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미음을 먹어요
미음, 미음을 먹어요. 미음, 미음에 대해서 나는 말해요. 미음에 대해서만.
당신이 마권을 들고 춤을 출 때 내가찍은 말은 경마장 마구간에서 병신처럼 울고 있어요. 언제 그 말은 다리를 모두 버릴 수 있을까요. 당신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죠. “가출한 여고생이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나는 새벽에 내 방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의 이마를 만지다가 몰래 짧은 치마를 올리고 빤쓰를 내려다 보았어. 생리대가 없어 밑에 화장지를 붙이고 다니더군. 비릿한 기분에 난 담배를 꺼내 물었지.” 난 당신이 그 소녀의 빤스를 다시 올려주었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흥분했어요. 나 역시 언젠가 경험이 전혀 없는 남동생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죠. “네가 만일 그걸 아끼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길거리 여자에겐 주지마라. 그럴 거면 차라리 나한테 다오.” 그날 나는 이빨 사이에 낀 털을 퉤퉤 뱉으면서 누군가에게 말했어요. 어젯밤은 입 안이 경험한 모국(母國). 그곳은 털이 아닌 탈(脫)이 많고 많은 세계란다.
/맞아 당신은 이제 더 이상은 털이 날 나이가 아니지. 이제 탈이 났군그래.
미음 미음을 먹어요. 미음, 미음에 대해서만, 사랑이란 서로의 구멍을 가장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에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빨사이에 낀 서로의 ‘음모’를 퉤퉤 뱉으며 사랑했어요. 정기적으로. 미음처럼 부드럽게 우리는 서로에게 넘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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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날 아침 이빨 사이에 낀 아버지의 자지털을 손가락으로 끄집어내며 말했다. 어젯밤엔 사람을 하나도 태우지 않은 회전목마들이 피를 흘린 채 빙빙 도는 꿈을 꾸었어요.
(후략)
#. 2
살롱 바다비. 삐걱거리는 좁은 무대. 지하의 좁고 텁텁한 공간은 끊임없는 독백으로 자욱했다. 강박적으로 위의 시를 토해내는 정체모를 여자의 목소리. 어린시절 후진 고속버스에 탔을 때 작고 정교한 패턴이 가득 새겨진 커튼 무늬에 질려 아침을 게워낸적이 있다. 데려간 미녀는 꼭 그때 내 모습처럼 하얗게 질렸다. 분위기의 그로테스크함에 때문일거다. ‘음, 원래 예술이란 이런거야’ 하는 내 변명은 맥없이 오디오 볼륨에 묻혀버렸다.
김경주. 나는 그를 모른다. 팜플렛에 새겨진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보고 그제서야 아, 그 사람. 했다. 날카로운 턱선이 인상적이다.
제법 생겼다
사진. 미안하지만 못 찍었다. 그날 저녁에 있는 공연을 아침에서야 알려주는 무성의한 알라딘의 그녀. 아마 공연에 올 리포터가 많았으면 굳이 내 전화번호를 뒤져 공연 소식을 알려주지도 않았을거다. 흥. 이에는 이, 무성의에는 무성의다.
#. 3
멀미는 현상과 인식의 부조화 상태에 기인한다. 탈것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할때 인지되지 못한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이 부조화. 요게 바로 메스꺼움의 원인이다.
아폴론적인 예술과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이 있다. 아폴론은 빛과 이성의 신. 그의 예술은 머리의 필터를 거쳐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거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완성도는 아폴론적 예술의 덕목이다. 황금 비례의 아름다움, 조밀하고 확고한 언어체계 이런 것들이 아폴론의 예술이다. 디오니소스는 술과 착란의 신이다. 그의 예술은 필터가 필요없다. 그냥 몸으로 녹아드는 종류의 것이다. 술 먹고 혀 꼬인놈의 말은 술 먹고 혀 꼬인 놈만 알아듣는다. 하지만 맨 정신인 사람은 혀 꼬인놈의 헛소리가 불쾌하다. 그녀가 하얗게 질렸던 건 아폴론적인 미감으로 디오니소스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려 했기 때문일거다. 그건 일종의 멀미랄까.
불나방 스타 소세지 클럽, 아나킨 프로젝트, 적적해서 그런지의 음악적 오마주, '시극'으로 시'곤조'를 오마주한 최경원 팀, 봄로야의 그림과 '시노래' 퍼포먼스, 최고은의 '시노래' 그들의 오마주는 재기발랄하고 날것처럼 신선하다. 디오니소스적인 시를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즐길 줄 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하게 생긴 처녀가 '너흰 애무 나는 자위'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을 따라 잠시 뇌에 전원을 꺼두셨던 것 같다. 오, 이 흥겨움. 여러분도 즐겨보시라. 동영상은 불나방스타 소세지클럽의 노래 '악어떼'.
그날 사회를 본 윤성호씨(영화 운하해방전선의 감독이다)의 말에 따르자면 이리케와 이랑누나의 오마주는 '구강액션' 이었다. 낭독해서 녹음한 '기담'을 수배속으로 틀어놓고 끝나는 순간까지 주구장창 수다를 떠는거다. 그러다 주섬주섬 세수대야를 꺼내고, 물엿과 사이다와 소주를 따라 붓더니 종이컵에 떠서 앞에 앉은 관객에게 돌린다. 요건 제대로 '디오니소스'적 인 오마주였다. 나도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안 주더라.
#. 4
(전략)
먼하늘로수송기 한대가좆같은굉음을내며중환자처럼실려가고있다자신도모르는사이여기는입안의초록을모두열어놓고새의입속으로들어가진드는, 그래 다물고 감자, 감자
-아귀中-
시집 뒤 꼭지를 차지하는 평론가 강계숙의 해설 '프랑켄슈타인-어(語)의 발생학'은 보기에 어지럽다. 예컨대 이런 말.
'말하는 존재 homo loquence'로서의 인간의 정체성이 언어의 해체와 더불어 흔들리고 있다면, 비록 인간의 말을 차용하였다 해도 그것을 부정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말'을 창안하려는 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과는 '다른 존재'임을 뜻하게 된다.
어족이 어떻고 분류가 어떻고 해체가 어떻다는 그의 해설은 시 만큼이나 계통이 없다. 비빌 언덕이 없는데에 언어를 비비고 있으니 그 부조화가 메스꺼움을 유발하는거다. 역시 일종의 멀미다.
이러한 등가적 전위(轉位)는 기의의 명징한 확정이란 불가능한 것임을 의도적으로 노출한다.
강계숙씨에게 이리케와 이랑누나의 칵테일을 권한다.
할 말은 더 남았는데 후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도 술 마시러 가야 쓰겄다.
술에는 술, 무성의에는 무성의.
-뷰리풀말미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