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오세요.

오! 아름다운 꿈들이요,

그리고 당신, 사랑하는 사람이여,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여.

 

내 방으로 들어오세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

어제의 슬픔은 내려놓고,

영원한 잠에 빠지세요.

 

어서 오세요, 젊은이여,

두 눈에 세상을 가득 담아보아요.

어서 오세요, 숙녀여,

제발 울지 말아요.

 

몰려 오는 사람들,

남자, 여자, 늙은이, 어린 아이,

그들의 가슴 속에

가득 찬 사연들.

 

활짝 열린 귀,

벅찬 가슴,

운명의 이끌림에 따르는

희망 어린 도움.

 

나의 세상으로 오세요,

오! 꿈꾸는 사람들이여.ㅣ

나의 세상으로 오세요,

오! 몽상가들이여.

 

너무 작은 사람은 없어요.

너무 큰 사람도 없죠.

우리를 위한 신의 은총은

모두에게 그만큼씩.

 

함께 떠나요,

용기를 내서 내 손을 잡으세요.

함께 떠나요,

우리가 얘기하던 약속의 땅으로.

 

이제는 몸부림으로 가득 찬 인생,

환희로 가득 찬 인생,

당신을 도와줄께요.

우리는 자유로워질 거예요.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

눈에 보이는 진실.

내가 당신을 위해 보았어요,

생생한 진실을.

 

잼도 바르지 않고

토스트를 먹으려고요?

그러니 내 방으로 어서 오세요,

오! 꿈꾸는 사람들이여.

 

                                               - 실비아 브라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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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욱 선생님의 가르침들이 요즈음 내겐 더욱 그 의미가 절실해진다.

왜 바치는가? 하는 의문이 늘 나에겐 있었는데....

바치는 그 자리가 부처님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일으키는 그 자리로 채워지고

그것은 바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 명상의 자리에서만 명상하는 것을 벗어나

일상으로 나의 명상이 침투하게 하여 준다.

책을 읽을 때와 명상할 때의 마음의 상태가

사람을 대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운전을 할 때에도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음악을 들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이어지게 해준다.

"그 마음을 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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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의 황금시대
오경웅 지음 / 천지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의 내용을 아직 마음으로 다 소화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토를 다는 것이 사족이 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인간 존재의 깊은 본질에 대한 깨우침을 가졌던 대 선사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주와 같은 그들의 마음을 내 마음 속에서 찾게 해주기도 하지만 늘 나를 겸손하게 하고 모르는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내 마음의 그릇으로밖에 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저자인 존 우와 홈즈 대법관의 선학에 대한 언어적 정리는 그들이 마음 속에서 체험하고 증득한 사실들을 될 수 있는 한 흩어지지 않게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나는 가없는 존경을 감출 수 없다.

사실 선이란 내가 나됨이다. 선의 나침반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참된 나됨의 과정을 밟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한바퀴를 완전히 돌게 되면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이며 세상도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된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꿀단지를 본 벙어리가 되어버린 나는 그저 갈 뿐이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의 나침반 속에 한 걸음을 디디고 섰고, 꿀 맛도 보지 못하고 꿀단지만 본 벙어리처럼 세상이 오직 꿀단지로만 보이는 경험이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랴! 마치 세상도 모르고 꿀맛만 쫓는 철부지 아이처럼 나는 그렇게 나도 잊고 세상도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디딤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과정이 없이는 나는 나도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온전하게 사는 것은,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목적은 바로 나 자신을 바로 보고 나 자신으로 온전히 살기 위함이다. 따라서 나 스스로가 전도되고 없어지고 뒤틀리고 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그것이 나를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그것을 보고 내가 오랜 나그네의 방황을 마치고 고향집에 돌아가게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도 없고, 마음도 없고, 나도 없는 그 문을 지나 나무닭이 울고, 돌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길을 지나 비로소 차가워진 겨울날 다 떨어져버린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싹이 쭈삣쭈삣 올라오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리라. 온전한 내가 아님으로써 가져야 하는 마음 속의 의문덩어리가 해소되어 걸림없고 자유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는 그 날까지 오직 갈 뿐이다. 그래서 먼 훗날 태양이 솟아오르고 사위가 밝아오는 그 날에 세상을 날려버리는 큰 웃음 한 번 지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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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선불교에 관한 글인가봐요...저처럼 생각이 짧고 다혈질인 사람에게 필요한듯 하군요...

달팽이 2004-12-1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걸요. 그런 자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잡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kleinsusun 2004-12-1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절판된건 아니죠? 품절 표시가 되어 있네요. 번역자 소개나 책 소개도 없구요.

