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50분경 요가하는 처를 데려다주러 중앙동으로 달리는데 앞의 건물 사이로 검은 점들이 허공을 가득히 메우며 흩어진다.

파란 도화지 위에 검은 색 모래가 바람에 한쪽으로 쓸리는 모양같기도 하고 중앙에 바람 맞아 일제히 퍼져가는 모양같기도 한 그것은

가마우지 떼였다. 아 그것도 어림잡아 천여마리....

가마우지 떼의 멋진 군무로 밝아오는 새벽 길을 달리며

저들이 오륙도에서 을숙도로 비행하는 아침 여정임을 알아차린다.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덜 깬 눈을 비비며 울음을 터트리는 두 녀석에게만 선 잠과 싸우는 힘겨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꽃샘추위에 얼굴이 얼어가는 녀석들을 두고 떠나는 우리들만 안타까운 아침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영하의 칼바람을 맞아가면서도 무리를 지어 때로는 방향을 잡아주고 때로는 뒤에서 밀어주며 움직이는 저 가마우지 떼도 선잠 속에서 고달픈 비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비행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의 배경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 부족이 하나같이 만들어내는 비행의 춤과 무늬

 그 속에 자신을 잊고 전체의 그림 속에 딱 들어맞는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낼 줄 알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우주,

그 속에서 나도 불멸의 작품 속 내 위치를 아는 한 점이고 싶다.

마음 속의 한 점을 찍는 순간 어느덧 날은 환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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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3-07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떼놓고 돌아서다가 하늘의 가마우지를 보는 그림속에
싸하면서도 차분하고 고적감이 돕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한 톨의 씨앗입니다.
아가들도, 새벽 하늘의 가마우지떼도, 달팽이님과 여우도...

달팽이 2007-03-0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한톨의 씨앗에서 세상이 발화됩니다.
그리하여 세계일화라 이름합니다.
 

장엄한 법당에서 우렁찬 종소리

새벽 하늘을 진동하니,

꿈 속을 헤매는 모든 생명들이

일제히 잠을 깹니다.

 

찬란한 아침 해가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니,

빨리 눈을 뜨고 이 종소리를 들으소서.

 

영원과 무한을 노래하는

이 맑은 종소리는

시방세계에 널리 퍼져서

항상 계속되어 그침이 없습니다.

 

이 종소리는

천지가 생기기 전이나 없어진 후에나

모든 존재들이 절대임을 알려줍니다.

 

이 종소리는

아무리 악독한 생명이라도

본디 거룩한 부처임을 알려줍니다.

 

무서운 호랑이와 온순한 멍멍이는

이 종소리에 발을 맞추어

같이 춤을 춥니다.

독사와 청개구리, 고양이와 생쥐들이

이 종소리에 장단 맞춰

함께 즐겁게 뛰놉니다.

 

피부 빛깔과 인종의 구별없이

늙은이. 젊은이. 아이. 어른. 남자. 여자

잘사는 사람. 가난한 사람

모두 함께 뭉쳐서 이 종소리를 찬미합니다.

 

아무리 극한된 대립이라도

이 종소리 한 번 울리면,

반목과 갈등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깨끗한 본모습을 도로 찾아

서로서로 얼싸안고 부모형제가 됩니다.

 

이 신비한 종소리를 들으소서.

나무장승 노래하고 돌 사람 달음질합니다.

넓은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이 종소리에 흥겨워서 즐겁게 뛰노니,

천당과 극락은 부끄러운 이름입니다.

 

이 거룩한 종소리를 듣지 못함은

갖가지 욕심들이

두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갖가지 욕심을 버리고

이 영원한 종소리를 들으소서.

 

광대무변한 우주 속의 우리 지구는

극히 미소하여, 먼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성현. 재사. 영웅. 호걸들이

서로 뽐내니,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진시황의 육국 통일,

알렉산더. 나풀레옹의 세계 정벌 등은

거품 위의 거품이라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날뛰는 이들이여!

허망한 꿈속의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이 영원한 종소리를 들으소서.

 

맑은 하늘 둥근 달빛 속에

쌍쌍이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 우리를 축복하니,

평화와 자유의 메아리 우주에 넘쳐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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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철스님의 진리의 말씀을 귀담아 읽고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한 주가 시작이 되네요. 행복하시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달팽이 2007-03-0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늦은 시각, 앉아서 세상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상엔 소리의 너무 많은 층이 존재한다고 느꼈습니다.
마음을 그 모든 소리 너머의 소리에 맞춰보았습니다.
아이 숨소리, 사물에서 나는 작은 소리, 빗소리, 자동차 소리, 나무가 내는 소리, 산이 내는 소리 너머의 그 소리...
문득 그 절대의 소리는 절대의 풍경이기도 하고 절대의 감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매일 서재에서

책꽂이에 꼽힌 책을 한뭉텅이씩 끄집어내서 방을 어지르는 두 놈.

