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 - 먹고 마시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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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매력은 파리, 런던, 뮌헨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 있다. 물론 처음 유럽을 간다면 누구나 유명한 빅벤 앞에서,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긴 하겠지. 이해는 한다. 그러나 그게 그 지역 주민의 삶과 정서와 어떤 개연성이 있고, 그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한국 사람들 중 남산타워에 가본 사람은 몇이나 있고, 63빌딩엔 몇 번이나 올라가 보았을까? 이런 구조물들은 한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와 그다지 개연성이 없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_프롤로그


우리를 위로하던 여행은 잘 있을까요?

라디오에서 간간이 듣게 되는 이 문장을 듣는 순간 그동안 여행했던 여행지의 풍경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일상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던 여행. 그 여행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아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기를 버텨내기 위해서 여행서를 자주 찾아보게 된다.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여행 다니던 시절, 여행서에 등장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자유로이 발길 가는 대로 여행하는 시기가 올까?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서울대 농대 교수인 저자는 지난 10년간 국내외의 시골을 끊임없이 다니며 시골을 걷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프랑스 여행은 도시 아닌가? 싶겠지만 와인이 유명한 만큼 잘 정돈된 포도밭과 와인, 음식들의 이야기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이야기를 읽으며 '탁 트인 이국의 시골이라니! 너무 영화 같잖아'라는 생각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여행은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된다. 장준우 셰프와 함께 이국의 시골을 누비고 다니며 보고, 듣고, 먹고 체험한 이야기로 가득한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를 덮으며 문정훈 저자의 국내 시골 이야기도 기대해보게 된다. 여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찾아 경험하면 되지 않을까? 사진을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을 담뿍 경험할 수 있었던 책이다.


프랑스에서는 파리가 가장 덜 아름답다. 분명히, 그리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만 프랑스의 아름다움은 진정 시골에 있다. 프랑스가 선진국인 것은 GDP가 높아서가 아니라 시골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서다. 농담이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시골이 깨끗하다. 선진국의 대열에 끼지 못한 나라들은 아무리 그 수도와 대도시들이 번쩍이고 화려해도 시골에 가면 선진국이 아닌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시골은 숨길 수가 없다. 나는 프랑스의 시골을 돌면서 그 흔한 비료 포대 하나 굴러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시커먼 멀칭 비닐이 찢어져 휘날리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깨끗하다. 아무도 다닐 것 같지 않은 외진 시골집도 화단을 가꾸고 창틀에는 화분이 올려져 있다. 선진국의 모습이다. _25p.


와인 애호가나 관계자의 입에서 '흙, 표토, 고랑, 해의 방향'요런 단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은 지금 막 타임머신을 탄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당신이 진정한 와인 애호가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대화가 될 것이고,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면 이 시간은 당신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미래로 바로 점프해서 넘어가는 순간이 될 것이니까요. _115p.


지극히 특별한 유럽 찾아가기

하늘과 흙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여행


#진짜프랑스는시골에있다 #문정훈 #장준우 #에세이 #여행에세이 #상상출판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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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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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 디스토피아

사회 질서와 치안이 붕괴된 사회를 그릴 때 여성의 위치를 어떻게 묘사하는지는 디스토피아 설정의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여성이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묘사는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설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면 창작자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사유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디스토피아 과정에서 인구가 급감했다는 설정이 들어갈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 여성을 착취해 인구를 다시 늘리려는 시도를 묘사하게 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설정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여성이 인구 재생산 과정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고민해 보는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_naver


