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 스님께서 공부가 익으신 뒤 천하를 한 바퀴 돌면서 많은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내리셨다. 그분의 제자들이 전국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중국 산동성의 어느 암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친구의 12살 난 사미승이 밀떡 두 개 반을 쟁반에 받쳐들고 들어왔다. 조주 스님이 손님이시니 밀떡을 먼저 올릴 줄 알았는데 자기 스님에게 먼저 한 개를 올린다. 조주 스님께서 다시 생각하시길, 이제 남은 한 개 반 중에 한 개는 당신께 올리고 반 개는 사미승이 먹을 줄 알았는데 조주 스님께서는 드리지 않고 한 개 반을 자기 앞에 당겨 놓고 먹는다.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조주 스님인지라 친구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보게 자네  저 아이 잘 가르치게."

친구가 대답했다.

 "남의 아이 버릇 고치다 잘못하여 아이 버리기 싫네."

 그때 조주 스님은 크게 깨치셨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두고 잘못 가르친 일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뒤돌아보게 되셨다.

 그 어린 사미는 도인을 깨치게 한 공덕을 지었다.

 

  남을 가르쳐야 할 입장이 되었을 때 부처님 마음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심부름하는 마음으로 그네들을 만지면 밝은 일이나, 내가 만지고 내가 가르친다면 내 아상이 작용하여 배우는 이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또 가르치는 이의 그림자를 받게 된다. 그때 서로 어두운 업보들이 충돌하면 밝은 일은 못된다.

  흔히들 가르친다는 미명 아래 얼마나 남을 구속하고 자신의 닦지 못한 독심으로 얼마나 남을 괴롭히는가! 완벽하신 부처님의 경우라면 삼세를 혜안으로 보시고 그 사람이 지어 온 바를 참작하여 밝게 이끌어 가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아이는 영영 비뚠 길로 갈 수 있고 반항심으로 일관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와서 물을 때 성실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는데 억지로 가르치지 않는다. 꼭 가르치고 싶을 때 가르치겠다는 그 마음을 닦고 가르치면 상대가 부담을 안 느끼나,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칠 때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마음에 짜증이 일어난다. 짜증이 일어나면 이미 불사는 아니다. 그때는 내 정도가 이 정도인 줄 알고 부지런히 그 짜증을 바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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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2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대할 때 나를 둘러보게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아이들 중 형제 졸업식이 있다고 해서 서너명을 보냈다.
그런데 그 틈에 끼어 여섯명이 도망갔다.
내일이 졸업식이니 뭐 별일 있으랴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얘기 듣고 분심이 올라오는데 바치고 생각하길 그래도 일단 전화를 걸어서 잘못된 행동을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에 걸어보니 한 두 녀석이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결국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 녀석도 돌아오지 않으면 안보낸다 하고 잠시 후 올라가니 세 명은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고 나머지 세 명은 연락두절이란다.
잡혀 있는 아이들이 뭐 죄가 있나 싶어 보내고 난 후 올라온 세 명의 아이에게 간단히 청소시킨 후 보내고 나니 그래도 올라오지 않은 녀석들이 밉다.
"하지만 전화 받으면 저들이 스스로 더 어려울 것 같아 그러겠지"하니 조금 누그러진다.
남은 녀석들에게 한마디 하려니 벌써 얼굴에 잘못했어요 써 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보냈다.

이 시간에 그 사건을 둘러보니 선생이란 지위로서 부리는 치심이 많다.
아이들 대할 때에 특히 말이다.

그래서 영혼과 그 사람의 과거 미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한다.
이 때문에 최선의 교육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도 있지 않나(우리가 중생이니 중생이 중생을 가르치려하기보다는 그냥 내버려 둠만 못하다는 말이겠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나이니 우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르칠 때에 마음 쓰는 선생님의 방법을 배워야겠다.

2007-02-21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7-02-2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오랫만입니다.
졸업하는 아이들 앞에 사실 그동안 선생님이 잘못한 게 참 많구나!
고생시켜 미안하구나 하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내 사심이 그리 많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 정도입니다.
좋게 봐주시니 오히려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군요..

비로그인 2007-02-2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은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모든 걸 보고 배웁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병원에서 저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과
그분들의 가르침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런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격려가 현재의 저를 만들었지요.
고맙답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 제자사랑.. 하하

새해에 좋은 일 많으시기를,
좋은 책 많이 만나시기를.


