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관찰주의자 - 눈으로 차이를 만든다
에이미 E. 허먼 지음, 문희경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고 전환에 대한 책은 많지만 구체적이면서 효율 높은 책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고 얻는 게 없었다고 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미술 해석력부터 의사소통에 이르기까지 이 정도 자기 계발서라면 추천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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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1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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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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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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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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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4: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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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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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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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아한 관찰주의자 - 눈으로 차이를 만든다
에이미 E. 허먼 지음, 문희경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그때 응급 구조원이나 경찰이 옆에 있을 확률은? 내가 3년 내 철인 3종 경기 대회에 참가할 능력자가 될 확률보다 낮지 않을까. 이때 나는 이미 철인 3종 경기 대회에 참여해 봤지요~ 헤헤하는 분이 등장하진 마시고-,.-; 우아한 관찰주의자 저자인 에이미 E. 허먼이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독특한 교수법인 지각의 기술은 시각적 분석과 비판적 사고력을 연마하는 기술적 부분만이 아닌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긴급 구조원이 될 수 있는 조언까지 두루 겸비하고 있다. 2011CNN에서 선정한 영웅 중 하나인 데릭 케욘고는 미국 호텔에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비누를 보고 글로벌 숍 프로젝트를 설립해 그것들을 수거해 우간다 동포들에게 나눠줬다. 이 자선 활동은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일조하고, 아기를 낳다 죽는 산모들이 없도록 산욕패혈증 예방에 힘쓰는가 하면 현지의 비누 제조업자에게 소액 융자를 제공해 지역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누구나 케욘고 같이 뛰어난 관찰력을 사업 성공과 훌륭한 자선 활동으로까지 가져갈 수 없겠지만 보는 법을 알게 된다면(레오나르도 다빈치 사페라 베데아레 saper vedere 개념)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저자는 그런 사례와 경험들을 풍부히 이 책에 담고 있다.
 
지각의 기술강의는 네 가지 A’(평가 Assess, 분석 Analyze, 명확한 설명 Articulate, 적응 Adapt) 방법을 습득하도록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우리의 지각 필터는 우리가 삶에서 접한 고유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정한 순서에 따라 행동하는데 자신이 정보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지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안다고 해도 돌발 상황이나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놓치거나 모르는 게 더 많다. 아래 에드워드 호퍼의 유명한 그림을 보자. 자세히 보길 바란다.

 


그림에서 뭘 알 수 있는가 묻는다면 제목 자동판매 식당Automat(1927) 중요한 정보가 된다는 걸 지금 알게 된 이도 많을 거다. 여자의 모자도 시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저자가 제시한 다음 항목들도 생각해 봤는가.
초록색 코트를 입은 여자의 정체, 여자의 나이, 여자가 사는 곳, 여자가 일하는 곳, 여자가 자동판매 식당에 있는 이유, 여자가 마시는 음료, 여자가 이미 먹었거나 마신 것, 여자의 기분과 전반적인 성격, 여자가 밖에 혼자 있는 이유, 여자의 결혼 여부, 자동판매 식당의 이름, 이 식당이 있는 곳, 시간, 여자의 사라진 (오른쪽) 장갑이 있는 곳, 장갑이 사라진 이유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다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저자를 더 따라가 보자. “각자의 직업이나 일상에서 주로 책임지는 일의 관점에서 위의 목록을 다시 살펴보자.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답이 무엇인지(어떤 답이 다른 답으로 이어질지) 번호를 매겨 보자. 그러면 무엇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할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각자의 우선순위 목록이 생긴다.”(p226~227)
이런 여러 요소들을 통합해 우리는 의사소통을 한다. 언어를 잘 다룬다고 해서 능사도 아니다. “UCLA의 심리학과 명예교수이자 신체 언어 연구의 선구자인 앨버트 머레이언은 메시지의 효과는 언어(단어만)7퍼센트 정도이고, 음성(어조, 억양, 기타 소리)38퍼센트, 비언어적 요소가 55퍼센트라고 계산했다. 섬세한 미술품에 감싸는 금박을 입힌 거대한 액자처럼 어조와 표정과 자세는 누군가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의도하든 않든 언외言外의 의미가 상대를 끌어들일 수도 있고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p276)
저자가 소개하는 의사소통을 원활히 일어나게 할 전달 과정은 3R(반복 Repeating, 이름바꾸기 Renaming, 재구성 Reframing) 단계로 살펴볼 수 있다. 상대가 내 말을 들었는지 혹은 이해했는지 따져 묻기보다 반복해 말하게 해 서로 기분 상하지 않으면서 정보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Repeating),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사창가를 피카소의 친구 앙드레 살몽이 아비뇽의 처녀들로 바꿔 추문을 꺼리는 당시(1916)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며(Renaming), 유명한 광고 카피라이터가 구걸하고 있는 장님의 빈 깡통을 보고 구걸 멘트 장님이에요, 도와주세요아름다운 날이에요. 여러분은 볼 수 있지요. 전 볼 수 없답니다로 바꿔 도움을 줄 수 있다(Reframing).
이런저런 방법을 안다고 해도 편견에 갇혀 있다면 문제도 이런 문제가 없다. 다음 사진을 보자.