저자는 이야기한다. <베이비 팜>은 허구의 산물이지만, 많은 면에선 사실이기도 하다고... 필리핀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거쳐 결혼을 하고 살아가며 자신이 아는 필리핀 사람들은 신생아 보모나 유모, 청소부, 가정부들 뿐이란 걸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 또한 한동안 필리핀 유모를 고용하게 되는데, 그녀들의 삶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며 고국에 사는 가족을 위해 힘들게 번 돈을 보내고 또 보내는 삶을 산다. 소설 속 아테의 삶이 그러했고, 사촌인 제인 또한 어린 딸을 키우며 살아가야 할 길이 막막했던 차에 아테의 소개로 골든 오스크의 '대리모'를 소개받게 된다.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갤러리에서 일하던 레이건은 아버지의 그늘을 피하기 위해 골든 오스크로 향하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대리모들을 위한 최고급 리조트인 골든 오스크의 관리와 확장을 꿈꾸는 메이.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네 여성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아테, 제인, 레이건, 메이 네 명의 여성이 삶의 다양한 계층, 인종, 사회가 엮어가며 이 내용들이 과연 현재에만 벌어지고 있는 일일까? '대리모'라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려는 거대 비즈니스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은 페미니즘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진지한 경고를 알리는 글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인도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의 대리모 산업 문제만 봐도 소설 속 상황이 가깝거나 먼 미래의 일이라기보다는 바로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법한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_옮긴이의 말


"호스트가 되면 당신은 예술가로서 꿈을 이루는 동시에,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한 여성의 꿈도 이뤄줄 수 있어요. 쌍방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가장 좋은 상황인 셈이죠."

레이건이 얼굴을 찡그린다. "그렇지만 미적인 이유로 대리모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잖아요. 저는 전 대리모를 통해서가 아니면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임신하고 싶어요. 허영심 때문에 대리모를 이용하는 의뢰인에게는 관심 없어요." _91p.


"그거 대리출산이잖아! 그런 식의 대리출산은 상품화고, 인간 생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야! 신성한 모든 게 외부에 위탁되어 일괄적으로 거래되고, 결국 최고가 입찰자에게 팔려 나가는 거라고!" ... (중략)... "넌 어떤 낯선 부자가 널 이용하게 내버려 두고 있는 거야. 삶의 근원적인 무언가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 거라고." _147p.


미국에서는 부자가 아니라면 튼튼하거나 젊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늙고 병약한 사람들은 제인이 전에 일했던 곳 같은 시설에 숨겨져 있다. _230p.


제인은 아테의 선한 행동이 - 그것은 진짜로 선한 행동이다, 골든 오스크는 그녀의 삶과 세군디나의 삶을 바꿀 테니까 - 그녀가 돈을 번다는 이유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왜 더럽다는 것인가? 선한 행동이, 단지 아테가 이득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덜 선한 행동이 되는 걸까? _314p.


"만약 다른 사람에게 임신을 맡길 수만 있다면, 여자들이 주도권을 쥐는 장본인이 될걸요." _324p.


#베이비팜 #조앤라모스 #김희용 #소설 #창비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독서노트 #필사 #국산볼펜 #동아D3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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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김준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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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trauma

강력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 건강 질환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


어둡고 불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드라마, 조금은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보는 편인데 그 안에도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들은 등장한다. 25편의 영화로 트라우마의 종류와 증상, 그리고 치유를 이야기하는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영화 한 편에 담긴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증상을 나타내는가, 그리고 치유될 수 있는 것인가?


1부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2부 트라우마 종류와 증상

전쟁 트라우마/ 스몰 트라우마와 빅 트라우마 / 아동기 트라우마

3부 트라우마의 치유


일상 곳곳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는 영화를 통해서 조금은 가볍게 접근해 볼 수 있다. 다양한 영화에 담긴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트라우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떨쳐낼 수 없다면 이해하고 잘 지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는 책도 소개하고 있어 관심이 있다면 조금 더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있지만 트라우마를 치유할 힘도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영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를 읽어갈 때마다, 조금은 이해가 되고 궁금했던 영화도 몇 편 찾아볼 예정이다. 영화와 트라우마 심리학의 조합이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트라우마는 외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관찰해야 하는 대상이다."


∴트라우마 기억은 일반적인 기억과 어떻게 다를까?

