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꿍-꿍 거린다고 해야 하겠나

장엄하게, 웅-웅-웅 거린다고 하면 되나

 

우포에 겨울이면 오리 기러기들 수천으로 날아드는데 늪을 뒤덮는 소리 하늘까지 웅-웅-웅 했지. 그 소리 하도 신기하고 희한해 제방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제방 아래 들면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제방 위에 올라서면 구름장 일 듯 뭉글뭉글 피어나는 소리 소리들...

 

내 몸이 동굴일까?

아직 그 소리 몸 속 어딘가에 남아 있어 꿍-꿍-꿍, 웅-웅-웅 울리는데

음역하여 불러내면 龜何 龜何

그것은 세월의 겹을 벗겨내는 의식인가

막대로 땅을 치듯 어깨가 들썩

들썩 연두의 몸을 빌려 봄이 부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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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5-1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랫만에 이희철 쌤의 시를 보니 참 좋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쌤 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 일 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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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5-1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재

 

너는 없다

너 없으니 나도 없다

마음에 묻은 너와의 사랑

마음에 햇살처럼 남아

나의 손잔등을 간지런다

그런데 너는 없다

이별이란 너없이 살아가는 세월

내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너를 바라보는 촛점없는 나의 시선

허공 속에 너를 묻는다

먼지가 문틈에서 잠시 빛나도

나는 너를 지울 수 없다

너를 생각하는 나를 지울 수 없다

이 늦봄 꽃잎처럼 날리어 가버린

바람 속의 너는 없고

너 없으니 나도 없다

 

눈을 감으면

 

어린 때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드시고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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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기대어야할아

득한삶의외로움있

어내나를속이고살

았던마음의뜰안이

젠목놓아울고싶다

 

                   - 연성 -

 

울자그래도지워지

지않는삶의외로움

일랑묻어두고나오

늘밤한마리새되어

그대창에울어예리

 

                    - 용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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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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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5-1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春望詞

설도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맞으랴는고
(김억 번역)


어느 봄날

바람에 꽃잎날아 봄날이 가고
만나자는 기약은 그 언제인가
그대의 마음 부여잡지 못하고
나의 맘만 헛되이 풀잎을 묶네
(연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