 

십중팔구 앞서가는 흑인을 범인으로 보기 쉽다. 상황은 예상 밖이다. “런던 경찰국 광고에 쓰인 이 사진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 있다. ”경찰의 편견을 보여주는 사례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편견을 보여주는 사례일까요?“ 대중을 꾸짖으려는 광고가 아니라 새 경찰관을 모집하는 광고였다. 이어서 이런 말이 나온다. ”경찰이 범인을 쫓는 것으로 보입니까? 아니면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괴롭히는 것으로 보입니까? 둘 다 틀렸습니다. 사복을 입은 경찰 한 명과 다른 경찰 한 명이 다른 누군가를 쫓는 장면입니다. 저희가 왜 소수민족 출신의 신입 경찰을 더 많이 찾으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p332)
"편향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즉각 안전하거나 똑같거나 편안하다고 지각하는 정보를 토대로 타인에 관한 무의식적 결정을 내리도록 타고났기 때문이다.…(중략)… 일단 스스로 편향을 알아채면 편향을 직시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해 사실적인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p343) 
또 다른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이 정확히 뭘 보여주는지 단번에 알아채기 어렵지만 답을 알면 그렇게 보지 말라고 해도 보게 된다


 

소를 찍은 선명하지 않은 저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적의 항공기를 정확히 포착하는 군사훈련 프로그램에도 쓰였다. 가시에서 고안한 지퍼 대용 밸크로는 패션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서 머물고 일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평범한 것,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간과하지 않고 관찰하고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인식 전환과 근사한 결과를 만날 수 있다.
어제(2017. 8. 20)는 문재인 정부 100일간 국정운영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는 대국민 보고대회가 있었다. 국민인수위원회는 국민제안 18만건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하나하나 국정과제에 반영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우리는 희망 가득하다. 개인일 뿐이었던 케욘고는 관찰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숍 프로젝트로 확장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우리는 비슷한 편향과 맹시(盲視)에 차 있기도 하지만 누구도 동일한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에 더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과 사고의 다양성이 흑백의 세계에 갇힌 것보다 더 나은 해법을 찾으리란 건 동의하는 바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낯선 공간에서 개인적 능력과 전문적 능력을 동원해야 한다면(대다수 사람에게 미술작품 분석이 그렇다), 완전히 새로운 사고 과정을 끌어내야 한다. 1908년에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은 뇌는 새로운 경험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약간 상승할 때 새로운 자료를 가장 능률적으로 학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34

심리학자들은 휴식을 취하기만 해도 인지 통제 체계가 경계를 유지하고 장시간 집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방법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20분마다 잠깐씩 머리를 식혀야 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가 잠시 집중력을 풀어 주는 것이다. 이때는 현재 몰두하는 활동과 전혀 다른 활동을 선택해야 한다.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면 이메일을 읽을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직접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식의 전혀 다른 기능을 쓰는 활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90분 동안 일하고 10분 휴식을 취해야 한다. p147

