있든 한 분 한 분 다 안타깝다. 어느새 사망자 숫자에도 무덤덤해지고 있지만. 


누군들 살고 싶지 않겠냐마는 가장 애달픈 건 본인 아니겠는가?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도 다 자신을 대신해 고난을 겪는 이들을 보며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자기가 그 처지가 된다면 쉽게 웃고 울고 떠들고 즐길 수 없다. 어떤 이야기든 자신이 주인공이 되면 몰입감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존재가 사라진다는 두려움은 상상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먹먹한 기분을 들게 한다. 대재난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순간이나마 패닉에 빠지는 이유는 조금이나마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잔인하게도 작가들은 그 찰나의 틈조차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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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일 케이비에스 클래식 에프엠에서는 아침 7시부터 17시간 연속 베토벤 음악만 틀어주고 연주한다. 칭찬받을 이벤트다. 그런데 베토벤 그림은 쫌 아니네.


오늘 하루만큼은 루드비히와 함께 


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생각보다 오래전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 세대다. 한국방송공사 클래식 에프엠 라디오는 그를 기려 하루 종일 베토벤 음악만 내보내고 있다. 그 날이 바로 오늘(2020년 4월 2일)이다. 과연 하루 종일 가능할까? 당연하다. 오히려 모자랄 지경이다. 그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피아노, 바이올린 소나타, 오페라, 성악곡, 소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곡했다. 심각함의 결정체인 운명 교향곡부터 베토벤 맞나 싶은 엘리제를 위하여까지.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오후 7시)에는 베토벤 음악에 기초한 재즈편곡들을 들려주고 있다. 색다른 맛이 든다. 남은 시간도 루드비히와 함께 할 생각이다. 꽤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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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건물이 생기기 전 오장동 함흥냉면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사람들에 떠밀리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미친듯이 면을 흡인해야 했던 시절이 떠오르시리라. 그것도 이제다 추억이다. 코비드 19로 손님이 많이 줄었음에도 굳건이 가게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냉면은 역시 함흥냉면이 최고야 


일요일 아침이면 아버지는 가족들을 이끌고 외식을 가곤 했다. 딱히 좋지는 않았다. 일찍 일어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그 때 먹었던 입맛이 길들여져 여전히 사랑하는 음식이 되었다. 주인공은 청진동 해장국과 오장동 함흥냉면이다. 아이들이 먹기에는 꽤 하드코어였는데 여하튼. 다행히 두 곳 모두 아직도 있다. 해장국 집은 자리만 옮겼다. 


어머님을 모시고 냉면집에 다녀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안한 느낌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거의 매일같이 답답한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아주 가끔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제주도로 놀러가거나 벚꽃놀이를 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마스크와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일부러 혼잡한 시간을 피해 오후 2시쯤 도착했다. 예상대로 한가했다. 도착했을 때 식당에 있던 손님은 정확하게 다섯 명이었다. 구석자리를 찾아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 의례 시키는 함흥냉면을 주문했다. 이곳에 와서 다른 메뉴는 단 한 번도 주문한 적이 없다. 사리를 추가하지 않는다면. 미리 카드로 계산하고,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한다, 당연히 면은 자르지 않고 식초만 살짝 뿌리고 슥삭슥삭 회와 양념을 섞어 양껏 입안에 넣는 순간, 아 하는 감탄이 나왔다. 역시 이 맛이야. 


그런데 오늘은 살짝 아쉬웠다. 면이 조금 불어있었다. 찰기가 떨어진다. 반면 회는 상태가 좋아 만족스러웠다. 냉면도 냉면이지만 이 집의 별미는 고기육수다. 육수를 숭늉처럼 마시는데 어린 시절 처음 맛보았을 때는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느끼하다고 할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참고로 육수는 뜨거울수록 매운맛이 더 배가된다. 그게 또 별미다. 일부러 찬육수를 달라고 하여 남은 면에 섞어 드시는 분들도 계신데 나는 여전히 핫한게 좋다.


