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보람의 창조
이이다 후미히코 지음, 김종문 옮김 / 자유문학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아픔으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 자신이 병에 걸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들처럼 보다 많은 부와 높은 지위를 가지지 못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에 불만이 있는 사람,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저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활력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가치에 대해 눈뜨지 못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 누구든 각각의 삶은 자신에게 있어 꼭 필요한 배움의 과정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사는 보람이라는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생에 들어서기 전 이미 계획되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 된다.

이이다 후미히코 교수는 경영심리학자로서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그가 자칭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보람있고 멋진 삶을 살게 해주는가?"에 대한 의문에 답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에 기뻐하고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최면요법을 통한 자료를 통해서 먼저 보여주고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윤회가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더불어 인간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고 하는 물음도 던지게 된다. 그것은 내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서서 그것을 경험하며 그 기억을 간직하는 무엇인가가 지금 내게도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중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넘어가는 인생의 구조에서는 생과 생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최면요법을 통해서 얻은 자료들 중 객관적인 것을 추려서 모아놓았다.

사실 객관적이다, 과학적이다 하는 것이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 중 드러난 현상을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언어적 표현 자체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후미히코 교수는 드러나지 않은 영적 세계를 드러난 현실의 역사에서 검증가능하고 최면요법의 피험자 중 다수의 사례로 나타난 경우를 지극히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유명도가 있는 정신의학자(우리나라에도 김영우박사 등이 있다)들의 연구내용들을 바탕으로 우리 인생의 구조와 삶의 의미에 대해 아주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정리를 잘 해놓았다. 그리고 내용이 좀 충분치 못하긴 하지만 삶을 대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결론으로까지 잘 도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학자로서의 역할까지 충실히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내린 결론은 스피리추얼한 인생관(인간의 본질이 정신 또는 마음이라고 가정하여, 정신적인 풍요함을 추구하는 관점)을 가지고 break through적 사고방식(모든 것에는 의미와 가치가 있고 표면적으로는 실패, 좌절, 불운과 같이 보이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순조로운 시련이다는 신념을 가짐으로써 그 시련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뛰어넘는 것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인생의 시련을 마음편하게 뛰어넘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한계도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전생이나 영혼의 마스터를 인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없을 뿐더러 그런 기회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주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의 온전한 내면적인 체험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내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다. 자기의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체험이 있어야 비로소 삶과 세상의 의문들이 비로소 해결되어지고 그런 해결이 자신의 삶의 의미도 보람도 제대로 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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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1-1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글샘 2005-01-1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보람은 창조하는 사람에게 있는 거 같네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달팽이 2005-01-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글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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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트랜스퍼스널한(물질로서의 자기를 넘어선 정신적인) 존재다.

2. 인간의 본질은 육체에 깃들어 있는 의식체이며, 수행의 장인 물질세계를 방문하여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3. 인간이란 죽음, 병, 인간관계 등 여러 가지 시련이나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기 위한 학교(수행의 기회)이며, 자기 자신이 계획한 문제집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직면하게 되는 모든 현상에는 의미나 가치가 있고 모든 체험은 예정되어 있는 순조로운 배움의 과정인 것이다.

4. 인생에서는 '자신이 일으킨 감정이나 언행이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라는 인과 관계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이 법칙을 활용해서 사랑이 있는 창조적인 언행을 하도록 유의한다면, 미래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바꿀 수가 있다.

5. 인간은 자신에게 최적인 부모(수행환경)를 선택하여 태어나며, 부부나 가족과 같은 가까운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의 수많은 인생에서도 입장을 바꾸어 가면서 가까이에서 지낸다.

 

                                                                                                                                          - 이이다 후미이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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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6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1-1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잘 모릅니다...가르쳐주세요...

2005-01-17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1-18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성공하였습니다. 누님...

2005-01-18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1-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덕분에 좋은 지붕 달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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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용서



 

 



 

 

 

 

 

 

 

 

곡명 : Stamatis Spanoudakis - 'Absences'

깊이 사죄하오
당신을 떠나가서가 아니라
너무나 오래
곁에 있었던 것에 대해서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알렉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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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1-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너무짜고 치는 건가?...크흑..^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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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일 당신이 끊없이 펼쳐진 태평양의 한가운데에서 조그마한 구명보트에 아무런 무기나 도구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야생호랑이와 단 둘이서 태평양을 벗어나야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여기 16세인 파텔이라고 불리우는 한 인도 소년은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정하면서 온가족이 화물선을 타고 가던 중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배는 좌초하였다. 가족 모두를 잃은 슬픔을 느끼지도 못하는 급박한 상황속에 던져진 그는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한마리와 하이에나 오랑우탄과 벵골호랑이가 탄 구명보트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 소년에게는 그 막막하고 넓게 펼쳐진 태평양은 그저 외부의 세상일뿐 그가 생활하는 공간은 조그만 구명보트위가 되고 그곳에서 그는 서로 죽고 죽이는 먹이사슬에 놓여진 불쌍한 초식동물일 뿐이다.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이고 그 하이에나를 호랑이가 죽인 후에는 결국 파이와 리처드파크라는 호랑이만이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작은 점과도 같은 보트 위에 서있는 두 존재가 된다.