현재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일을 많이 생각할수록 그 일을 더 많이 기억하거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특히 정서적 경험과 관련된 기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뉴욕 대학교 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인 엘리자베스 A. 펠프스는 뇌에서 시각피질과 감정이 입력되는 편도체와 기억이 저장되는 해마가 직접 소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일이 좋든 나쁘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편도체가 눈에는 더 가까이 주시하라고 지시하고, 해마에는 더 많이 기억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정서가 개입되면 기억에 대한 자신감은 부각되지만 객관적인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p 198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 수십 가지 방법이 있고, 그중에는 난해한 이름이 붙은 방법도 있다. 예컨대 고/중/저, MoSCoW, 정점과 바닥tops and bottoms, 파레토 도표Pareto chart, 카노Kano, 행렬, 산포도, 타임박싱timeboxing이 있다. 의학계에서는 중증도 분류법triage system을 기준으로 부상이 가장 심각한 환자를 우선 찾아내어 치료한다. 군대에서는 역중증도 분류법rever triage system을 기준으로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상자부터 대피시킨다. 6시그마에는 프로젝트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행렬이 있다. SAP 제품 통합에서는 가치 매핑을 사용한다. 미국 국방부에서는 CARVER 행렬을 사용하는 한편, 농촌도시보건담당전국연합에서는 간단한 회의에서는 여러 색깔의 포커칩을 상자에 집어넣는 방법을 사용한다. 우선순위를 어떤 방법으로 정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 관건이다. p212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는 긴급한 것과 중요한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긴급한 사안이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아우성치지만 대개 단기적인 해결책만 내놓을 뿐이다. 중요한 사안은 장기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긴급한 사안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긴급한 사안이 중요한 사안을 가린다. p230~231

거의 알맞은 단어와 알맞은 단어의 차이는 사실상 중요한 문제다. 마치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와 같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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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21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명하지는 않지만 명확한 메세지를 의도한대로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려운 기술인 것 같네요.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이 효과적인 것은 ‘수용자의 자발성‘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 40되기 전에 철인 3종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다가, ‘수영‘에서 발목 잡혔네요..ㅋㅋ

AgalmA 2017-08-21 12:59   좋아요 1 | URL
상대가 나와 비슷하게 볼 것이라는 것부터 금물^^ 요즘 수용자들이 원체 까탈스러워서 말이죠ㅎㅎ; 허먼이 주관적으로 본 걸 객관적으로 수치적으로 바꿔서 전달하는 걸 잘 설명해 주더군요. 머리로는 알아도 이렇게 가끔 책으로 재차 확인하면 각성이 되지요^^
철인 3종 경기 나갈 생각을 하셨다고요-0-)˝ 겨울호랑이님 파파별(파고 파면 별종)이신 거 아녜요ㅋㅋ

겨울호랑이 2017-08-21 13:02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네요... 인생의 추억이 될 듯해서 철인3종 경기 해보려고 했는데, 바다수영에서 침몰 ㅋㅋ 제가 파파별일수도 있겠네요^^ ㅋ

페크pek0501 2017-08-21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의 책 같습니다.
˝경찰이 범인을 쫓는 것으로 보입니까˝ - 예, 그렇게 보입니다.
인간은 그냥 느끼는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지요. 때로는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믿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얻을 것이 많은 책으로 느껴집니다. 다음 책 구입할 때 참고하겠습니다.

AgalmA 2017-08-22 06:20   좋아요 0 | URL
pek0501님과 읽은 책 겹침 생각해보면 재밌어 하실 책 맞습니다.
말씀하신 게 ‘편향‘이죠. 진화적 본능이라니 각자 극복해 갈 밖에요^^;.
 