이 생에서 내게 무엇을 주고받기 위해 왔는지...

보기엔 닮아보여도..(닮았나?)

전혀 다른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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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량줄이셔서 꼭올려 주세요. 보고 싶네요. 그래도 서재실을 책으로 어질러 놓다는 것이 책좋아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아닐런지요. 주말 잘보내고 계신 거죠. 행복한 주말 되세요.

프레이야 2007-03-0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만한 나이때 한참 그러죠.ㅜㅜ 에고 두 아들 얼굴도 보고싶어요. ^^

달팽이 2007-03-05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올리는 데 성공한 듯 하군요..

프레이야 2007-03-0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기들 사진 보러 다시 들렀어요. 에궁, 느무느무 예뻐요. 작은 아이 얼굴에 님
얼굴이 많이 담겨있네요^^

파란여우 2007-03-0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큰 아가 시윤이고 작은 아 이름은 어찌되유?
아주 얼굴에 '장난, 장난'이라고 써 있어요.이마와 머리까지 땀에 젖은 것 봐요.
나도 따라서 달팽이님 서재를 잔뜩 어질러놓고 도망오고 싶어라. 하하

달팽이 2007-03-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작은 녀석은 현우랍니다.
아주 장난이 난장이죠..ㅎㅎ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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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四戒. 소동파


수레나 가마를 타는 것은 다리가 약해질 조짐이고

골방이나 다락방은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어여쁜 여인은 건강을 해치는 도끼이고

맛난 음식은 창자를 썩게 하는 독약이다       p 52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나는 그 화두를 소동파의 절식에서부터 찾는다. 먹는 것과 예쁜 여자, 몸의 안락과 폐쇄적인 것을 경계하라는 4계는 늘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을 쫓아다니며 유혹하는 것들이다. 먹는 것으로부터 탐하는 마음이 생기고 여자로부터 진심이 생긴다. 몸의 안락과 폐쇄적인 생활에서 치심이 생기니 이것은 삶의 진정성으로 들어가는 입문의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건너가 보자.


과부의 노래. 유몽인


칠십 먹은 늙은 과부

규방을 지키며 단아하게 사는데

사람들이 개가를 권하며

무궁화처럼 멋진 남자를 소개했네

여사(女史)의 시를 제법 외웠고

어진 여인들의 가르침을 배운 몸이

백발에 젊은 티를 낸다면

분가루가 부끄럽지 않겠소           p62-3


오랜 시절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수절하며 스스로의 공부를 세워가는 때에 자신의 재주 있음을 세상에 드러내라는 사람들의 권유에 빠지지 않고 나이가 늙도록 평생 가꾸어 온 자신의 청정함을 지키느니만 못하다는 말씀이라. (인조반정을 맞아 광해군에 대한 충심을 바꾸지 않았던 그의 세간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물론 나야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떨칠 만한 그릇도 못되거니와 세상의 변방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책이나 읽으며 사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 주변의 작은 일들에도 나를 세우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가면서 일에 대상에 들러붙는 마음이 있다면 빨리 거두어서 나 스스로 떳떳해지고 세간의 욕을 먹는 일이 없다면 그것이 세상의 주인된 삶이 아닐까? ‘젊은 티’를 낼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 만족할 때을 ‘분가루’가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욕심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일종의 바보들이었는데 그런 그들도 삶의 진정성에 대한 욕심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다.


讀書有感. 이하곤(1677-1724) 호는 澹軒


가난한 집에 가진 거라곤 책 다섯 수레뿐

그것을 제외하면 남길 물건이 전혀 없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책을 못 떠나니

전생에는 틀림없이 좀벌레였나 보다


서치였던 그가 모은 만권의 장서는 모두 양질의 책으로 유명했다. “눈썹 하나 머리털 하나까지 닮지 않은 것이 없어야 인물을 제대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는 사실적 화론을 펼친 회화이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책 거간꾼만 보면 옷을 벗어서라도 책을 구입할 정도로 애서가였다. 그렇게 모은 책이 만 권을 넘어 만권루라고 불리웠다. 그는 부친이 좌의정과 이조판서를 지내 벼슬길이 보장되었지만 충북 진천의 초평에 있는 별서에 완위각이란 서재를 짓고 평생을 책을 읽었다. 이곳에 윤유, 윤순, 최창대, 심육, 김창흡 등의 학자와 예술가가 방문하여 책을 읽고 시문을 나누었다. 특히 이곳에는 중국책이 많아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는 정보의 장이었다.