달팽이 2007-02-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정말 그렇습니다.
몸으로야 성장하여 시들어가는 것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우리를 구성하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그리고 지인들이 제 선생님입니다.

새해에도 책을 통해 한사님과 좋은 만남 기대합니다.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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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현수 작가는 2005년의 어느 4월 기생 부용의 산소를 찾았다. "봉분의 잔디가 하도 푸르러 눈이 아팠다. 나는 묏등에 가만히 손을 갖다대었다. 그대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주겠노라고, 그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놓치지 않고 쓰겠노라고, 상상이 아닌 짐작으로."  부용의 봉분 앞에서 그녀의 삶을 생각하던 작가는 어쩌면 조선시대에 한많은 상처를 안고 살다간 기생의 환생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이 소설을 소재가 작가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기생들은 불현듯 나를 불렀고, 나는 그들이 불러주는 말을 받아적었다." 조선시대 기녀들의 영혼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 기녀들이 자신의 삶 속 깊이 아로새겨진 영혼의 상처와 못다한 이야기들이 현대 여성의 펜을 통해 하소연되고 있다. 그 영혼들은 다만 자신들의 애처로웠던 삶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공감하고 연민의 눈물을 한 방울 떨구면 영혼의 위안을 받을거라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한 여인이 꿈을 꾼다. 자욱하게 깔린 안개 속으로 정처없이 걸음을 옮기다가 멀리서 부옇게 불을 밝히고 있는 등을 발견할런지도 모른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옮기자 안개는 걷히면서 부용각의 선명한 기와 아래로 분주하게 오가는 기생들을 만날런지도 모른다. 말없이 오가는 분주한 발걸음 사이로 바람맞아 소슬하게 쓸리는 댓잎의 소리가 뜰 안을 가득 메우고 한바탕의 꿈같은 햇살은 묘한 색채의 마술로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런지도 모른다. 우리 옛 조상들의 삶 중 하나였던 기생들의 삶, 그 마지막 자리에 이 부용각이 있었고, 그 곳에서 마지막 기생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미스 민의 아릿다운 환영이 눈 앞을 스치고 간다. 그녀는 바로 나다. 나는 잠에서 깬다. 그리고 나는 전생에 마지막 기생으로서의 삶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그 답이 하나의 소설로 이어진다.

  처음 듣는 작가 이름. (문학에 약한 탓이지만) 하지만 그녀가 뿜어내는 이야기들은 마치 실제로 눈 앞에 부용각과 그 주위 배경과 구조와 위치 그리고 살아나는 인격들로 인해 문득 현실적인 화면이 되어 가득 찬다. 타박네의 앙칼지면서도 매서운 고함소리가 등골을 시리게 하고 오마담의 소리는 갈빗뼈를 서걱서걱 긁어댄다. 교자상 가득히 채워진 맛난 음식들 사이로 남녀의 허무한 욕망은 춤을 추고 그 욕망을 또 다른 욕망이 집어삼키고 그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이 집어삼키면서 그 욕망의 허무함을 알게 된다. 그렇게 평생을 제대로 된 기생노릇에 걸었던 오마담은 욕망 없이 모든 남자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정사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 정면으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에게서 받은 재산은 그것이 필요한 남자에게 아무런 거리낌없이 돌려지고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남자들이 오고 가도 자신의 마음이 그에게 따라가지 않고서 왔을 때 남김없이 사랑하는 그녀는 이미 기생생활로서 인생을 꿰고 목에 걸고 다녔던 것이리라.

  한 남자가 와서 사랑이 되고 그 사랑이 남긴 상처는 어디로 갔을까? 기생에게 있어 그것을 무로 돌려보내는 작업이 바로 '소리'이자 '춤'이다. 미스 민의 춤사위는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기와 그 삶의 상처를 씻어내는 춤이자 남자와의 잠자리의 욕망과 집착을 털어내는 춤이 된다. 춤은 하나의 예술을 통해 승화된다. 자신이 춤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오마담의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닿으려했던 스승의 소리는 바로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는 닿을 수 없는 절대의 소리였지 싶다. 모든 남자를 받아주면서도 박기사만은 받아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가져서는 안되는 욕망과 집착에 자신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믿고 싶다.(박기사의 순수하고 지극한 사랑에 대한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집시 여성에게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돈을 받고 몸을 주는 것은 상관없으나 '마음'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욕망과 사랑의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바람처럼 걸림없는 삶을 지향했던 그들의 마음을 볼 때 능히 그럴만한 일이다. 우리 나라의 기생들을 생각하며 문득 집시 여성의 삶이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미스민과 오마담의 삶은 여러겹의 지층처럼 쌓인 한과 상처로 얼룩진 것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비록 사회적으로 신분적으로 천시받고 자신의 재능을 펴지 못하는 기생이었지만 바로 그 제약적인 삶을 통해서도 삶의 깨달음을 추구했던 그리하여 삶의 의미를 얻었던 영혼이 아니었을까?

