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할란 엘리슨 걸작선 세트 - 전3권 할란 엘리슨 걸작선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 아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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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난 최고의 책은 할란 엘리슨 걸작선. 3권이나 되는데 대항마가 있을 리가ㅎ 혹 도선생 3권 짜리가...하반기는 부지런히 안 읽어야 하나; 암튼, 뭐라고! 이걸 50년 전에! 40년 전에! 30년 전에! 20년 전에 썼다고! 매 권마다 감탄이. ※ 내가 최고로 점수 주는 건 치밀한 상상력~너나 좀 치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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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모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딜런 클레볼드의 어머니예요하며 나를 소개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딜런은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죽였을 수도 있잖아요.”(콜럼바인》, p529)

 

1999420일에 일어난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하나인 딜런 클레볼드 어머니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책을 썼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2003년 작 케빈에 대하여와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주연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떠오른다. 틸다 스윈튼이 아들 케빈이 죽인 아이 부모의 분풀이에 아무 저항하지 않고 받아내던 게 충격적이기도 했다.

세기말 징후 같은 이 섬뜩한 사건 이후 우리는 이 실타래를 몹시 풀고 싶어했다. 마이클 무어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 다큐, 75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구스 반 산트 엘리펀트(Elephant, 2003, 극영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감독상 수상)도 있었다. 아직도 우리가 눈여겨보지 못한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듯이 최근 2016년에도 피해자였던 여학생 레이첼 조이 스콧을 주인공으로 한 브라이언 보프 아임 낫 어쉐임(I'm Not Ashamed, 2016, 극 영화)이 개봉했다.

 

 

 

1995320일 일어난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를 하루키가 인터뷰해서 쓴 언더 그라운드》생각이 스쳐간. 그는 1996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일 년여 동안 인터뷰와 취재 작업을 했고, 신문이나 잡지 지상에 이름이 밝혀진 700여 명의 피해자 리스트를 작성한 후 신원이 파악된 140여 명에게 연락을 취해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건 사건의 심각성보다 하루키 팬이었던 게 컸다. 그가 다룰 정도면 분명 남다른 게 있을 거라 싶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전해오는 저마다의 슬픔은 아련히 남아 있다. 옴진리교 사건 이후는 정부의 신속한 조치와 여러 인물의 적극적인 대응, 하루키 같은 작가가 뛰어들어 심도 깊은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데이브 컬런 콜럼바인은 취재부터 집필까지 10년이 걸려 2009년에 이 책을 냈고, 한국엔 사건 이후 18년 만에 도착했다. 미국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여전하다. 문제아들이 일으키는 단순 사고로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구조적인 걸 바꿀 의지가 없다. 그러는 사이 문제의 경향은 사회 전반에 더 넓게 퍼져 나갔다.

세월호는 얼마나 걸릴까. 과연 낱낱이 드러나게 될까. 우리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누가 최초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도 37년째 씨름 중이다. 내년이면 38년째가 될 테고, 내후년이면 39년째가 될 테고...

콜럼바인책을 본 순간부터 나는 어딘가 붙잡힌 기분이다.

 

 

콜럼바인리뷰대회는 내가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며 미처 하지 못한 많은 생각할 기회가 될 거 같다.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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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7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왠지 케빈에 대하여와 겹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영화는 뭔가 모를 약간의 섬찟함과 자녀를 키우는 것에 대한
무기력함...? 뭐 그런 걸 느끼게 해 줬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내 아이 사랑으로 키운다는 건 얼마나 교과서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일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가끔은 가족도 섬찟할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 전 거의 안 믿습니다.
분명 부모도 영이 있어서 어떤 자식은 잘 통하는데
어떤 자식은 정말 안 맞아 고생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AgalmA 2017-09-17 20:22   좋아요 1 | URL
아이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 아이가 나랑 코드가 안 맞는다면 평생 고통스럽겠죠. 케빈의 엄마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케빈은 관심을 받으려고 더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단 말이죠. 그 관계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일그러지기만 하던 게 참 맘 아팠죠.
<케빈에 대하여>가 가족간 관계, 사람 사이의 이해 불가능 그런 걸 제시했다면 <콜롬바인>은 사회 구조망으로 더 넓혀서 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간과하는 것들이 총체적으로 모여 결국은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광경을.

나와같다면 2017-09-18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콜럼바인》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의 뒤틀림도 경험하고, 많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책장을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웠는데..
같이 읽고 있는 AgalmA님이 있어서 외롭지 않습니다..

AgalmA 2017-09-18 10:44   좋아요 1 | URL
먼저 읽고 계신 거 봤지요. 괴로우실 거라 싶었어요.
평생 자기 생각을 돌아보고 돌아봐도 끝이 없지요...

