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색 - 죽창수필 선역
운서 주굉 지음, 연관 옮김 / 호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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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서 주굉 스님의 '죽창수필'450여편 중에 일반인들이 생활하면서 지켜야 하는 계율과 간단한 마음공부에 대해 140여편의 글을 모아 묶어낸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마음공부에 관한 글을 읽고 싶었던 나는 머릿말을 보면서 조금 실망하였지만 글을 읽어가면서 내용에 집중하다보니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비록 짧은 글들로 쓰여졌지만 각 각의 내용들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여 곰곰히 성찰하게 해주는 글들이다. 더운 여름 날 집 안에서 조용히 책을 보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참 값진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사회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보니 사람도 만나야 하고 때로는 형식치레도 하며 살아야 하지만 아무래도 난 조용히 혼자서 보내는 시간에 매력을 더욱 느낀다. 조용한 곳에서 책 속의 내용에 푹 빠져 있을 때에는 책의 의식 속으로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책의 글귀도 이젠 하나 하나의 내용이 나한테 지금 맞는 내용인지 아니면 3요를 증가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 내게 열리게 자극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눈이 생긴 것 같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그것이 화두로 모아진다면 세상에 나아가 번잡한 곳에서도 생활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의정이 생기지 않은 이상은 조용한 시간을 많이 갖고 더욱 노력할 따름이다.

  술도 앞으로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몸도 별로 받지 않는 술이지만 술에 취한 날이면 아무래도 잠자기 전 명상과 아침 명상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심한 경우는 다음 날까지 비몽사몽하게 하니 그 해악이 막대함을 알고도 쉽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는데...앞으로 좀 더 성실한 일과를 짜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좀 더 많이 걷고, 좀 더 차분한 시간을 많이 가지고 좀 더 집중해서 노력하여 어느 정도 힘이 붙으면 생활을 느슨하게 하면서 공부를 실험해도 늦지 않으리라...

  내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남을 돌아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남에게 이러쿵 저러쿵 교훈의 말이랍시고 떠드는 내 모습이 때로는 한심하다. 동생에게도 친구에게도 때로는 학생들에게도...그저 교훈의 이야기는 책에도 널리 쌓여 있다. 문제는 내 마음이 맑아져서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인데...우선 내가 공부가 덜 되어 있는데 어찌 나서서 일을 그르치려 하는가?

  세상의 경계를 흐리려고 하면서 마음의 경계를 없애지 못하는 나를 제대로 보아야겠다. 마음의 경계는 없애고 세상은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생길 때까지 말을 더욱 참고 마음을 더욱 살필 일이다. 세상은 참 좋아져서 선지식의 좋은 말들이 책만 펼치면 보인다. 그것을 나침반 삼아 공부하기도 좋은 환경에 또 무엇이 갖추어져야 하겠으며, 또 어떤 조건을 필요로 해야 하나?

  내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불성, 그것이 있어 나는 찾게 된다. 내가 찾는 그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내가 찾는 삶의 의미이며 나의 게으름을 질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이유...그것이 오늘도 나로 하여금 앞으로 한걸음 내딛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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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은 기량이 없어서

온갖 생각들을 끊지 않는다.

경계를 대하면 마음이 자주 일어나니

보리가 어떻게 자라겠는가.

 

어떤 사람이 육조 혜능의 게를 외우며, 스스로 뜻을 얻었다고 우쭐거리면서 몸과 마음을 방탕히 하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굴었다.

그러자 어떤 거사가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이 게송은 대사가 와륜 선사에게 사상의 병을 끊게 하려고 약으로 쓴 것이다. 그대는 이런 병이 없으면서 함부로 이 약을 먹었으니 약이 도리어 병이 될 것이다."

멋지다. 이 말씀이여!

이제 다른 비유로 말하리라. 육조가 '온갖 생각들을 끊지 않는다.' 함이 '밝은 거울은 어떤 형상도 거부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온갖 생각들을 끊지 않는다.'함은 흰 비단이 온갖 채색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육조가 '경계를 대하면 자주 일어난다.'함이 '빈 골짜기가 소리를 만나면 메아리가 일어난다.'는 뜻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경계를 대하면 마음이 자주 일어난다'함은 '고목이 불을 만나면 연기가 일어난다'는 것과 같다.

자신을 헤아려 보지 않고 스스로 성인에 부합하려는 사람은 조용한 곳에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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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8-16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서 주굉 스님의 책을 저도 두어 권 읽었는데, 어떤 이야기는 꽉 막히지만, 어떤 이야기는 나름대로 이해를 합니다.(착각이겠지만) 그런데 지나보고 또 읽으면, 꽉 막혔던 이야기가 묘가 있고, 이해를 했던 글은 오해였음을 알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반가운 책을 만난 반가움에 몇 자 적습니다. 방학 잘 보내세요.

달팽이 2005-08-1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성인의 경지에 대해 모른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월의 흔적 묻어 지혜가 열릴수록 다른 의미로 와닿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방학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군요...잘 보내세요..
 

난리가 났다.

마지막 삶을 불태우는

뭇매미들의 울음 소리가

숲을 가득 메운다.

아 저 웅웅하는 소리

숲을 가득 메워

내 가슴위로 떨어진다.

내 마지막 삶은

어떻게 불태워야 하나

내 마지막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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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1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리.....
마지막은 '항상'존재한다고 여겨요...
아, 울 동네에도 매미 난리 났어요^^

달팽이 2005-08-1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랫만에 보는 저 푸른 빛깔...내 가슴도 난리났군요...ㅎㅎㅎ
 

2박 3일 일정이지만 먹여주고 재워주고 연수도 시켜주니 좋다.

가끔 시원한 바람 맞으며 산책하는 즐거움도 좋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 얻어서 좋고

시원시원하게 크고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과 그들이 이룬 숲도 좋다.

이런데서 한 달 쯤 책이나 실컷 보다 갔음 좋겠다.

낼 연수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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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1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수 끝나심 숲 길 한 번 거닐다 오실 그림이 그려집니다.
성하염열의 날입니다.
숲길이 그리워지는군요

달팽이 2005-08-1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려지는대로의 숲 길이 눈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마음으로 낸 길을 따라 걷습니다.
 

논어 3장 팔월 편에 나오는 말이다.

낙이불음, 즐기되 음란하지 않는다

애이불상,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까?

즐거움과 쾌락에 빠지지 않고, 슬퍼함에 내가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것이 시경에 대한 공자의 말인 '사무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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