호랑이에 대한 인식을 한시라도 놓칠 수 없었던 한 소년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삶에 대한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데에는 이 상황에 소년을 던졌던 신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의 생명을 언제라도 위협할 수 있는 호랑이가 사실은 소년이 그 기나긴 시간동안 부모와 가진 모든 것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막막한 바다위에서 밀려드는 어둠과 바닷속의 상어의 공격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탱시키게 해준 생명의 열쇠였던 것이다.

일본 해양부의 직원이 일본 선박 침춤호의 침몰 원인에 대해 조사하려고 왔을 때 소년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려는 대로죠. 안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확실히 그러하다. 소년이 만일 그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특별한 방식, 즉 현재의 상황에 대한 모든 이유를 신의 의지로 돌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해내지 못하였다면 아마 이 이야기는 작가가 만들어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앞서서 나온 이야기처럼 이 이야기는 결국 당신을 신으로 인도할 것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이해할 수 가 있다.

화물선에 오르기 전에 소년이 가졌던 기독교와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다원주의적 종교관은 결국 그가 어떤 형식이나 교리를 떠나 자신의 생활속에서 참된 신앙을 찾으려는 노력이었으며, 그러한 노력이 극한적인 삶의 조건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그렇게 이해되고 수용된 상황은 단지 그가 헤쳐나가야 하는 모험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그러한 극한적인 삶의 조건에 처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통해 삶의 의미와 희망을 가지고 그 역경을 헤쳐나갈 것인가? 어쩌면 태평양 망망대해위에 놓여진 추진기관없는 구명보트에 호랑이와 함께 한 227일의 삶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이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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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문진희 옮김 / 한문화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모든 깨달음은 주관적이다. 호킨스 박사의 이 책은 특정한 종교적 형식을 떠나서 삶과 인간존재의 깨달음에 관한 영적인 책이다. 모든 인간사회의 종교가 가진 공통적인 메세지와 그 메세지가 가진 의식의 레벨에 대해 객관적인 수치로서 드러내었다. 이 책은 그의 전작인 '의식혁명'의 후속편이자 영성에 보다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보다 상세하게 깨달음의 구조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영성은 이 책에서 그가 강조하는 개념이다. 종교는 그 형식적 도그마로 인해 역사상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왔다. 그 선구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높은 의식레벨은 그것을 해석하는 후대사람들의 이기심과 에고에 의해 해석됨으로써 역사의 길목위에 많은 사람들의 피를 뿌렸다.

그뿐이 아니다. 경전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왜곡은 진정한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함으로써 그들의 일생에 걸친 노력을 헛되이 만들기도 했다.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지표와 나침반을 갖지 못함으로 해서 갖게 된 수많은 오류들과 거짓된 스승이나 구루들을 알아보지 못함으로써 허비해야 했던 시간들을 그 생에서는 보상받지 못하였다.

만일 이 책에서 드러난 의식지수가 정확하지는 않다하더라도 그런 잘못된 길을 스스로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검정표의 역할이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이 책이 가진 가치는 그 값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비록 표현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는 깨달음의 영역을 수치로서 나타내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하더라도 이렇게 정확하고 막힘없이 수치화하는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것이 세상에서 깨달음에 대한 잘못되고 오도된 길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칭찬받아야 할것이다.

인류의 전망에 대해서도 이 책이 주는 메세지는 희망적이다. 200을 넘어선 인류의 역사는 앞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향해 달려갈 것이고, 그 속에서 우리들의 삶은 보다 영적으로 성숙해질 것이다. 지수가 더욱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영적으로 긍정적인 감화를 더욱 많이 받을 것이고, 언젠가는 지구가 더욱 성숙한 별로서 거듭 태어나게 될 날 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무슨 특별한 개명천지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지구에서 우리들의 의식이 한 차원 성숙된 세상이 아닐까?

나의 삶 속에서 나의 모든 행동과 마음과 사건들을 지켜보는 내면의 눈, 그 눈이 늘 우리들의 생명을 지켜나갈 것이고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배우고자 하는 것을 지켜보는 참 존재일 것이고 그것을 우리들이 문득 아는 날에 세상은 나에게서 다시 펼쳐지는 날이 올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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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1-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 책의 첫 서평을 '모든 깨달음은 주관적이다'라는 말로 시작했을까? 주관적이란 말에 더욱 함축성을 준 건가? 아니면 <나의 눈>이란 책 제목에서 비롯한 것일까? 제목에서의 '나'는 그냥 'I'가 아니라 'The I'란 것을 안다면 깨달음의 주관성을 쉽게 단정할 수있는 것은 아닐텐데...주관성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어 서평의 첫 말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 ^^!!

달팽이 2005-01-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딴 것은 아닙니다. 저자의 깨달음의 수준의 객관적 수치화에 대한 일종의 의문과 'The I' 관찰하는 주.객관 없는 그 마음을 내 안에서 온전히 찾고자 하는 마음이 그런 표현을 쓰게 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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