겨울호랑이 2017-09-18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총기 소유의 합법화‘문제는 그들의 역사적인 문제와 연계시키는 논리가 강하기에 총기를 금지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그토록 많은 문제가 총기 소지에서 발생하는데 그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지켜야할 아메리카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영어로

AgalmA 2017-09-18 20:57   좋아요 1 | URL
개척시대부터 역사가 깊죠. 무기 파는 시장도 워낙 탄탄하니 한국에서 친일파 솎아내기 어려운 것처럼 그렇지 않겠나요.
겨울호랑이님이 영어로 물어보신다니 제가 참 안심이 됩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9-18 21:10   좋아요 1 | URL
^^: 우리에겐 구글이 있잖아요? ㅋ

AgalmA 2017-09-18 21:15   좋아요 0 | URL
기술 좀 빨리 개발돼서 머리에 칩 붙이고 언어 소통 만사 오케이 좀 되고 싶네요ㅎ 저 같은 사람 땜에 인공지능 시장을 더 활발하게 만드는 지도ㅋ 결국 나 죽기 전에 그건 안될 거 같은데ㅎ;;
오늘도 그리스어 사전 열심히 찾다가 잘 안 되어서 또 한 번 좌절감ㅜ

레삭매냐 2017-09-22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콜럼바인 저자가 책에서는 집필에 9년이 걸렸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광고에는 십년으로 바뀌었네요. 아무래도 9년보다는 10년의 무게가 더 느껴져서 일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대단한 기록이네요. 우리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누군가 이런 기록 을 남겨줬으면...

AgalmA 2017-09-22 09:44   좋아요 0 | URL
9년 몇 개월 해서 사사오입한 거 아닐까요ㅎ; 저도 어제 펼치기 시작해서 손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일을 해야 하는데 나참;
저도 읽으면서 세월호를 이렇게 기록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싶었어요. 이 파편들을 정교하게 짜야 돼요. 토막들로 소설로 쓸 게 아니라. 이 책 다 읽으면 그간 섣불리 보지 못하겠던 세월호 관련 탐사책들을 읽어 볼 생각입니다. 그러고 싶어서 이 책을 더 보고 싶었죠.
 
종교이론 - 인간과 종교, 제사, 축제, 전쟁에 대한 성찰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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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인상적인 발제문.
《헤겔강독 서설》이 《종교이론》 서설로 등장한 게 좀 기묘하다.
군더더기 없는 2 페이지의 짧은 분량, 바로 뒤에 이어지는 바타유 발문도 같은 분량인데 매우 어울린다!
명료한 절박성, 내가 바타유 문체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독자의 눈에 지금 보이는 책은 사실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이전의 것들에 새로운 것이 얹어진 총체이다.
책은 단순히 파편들 더미가 아니라 건축물로서의 자아의식이다.
ㅡ 조르주 바타유

 

바타유 이 문장은 저자가 그럴 만한 책을 썼을 때 동의 가능하다. 예전 사람의 벽돌들 마구 가져와 쓰는 부실 건축들이 요즘 워낙 많아서 말이다. 거울에 나를 비춰보고 가져와야 하는 것일까, 벽돌을 비춰보고 가져와야 하는 것일까. 거울조차 깨고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자력으로 가져와야 하는 것일까. 완벽한 거울은 이미 없었다. 무슨 수를 쓰든 모든 것의 운명은 무너짐일 거 같은데(나 요즘 이 표현 너무 자주 쓰는 거 같다...각성)... 반증 가능성을 못 찾으면 그것은 무결성의 사실이 아니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나 어쩔 수 없는 신비로 빠지지 않던가.

 

가능의 정점을 정하는 것은 바로 불가능이다.
또는 말을 바꾸면 불가능에 대한 의식으로 하여금 적어도 어떤 성찰이 가능한 성찰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경계를 기웃거릴 뿐 폭력이 난무하는 집단에 머문 채, 일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성찰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차지할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ㅡ 조르주 바타유 

