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부유하는 무허가의 땅
공중을 출렁이는 마음의 눈들
웃음 주고받긴 켜켜이 쌓인 먼지
구름
먹구름
먹장구름
그
운명적 사랑으로
비를 만들고 싶다
눈을 낳고 싶다
- 이찬, '발아래 비의 눈들이 모여 나를 씻을 수 있다면' 중에서 -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황동규,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중에서 -
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 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할 말 없는 수초가 말
잃은 채 뒤엉키듯이
가라앉아도 가라앉아도
사랑은 바닥이 없다.
2
사랑은 그렇게 갔다.
미처 못다 읽은
책장을 넘겨버리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말하려고 입 벌리면
더러운 못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날아가며 남겨둔 여린
가지가 자지러지며 출렁이듯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꽃들은 예쁘게 피어났다.
이미 범람해버린 강물이
지루하게 제 수위를 회복해가듯이
사랑이 어루만진 부위에
홍수가 휩쓸고 간 잔해가 남았다.
3
기포가 떠오르고
말할 수가 없다.
- 채호기 '수련'중에서 -
뱃속 연못가
개구장이 녀석들
듬성 듬성 둘러 앉아
손에 쥔 돌멩이를
연못으로 던질 때
여기저기서 터지는 물폭죽
수백 수천으로 일어나는 물꽃
전쟁났다
메스껍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지...
너의 숨결
내 볼을 간질러
하루를 열때
살아있는 모든 것들
너의 숨결 따라
미풍을 만들고
너를 향하는
내 가슴은
풍선으로 부풀어
푸른 하늘 위로
미풍타고
날아오를 때
너는 아니?
내 꿈은
네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