  그 삶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옛날의 기생들이 신분제적 한계 속에서 그 흔하디 흔한 한 남자의 마음을 평생 얻는 것이 이룰 수 없는 한이 되어 마음의 긴장감을 만들어내었다면 이제는 그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그러한 한계를 만들어내어야 하는 점은 대비된다. 그래서 이미 평등위주의 사회에서 기생의 마지막 삶을 이어가기 위해 미스 민은 스스로 마음 속의 한계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기생의 삶을 지향하는 한 여자의 팽팽한 마음의 현을 고르는 방법이었으리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스스로 버리고 화초를 올리는 살풀이 춤에서 그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마음의 현줄을 팽팽하게 만들어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삶의 모습이야 뒤바뀌어도 그 이면에 정신적인 삶이야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집시 음악을 켠다. 스산하게 이는 바람 속에서 슬픈 듯 슬픈 듯 울리는 선율 너머로 그 슬픔을 묘하게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내는 영혼의 연금술이 있다. 그 슬픔이 슬픔인 듯 하면서도 선율에 마음이 실리는 순간 그것은 그저 내 가슴 온통 젖게 하는 선율이 되고 슬픔은 사라지고 선율만 남는다. 이현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앞에서 사라져가는 기생의 삶이 그 애처로움이 그 슬픔이 점점 어둠 속에 파묻혀가며 남기는 여운 뒤에 이들의 삶 속에서도 다른 어느 계층 못지 않게 추구해왔던 삶의 의미는 있지 않았을까? 하고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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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1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들의 가얏고 소리와 허공에 그려내는 살풀이의 춤사위, 그리고 집시음악...
이 모두가 조화를 이루어내는 멋진 글입니다. 집시의 춤은 우리네 정서와는
반대쪽에 있지만 왠지 그들의 외면적인 정열 뒤에도 스산함이 서려있는 게 아닌지.
이 책, 언어적 감각이 노랫가락처럼 살아있어 군데군데 소리 내어 읽었지요..

달팽이 2007-02-1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드팀전님 블로그 들렀다 구해본 책입니다.
이현수작가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더군요...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됩니다.

파란여우 2007-02-1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책 읽으면 여성의 상대인 남성이 가여워져요.
모성(자궁에 집착하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함몰된채 살아가는 남성성을 가엽다고 하면
화를 내시려나요. 뭐 부성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박근혜같은 여자도 있지만.
기생이 불러주는 말을 적었다는 책을 그냥그저 바라만 봤는데 달팽이님의 리뷰는
어째 자꾸 지름질을 재촉하십니다.

달팽이 2007-02-1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뭐 저도 가여운 남자입니다.
파란여우님같은 멋진 여자 앞에만 서면...

짱꿀라 2007-02-2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을 대하면서 뭐라 할까? 참 고민이 된 작품이었습니다. 워낙 작품성이 있어서 그런가 저는 읽는 멍한 상태에서 읽었습니다. 뭐 어렵기도 했고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으므로 저것이 죽는다.

이는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고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일체 만물은

서로서로 의지하여 살고 있어서,

하나도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 깊은 진리는

부처님께서 크게 외치는

연기의 법칙이니

만물은 원래부터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따라서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면 내가 죽고,

남을 도우면 내가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근본진리를 알면

남을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웁시다.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남을 돕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상반된 처지에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침해와 투쟁을 버리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물과 불은 상극된 물체이지만,

물과 불을 함께 조화롭게 이용하는 데서

우리 생활의 기반이 서게 됩니다.

 

동생동사, 동고동락의

대 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아서

모두가 침해의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힘을 상호협조에 경주하여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우며 힘차게 전진하되

나를 가장 해치는 상대를 제일 먼저 도웁시다.