냉면을 먹고 나서 코스처럼 들리는 곳은 중부시장이다. 건어물로 유명한데 늘 사는 건 입구에 있는 꽈배기와 안쪽 깊숙이 박혀 있는 떡집에서 파는 쑥떡이다. 어머님이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곤 충무로역까지 걸어가서 버거킹에 들러 커피 한잔을 시켜 나눠 마신다. 이 사소하지만 규칙적인 나들이를 한 지도 어언 10년 가까이 된다.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kimjkjk0211/22159431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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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지롱?


은근히 즐거워지는 날이 있다. 만우절이 그렇다. 이날만큼은 남을 속여도 혹은 거짓말에 넘어가도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매년 이 날을 맞이하기 하루 이틀 전부터 무슨 말로 속일까 궁리하며 보내곤 했다. 상대는 늘 속아주었는데, 그렇다, 진짜 그런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왠지 지는 것 같아서다. 올해는 여유 없이 만우절을 맞았다. 뉴스라고는 괜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장난질을 하면 엄벌에 처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뿐이었다. 취지야 알지만 참 무섭다, 무서워하며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 검색어에 계속 설악산 흔들바위가 떠있었다. 왠지 뜬금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진짜 무슨 일이 났나 들어가 보니. 거짓말이었다. 처음엔 그럴싸한 내용 같았는데 결론은 속았지롱.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최근 만우절에 한 번도 당하지 않았던 기록이 깨진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웃으며 보냈으면 됐지라는 만족감이 더 컸다. 그런데 설악산 흔들바위는 왜 정말 굴러 떨어지지 않는 거지? 여럿이 손만 대도 흔들거리는데. 


덧붙이는 말


만우절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장국영이다. 거짓말처럼 삶을 마감한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최절정기였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우울한 요즘 새삼 생각이 더 난다. 오늘 저녁에는 그의 음반이라도 찾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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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봄다운 봄이 다시 올지 모르니까


시계바늘을 1년 전 이맘때로 돌려보자,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제각각 다르겠지만 내게는 미세먼지였다. 3월 한달 내내 뿌연 하늘만 봤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끼고 다녔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연히 코비드 19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 왜 작년에는 그 난리였는데 올해는 미세먼지가 뉴스에서 사라졌지? 하도 바이러스가 큰 뉴스라서? 아니다. 심각하지 않아서다. 실제로 2020년 들어 미세먼지 심각 경보가 발령된 적이 없다.


기후변화 일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관심이 많다. 환경문제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기후변화하면 콕 집어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인도 명확하다. 이산화탄소다. 산업을 포함한 경제활동을 줄이면 된다. 이처럼 명확한 이유와 답이 있지만 실천은 힘이 들다. 모든 사람들은 발등 앞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적어도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피해는 내가 살아있을 동안은 닥치지 않을 테니까라는 안이한 마음도 한몫했다.


구세주(?)는 바이러스였다. 풍경뿐만 아니라 탁한 물로 악명이 높았던 베네치아의 수로는 순식간에 청정구역으로 변했고 늘 먼지구름으로 가득했던 델리도 청명한 하늘을 드러냈고 스모그로 도시 전체가 뿌옇던 엘에이도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이 모든 변화가 세균덕분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뉴욕 타임스도 관련 소식을 실었다. 전 세계 감염병이 기후변화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적인 명과 암을 소개한 후 바이러스가 사라진 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주장했다. 글쎄? 불과 1년 전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세먼지와 공해가 없어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이 시절을 떠올릴까? 금방 까먹지 않을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 여하튼 손 잘 씻고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사람 없는 곳을 골라 봄다운 봄을 느껴야겠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관련 기사 

https://www.nytimes.com/2020/03/27/opinion/sunday/coronavirus-climate-change.html?searchResultPositio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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