책을 뒤적이다. 이하곤


우리 집에는 무엇이 있나

서가에는 만 권 서책이 있네

맹물마시며 경서를 읊조리노니

이 맛을 정말 어디에 견줄까


맹물로 밥때를 넘겨야 했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경서를 읊조리고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이 글을 보며 때로는 서글픈 생각이 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보와 가객 계섬과의 인연 또한 눈 앞을 떠나지 않는다.


한섬은 전주의 기생인데 황교 이판서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가 가무를 가르쳐 온 나라에 명성이 자자했다. 한섬이 나이가 들어 제집으로 돌아간 지 한 해 남짓 지나 판서가 세상을 떴다. 한섬이 즉시 말을 달려 판서의 묘에 이르러 한 번 곡을 하고 술 한 잔을 따르고 술 한 잔 마시고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다시 두 번째 곡을 하고 두 번째 잔을 따르고 두 번째 잔을 마시고 두 번째 노래를 불렀다. 이렇듯이 돌려서 하기를 하루 온종일 한 뒤 자리를 떴다.              (추채기이)


윗글에서 한섬이란 이름으로 나온 기생이 계섬이며 이판서는 이정보다. 이정보는 계섬을 직접 지도하며 유달리 사랑했다. 그러나 오로지 그 음악만을 사랑했을 뿐 사사로운 감정을 섞지 않았다고 하니 인품도 훌륭했다. 그만의 방식으로 절절하고 깊은 마음을 담아 스승을 보내는 계섬의 추모방식이 눈에 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인간적인 유대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저자는 선비다운 삶의 외연을 넓혔다. 기생의 삶에서 이젠 천민으로 달려가 보자.


누운 채 청산을 사랑하느라

날마다 늦어서야 일어나노니

뜬구름도 흐르는 물도

시 안으로 다 들어오네

우스워라!

이 내 몸은 선골(仙骨)이 아니런가

뱃속 가득한 연하(煙霞)로는

배고픔을 못 고치네       홍세태(1653-1725)


조선 숙종 때의 천민 출신의 여항시인이다. 조선 후기에는 중인 이하의 평민과 천민들이 모여 시회를 여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러한 부류의 문인을 여항문인이라 했다. 이 때부터 비로소 조선의 문학이 다양한 계층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벼슬로 나아갈 길이 애초에 막혔기 때문에 오로지 진실한 마음과 작품으로 자족하는 삶을 누리는 것만이 앞에 놓여진 길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여한이 남아 시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던가 보다. “배고픔을 못 고치네” 마음이 아프다.


한바탕 풍류는 해외까지 퍼졌지만

십년토록 이덕무와 대문을 마주했네

강산이 냉정하다 다들 말하는 것은

밤새 나눈 정담 장면 보지 못한 탓이지      -박제가-


역시 조선 후기의 벗들의 부러운 만남인 그들을 잊을 수 없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강세황, 홍대용, 황윤석 등의 만남. 비록 서얼 출신으로 자신의 재능을 나라에서 쓰지는 못하였지만 그들 간의 만남만으로도 조선시대의 밤하늘을 아름답고 그 무엇보다 빛나게 수놓았던 별들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박제가가 이서구에게 보내는 회인시는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강산 이서구가 냉정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빛나는 우정을 생각건대 정말 “그대와 하룻밤 만나 나눈 이야기가 십년 동안 읽었던 책보다 낫네”하는 말을 생각게 한다.


우정이 나왔으니 우정에 관한 연암 선생의 글을 하나 더 보자.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 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 사람이 아니라 한나라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 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벗과의 우연적인 만남을 이야기한다. 참다운 벗은 무엇인지 나에게 생각하게 한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이 아니요, 억지로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읽은 책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취미를 나누는 친구들은 평범한 친구들이다. 같이 테니스를 치고 같이 축구를 하고 같이 등산을 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아가 그 행위 속에 삶의 중요한 가치를 나누고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나누어야 비로소 벗인 것이다. 그것이 빠진 바에야 차라리 천 년 전의 성인의 말씀을 읽는 것만 못하고 일백 세대 뒤의 성인의 마음과 교우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천 년의 시간을 넘는 지혜의 말씀, 아니 억천만년의 시공간을 넘은 영원한 진리로 이끄는 만남과 정신의 교우가 없다면 그것은 칼자국과 문신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책읽는 자세에 대한 퇴계 선생의 교훈으로 넘어가보자.