그런데 바타유 씨, 이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는 '외딴 생각'을 가진 자들의 자리가 더 협소한 거 같은데요. 대단할 것도 없는 나조차도 갈 곳이 없습니다. 불교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욕망을 비우면 된다 그리해야 할까요. 내 욕망은 그렇게 한다 쳐도 타인은? 신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각자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기에 더욱 필요하지 않았겠냐 말이죠. 모두에게 욕망을 허락하는 자본이 신급이 된 게 그래서죠. 대안은 사랑이라고 누구나 만병통치약처럼 말하긴 쉽지만 욕망 속에 이토록 어렵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론 법을 만들었습니다만 법조차 관습과 오류로 가득하고 더 중요한 건 모두가 지키는 건 아니죠. 인간은 각자 위치에서 제 욕망을 결국 채우려 드니까요. 부모든 자식이든 연인이든 노사 관계든 어디에서든.
사르트르는 타인을 지옥의 관문이라고 했죠. 자아 성찰이든 이용이든 타인은 필요 관문인 셈인데, 종착지를 모른다는 게 공허하게 하는지 행복하게 하는지 알 수 없군요. 지식도, 시간도 그건 해결해 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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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16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립니다, 저 말인가요?ㅠㅠ
예전 사람의 벽돌을 마구 가져와 쓰는 부실 건축물요?
괜시리 반성되고 발이 저려서요. ㅠㅠ

AgalmA 2017-09-16 19:55   좋아요 1 | URL
찔린다는 건 최소한 양심은 있다는 거 아닙니까. 북다이제스터님 놀리려고 이런 소리 하는 게 아니라 저도 찔리기 때문이죠. 북다이제스터님은 발이 저리시군요. 저는 손이 떨리더군요. 내가 이런 글을 인터넷에 마구 올려도 되는 건가 하는 뭐 그런. 업로드 버튼을 누르며 눈을 질끈 감아야 했지요. 그럼에도 말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 내 잘못됨, 편견을 보고 현명한 조언을 해줄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죠. 제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건 동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 부분이 더 큽니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9-16 19:57   좋아요 1 | URL
진짜 발 안 저려 보셨군요. ㅋㅋ
발 제대로 저리면 미쳐 버립니다. 손 떨리는 건 저리 가라 입니다. ㅎㅎ

AgalmA 2017-09-16 20:06   좋아요 1 | URL
저는 자다가 발이 뒤틀려 잠이 깹니다. 이 정도로 어찌 비교가 안 될까요ㅎ

AgalmA 2017-09-17 10:39   좋아요 1 | URL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11월 15일 출간으로 카운트다운 잡혔네요. 요즘은 재출간 붐시대인 듯~ㅎ

북다이제스터 2017-09-17 19: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
나오자마자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읽어보셨죠? 어때셨나요?^^

AgalmA 2017-09-17 19:58   좋아요 1 | URL
비평가가 아닌 창작자가 쓴 훌륭한 미학론이죠.
p60~61
˝작가란 다만 형상을 통해 생각하고 독자와는 달리 자기 세계관을 이 형상의 도움을 받아 유기적으로 판을 짤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은 그 누구에게도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없다는 사실, 인류는 4천년 동안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분명하지 않단 말인가!˝
이런 문장이 수두룩^^

북다이제스터 2017-09-17 19:59   좋아요 0 | URL
맘에 듭니다. ㅎ
저자가 회의주의 혹은 염세주의자 인가 보네요. ㅎ

AgalmA 2017-09-17 21:01   좋아요 1 | URL
차라투스트라 같은 면모가 있어요. 앞 말과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종교적인 이상주의...
죽은 나무에 계속 물을 주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집을 불태우고 미치광이가 되는 <희생>을 떠올려보시면 바로 짐작되듯이.
 
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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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친척의 별장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곳에서 좋은 일이 많았다 이따금 슬픔이 찾아올 때는 숲길을 걸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때의 일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기하학에 대해, 마음이 죽는 일에 대해, 건축이 깨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시는 지난여름 그와 보낸 마지막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리 나와 봐, 벌집이 생겼어!"

​  그가 밖에서 외칠 때,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 꺼진 거실에서 한낮의 빛이 들이닥쳐서 여러 가지 무늬가 바닥에 일렁였고

  "어쩌지? 떨어뜨려야 할까?"

  그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벌집은 아직 작지만 벌집은 점점 자란다 내버려 두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가 말했지만 큰일이 무엇인지는 그도 나도 모른다

  한참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그것들이 벌집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고 육각형의 방은 조밀하게 붙어 있고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아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

  "하지만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종한댔어"

  돌아온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쯤 여름이 끝났던 것 같다


 

  여름의 계곡에 두 발을 담근 두 사람이 맨발로 산을 내려왔을 때,

  늦은 오후에 죽어 가는 새의 체온을 높이려 애썼을 때,

  창을 열어 두소 외출한 탓에 침대가 온통 젖어 어두운 거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었을 때,



 

  혹은 여름날의 그 어느 때,

  마음이 끝났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과 함께 끝났을 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숲길을 걸으면서 그가 결국 벌집을 깨뜨렸던 것을 떠올렸다 걸어갈수록 숲길은 더 어둡고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 내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때는 아름다운 겨울이고

  나는 여전히 친척의 별장에 있다



 

  잔뜩 쌓인 눈이 소리를 모두 흡수해서 아주 고요하다

  세상에는 온통 텅 빈 벌집뿐이다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ㅡ 황인찬

 

 

Abelardo Morell - Camera Obscura Image of the Grand Tetons in Resort Room (1997)

 


 

§ 종로와 소설과 원형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접하며 문득 상수를 떠올린다. 그를 홍상수 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건축」은 홍상수 감독의 서사 구성이나 호접몽 특징과 유사하다. 일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남겨두는 그런 거 말이다.