∴왜 유독 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리의 모든 감정을 억압하는 수치심도 필요한 감정인가?

∴트라우마의 종류와 증상은 어떤 것이 있는가?

∴트라우마 기억을 치료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은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가?

∴외상 후 성장은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가?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든,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이제 너는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_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중에서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시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로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_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트라우마 연구의 초기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트라우마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제삼자조차도 트라우마에 대해 그리 알고 싶어 하지도,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를 연구한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야만성과 취약성에 직면하는 것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추악한 측면까지 발언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정말 불편한 작업이다. 그래서 피해자 당사자와 전혀 일면식도 없는 제삼자,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 친구, 이웃들마저도 트라우마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혹은 시간이 자나갔으니 별일 아닌 것처럼 치부해버리려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_94~95p.


과거에 무시당하고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사람들이 겪는 모든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래서 아이였을 때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욕구들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다. _ 존 브래드쇼 (미국 심리학자)


트라우마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며, 보상이나 복수로 완전히 충족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묻는 것은 개인적 안녕뿐만 아니라, 더 큰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_ 주디스 루이스 허먼 (미국 정신과의사)


#영화로만나는트라우마심리학 #김준기 #인문 #심리 #인문심리 #트라우마 #트라우마심리학 #수오서재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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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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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일 년도 안 된 지난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울었다. 이 모든 일이 어린 그들에게는 지나치게 억울하고 가혹해서 울었다. _272p.


삼악산 남쪽 면을 복개해, 산복 도로를 만들며 생겨난 동네 삼악동. 긴 벌레처럼 보인다 하여 삼악동이라는 지명이 아닌, 삼벌레 고개 중간 즈음의 동네. 우물집 순분의 아들 은철과 이 집에 세 들어 사는 새댁네 안원의 비밀스럽고도 귀여운 스파이 놀이로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비밀을 알아내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려내 복수를 하는 게 스파이의 임무라는 귀여운 아이들의 놀이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평화로운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듯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파사삭 부서져버린다.


아이가 감당하기에 커다란 사고, 그저 흘려들을 수도 있던 말이었지만 어둠 앞에 선 순간 그 말들이 해일처럼 덮쳐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은철과 원이의 스파이 놀이로 몽글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로 시작한 글은, 점점 어두운 굴로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는 듯한 기분으로 따라가게 된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예고 없이 들이닥친 불행을,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통을 오롯이 안고 살아야 하는 시간도 지나가겠지, 그 후의 삶이 궁금해진다.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깊은 상처만 남은 우물집의 잔상이 남는 글이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걸. _ 권여선


"잘 들어. 스파이는 말이야."

은철은 풍선껌을 파낸 쪽 귀를 기울였다.

"비밀을 알아내는 사람이야."

"응, 비밀을."

"스파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 얘기를 엿들어야 해." _48p.


"귀 발 귀 술?"

"그렇지"

"아, 참 재미있는 말이네요. 귀발귀술. 귀발귀술."

조용히 앉아 있던 은철은 킥킥 웃었다. 하지만 귀발귀술 때문에 웃은 건 아니었다. 은철은 조금 전에 배운, 이름을 반 갈라 두 개로 만드는 일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아빠는 만자 춘자, 엄마는 순자 분자, 형은 금자 철자, 통장 집 식모는 막자 달자, 통장집은 언자 년자, 큰형님은 정자 자자... 은철은 웃겨서 살 수가 없었다. _65p.


"그 죄를 다.... 어떻게 받으려고....."

이즈음 순분의 머릿속에 들러붙어 떠나지 않는 생각은, 두어 달 전에 계원들 앞에서 앉은뱅이가 된 새댁네 시누 얘기를 늘어놓던 일이었다. ... (중략)... 자기가 내뱉은 말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마다 순분은 잊고 있었던 시렁 위의 유리그릇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_212~213p.