 전출처 : AgalmA > [잉문예술덕후 리뷰 ] 올해 가장 골치 아픈 책 - 문제는 페미니즘이 아니다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명문 낭독을 들으며 L 작가가 계속 떠올랐다. 실존주의는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를 극복하고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치열했던 사르트르. 어쩌면 그의 성편력과 수많은 논쟁들은 그 극복의 일환이었는지도 모른다. L 작가의 수동적 공격성이 작품 속에서는 폭력성으로, 현실 속에서는 패드립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팟캐스트 《두 남자의 철학수다》( http://www.podbbang.com/ch/11510 ) 메인 패널이자 《철학 듣는 밤》 저자인 메뚝 씨가 사르트르 《말》을 사람들에게 쉽게 추천하지 않고 아끼는 명저라며 격찬해 예전에 중고로 팔았던 걸 다시 샀다. 메뚝 씨. 저한테 사르트르 영업 성공하셨어요ㅎ/ 마침 사르트르 "L'enfer, c'est les autres(타인, 그것은 지옥이다)"  컵도 있지요.
고등학교 때 《말》을 읽으며 얼마나 지루해 했던가; 다시 읽으니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 겹친다. 심약한 어린 시절을 그린 자전성,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그런 거 같다.
 
루소는 '문예공화국'에 등단한 논문인 《학문예술론》을 통해 학문과 예술을 비난했고, 연극이 사람들의 마음에 허영심을 조장하고 스스로를 외면하게 만든다고 비난하면서 연애소설인 《누벨 엘로이즈》를 썼으며, 교육론 《에밀》의 저자이면서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렸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말년에 고통 속에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쓰며 ˝나 자신은 무엇인가˝를 탐구했다. 자기 기만적이고 부조화를 이루는 그를 보면서도 역시 L 작가가 떠올랐다. 내가  L 작가에게 남긴 말과 생각, 타인에 대한 힘겨운 무게감, 자성 그런 것들이 복잡하게 내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에 더 그랬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으면 산책하다가 사망한 로베르트 발저 《산책자》도 오버랩되는데 루소의 미완성 유작이기도 하고 '
몽상'이 그들을 묶고 있는 걸 목도해서다. 몽상은 우리 안에서만 떠돌고 우리는 내내 사람 속을 산책하다가 가는 것일지도. 그 속에서 우리가 취하는 행동의 필연성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말하고 있듯 외면과 내면의 일치를 이뤄나가야 하리라.

 

 

 

"인간은 신을 탄생시키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짓고 공허하게 자신을 잃어버린다. 인간은 하나의 이롭지 못한 수난이다"(사르트르)
신의 자리에 '나'를 넣어도 말이 되지 않나.

 

 

 

"행복이란 항구적인 상태로, 이 세상 사람을 위해 마련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지상에서는 모든 것이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어 변함없는 모습을 지니도록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 우리 자신도 변해서 아무도 자기가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도 사랑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삶의 행복을 위한 우리의 모든 계획은 공상이다."(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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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8-19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 가득한 저 유리컵 속에 든 건... 녹차 귤차 그런 건가요??
아이. 시원해보여서. 물방울이 마구 맺히는 느낌이.^^
물방울 때문에 티코스터 조금 축축해지면 살짝 걸어두시면 잘 마를거예요.^^

AgalmA 2017-08-19 19:31   좋아요 1 | URL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매실청^^ 달콤하고 시원~
티코스터를 여기저기 두고 여기 축축하면 저기 뒀다하며 티코스터 순례 중이죠ㅎ

서니데이 2017-08-19 19:33   좋아요 1 | URL
여름에 매실이 좋대요. 소화에도 좋다고 들었어요.(진짤까요.??)
요즘 더워서 찬 음료 많이 마시는데 우엉차도 좋다고 그러더라구요. 단맛도 적고요.
a님은 저녁 드셨나요?? 오늘도 시간 너무 빨리 지나가요.^^

AgalmA 2017-08-19 19:43   좋아요 1 | URL
매실에 그런 효능이 있다고 저도 들었습니다. 요즘은 계란도 집에서 닭 키워서 자기가 채취해 먹어야 믿을 만한 식문화라 ㅎㅎ;;
우엉차도 좋죠. 안 먹고 뒀더니 금세 상하더라는?
서니데이님도 좋은 저녁되세요.

나와같다면 2017-08-19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자신도 변해서 아무도 자기가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도 사랑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는데..
백년도 못 살면서..