황인찬 시인의 대부분의 시들은 자조와 회고성을 띄는데, 「건축」은 그의 시 세계 건축 구조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일상은 기본 리듬으로 작동하고, 꿈과 죽음과 환상이 주재료이며 동률의 필수 재료이다.

 

이 시집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로 연작시를 보며 종로에 대해선 나도 여러 시도를 하고 싶던 게 겹쳤다. 글이든 영상이든. 오래전부터 청계천, 명동, 인사동 등 종로는 서울 창작자들에게 터전이자 노스탤지어 역할을 해왔다.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 많아 퇴색되어 보이긴 하지만 종로는 홍대가 뜨기 전까지 문화 중심지였다.

내가 홍상수 감독 영화에 관심을 둔 것은 눈여겨보던 종로 일대 숨은 풍경을 잘 담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도되지 않은 것이 아직 많다. 계속 바뀌어가고 있는 이 풍경만 담아도 얼마나 할 말이 많은가. 언젠가 성일 평론가가 ㅡ인과응보처럼 자기를 씹을 많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찍은ㅎㅡ 첫 영화로 《카페 느와르》를 찍고 나서 술회를 밝힐 때 영화 속 풍경이 이젠 많이 바뀌었다며 영화의 좋고 나쁨을 떠나 보존적 가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 영화에서도 종로 풍경이 꽤 담겨 있다. 정은 소설 『백의 그림자』에서는 고가도로가 있던 옛 청계천 전자상가 풍경을 잘 보여줬다. 글을 쓰는 순간은 누구나 사건 순간을 전하는 기자가 되는 셈이다.   


많은 작가들이 설과 시의 경계를 깨고 싶어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는데, 황인찬 시인은 이 부분에서도 뛰어나다. 시와 소설의 장점을 각각에서 잘 수렴하고 있다.

그런데 세간에서 상찬하는 이 시 세계가 신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황인찬 시를 "포스트모던"이라고 말하는 건 외형상에 따른 단순한 평가 같다. 

두 번째 시집『희지의 세계』 마지막 시 「인덱스」마지막 문장은 인덱스란 뜻과 뉘앙스처럼 이렇게 끝난다.


"이제부터 평생 동안 이 죄악감을 견딜 것이다"


황인찬 시에서 계속 목도되는 것은 모던한 스타일 뒤에 정제되어 있는 형성(原型性)이다. 우화 같은 카프카의 소설 저변이 그러하듯이.

통상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황인찬의 살아있는 세계엔 말라 있는 것들이, 저편 세계는 젖어 있는 것이 가득하다. 그 중간쯤에 일어나는 불, 문학의 세계가 있다.

바슐라르 식으로 물, 불, 공기, 흙의 로 그의 시 경향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떠나기 직전의 새와 물속에서 금속같이 느껴지는 손 같은 그런 것.


하지만 이런저런 분석 노력이 나는 귀찮지. 도무지 너무 귀찮지. 시인이 그렇게 쓰든 안 쓰든 무슨 상관인가. 그러고 싶으면 그리 쓰면 된다.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가 그렇듯 사실 독자의 몫은 그냥 듣는 역할이다.


오늘 비가 오거나 해가 뜨거나 우리는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게 삶이며 일상인데 문학이라고 다른가.

도무지. 도무지....

기어이 무너질 것을 짐작하는 이들은 죄악감에 싸여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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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17 0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처음 읽은 시지만, 뫼비우스의 띠같은 느낌을 주는 군요. 끝나도 끝나지 않은 듯한. 어쩌면 시작도 없었을지도 모르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마침 AgalmA님께서 올리신 사진의 느낌이 시의 이미지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이 부분이 앞선 글 중의 ‘대칭성‘과도 맞닾아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AgalmA님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제 머리 용량이 별로 크기 않기에 너무 여러 생각하다가는 과부하가 걸릴것 같아 적당히 하렵니다.ㅋ