 

그러면 평화와 자유로 장엄한 이 낙원에

영원한 행복의 물결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화창한 봄 날 푸른 잔디에

황금빛 꽃사슴 낮잠을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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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1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를 해치는 사람을 제일 먼저 돕는다는 것.
아직 우리같은 중생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인식이 있고 그것을 실천해내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머리로 인식한 잘못된 인식일 뿐
진정하게 가슴으로 아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삶이 되는 것임을
성숙한 사람들은 이미 여러번 얘기한 바 있다.
인연을 바로 보게 되면
우리는 남을 도우며 살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 청안 스님의 "자 이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일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프레이야 2007-02-1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극과 상생은 동일한 원리겠지요. 인연은 시작도 끝도 없는 고리같은 것.
남을 위한 생각을 하다보면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가 창출된다는 말도
이 말씀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네요.
달팽이님, 좋은 말씀 다시 듣고, 행복한 주일 보내자고 혼잣말 하며 갑니다.
님에게도... 평안한 일요일 보내시기 바래요^^

혜덕화 2007-02-1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 행복하면 좋을 것 같지만 나만의 행복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 행복은 결국 다른 모든 인연들에 의해 형성되고 이어져가는 것이기에....
정다빈이란 예쁜 아가씨가 또 자살을 했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어찌 이리 자신의 몸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잘못 알고 살아들가는지.....

달팽이 2007-02-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맑게 개인 주말의 느티나무 가지마다
새싹들이 생명의 용틀임을 하네요.
혜덕화님/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전출처 : 짱꿀라 > 문장이란 어떤 물건인가? - 다산 어록

문장이란 어떤 물건인가?


자네 우선 거기에 앉게. 내가 자네에게 말해 주겠네. 문장이란 무슨 물건일까? 학식은 안으로 쌓이고, 문장은 겉으로 펴는 것일세.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살가죽에 윤기가 나고, 술을 마시면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그러니 어찌 문장만 따로 쳐서 취할 수가 있겠는가? 중화(中和)의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우(孝友)의 행실로 성품을 다스려, 몸가짐을 공경히 하고, 성실로 일관하되, 중용을 갖춰 변함없이 노력하여 도를 우러러야 하네. 사서를 내 몸에 깃들게 하고, 육경으로 내 식견을 넓히며, 여러 사서(史書)로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게 해야겠지. 예악형정의 도구와 전장법도의 전고(典故)가 가슴 속에 빼곡하여, 사물이나 일과 만나 시비가 맞붙고 이해가 서로 드러나게 되면, 내가 마음 속에 자옥하게 쌓아둔 것이 큰 바다가 넘치듯 넘실거려 한바탕 세상에 내 놓아 천하 만세의 장관이 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네. 그 형세를 능히 가로막을 수 없게 되면 내가 드러내려 했던 것을 한바탕 토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네. 이를 본 사람들이 서로들 ‘문장이다’라고들 하니, 이런 것을 일러 문장이라 하는 것일세. 어찌 풀을 뽑고 바람을 우러르며 빠르게 내달려, 이른바 문장이란 것만을 구하여 붙들어 삼킬 수가 있겠는가? -<이인영을 위해 준 글[爲李仁榮贈言]〉7-306


余曰噫嘻子坐. 吾語子. 夫文章何物? 學識之積於中, 而文章之發於外也. 猶膏梁之飽於腸, 而光澤發於膚革也, 猶酒醪之灌於肚, 而紅潮發於顏面也. 惡可以襲而取之乎? 養心以和中之德, 繕性以孝友之行, 敬以持之, 誠以貫之, 庸而不變, 勉勉望道. 以四書居吾之身, 以六經廣吾之識, 以諸史達古今之變, 禮樂刑政之具, 典章法度之故, 森羅胸次之中, 而與物相遇, 與事相値, 與是非相觸, 與利害相形, 卽吾之所蓄積壹鬱於中者, 洋溢動盪, 思欲一出於世, 爲天下萬世之觀. 而其勢有弗能以遏之, 則我不得不一吐其所欲出. 而人之見之者相謂曰文章, 斯之謂文章. 安有撥草瞻風, 疾奔急走, 求所謂文章者, 而捉之吞之乎?