쓸쓸 하네요

AgalmA 2017-08-21 10:29   좋아요 0 | URL
생각대로 사는 거니까요~_~; 그래서 좀더 나은 생각을 하고 행동하고 싶어하는 거 잖겠습니까.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 페미니즘이 이자혜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우리 시대의 질문 5
양효실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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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의 사생활 캐고 들여다보는 걸 싫어하는데 이 책의 내용은 그걸 자세히 살펴보고 내 관점을 잡기 전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태도였다가 저 태도였다가 여러 날을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 중인 채 이 리뷰를 쓴다. 얘기를 진행하면 뻔히 알 테지만 사건의 중심인 L 작가는 이니셜로 진행하겠다. #오타쿠_내 성폭력 해시태그로 촉발된 L 작가 사건 이후 이 책은 201610월부터 20175월까지 그 문제를 토론한 모임에서 나왔다. 9 패널의 글이 실려 있고 L 작가도 모임에 동참했으나 그 목소리는 담겨 있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건 패널의 상당수가 객관성, 윤리성, 중립성을 내세우면서 이 폭로전의 진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멀찍이 떨어진 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판 공방 중인 사건이라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글이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방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네티즌의 잘못됨과 한계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하고 있다. 당신들의 프레임과 태도가 역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한다는 진보적·페미니즘적 계몽주의로 비칠 거라는 건 모르시는지. L 작가가 자초한 자가당착처럼. 문제의 발단을 깊게 짚어보지 않고 방향을 제대로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순진한 것 아닌가.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단순한 도덕 윤리론에 기인한 무지한 집단 폭력이라는 초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피해자 A의 고발을 철석같이 믿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2차 가해가 될지 모르는 L 작가의 만화를 거부하는 거라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이분법적 도라고 생각하는 게 이분법적이다. 여러 논의를 거칠 시간이나 기회도 없이 빠르게 진행된 이유는 뭘까. 사람은 단순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심리를 건드리는 요인들은 아주 복잡하고 파급력이 크다. L 작가의 만화가 여성 혐오의 문제, 약자의 울분, 외톨이의 욕망 등을 대변해주는 문제적 작품이었다고 해도 그를 폐기처분하려는 이 움직임의 구심력은 L 작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L 작가201610191차 입장문에서 저는 평생 아무에게도 성적인 관심을 받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창작의 기본적인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관심을 못 받았을 뿐 아니라, 제가 친구가 없다는 것까지도 저의 창작자적 캐릭터에 포함됩니다. 저는 친구가 없고 성적인 관심을 못 받는 자신을 혐오했으며, 저와 달리 성적 관심을 즐길 수 있는 다른 여성들을 혐오했다고 밝히고서 10212차 입장문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제 개인의 욕망과 배설을 투사하기 위한 얄팍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은 억울한 판단이며, “저는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 창작자로서의 소명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에서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자유만이 접근/성취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동시에 일반 시민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인간성을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자기기만을 보여줬다.

오해의 세계에서 이나라는 L 작가와 작품의 별개성을 부정한다. 이나라는 L 작가와 미지의 관계를 플로베르와 엠마처럼 별개로 볼 수 없으며 버지니아 울프와 로우다’(파도)처럼 닮았다고 말한다. L 작가가 트위터 상에서 끊임없이 보인 극악한 패드립과 작품 속에서 남성을 강간하는 미러링 등은 자신을 전혀 변호해 줄 수도 정당성을 보장받을 수도 없게 한다.

글을 위한 글 같은 이론을 끌어온 글보다 L 작가의 작품 분석으로 해명하려한 이춘식의우리들의 일그러진 여왕」이 가장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춘식은  L 작가가 피해자 A의 성폭행 사주·방조한 일을 희화한 작품으로 논란되고 있는 포도주와 포타주의 식사, 아이들을 다른 시기의 작품과 비교해 사건과 관련 없음을 증명해 보이려 하지만 작가를 지지하는 방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건과 연관성이 짙은 포도주와 포타주의 식사A의 사건이 일어난 즈음에 그려졌다는 게 더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L 작가가 A가 강간 당한 것은 몰랐다고 하더라도 A-B의 섹스 상황을 알고 있었고 조롱과 복수의 의도인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정황과 1%의 연관성도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의 추정이 답정너 빙의 상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사람들의 분노는 터부를 다루는 창작의 자유를 간과해서가 아니다.  L 작가가 현실을 비틀어 가져오는 방식,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그가 내세운 "일반 시민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항변을 무색하게 만들며, 이 사건처럼 문제로까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을 혼동하지 말라고 지적하기엔 그가 내보인 게 너무 많다.

