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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걸스 - 강렬하고 관능적인, 결국엔 거대한 사랑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아리(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평점 :

'비비안, 엄마도 돌아가셨으니 이제 당신이 아버지에게 어떤 분이셨는지 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글쎄, 내가 그에게 어떤 사람이었냐고?
그건 그 사람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겠지. 하지만 그가 나에 대해 입을 다물기로 선택했으니, 내가 섣불리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다만 이뿐이겠지.
그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뉴욕, 2010년 4월.
며칠 전, 그의 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2010년,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의 딸'인 안젤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다. 1940년 19살이었던 비비안은 1학년에 모든 과목에서 낙제, 대학교에서 쫓겨나고 부모님에게 내쫓기듯 뉴욕에서 극단을 운영하는 페그 고모에게 보내진다. 뉴욕 '릴리 플레이하우스'에서 시작된 화려하고 예쁜 친구들을, 첫사랑과 무대를, 에드나 왓슨을 만나며 무대의상 디자이너라는 삶을 살아보기도 하는데... 1940년대 뉴욕, 극장과 네온사인, 예쁜 친구와 술, 그리고 섹스.. 모든 날이 젊음을 소비하기 좋은 '첫'날들이었고 자신의 욕망대로 내달리던 비비안은 자신을 벼랑으로 내몰게 되고 그 선택으로 인해 많은 것으로부터 떠나야 했다.
자, 일은 벌어졌고 넌 어떠한 선택을 하겠니?
「시티 오브 걸스」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연의 제목이기도 하다. 1940년대 뉴욕의 밤거리와 무대 뒤의 숨겨진 이야기들, 전쟁 상황은 비비안이라는 여성의 시점으로 쾌락에 대한 고민들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풀어내며 저자 특유의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손을 다음, 그다음이 궁금해서 페이지 넘김을 멈출 수가 없다. 자유로운 섹스, 동성 커플, 페미니즘과 싱글맘, 갈등과 비폭력 등 시대를 앞서 살아간 그녀와 친구들. 보통의 소설을 읽으며 결말을 예상하게 되지만, 그 모든 예상을 보란 듯이 지나쳐가며 결국 자신의 '비비안'답게 살아낸 너무도 멋진 마법과도 같은 소설이다.
나는 셀리아 옆에 앉아 그녀의 따뜻한 품을 파고들었다. 온몸이 들떠서 야단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덜덜 떨렸다. 빗장이 풀려 난폭해진 느낌이랄까. 내 삶이 크게 한 번 요동친 것 같았다. 즐거움과 흥분과 혐오와 당황스러움과 긍지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길을 잃은 듯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환상적이었다. 섹스 자체보다 섹스 후의 여파가 훨씬 강력했다. 내가 방금 한 짓을 믿을 수 없었다. 낯선 남자와 섹스라니, 그런 대담함이 내 안에 있었을까 싶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나다운 내가 된 것 같았다. _111p.
놀면서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그 말은 틀렸어. 젊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고 그 보물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은 오직 낭비하는 것뿐이거든. 그러니 충분히 젊음을 누려라 비비안, 마음껏 낭비해버려. _195p.
안젤라, 어렸을 때 우리는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 주고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착각하기 쉽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슬픈 진실을 배우게 되지. 어떤 문제들은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 바로잡을 수 없는 실수도 있다는 것.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말이야.
살다 보니 그것이 가장 값비싼 교훈이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우리는, 비밀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치유되지 않은 오랜 상처로 이루어진 몸뚱이로 이 세상을 부유하게 된다. 그 모든 고통에 심장이 쥐어짜듯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살아간단다. _424~425p.
전쟁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기꺼이 즐기고 모험해야 한다고 말이다. (...) 나는 좋은 여자는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구는 욕구였다. 그래서 나는 진정 원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즐겁게 만들 방법을 찾아 나섰다. (...) 어쨌든, 여자들은 살면서 부끄러워하는 게 지긋지긋해지는 때가 온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_465p.
무엇이 우리를 함께하게 만들었을까? 한때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자존감을 짓밟았던 월터라는 공통분모를 빼면, 우리에게 비슷한 점은 없었다. 한 번의 슬픈 순간만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1941년의 그 끔찍했던 하루, 두 사람 모두에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바로 그 하루뿐이었다.
어쩌다 그날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사랑으로 이어졌을까? 나도 모르겠다.
안젤라,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절대 머리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것. _513~5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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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