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작년에도 갔지만 일을 보느라 늦어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하였고
뒤에 남은 몇몇의 사람들만 만날 수 있었다.
올해는 시간에 맞춰 갔다.
그동안 변한 사람들의 얼굴이 궁금하기도 했다.
내 본격적인 교단 생활을 시작한 그 곳,
그곳에서 처음 아이들을 만나면서 가졌던 좋은 추억들이 아직
그 곳에서 날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 추억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알게 되었다.
아, 당신들의 가슴 속 어느 모퉁이에서도 그 기억들이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고등학교 생활하면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방송부일 것이다.
아이들과의 첫 호흡,
우여곡절도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순수한 마음을 아이들이 이해해주길 바랬다.
그 마음의 오고감만 있다면 나머지는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또 '윤혜경'학생과의 만남
요즈음은 소식이 뜸해졌지만
그래도 묵은 안부를 주고 받으며 사제간의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봐도 소녀같은 얼굴과 미소를 하고 날 찾을 때
난 떨렸다. 솔직히 떨렸었다.
지금은 보다 편안한 떨림으로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지만
그저 순수하고도 깨끗한 그 마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떨렸으며 행복했다.
교직에 서서 이런 보람과 행복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가지 추억에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 있다.
소녀같이 맑고 깨끗한 선생님 한 분,
이 선생님과의 인연이 참 많고도 깊다.
내 첫 교단 생활의 열정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눌 수 있었고,
내 어리석은 욕심과 그릇된 판단도 늘 옆에서 지켜봐주었으니...
살다보면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들이 참으로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또 나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지나고 나면 이렇듯 기억 한 줌으로 변하고 마는 그 날들이
그래도 가슴 속 한 모퉁이에 남아
때로는 이렇게 얼굴을 대할 수 있게 되는 날
다시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그 좋은 기억들이 되살아나니
마음이란 참 신기한 마법의 샘이로구나
그렇게 좋은 기억들을 간직한 채 바라본 얼굴이
행복하지 않을 때
또는 무표정할 때
찬 바람 일어
댓잎을 스치듯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는 쓸쓸함
몸이 나이드는 것보다 마음이 먼저 나이들어 무기력해지는 것이 더욱 쓸쓸하고
서로 만나 가슴 속의 좋은 떨림을 가질 수 없는 몸의 장벽이 쓸쓸하다.
오륜대 연못 위를 바라보며 넘기는 술 잔 위로 한 줄기 바람 시원하고
연못 위에 나뭇잎 띄워 그리움의 편지를 적어 보낸다.
그 쓸쓸함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