젊은이! 훌륭한 문장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가? 내가 그 비법을 알려주겠네. 세상에 글쓰기 공부만 해서 훌륭한 문장가가 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네. 술 먹으면 얼굴이 불콰해지는 것은 뱃속에 든 술기운이 얼굴에 올라온 것일세. 글도 마찬가지라네. 문자로 표현되는 것은 내 속에 품은 생각일 뿐, 문자 자체는 아닌 것이지. 사람들은 늘 이 점을 혼동한다네. 문장 수련만 열심히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지. 연역법과 귀납법을 배우고, 비교와 대조, 묘사와 서사의 기교를 열심히 배워본들, 글쓰기는 늘지를 않는다네. 내 속에 든 것이 없으면 덜그럭거리는 빈 수레일 뿐인 것을. 자네 좋은 글을 쓰고 싶은가? 무엇보다 먼저 사람 되는 공부를 하게. 수양을 통해 덕성을 쌓고, 학문으로 시비를 판단하는 역량을 기르게. 하나하나 가슴 속에 온축해 두고, 어떤 상황과 만나 도저히 한바탕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거든 그때 붓을 들어 글로 쓰게. 그걸 보고 깜짝 놀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장이다!’라고 말할 걸세. 사람 되는 공부에 앞서 문장만 따로 이루고 싶다고?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세상에 없네. 


꽃과 문장


사람이 문장을 지님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 심는 사람은 처음 심을 적에 뿌리를 북돋워 줄기를 안정시킨다.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아나, 이에 꽃이 피어난다. 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정성을 쏟아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우고, 도타운 행실로 몸을 닦아 그 줄기를 안정시킨다. 경전을 궁구하고 예법을 연구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널리 듣고 예(藝)를 익혀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한다. 이때 깨달은 바를 유추하여 이를 축적하고, 축적된 것을 펴서 글을 짓는다. 이를 본 사람이 문장이라고 여기니, 이것을 일러 문장이라 한다. 문장이란 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양덕인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 7-309


人之有文章, 猶草木之有榮華耳. 種樹之人, 方其種之也, 培其根安其幹已矣. 旣而行其津液, 旉其條葉, 而榮華於是乎發焉. 榮華不可以襲取之也. 誠意正心以培其根, 篤行修身以安其幹, 窮經研禮以行其津液, 博聞游藝以旉其條葉. 於是類其所覺, 以之爲蓄, 宣其所蓄. 以之爲文, 則人之見之者, 見以爲文章. 斯之謂文章, 文章不可以襲取之也.


화단에 초목을 심어 꽃 한송이를 보려면 드는 품이 만만치 않다. 잘 심어 뿌리를 안정시키고, 땅에서 양분을 끌어올려 가지와 잎을 틔운다. 가지도 쳐주고 거름도 주며, 때로 버팀목도 세워주어야 한다. 꽃은 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바른 마음과 도타운 행실은 초목의 뿌리요 줄기다. 이것이 든든해야 힘을 받는다. 고전을 익히고 견문을 넓히는 것은 뿌리를 통해 줄기로 양분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가지 끝까지 양분이 전달되어야 꽃망울이 부퍼서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운다. 문장은 바로 이렇게 해서 피워낸 꽃송이다. 바탕 공부 없이 꽃만 피우려들지 마라. 세상에 가장 천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안 된 글쟁이다.       

