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노래
고은 지음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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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하면 나이와 세월에 관계없이 늘 우리에게 끊이지 않는 시창작과 현실 참여로 그야말로 예비역을 모르는 현역시인으로 떠오른다. 갇힌 자아에, 화석화된 과거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는 '절벽'이라는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늑한 방을 뛰쳐 나왔다' '그 절벽으로 달려 갔다'에서 이제 그 나이쯤이면 편히 쉬며 인생을 흐르는 대로 살 수도 있으련만....'부동자세 거기에 온몸 부숴버려야겠다' '보라 내 늙은 안식 사악하여라'에서처럼 늘 자신을 부정하며 새롭게 만들어가는 자신에게서 우리는 나이에 아랑곳없이 새로운 도전과 지적 탐색으로 생명력 넘치는 한 시인을 접하게 된다.

'일인칭은 슬프다' '매향리' '미국' 등의 작품에서 그의 청청하고 부릅 뜬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 '모방' '절벽' 등의 시에서는 자아성찰과 존재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큰 이야기' '저녁'에서는 이 모든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의 시는 깊은 역사의식과 현실 참여가 하나의 씨줄이 되고 종교의식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날줄이 되어 그의 삶이라는 몸에 맞는 옷감이 된다. 그것은 또한 다채로운 시가 된다. 여기 그의 시 한 편을 옮긴다.

저녁 -진실은 저녁에 온다누구에게는 빈 가슴이고누구에게는 어둠의 시작이다그것은 너무 늦게 와서 하나하나 이야기가 된다벌써 술집 불빛들 서둘러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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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 황허 물 - 허세욱 교수와 함께 읽는 중국 근현대산문 56편
루쉰 외 지음, 허세욱 옮겨 엮음 / 학고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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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 황허 물을 마셔도 우린 황허 물 맛을 알 수 있다. 한 움큼 황허 물을 손에 쥐어도 우린 수 천년을 흘러 내린 황허 물에 담긴 내력을 느낄 수 있다. 중국 근,현대 산문 56편 속에 우리는 수 천년을 이어온 중국의 역사와 그 역사 속 사상을 느낄 수 있고, 그 역사와 사상이 압축된 글들을 접할 수 있다. 문화혁명의 급박한 현실 속에서의 인텔리의 고민과 번민도, 급변하는 근 현대사와 서양물결의 침투 속에서 감당해내야 하는 세상의 중심잡기의 어려움도 있다. 혁명 과정에서의 인간에 대한 고민, 혁명의 인간파괴에 대한 풍자와 해학, 풍전등화같은 운명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가 하면 추운 현실속에서 그리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짙은 향수도 맡을 수 있다.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적절한 양념같이 곁들여 진다면 아마 우리는 이 음식을 보다 맛있게 즐길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현실은 어느 시대든 문학과 사상에 영향을 미치며 또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 역사적 현실을 가슴에 담고 이책에 담긴 산문 한 편 한 편을 읽어보시라. 아마 한 편 한 편에 담긴 중국 역사의 역동적인 맥박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 움큼 황허 물에서도 우린 중국 역사의 혼이 서려 있는 황허강의 인생 역정을 깊이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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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
달라이 라마 지음, 도솔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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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의 첫걸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려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책이 있다.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의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가쵸의 전세계인에게 전하는 행복의 메세지가 바로 그것이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소감문에서 그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도 모르게 하라'라고 말하였다. 자신의 행동 속에 자리한 선한 마음이 온전히 몸과 마음에 녹아들듯이 행하라는 그의 메세지에는 우리 지구별이 나아가야 할 아름답고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그는 인간은 성별, 종교, 민족, 신분, 사회적 계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행복하고자 하고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도 그 중 하나라고 함으로써 우리들 속에 그 중 하나로 존 재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의 원인은 부를 축적하는데 있지도 않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있지도 않다고 한다. 그것은 오로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밖으로만 돌리고 있던 우리의 관심을 우리의 내부로 돌릴 것을 그는 제안한다.

