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대담 시리즈 3
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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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기억을 전유하기 위한 갈등과 투쟁의 결과 형성된다. 그 과거란 개인에게 있어 사건발생 후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기억되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 개인의 기억들이 뭉쳐진 집단적 기억인 역사도 마찬가지로 새롭게 형성되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기억에 관한 것이다. 근대 이후 세계사의 큰 축을 형성해왔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단적인 기억을 형성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와 이익을 누려왔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만적인 환상이라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와 사카이 교수의 대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의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사회과학 분야에서 흔치 않는 별 다섯개를 주었다.

첫째로는, 국민국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근대화의 과정과 민족주의가 형성되는 과정 그리고 제국주의로의 발전과 팽창에서 야기되는 식민주의의 문제, 선진자본주의와 후진 자본주의의 문제, 선진 자본주의 내, 후진 자본주의 내에서의 차별과 배제 억압의 논리가 이끌어 온 왜곡된 세계사에 대해 그것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출되고 또 재배치되면서 그 이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 이익을 보다 영속화시키기 위해 대중집단을 국민국가의 형성을 통해 그 틀 속에 묶어두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주의에서도 러시아와 후발 사회주의 간의 지배 종속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과 일본의 구체적인 역사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식민지 국가에서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는 그들의 관점은 우리 나라의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 근대화과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역사 조명이 필요함을 말해준다.('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일본식 근대화를 이루는 것이 민족의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이광수를 포함한 친일파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분이 내셔널리즘적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다.) 식민지 내에서의 제국주의의 내면화는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하면 '헤게모니'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고찰해본다면 이전의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드러난 약간 상이한 두 길일 뿐인 것이다.

나아가 정보화 혁명이후의 세계화 현상과 다국적 자본의 해외진출, 지역경제의 블럭화 현상을 포함하여 미국의 이라크 침공, 9.11테러 이후의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화 물결 등 현실적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국가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틀안에서 사유와 실천을 가두어 놓았던 과거의 대안 추구방식을 비판하고 그것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어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보자는 의도를 담아내었다.

둘째로는, 번역이라는 공동작업을 통해 외국어를 자국어로 바꾸어냄으로써 타인의 사고를 자기의 것으로 전유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열린 대화를 통해 보다 성숙한 방법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담에서도 결국엔 두 사람이 역사를 인식함에 보편적인 부분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공감의 접점을 통해 역사는 새롭게 인식되어지고 여기에서부터 역사적 실천을 위한 새로운 사유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새로운 사유가 바로 당면한 역사적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고 대화와 상생의 역사를 펼쳐가는 데 있어 출발점이 된다는 생각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과거의 기억을 전유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각 각 다른 시각들의 접점에서부터 우리들은 열린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그 접점에서 집단적 기억은 타인의 피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에서 시작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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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ia327 2004-11-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쯤까지 읽다가 책장에 영구보관되고 있는책인데....

살인자와 인터뷰인가 기억인가에서 사람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하죠

아니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거나, 이해해도 금방 까먹어 버린다는데.

책 두께가 주는 중압감과 더불어 긴 내용의 책을 띄엄띄엄 읽다 보니 연계성이

없어 중간에 포기 했는데, 님의 글을 보니깐 다시 책을 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달팽이 2004-11-25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완독하시고 글 남겨주세요...둘러보겠습니다...
 

자각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선행하는, 이유도 지지도 필요없는 근본적인 본래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본래의 상태에 의식의 개념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고 상대성을 야기시킵니다. 의식은 형태를 갖고 있는 물질의 표면에 부딪히는 자각의 반영입니다. 자각을 빼놓고서는 의식을 말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없이는 그 빛이 반사되어 느낄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의식없이도 자각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순간적으로 의식이 없는데(의식이 쉬는 상태임) 그 때에도 자각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깨고 난 후 잠을 잤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났을 때만 그것을 압니다.

마하라지는 의식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이렇게 말한다. 의식은 우리와 늘 함께하는 동료와 같다. 우리를 삶이요, 사랑이요, 환희의 기본적 존재인 자각으로 데려다 주는 것은 의식이라는 동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인 까닭에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마하라지에 의하면 존재의 의식은 벌써 자각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한다. 근본에서 비롯된 마음은 밖을 향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언제나 그것 자체 안에 있는 그것의 근원을 찾으려 한다. 그것이 그 안의 근원을 찾고자 방향을 바로 잡을 때, 그것은 거의 새로운 삶의 시작과 같다. 자각이 의식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나는 존재한다(I am)"가 중단된다. 자각 안에는 생각이 없다. 자각은 의식의 근원일 뿐이다.

