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가 되고 싶었다.
길이 저만큼 보였고
숨이 가빠졌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용기가
모자랐던지, 아니면
발목을 잡는 힘이 만만찮았던지
걸음은 날마다 비틀거렸고
길은 갈수록 멀어만 갔다.
이제 반백이 되어
성자되는 꿈을 차분히 접어 두고
아아, 나는 한 마리 순한
짐승이 되고 싶을 뿐이다.
성자의 길도 버리고
의인의 길도 버리고
그냥 착한 아무개로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언제고 이 가난한 꿈마저
고요히 접어
맑은 한 줄기 바람처럼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 이현주 목사 -
흐린바다또하늘과
경계는흐려지는데
백개의연하늘위에
날다끊어진연하나
사라진저구름너머
- 용욱 -
밥먹다받은시한편
반찬으로집어먹네
싱그러운저녁냄새
한점잘익은고긴가
입안에서오래씹네
- 연성 -
산을 오른다, 오를수록
입지는 좁아지고
시야는 넓어진다.
오르고 또 올라
더 오를 데 없는 꼭지점
세상에서 가장 좁은 영토를
겨우 딛고 서면
천지사방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일미진중함시방이라
더없이 작은 세계로
더없이 큰 세계가 들어오는 것이다.
바야흐로 거기
산정에 선 사람이여!
먼 길 돌아
벌거숭이 젖먹이로
온 세상 품에 안고
홀로 선 그대여!
오소리가 올라가면 오소리길
너구리가 내려가면 너구리길
어쩌다가 나물꾼이 걸어가면
시치미 뚝 떼고 나물꾼길
저마다 임자인 길, 임자 없는 길
여름비뒤끝하모니
모두제재주로살아
바람한점서늘하다
거닐다바라보는달
돛을달고어디가나
여름으로난오솔길
잠자리마저더운데
한줄기시원한바람
어느곳을지나는지
텅빈창만바라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