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 - APOLLON(APOLLO)
궁술과 예언,의술과 음악의 신 아폴론은 제우스와 레토사이에서 아르테미스와 쌍둥이로서 델로스 섬에서 태어났는데, 항상 건장하고 잘생긴 청년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지성과 문화'라고 하는 그리스 인의 밝은 면을 대표하고 있으며 기원전 5세기부터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동일시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가 궤변으로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혐의를 걸어 그를 법정에 세웠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을 가득 메운 시민 재판관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소에서 말하기를 나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므로 이 신탁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래서 전 아테네를 돌며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그결과, 모두가 한가지 잘아는 걸 가지고 뭐든지 잘 안다는 교만에 빠져 있을 것을 발견하였다.
내가 그들보다 지혜롭다면 스스로의 무지를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젊은이들이 이러한 나를 따르며 사람들의 지혜롭지 못함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당연히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주술적 신탁의 권위를 빌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신탁이란 사실 무당의 푸닥거리 같은 것이다. 델포이 신탁소의 땅 밑에서는 습하고 독한 냄새의 김이 올라 온다. 사람이 이 김을 쐬면 제정신을 잃고 몽롱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신탁소를 지키는 무녀는 바로 이 김을 쐬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데, 바로 이 말을 아폴론의 신탁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런 신탁이 논리정연한 말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철학의 대스승 소크라테스가 자기 주장의 화두에 아폴론의 신탁을 내걸었다. 그리고는 명쾌한 논증을 통해 신탁의 정당성을 추인하고 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금언으로 알고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실은 이미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소에 새겨져 있던 문구였다. 솔론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7현인이 봉헌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이 금언의 속뜻을 고민하다가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라면, 델포이는 과거 신화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 세대 철학의 산실이기도 했던 셈이다. 근거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신탁의 신 아폴론이 신화의 주인공으로만 그치지 않고 철학자들에게도 존경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신탁이란 예언이다.
신화가 현실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현실을 진단하여 앞일을 가늠하는 일을 신탁소의 무녀나 예언자가 담당했다. 그러나 이성이 발달하지 않은 이 시대에 예언자는 예측은 하되 그 예측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다가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예측의 근거를 설명할 필요가 생겨나자 사람들은 신탁의 신 아폴론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이 가졌으리라 믿어진 예측의 '설득력'을 그리스인은 갈구하였다. 그러한 갈증을 잘 나타내주는 신화가 한가지 있다.
아폴론은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공주는 아폴론과 같은 지체 높은 신이 언젠가는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구애를 거절하였다. 화가 난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선사했던 예언력에서 설득력을 빼앗아버렸다.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 군의 승리로 끝나자, 카산드라는 그리스 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첩으로 배당되어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아가멤논의 나라 미케네에 도착한 카산드라는 신에게 받은 능력을 발휘하여 아가멤논과 자신에게 닥치는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그녀는 자신의 예측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할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채 미케네 궁전으로 따라들어간 그녀는 아가멤논과 더불어 황천의 객이 된다.
현실의 흐름에 이성의 빛을 쪼여 조리 있게 해석해내고자 하는 철학자들은 결국 아폴론에게 있으리라 여겨진 능력을 인간 안에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솔론과 소크라테스가 아폴론을 섬기고 그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한 것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아폴론은 어둡고 혼란스러운 미토스(신화)에 밝고 조리 있는 로고스(논리)의 빛을 쬐어 진리로 이끄는 힘이라 할수 있겠다.
그리스 정신이 혼돈이 카오스로부터 질서 잡힌 코스모스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때, 우리는 그를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가장 그리스적인 신으로 점찍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