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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참스승 선비 2
이용범 지음 / 바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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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옛 선비들의 곧은 정신의 칼날은 나의 허수아비 마음을 사정없이 내리쳐서 산산히 부서버렸다. 그들의 삶 속에서 바늘 하나 꽂을 곳 없는 기개에 나의 게으르고 나태한 정신은 사정없이 베이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조차 한 치의 흐트러짐없는 그들의 행동이 단순히 맹목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그들의 삶 속에서 알 수 있다.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사리사욕을 벗어나 옳음을 위해 자신의 정신의 칼날을 세워가는 것이 그들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이었다. 그리하여 죽음 앞에서도 태연하고 곧은 절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정신이 그들의 몸으로 체화된 인격을 이루었음을 말해준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승의 벼슬에 올라서도 조금도 자신의 부를 축적하지 않았으며, 관직에서 물러날 때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 한 채로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던 자의 뒷모습에서 어쩌면 아주 까마득히 잊혀져버린 군자와 참선비의 모습을 우리들 마음 속에서 찾아헤매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마음 속에서 아직 떨쳐내지 못한 아상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 때면 선비들의 칼날을 치켜세워야겠다. 그 서슬퍼런 칼날위로 나의 부끄러운 알몸을 드러내어야겠다. 내 삶 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칼날 앞에서 까발려야겠다. 그리하여 내 허영과 자만의 얼음이 찬란한 햇볕아래 완전히 녹아내려 아무것도 없는 그 곳에서 나의 본모습을 발견해야 하리라. 그래서 비로소 나의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도록 하는 정직한 대나무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무에게 줄기와 가지를 지탱하는 것이 뿌리이듯이 사람을 지탱하는 뿌리는 정신일 것이다. 그 정신이 곧고 굳을 때 비로소 세상의 풍파에 견디어 낼 수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거센 폭풍속에서도 말없이 줄기를 세우고 가지를 뻗어내어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릴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본연의 모습을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몸의 생멸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의 본래모습을 바라보는 관을 통찰할 때 비로소 몸에 의지하지 않는 참된 삶을 살아갈 정신적 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 삶의 뿌리, 내 마음의 바탕, 그 곳에 내가 산다. 그 곳에 사는 참된 나를 응시할 때 나에게서 생로병사는 고개를 숙인다. 미혹한 사랑의 유혹도, 탐 진 치의 아상도,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도 쉬게 두고 자유롭고 자재한 인생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마음없이 벼슬에 나아가고, 마음없이 세상에 나아가며, 마음없이 관직에서 물러나고, 마음없이 세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한 점에서 나도 세상도 시작되니, 이 한 점에서 나도 세상도 맺음된다. 열어내는 그 한 점이 닫는 한 점이 되니, 그 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삶의 비밀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참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