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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에게 보내는 격문 외 ㅣ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조면희 지음 / 현암사 / 2001년 12월
평점 :
우리 옛 선비들은 삶을 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며 살았다. 여기 우리 나라 최고의 문장가들이 주옥같이 빚어내었던 이야기 40편이 있다. 이 고전 문학 작품이 가진 감동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도 마법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문학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인간 마음에 대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영원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삶의 의미와 깊이에 대한 교훈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삶 속에서 말로 다하지 못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가지는 애틋한 마음이 서로 간에 만들어내는 사랑과 신뢰의 이야기도 있다. 사물과 자연을 대하는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조차 미처 나누지 못한 회한을 노래하는 이야기도 있어 우리들의 심금을 울린다.
최치원이 젊은 나이에 중국의 과거에 급제하여 중국 관리로서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황소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보낸 글에서는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당당하고도 무시할 수 없는 기백과 글의 절도와 강단이 상대방이 아무리 전장에서 오랜 세월을 단련되었다 하더라도 기가 꺽기고 말게 만드는 웅혼이 서려 있다. 또한 삶의 궁극적인 추구로서의 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도 감동적이다.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무릉도원을 찾아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가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마는 과정에서 '유자기'의 고매한 인품과 덕을 찬양하는 글도 재미있다. 권근의 '늙은 뱃사람과의 문답'에서는 풍랑이 치는 변화급격한 바다에서 한평생을 배를 띄우고 그 위에서 지내는 노인에게서 참된 인생의 의미에 대해 배우는 내용은 뜻깊다. 사실 우리가 인생에서 정말 두려워 할 것은 우리의 두려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인생의 황혼기에 남명 조식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친우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 속에서 나는 오늘날 좋은 벗들을 많이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스승과도 같은 벗들이 있어 내 인생의 의미가 보다 뚜렷해지고 삶의 방향이 보다 잘 드러나지 않았는가? 또한 달 밝은 밤 창가에 외로이 앉아 있어도 벗의 글읽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와서 나의 느슨해진 마음을 바로잡으니 이것이 또한 벗이 주는 고마움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이유로 내 마음을 다가지지 못하는 욕심많은 아내가 넔두리를 해댈밖에....
사실 우리 옛 조상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에는 너무나도 소박했던 반면에 물질적으로 또는 현상적으로 나누지 못하는 마음을 속으로 갖추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물질의 풍요속에서 배부른 돼지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쩌면 혼이 빠져버린 허깨비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마음으로 넉넉함을 나누며 살았던 그 시대가 더욱 그리운 것은 비단 나만의 바램은 아닐 것이다.
옛 글을 읽을 때에는 우선 그 텍스트 위에 마음을 올려놓아야 한다. 글을 읽다가 어느덧 글쓴이의 마음을 타게 되는 일이 있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그 글들은 단순히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이 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나는 그 시대의 풍경속에 놓여진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글의 영원성이라고 하는 것은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오롯하게 담아내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지만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그것과 일치할 때에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다. 자, 책을 읽기 전에 잠시동안 우리 옛 사람의 마음과 동화되기 위한 준비를 해보자.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