이 여자들을 보라」에서 양효실은 비르지니 데팡트의 강간 이론을 가져와 강간을 무릅쓸 권리를 마치 피해자 A가 들으라는 듯이 말하고 있는데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글이다. L 작가를 내치는 것은 문화계의 자본주의적 계산법이라고 말하는(p25) 것도 단순한 독법 아닌지. 나도 한국의 윤리의식, 도덕적 가치관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 사건에서 L 작가의 창작 문을 닫은 건 고발자 A나 계약을 거부한 업체나 페미니즘의 숙청, 여론이 아니라 작품 안팎에서 그가 행한 위악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건 B였지만 이처럼 눈덩이가 되어 돌아오게 만든 건 L 자신임을 이 책에서 왜 한 사람도 짚고 있지 않은가. 그 또한 피해자 L 중심주의 아닌가. 지금 결과로써는 가련하고 딱한 예술가 L이 되고 있지만 그 많은 과정 속에 자신을 무너뜨릴 탑을 쌓고 있었다. '그래, 사람들은 내게 늘 이랬지…' 하며 피해 의식을 키우고 체념을 (L 작가가 자신의 성격으로 몇 번을 강조하기도 한)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치장하고 외부에 무기로 휘두르면서 그리고(drawing) 더더 그랬지. 자신이 뭘 그리고 있는지 정말 몰랐나. 예술이니 창작이니 자유니 하면서 뒤에 숨지 말라고!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참을 수 없었다.
 
문제가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L 작가가 성폭행을 사주하고 방조했다기보다 사랑받지 못한 20대의 치기와 무신경함이 사건 발생으로 인해 칼날을 맞은 걸로 보인다. 작품 속에는 자신을 구해 달라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절규하는 캐릭터로 가득한데 현실 속에서 당신은 타인에게 얼마나 그런 노력을 했나. 이 사건에서 가장 유명인이라 L 작가가 큰 타격을 입은 건 안타깝다. 어떻게든 화를 피하고픈 심정은 알겠지만 작품과 작가의 연관성은 피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연이더라도 억울하더라도 작품의 책임까지 작가의 몫이다(이 말, 나도 잘 새겨 들어야지). 사람들의 통념과 가치관을 통렬히 비웃으면서 그들의 인정을 바라며 그림 그릴 자릴 구걸하지 마시길 바란다. 당신이 바란 예술이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면. 당신의 작품을 이용하고 죽인 당신이 당신의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라(이건 응원의 뜻이다). 화간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성년자와 관련해 여러 가지 혐의가 명백히 의심스러운 B는 어디로 간 건지 사람들이 자수하라고 아직도 성토 중이다. 당시 성폭행을 인지하지 못했다던 A2013년 당시 연애처럼 보이는 블로그 글을 썼다. 인지부조화처럼 혼란한 상태를 감안하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B에게 어떤 동정도 가지 않는다. 미숙했던 이상의 고통을 받는 이에게 평안이 깃들기를 바란다.


A-B-L 작가, 이 책의 필진, 바깥의 우리 모두 각자의 도덕관념과 가치관으로 자기가 말하고 싶은 바만 말하고 있다. “동일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내러티브에 따라 다른 경험으로 인식한다는 철학자 이언 해킹(도덕적 폭력, 허성원)의 분석처럼. 이 사건에서 객관적이고 적확한 제삼자의 시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처방으로 부르짖는 법 또한 최소한의 처리일 뿐 해결일 수 없다. 그래서 해시태그 성토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폐해를 인지하더라도 1%의 진실을 살리기 위해. 그것이 사회적 사형이 될지 활인(活人)이 될지 확률의 문제일 뿐일까. 우리가 집단지성의 역할인지 집단폭력의 역할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의 위력을 인식하고 이렇듯 겪고 있지만 현실을 제대로 바꿀 수 있는 말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정치적 올바름에 얽매이기보다는 올바른 정보인지 따져야 한다.