마음의 평화를 갖기 위해선 우리 마음 속의 긍정적인 면들을 키워나가고 부정적인 면들을 극복해가야 한다. 다른 사람과 생명에 대한 감정이입과 깊은 사랑, 자비심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 긍정적인 것들이라고 한다. 우리 각 개인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윤리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군사, 환경 등의 여러 제도적인 면에 있어서의 자비심이 깃들인 정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비록 결과적으로 같은 정책이라도 정책입안자의 마음에 자비심이 있고 없음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 정치적 제도적 혁명이 아니라 각 개인의 내적인 혁명, 영적인 혁명이다. 새해의 아침무렵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 그가 우리들 속으로 친밀하게 다가온 이유를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가장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열쇠라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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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기행 - INDIA
강석경 지음 / 민음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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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유교적이고 인습적인 색채가 견디기 힘들어 자기 생에 대한 열정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자 떠난 인도 여행에서도 그녀는 진정한 삶을 방해하는 인도사회의 사회적 조건들에 부딪히고 만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 불교와 힌두교의 풍습에 내재한 인간에 대한 불합리성에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녀의 이성은 질식한다.

왜 하필 인도였을까? 자유로움, 성적 평등 그리고 개인주의와 관용이 있는 유럽사회라면 더욱 좋았을텐데....하지만 인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현세의 완전하지 못한 삶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우리 마으 속 텅 빈 곳을 채워줄 것이....인도인들의 삶에는 여백과도 같은 삶의 여유로움이 자리잡고 있다. 복사기도 없이 다섯장의 서류를 똑같이 수기하는 그들의 행동과 그것을 수용하는 마음엔 분명 느림이 가진 일과 대상에 대한 의미부여와 깨달음이 있다. 현실적 유한성을 넘어 무한함을 지향하는 신의 지문을 찾을 수가 있다.

물론 뛰어난 역사적 전통을 간직한 성역에서조차 들끓는 상혼은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추악함을 드러내며 인도사회를 변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원하고 또 알아야 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조명할 수 있게 하고, 우리의 관심을 우리 내부로 돌리게 한다는 점에서 인도는 우리에게 소중함을 주는 곳이다. 한 가지 깨달아야 할 점은 다른 문화와 접하며 우리의 것과 비교할 때에는 먼저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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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막심 고리키 지음, 한은경, 강완구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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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인간의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은 문학과 삶을 교우하는 정신적인 우정을 나누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스야나 뽈랴나의 그림같은 전원생활은 톨스토이로 하여금 이미 자연 속에 깃든 세상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와의 교감을 경험하게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문학세계와 정신세계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고리끼를 통해 본 톨스토이의 인간성을 그의 적나라하고 저속한 언어적인 표현과 정직하고 비수같은 작품과 사람에 대한 평가, 그리고 농부와 민중의 삶에 대한 동경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노년에 가졌던 정신적 대격변과 그로 인한 그의 사상의 중심을 비켜가기엔 고리끼도 심히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가장 높고 완전한 존재에 대한 그의 충고는 고리끼의 가슴 속 깊은 곳의 내면적 자아를 울렸던 것이 틀림없다. “자네는 침묵으로 여길 빠져나가진 않을 걸세. 그렇지 않을 거야.”라는 말에 그를 쳐다보며 고리끼는 “이 사람은 하느님 같아.”라고 한 그의 말에서 우리는 이 책 끝에 자리잡은 이 문장의 중요성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리끼의 작품에 대한 통렬하고도 직설적인 비판과 때에 따라서는 독설적으로까지 보였던 톨스토이와의 대화는 훗날 돌이켜보며 새롭게 새겨야 할 의미가 있음을 고리끼는 인정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없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온전한 체계를 갖춤이 어려울 것임을 톨스토이가 미리 예견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육체적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사상과 정신은 작품세계를 통해 더욱 견고하고 뚜렷하게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그들의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우정과 교류는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삶의 흔적을 남겨 놓았음을 나는 믿는다.

나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은 나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흔적을 남긴다. 하물며 내가 마음으로 만나며 마음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의 삶을 완전하게 하고 좀 더 넓게 세상을 사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지금 문득 그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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