AgalmA 2017-09-17 01:30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느낌처럼 저도 그래서 <건축> 시가 참 좋더라고요. 끝모를 어떤 지점을 향하고 있는 거 같은데 화자는 계속 끝났다고 말하면서 꿈으로까지 환치하려 하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게 남은 거에요. 문학은 어쩌면 이런 잉여, 초과 상태를 풀려는 무모함이자 고집인지도 모릅니다.
겨울호랑이님은 본인 공부만으로도 벅차실 거 같은데요. 제 서재 글은 쉬엄쉬엄 보세요^^
 

빛이 모든 걸 충분히 알아보게 만들기 전, 은밀한 임무를 완수하듯 외주 사무실에 일을 갖다 놓고,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혹은 된다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던 내게 달은.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변환할 생각을 했다. 문득, 왜 그래야 하지. 이것은 혹여 치장일까. 내겐 그보다 더 큰 매혹이 있다. 이 이미지를 통해 도약하고픈 욕망이다.

˝사진은, 두려움을 주거나 찡그리거나 비난할 때가 아니라 생각에 잠길 때, 파괴적이란 특성을 갖는다. ˝

˝사진가의 투시력은 ‘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촬영 장소인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
ㅡ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초판 1986~1998, 열화당) or 《밝은 방》(2006, 동문선)

그렇다. 나는 저 사진 속 공간과 시간을 지금도 한참 음미하고 있다.
모든 표현은 우리가 강렬하게 빠져든 매혹에 대한 증거이다. 그것들은 우리를 이루는 원소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빅뱅과 인간의 탄생은 매우 유사하다. 응축되고 팽창하는 전 과정이.

막연히 쓰고 싶다, 그리고 싶다, 하고 싶다 말하는 것은 거짓 열정이다. 진정 원할 때 그것은 이미 튀어나와 있다. 그 선정성이 누군가의 맘엔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지적, 반박, 비난, 매도 온갖 공격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차적인 문제다. 진짜 내 속에서 나온 거라면 외부의 반응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향할 수밖에 없다. 조르주 바타유도 그걸 잘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몇이 더.

어떤 침잠들. 어떤 심지들.
죽음만큼 그것들은 막을 수 없고 그 때문에 우린 파국을 기어이 마주한다.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도 이젠 사야 할 때가 되었다.
 



 


ALEPH(알레프) _ Fall in Love Again
https://youtu.be/l25XvvIEi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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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9-15 1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롤랑바르트, 발터벤야민, 밀란쿤데라, 파스칼 키냐르 중에 최고의 문장가는 누굴까요? 혹은 이 네 작가를 뛰어넘는 작가는 누굴까요? ㅎ

AgalmA 2017-09-15 19:16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그 중에서는 파스칼 키냐르가 최고입니다. 세상의 은밀함, 작동에 대해서 이 작가만큼 섬세하게 가까이 간 사람은 바슐라르? 여기서 제가 방점을 두는 것은 ‘섬세함‘입니다. 다른 기준이라면 달라질 수 있겠죠.

시이소오 2017-09-15 19:17   좋아요 0 | URL
아, 바슐라르. 왠지 납득이 되네요 ㅎ

cyrus 2017-09-1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님도 소수에 가까운《카메라 루시다》 소장자 중 한 사람이군요. 정말 부럽습니다. ^^

AgalmA 2017-09-17 01:21   좋아요 0 | URL
cyrus님 능력이면 이 책도 가지고 계실 법한데 부럽다고요?
도서관에서 읽긴 했지만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죠. 롤랑 바르트 하면 이 책을 빠트릴 수 없으니까요.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어려워 저는 이 책을 파주에 있는 열화당 출판사에 가서 구했습니다. 책이 몇 권 더 있어 다 사 가지고 와서 지인들에게 나눠 줄까 하다가 저처럼 출판사까지 와 직접 구하려는 열혈 독자들을 위해 남겨뒀죠. 오래 전 일이라 지금은 그 책들이 열혈독자들에게 다 가 있겠지 싶네요^^
지금은 동문선에서 <밝은 방>으로 나와 있으니 <카메라 루시다>는 소장용 외에 큰 의미가 없죠ㅎ

뷰리풀말미잘 2017-09-19 08:09   좋아요 1 | URL
헐............. 밝은 방이 카메라 루시다였어요.........? 헐........................

AgalmA 2017-09-19 18:44   좋아요 0 | URL
뷰리풀말미잘님/ <카메라 루시다>나 <밝은 방>이나 번역에 대해 말이 많죠. 번역본 두 개 비교해 읽는 건 별 의미 없는 거 같고, 얇은 책이고 뷰리풀말미잘님은 능력되실 거 같으니 원서나 영역으로 읽어보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