ㅡ 에이미드 E. 허먼 《우아한 관찰주의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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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9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디로 갈 수 없기에(정말?) 매 순간 어딘가를 꿈꾼다. 그런 열망 속에 펼친 백민석 《아바나의 시민들짧은 여행의 단맛처럼 순식간에 끝났다. 책에 이런 표현이 있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보니 그가 절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절망에 대한 감각은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찰나적 감각이다. 인간은 절망을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한다. 인간은 잠시도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금세 자신을 속이기 시작한다. 절망은 쉽게 휘발된다.”(《아바나의 시민들》, p198)

 

 

 《아바나의 시민들

 

작가라서 더 그런 걸까백민석 사진은 황량한 소설 인상과 달리 의외로 다감한 시선으로 찍은 인물 사진이 많다. 특히 노인들. 저 문장은 그가 아바나에서 자주 본 자세라고 말하며 손으로 머리를 감싼 노인이 성당 계단에 앉아 있는 사진을 찍고 남긴 단상이다. 그러나 절망만 그럴까. 희망도 그렇지 않은가. 희망을 꿈꾸지만 우리가 하루 중에 그것을 꿈꾸는 건 찰나다. 우리는 많은 일상을 원하지 않은 것들로 채우면서 아직은 괜찮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속인다.

 

바보 같은 이유로 카메라를 여러 대 잃어 버리기도 하고 인터넷이 잘 안 되는 쿠바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장소에서 자조하기도 하면서 정처없이 헤매는 백민석을 놔둔 채 나는 우디 앨런 카페 소사이어티영화섬에 다녀오기도 한다. 1930년대 뉴욕과 할리우드 풍경이 아련히 펼쳐진다. 송년 파티 장면에서 합리적 공산주의자 Leonard는 이렇게 말한다.

 

 

 

 

음미할 시간도 경험도 갖지 못한 인생이면 어쩌나. 카페 소사이어티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 양식을 따른다.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로 온 바비(제시 아이젠버그)와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사랑에 빠진다. 보니는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바비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을 버렸던 재력가인 그의 삼촌을 택한다. 뉴욕으로 돌아온 바비는 갱스터였던 형의 나이트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영업에 재능을 발휘해 크게 성공한다. 바비와 보니는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서로가 함께 하는 사랑을 다시 누릴 수는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공허를 내내 음미할 것이다.

이 영화는 같은 해 개봉한 데미언 샤젤 《라라랜드와 흡사한데 두 영화의 판도가 판이하게 갈린 건 우리가 음미하고자 하는 게 달라진 걸 말하는 걸까, 데미언 샤젤이 우리가 음미하고픈 걸 더 정확히 짚어냈다고 봐야 하는 걸까. 두 영화 다 재즈 굿~ㅎ

삶의 많은 것에 대해 음미를 너무도 잘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음미되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아바나의 시민들에도 등장한다.

 

소크라테스의 연인들은 그를 아토포스atopos’라고 불렀다. 아토포스라는 별명은 마르지 않는 사랑의 매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려준다. 장소를 의미하는 'topos'에 결여, 부정을 나타내는 접두사 ‘a’가 붙어 어떤 장소에 고정될 수 없다, 더 나아가 정체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의 아토포스가 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아토포스로 인지한다.”(《아바나의 시민들》, p270)

 

영화 속 Leonard처럼 백민석도 이의 제기한다.