그래도....달팽이님의 리뷰를 보니 신뢰가 생기네요.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달팽이 2004-12-15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제가 작년인가 알라딘에서 주문한 것으로 아는데....그래도 주변 서점에서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만 인연이 있어야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수선님의 삶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인 그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을 때....

그 때 세상은 나에게서 다시 펼쳐지는 경험들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어둔이 2004-12-1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서원에서 출판된 '선의 황금시대'입니다.이 책의 번역은 불교문화사, 천지등의 출판사에서 예전에 번역된 것이 있는데 모두 번역이 시원찮고 경서원의 류시화님의 번역이 그래도 지나친 자의적 의역이 내비치긴하지만 원서가 영어판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읽는데 뜻이 통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류시화씨는 함부러 책을 번역하지는 않으니까...경서원의 책을 한번 읽어보시기를...아마 달팽이님도 경서원 책을 읽고 이곳에 서평을 단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세요..
 

도의 수행자들이여! 불법은 인위적 노력을 인정하지 않으오.

다만 평상시의 일들을 잠자코 할 뿐,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똥누고 오줌누며,

피곤하면 잠자는 데에 불도는 있소.

어리석은 자들은 내 말에 웃을 것이나,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내 말의 참뜻을 알 것이오.

진정한 귀인은 공연히 법석떨지 않고 따라서 근심이 없는 사람이오.

결코 요란떨지 말고 다만 평범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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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의 선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삼우반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은 "활쏘기의 선"이다. 즉 활과 선의 관계를 이 책은 쫓아가고 있다. 독일인 저자 오이겐 헤리겔이 일본에 와서 선을 배우기 위해 활쏘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겪는 체험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이야기가 그가 독일로 돌아가 유럽에 동양의 선을 소개하는 안내서로 역할하게 된다. 활쏘기의 선이 유럽사회에 끼친 충격은 오랫동안 유럽사회를 뒤흔들게 된다.





활쏘기의 기예를 배우는 것은 "기예없는 기예"를 배우는 것이다. 그것은 선에서 "깨달음없는 깨달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활쏘기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분절된 동작과 연습 속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 분절된 행동과 연마는 단순히 반복에 지나지 않게 된다.





저자가 활쏘기를 배워가면서 바뀌는 마음의 변화가 이러한 것을 잘 설명해준다. "내적으로 또는 궁사 자신에게 올바른 발사는 마치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듯이 느껴진다. 올바른 발사 이후에 궁사는 모든 올바른 행위와 더 중요하게는 모든 올바른 무위를 행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크나큰 즐거움을 준다."그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동양적 선을 배우려는 그가 이렇듯 5년이 넘게 활쏘기를 계속 배울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궁극의 자리, 즉 깨달음없는 깨달음까지 이어져야만 한다. 오직 갈 뿐이다. 그렇게 해서 활쏘기가 완성되는 지점에 달하면 "토끼의 뿔과 거북이의 머리카락으로 쏠 수 있는 사람, 즉 활과 화살없이 명중시킬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인이 되는 것이다.





스승 아와 겐조가 어둠속의 사선에서 두개의 화살을 정확히 과녁에 명중시킬 때 비로소 그는 이렇게 외친다. "이 두 개의 화살로 선생은 분명히 나도 명중시켰다. 밤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나는 더 이상 내 화살에 대해서,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걱정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에서 진정한 선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자리에서 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결국 이러한 현실적 확인은 깨달은 자의 눈에는 필요없는 사족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게 기예없는 기예는 선의 궁극적인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 깨달음에서는 그것이 어느 기예로 나아가든지 대가를 이루게끔 되어 있다. 검도든, 유도든, 시든, 화든, 꽃꽃이든.....





어떤 기술이 예술이 되고, 또 그 예술이 종교적으로 승화되기 위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이 마음 속의 비밀의 문이 되고, 그 문을 통과해서 나온 세상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어느 것이나, 어느 행동이나 선이 아닌 것이 없다. 삶의 어떤 영역이 한 단계 승화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속에 참된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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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12-0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예없는 기예, 깨달음 없는 깨달음, 분절된 동작과 연습 속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 분절된 행동과 연마는 단순히 반복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

도라 말하면 도가 아닌 경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그 경지...어렵습니다~~



근데 님도...비알테그의 압박에 놓여 계시나 봅니다.... 저도 그런데요... 한 줄 떼어 줬을 뿐인데.... 대여섯 줄씩 떨어져보이는 저... 여백들...!!!


달팽이 2004-12-0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였군요...님이 후에 좀 가르쳐주세요...벗어나는 방법을...

남들의 글이면 그 여백 속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보겠습니다만....

나의 글이라 이미 글과 글 사이 행간의 여백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