제가 쓴 <도산기>와 <도산잡영>이 그대의 책상 위에까지 올라갔다고 하니 너무도 땀이 나고 송구스럽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본래 지어서는 안 되지요. 산에 사는 사람에게 아무 일이 없다 보니 그저 필묵으로 장난을 치며 즐긴 것뿐입니다. 글상자에 감춰두고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뜻을 같이 하는 벗 여럿이 멀리서 나를 찾아와 사흘 밤을 자고 갈 때 선물할 것이 없어 경계를 깨뜨리고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벗들이 가져가겠다고 조르기에 막지 못하고 퍼뜨리지나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요. 그런데 벗들이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에게 보여주었나 봅니다. 아니면 그 글을 베낄 때 아이들이 베껴서 내보냈는지도 모릅니다. 남이 모르게 하려면 차라리 짓지 않는 게 낫다고 합니다. 이미 짓고서 다시 비밀에 부치는 짓은 옛사람이 비웃은 바인데 제가 이러한 경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퇴계 선생이 1563년 이중구에게 답한 편지 중에 있는 글을 200년 뒤 다산 선생이 충청도 청양의 금정찰방으로 좌천된 후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퇴계의 편지를 읽고 독후감을 쓸 때 모아둔 것이다. 이 글에 대한 독후감도 읽어보자.


나는 평소에 큰 병통이 있다. 무릇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바로 글로 지어내고, 지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 보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버릇이다.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붓을 잡고 종이를 펴서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써내려가고, 글을 짓고 나서는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좋아한다. 문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 주장이 흠이 없는지 편벽된지 아니면 만난 사람이 가까운지 먼지를 미처 헤아리지 않고 급히 보여주려고 건넨다. 그러므로 남에게 한바탕 말하고 나면 뱃가죽 안과 상자 속에는 한 가지 물건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로 인하여 정신과 기혈이 흩어지고 새어나가서 쌓이고 익어가는 맛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리하고서야 어찌 성령을 함양하고 몸과 명예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와서 점검해 보니, 모두가 경천(經淺) 두 글자가 빌미가 된 결과다. 이것은 덕을 숨기고 수양하는 공부에 크게 해로운 데 그치지 않는다. 비록 주장이 현란하고 글솜씨가 화려하다고 해도 차차로 천박하고 값싸져서 남에게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된다. 지금 선생의 말씀을 읽고 보니 느끼는 바가 크다. 


다시 200여년이 넘은 오늘날 이 글을 읽는 내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글이다. 200년의 세월을 넘은 그들의 교우가 지금의 나의 마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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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추려 소개하신 옛 선비들의 글이 향기롭습니다.

달팽이 2007-03-0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의 댓글에 마음이 향기로워지는군요.

짱꿀라 2007-03-0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책 저도 지금 갈등을 하고 있는 책인데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달팽이님의 서평을 읽어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도 판단이 안서네요.

달팽이 2007-03-0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덤으로 한 권 더 주잖아요. 그 책도 괜찮고요.
하긴 역사에 대해서는 폭넓고 깊이 아시는지라...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긴...

파란여우 2007-03-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이러는 게 아닙니다. 마음잡고 환경공부좀 해볼려고 벼르는 사람에게
자꾸 이런 식으로 고전의 향기를 들이대면!
들이대면....아이, 고전은 내년에 계획하고 있단 말에요.
소동파의 아내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에 또 보관함으로
그러니까 순전히 동파 할배랑 달팽이님때문이얌...
추천은 안했어요. 살 때 땡스투 하려고(착한 파란여우^^)

달팽이 2007-03-0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비내릴 것 같은 늦은 밤에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데
잠은 오지않고 펼쳐든 책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 흥을 시간이 늦어 다 옮기지 못했으나
행간의 의미 너머를 읽어내어 그 흥을 살려내시는
여우님 때문에 은근히 그대의 댓글이 기다려지기도 한다오..^^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 사람이 아니라 한날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 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전 옛 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경보에게)

 

박규수의 상고도회문의례

벗들이 상봉하면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에 드는 일이 없을까  안달한다. 안부와 요즘 관심사를 묻고 나서 공부하다 새로 얻은 것이 있는지 알아본다. 그러고 나면 그저 묵묵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옛사람은 차를 마시고 나서 논어를 풀이했다. "는 격으로 경전의 가르침을 따져보려 하지만 이전에 배운 공부가 보잘것없어 더 따지고 입증할 거리가 없다. 과거 답안지에 쓸 문장을 꺼내보지만 지루하고 허망하여 기분을 잡칠까 걱정이다. 결국에는 다 그만두고 다시 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음악을 듣고 기생을 희롱한 이야기, 나들이하고 놀이하는 즐거움에 대화가 이른다. 그러나 이따위는 옛사람이 취하지도 않았고, 내 성격에 맞지도 않는다. 이 밖에 향을 사르고 차를 품평하는 취미나 서화와 골동품을 감상하는 고상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기울이기에는 천박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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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다시 한 번 우정을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네요. 행복한 3월이 되시기를......

달팽이 2007-03-02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님에 비하면 저는 그저 아주 간단하게 올리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님의 태도를 좀 배워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