 

하지만 아토포스는 또한 사랑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불행의 언표일 수 있다. 사랑하는 이는 소크라테스처럼 아토포스가 될 수 없다. 그는 사랑하는 이라는 정체에 기꺼이 고착되어야 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잘 바라다보이는 장소에 정주해야 하며, 변덕을 부렸다간 사랑을 잃을 것이라고 매 순간 자신을 닦아세워야 한다. 이것이 오늘도 넋을 앗길 순간을 기대하며 아바나 비에하를 걷는 당신의 정체이자, 불행이다. 아바나만 한 다른 아토포스를 찾기 전까지 당신은 한국에 가서도 사랑의 이름으로 아바나에 붙들려 있을 것이다.”(《아바나의 시민들》, p271)

 

"죽은 자의 넋 앞에서 한 가지 감정만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아바나의 시민들》, p22) 세상을 살아도 우리는 어떤 장소, 아토포스에 대한 열망을 접을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고정되지 않는 속성이라 그런 것일까. 아토포스란 표현처럼 쿠바의 날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함이 있다. '미친 태양이 내리쬐면서 동시에 미친 폭우도 쏟아‘(p66)지는 쿠바. 기상학적인 합리적 분석으로 볼 땐 그 위도에 맞는 그 기후겠지만 그 속엔 어떤 음미할 것들이 가득 있다. 집을 두고 여행을 하는 우리의 오랜 습성과 사색과 관찰이 소용돌이치는 공간들이 그렇게 곳곳에 있다. 그리고 모두가 찾아 나선다. 여유가 있든 없든 자기가 꿈꾸는 아토포스에 대한 열정으로. 백민석의 첫 여행 에세이집은 이병률의 첫 여행 에세이 끌림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에서 엿보이는 현지 사람들에게 가지는 애정, 한국적 감수성, 작가적 필치 등등. 끌림을 좋아한 사람들은 《아바나의 시민들도 좋아할 것이다. 이병률이 아기자기하고 풍부한 인상파 화풍이라면 백민석은 권태와 단절감이 묻어나는 굵은 터치의 정물화 같달까.

 

 

 

《아바나의 시민들

 

"아바나에서 끝없이 걷는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아바나에 대한 독서 행위나 마찬가지다. 낱말을 읽듯 집집마다 기웃거리고, 행간을 읽듯 골목마다 헤집고 다니고, 문단을 읽듯 지역을 훑는다. 나중엔 책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듯 아바나 전체를 알게 되거나, 알게 되었다고 자신을 속이게 된다. 당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읽는 사람에 더 가깝다. 읽는 걸 더 좋아하고,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쓰는 건 포기해도 읽는 건 포기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읽으려 든다. 사람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도시든. 그래서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서점을 만나면 고향처럼 살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비록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을지라도."(《아바나의 시민들》, p107)

 

이병률 끌림에 대해서는 ...  http://blog.aladin.co.kr/durepos/7333525

이병률 다른 산문집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새삼 여행 에세이 참 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아, 해가 떠버렸다. 나의 아토포스는 어디 있는가. 카피톨리오의 늙은 사진가가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메라로 찍어주는 나를 만나고 싶은 아침이다. 단 한 곳에서만 찍을 수 있고 세상에서 단 한 장뿐인 단색조의 나를. 


《아바나의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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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8-17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 소설로 재미를 못 보시니까
이제 아예 여행작가로 전업을 하신 모양입니다.

나름 유쾌한 비급 정서를 담아내서 좋았는데
말이죠 ㅋㅋ

AgalmA 2017-08-19 07:23   좋아요 0 | URL
절필까지 할 정도로 소설 쓰기 지긋지긋해 했잖아요. 그런데 에세이는 힘이 나서 좋다네요. 이번 에세이는 출판사 기획으로 쓰신 거 같은데 이 책 잘 되면 앞으로 더더 쓰실 듯^^

요즘 소설쓰신 건 예전만 못해서 좀 아쉽더라는ㅎ;

2017-08-17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19 07:25   좋아요 0 | URL
핸폰으로 찍은 사진도 많던데 뭘 찍어도 작품이 되는 곳 같아요ㅎ
유네스코 문화 지정되어서 옛모습이 많아 더욱 그런 듯요. 문화적인 자유로움도 사진에 가득~^^
경비원 아저씬데도 모델급 포즈더라는ㅎ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