"무서운데 멈출 수가 없어요. 저놈들이 멈추지 않으면 우리도 멈출 수가 없어요." _269p.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서슬이 퍼래서 당장 빨갱이 집을 쫓아내자고 설치고 다니는 통장 박가 같은 놈은 어떤 놈일 것이며, 밤마다 불안감에 사로잡혀 새댁네를 어떻게 내보낼 수 없을까 궁리하는 자기 남편 같은 놈은 어떤 놈일까. 같은 놈일까 다른 놈일까. 눌은 놈도 덜 된 놈도, 찔깃한 놈도 보들한 놈도, 어차피 그놈이 그놈 같았다. _272~273p.


#토우의집 #권여선 #소설 #한국소설 #자음과모음 #자모단2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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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지음 / 보다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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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적당히,

조금은 대충대충.


좀 걸어보는 건 어떨까.

걸으며 손도 잡고 주위도 돌아보고 그러자.


오늘부터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면서

갖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가져가면서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매일이 똑같은 일상, 답답한 마음이라도 잠시 트이고 싶을 때 여행 관련 책들을 쌓아두고 뒤적이게 된다. 일상, 여행, 삶, 사진, 그리고 인생을 담은 한 권의 책은 때로 여행을 대신하는 즐거움이 되어주기도 한다. 코로나 장기화로 거리 두기 단계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평온한 일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몇 개월을 보내고 있는 요즘, 그저 몸도 마음도 건강만 하면 괜찮지 않겠냐며 이 모든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여행이 일상이 되는, 간절함이 아닌 그저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라게 된다. 여행을 계획하던 설레임, 출발 전 공항으로 향하던 새벽 설레던 발걸음과 살짝 들뜬 마음을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에세이. 일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여행하고픈 기분이 들 때, 취향의 책 한 권과 오롯한 시간을 보내시길, 추천하고 싶은 겨울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건

'잘해 보자', '열심히 해 보자'이런 게 아니라


조금만 너그러워지자.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_ 15p.


솔직하게 인정하자. 현실은 언제나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는 엉망이고, 당신이 아무리 극진하게 살아도 당신의 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게다가 나아질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떠나간 사랑이 돌아올 확률은 아파트 당첨 확률보다는 낮다는 사실. _47p.


생은 점점 적막해져 가고

가고 싶은 곳도 점점 줄어들고

여기는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낯선 별이다. _52p.


2월에는 스스로에게 약간은 관대해지고 싶어요.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잖아요. _ 88p.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여행했던 그 길들을

다시 지나갈 수 있을까.


그날의 아득했던 구름과

빗방울이 내려앉던 바다와

햇빛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의 창가

그리고 우리 이마 위에서 빛나던 무수한 별자리들.


우리가 기억하는 찬란한 그 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은 반드시 1초에 1초씩, 1시간에 1시간씩,

하루에 하루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아, 우리가 지나왔던 음악 같은 장면들.


모든 기억은 행복한 쪽으로 흘러간다.


우리 생의 한 줌을

우리가 지나왔던 길과 시간 위에 조금씩 뿌려놓고 있는 것.

여행은 혹은 삶은. _173p.


붙들 수 없는 것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내일도 아마 비슷한 하루가 될 것이고.


잘 지내나요, 내 인생. _209p.


남은 세월,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걱정에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오직 먹고사는 문제로’만’ 가슴이 답답하고

밤새 잠이 오지 않는다.

단지 살기 위해 음악을 들어야 하는 날들도 있다.


내가 아침마다 꽃기린 화분에 물을 주는 이유가

못 견디게 힘겹고 외롭고 슬퍼서라는 사실을

당신이 눈치채지 못한다면 좋겠다.


공항이 그리운 밤이다._219p.


우리 인생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빼고 나면 뭐가 남을까. 인생은 허무한 것이고, 그 허무의 날들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 살아가는 일은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본질은 낭비인데, 그 낭비의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고, 여행은 곧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닐까. _234p.


#잘지내나요내인생 #최갑수 #에세이 #여행에세이 #보다북스 #도서협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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