- 다산 어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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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가의 문장에서 타고난 천품과 독서의 축적을 봅니다.
현대에 태어나 수천년의 '일급 문장'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일 테지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다산의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달팽이 2007-02-1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행운.
한사님같은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특히.
포근한 봄의 일요일 평안하시기를...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신영복 선생님의 다음 책이라 내심 조그만 기대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내 대학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6여년 전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들고서 이렇게 살 수 있다면 감옥이란 곳에서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 시절의 배움욕구로 가득찼던 나에게 선생님은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도 깊은 공부를 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의 메세지였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그 물질적인 결핍과 환경의 결핍 속에서 피워낸 정신 세계는 그 모든 결핍을 풍요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적인 언어로서 승화되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한 청년은 바른 삶의 모델을 또 한 분 만난 것에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아직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방황하는 길목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용기있게 살아갔던 하지만 사회가 수용하지 못해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펼쳐갔던 꿋꿋하고도 큰 그릇을 가진 선생님의 품이 부러웠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을 받는 순간 '아, 이제 신영복이란 이름도 상품화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멋있게 만들어진 까만색 상자 속에 든 책 한 권과 노트를 펼치며 약간의 씁쓸함의 찌꺼기들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아직 내 마음 속의 때가 많이 낀 탓일까? 사실 '강의'라는 책을 접하면서도 나는 이런 생각을 조금은 했었다. 선생님께서 고전에 대한 책을 내셨구나 하는 기대 한편으로 컨텐츠는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함도 컸다. 물론 강의는 선생님의 명성과 더불어 많은 일반인들이 동양고전에 입문하도록 도와준 고마운 책이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관계론'으로 재해석해낸 선생님의 개성적인 해석은 대부분의 동양고전의 학문적 해석보다는 내용이 간소하고 그 마음으로 증험해내어 자신의 체험으로 써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교하면 다소 가볍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고전 공부가 계속되어 정말 선생님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의 글로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선생님의 글과 그림을 ,잘 디자인되고 인쇄된 종이와 글을 빼버리고, 읽으면 그 선생님의 초심이 더욱 잘 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왠일인지 상품화와 대중화의 색깔이 불현듯 인식되어 책읽기를 방해한다. 대부분의 글은 이미 예전에 읽었던 글이다. 물론 선생님께서 이 책을 스스로 내지 않으려했다가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서 내면서 60여편의 글을 새로 첨가하였다고 한다. 물론 주어진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나의 잘못이 99%다. 하지만 그 아쉬운 1%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앞으로 더욱 선생님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다시 한 편 한 편의 글과 그림을 본다. 옆의 글들은 밀어두고 글과 그림을 쳐다보고 있으면(이왕이면 색깔도 흑백으로 가정한다) 선생님의 그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 형을 살 때 그 모든 것을 수용해내며 마음으로 피워내는 꽃같은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마음을 비워내고 또 비워내서 단순해지고 투명해진 마음의 파동을 따라서 느껴본다. 제목처럼 '처음처럼'은 초심이라고 흔히 말해지듯 아무 마음의 상념없이 오로지 '모르는 마음'으로 대상과 사건과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 마음에 하나의 뜻을 품었다면 그 품은 뜻 하나 밖에 달리 아무런 마음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 오롯하고 온전한 마음이 담겨진 상태인 것이다. 지금, 선생님에게는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또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의 공간도 있어야 하고 또 감옥 생활에 비해 해야 할 사회적 활동도 많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초심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생활 속에서 "감옥" 하나를 스스로 만들어내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불필요한 말이 많게 되어버렸다. 사실은 그 감옥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처음처럼이란 마음가짐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존경하는 선생님께 투사한다. 모쪼록 선생님의 처음과 같은 글들을 아니 내면적으로는 더욱 깊어진 글들을 다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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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7-02-1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 책 출간을 망설였던 이유가 바로 님과 같은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이 책이 상업적인 기획상품이라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 그 분의 진심을 믿어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그 분의 글을 읽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단 생각도 들구요. 다만 좀 더 비상업적인 출판사를 통해 그 분의 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단 소망은 있습니다.

달팽이 2007-02-1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공감합니다. 로고스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훌륭한 작가는 책을 계속내면서 자신의 인생의 성찰을 더욱 키워가야만 합니다.
아니면 자신의 독자들의 인식이 그 작품에만 정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작가라면 그 사람에게 싫증나면 안 읽으면 되지만..
신영복 선생님은 그런 작가랑 또 다른 분이잖아요...

글샘 2007-02-1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지 못할 것 같긴 합니다. 보관함에 넣어 두지도 않았습니다만... 신영복 스탈이 아닌 사람들을 겨냥해서라면, 필요한 작업같아 보이기도 해요.^^

혜덕화 2007-02-1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한 번 망설이게 되네요.

달팽이 2007-02-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필요하겠지요..글샘님. 하여튼 마음은 넓으셔서...
제가 괜히 혜덕화님의 맑은 마음을 어지럽힌 것은 아닌지...

프레이야 2007-02-1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 아직 읽지 못했지만 신영복 선생뿐만 아니라 누구든 '처음처럼'을 지켜가기란 쉽지 않겠지요. 사람이 상품화 되어 울겨먹기 대상이 되는 것, 씁쓸하고 쓸쓸한
그림입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첫사랑의 순정만큼은 간직하시려는 님,
맑습니다.

달팽이 2007-02-1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첫마음의 기억이랍니다. 그것이 집착이 되어선 안되는데...
님의 마음을 고맙게 받습니다.

짱꿀라 2007-02-2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힘이 있나 봅니다. 이분의 글을 대할 때면 존경심이 절로 나오니 말이죠. 잘 읽고 갑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출장관계로 잘 들어오지 못하다가 오늘 들어오게 되었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달팽이 2007-02-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사카로 가신다고 했었죠. 님의 서재에서 본 듯 하군요.
앞으로 좋은 자료 기대합니다.산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