마하라지는 훌륭한 정신적 수련은 조용히 앉아 마음의 표면에 무엇이 떠오르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권한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수면 위의 잔물결과도 같다. 생각은 언제나 무언가를 자기와 동일시하여 자신의 근본을 왜곡시킨다. 생각이란 생각나기 이전의 산물일 뿐이다. 잔물결이 없을 때는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되며 마음 또한 잔잔하게 된다. 마하라지는 말한다. 당신 마음의 거울에 온갖 종류의 영상이 생겨나 잠시 비추이다 사라지는 것뿐이다. 그저 그것들이 오고 가는 것을 여여하게 지켜보라. 방심하여 그것들을 놓쳐서도 안되지만 그것들에 얽매이거나 끌려다녀서도 안된다. 이러한 주시의 태도는 원치않는 손님들과도 같은 불필요한 모든 생각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당신 자신의 내부, 즉 "내가 존재함(I am) 안에서 마음의 흐름과 싸우거나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그것들의 흐름을 지켜본다면, 알려지지 않고 알려질 수 없는 그 깊은 미지의 근본이 의식의 표면으로 드러나 당신으로 하여금 그 근본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무한한 에너지를 풀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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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0-0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하라지 선생은 얼마나 친절한가!! 언어가 갈 수 있는 그 끝까지 왔다. 이제 우리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작금의 과제이다.
 

그 깊은 떨림.

그 벅찬 깨달음.

그토록 익숙하고

그토록 가까운 느낌.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껏 그날의 떨림은

생생합니다.

단지, 천 배나 더 깊고

천 배나 더 애틋해 졌을 뿐.

 

나는 그대를 영원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이 육신을 타고나 그대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그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운명.

우리 둘은 이처럼 하나이며.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 놓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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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0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 님이 올리는 시를 읽으면서, 내가 참 메마르게 살고 있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좋네요.
책장 한쪽에 몇년간 손길한번 주지 않던 시집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시집을 많이 가지면 시도 많이 아는 듯해서 시집만 사들이던 때가 있었는데......^*^

달팽이 2004-10-0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과 나 사이에서 떨림을 주는 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떨림, 마음과 마음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떨림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그런 시를 저는 좋아합니다...아직은 보는 눈이 섬세하지 못해서 얕지만 조금씩 깊어감을 느끼는 재미도 있더군요...

까뮈와 릴케 2005-04-2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전에 읽었던 시인데 지금 읽으니 또 느낌이 다르네요. 그 떨림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요..

달팽이 2005-04-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마음 속 어딘가에 그 의문의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ㅎㅎ
브라이스 와이스의 "기억"이란 책을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전출처 : stella.K > 이시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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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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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뼛'자와 '써라'자는 큼지막하게 크게 씌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대해 아직은 어떤 두려움과 짐을 가지고 있는 내게 '써라'라고 하는 절대명제 앞에 나는 어떤 숙제가 내게 남아 있음을 느낀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매력적인 작가이다. 그의 글쓰기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자신의 삶이요, 일상이다. 그리고 불교신자로서의 명상, 선이다.

우리는 어떤 글을 대할 때마다 저 글을 쓴 사람은 과연 글에 드러난 색깔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묻게 된다. 그리고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을 대할 때에도 그 작품이 작가와 예술가의 삶의 기준과 이중적인 괴리를 보이게 되면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고 그 작품에 대한 감동이 떨어지기도 한다. 골드버그는 그런 글쓰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 자신의 일상의 마음에서 솟아난 글, 자신의 삶의 가치와 경험이 녹아난 글을 쓰라고 한다.

나의 글쓰기도 이젠 어느 정도 나의 패턴을 찾아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늘 어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려고 하면 내 머리속에서 한 번 정리되어지는 절차들이 때로는 글쓰기의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실 그런 압박감을 가지기 싫어 읽은 모든 책을 서평으로 남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이 주는 어떤 생각과 느낌들을 정리하고자 할 때에도 늘 그런 욕구와 더불어 글쓰기의 짐같은 것들이 덤으로 나에게 생기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 내 글쓰기 아닌 글쓰기(?)의 반성 속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골드버그의 글쓰기는 이런 면에서 오랫동안 나의 목에 걸려 있는 가시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가에 대해 친절한 충고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특별한 글쓰기란 알고보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 속의 가시를 제거하는 평범한 방법이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내면적 관찰자, 편집자"를 고를 것이다. 뼛속까지 깊이 내려가서, 즉 자신의 본성과 근원 깊이 도달하여 쓰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자신의 마음 속 관찰자, 편집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실체는 에고이다. 늘 나의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욕구와 욕망이 나의 세계인식을 가로막고 있듯이, 세상을 마음으로 투명하게 담아내는 데 그것은 자꾸만 창에 끼는 성에와 같은 것이며, 따라서 뿌옇게 담아낸 세상은 뿌연 글쓰기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선이요, 명상이다. 자신의 근원 깊숙히 가닿아 깨어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바로 보는 것, 그 마음에서 세상을 담아낸 글들이 만들어내는 글쓰기는 그 자체가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홀로그램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화두이다. 내가 어떤 곳에 어떤 사람을 마주하건, 어떤 대화를 하고 있건 그것은 나의 세상과 우주를 만들어내고 또한 그것은 글쓰기로 이어진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절실한 문제인 깨달음으로 자신을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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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쓰셨네요. 보관함에만 두고 읽어보지 못했는데 한번 읽어 봐야겠군요. 추천!^^

달팽이 2004-10-0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군요..간간히 들러 사진 열심히 퍼고 있답니다...물론 가끔 추천도 부지런히 하구요...

stella.K 2004-10-0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저야 고맙죠.^^

달팽이 2005-01-1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미 한 것으로 아는데요...그리고 정기적으로 들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