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겨울호랑이 > 서재를 잠시 돌아보면서... : [페이퍼]와 [리뷰]

저도 리뷰 쓰며 공감하는 점인데요. 이 문제는 참 어려운 게요. 읽는 사람이 어느 정도 읽기 수준인가를 설정하기가 매우 애매하다는 겁니다. tv처럼 청소년 관람가 수준으로?(청소년 무시하냐!)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미 나오는 ‘정의‘조차 <정의란 무엇인가>로 본격 풀어보기 시작하면 만만찮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개념과 용어들이 나오는 책들을 소개하자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 설명해야 될까요(그걸 잘 아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_-!). 모를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생각해서? 누군가 곡해해서 읽으면 그 가능성을 만든 단지 내 탓? 여긴 그나마 책 읽는 사람 모인 곳이니 ˝악의 평범성˝ 같은 건 그냥 써도 웬만하면 다들 파악하죠. 그 용어도 많이 알려져서 그런 것이지 대부분의 일상 장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음, 악의 평범성... ˝ 말하면 한나 아렌트를 떠올리고 그 용어의 의미를 생각해 맞장구칠 사람들은 별로 없을걸요? 유식한 사람이다 생각되기 보다 시니컬한 사람이다 눈총이나 받을 테니 잘 안 쓰겠지만ㅎ 한나 아렌트를 들먹이며 말하면 님, 좀 잘난 체👍되시겠죠.
어쨌거나 이곳 서재도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면 글의 어려움을 호소, 지적하는 일은 대번에 발생합니다. 당연하죠. 평소 안 접하는 걸 대하는데요.
어딜 가나 글을 쉽게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태도에 있어 중요한 것이지 글의 내용까지 맞추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학성, 추상성, 형이상학, 철학, 전문적인 이론들을 파고드는 일은 일정 부분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공장 기계 설비를 단추, 바늘 같은 단어들이나 좋다, 깔끔하다 같은 단순한 표현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각의 세계에서는 그 단순한 표현, 기존의 것도 의심되고 논의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일일이 쉽게 알 수 있게 써 달라고 하는 것도 생각의 게으름 아닌지 고찰해봐야 할 겁니다. 입에 떠 넣어 달라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요.
또 쉽게 전달하려고 비유와 수사를 쓰면 맘에 안 든다, 질이 떨어진다, 문장력이 그게 뭐냐 온갖 품평ㅎ 아, 능력이 딸리는 건 참으로 죄이로다~~~
오늘도 어떤 책 리뷰들 훑어보다가 어렵게 썼다고 투덜대는 거 봤는데요. 난이도 있다는 책엔 늘 달리는 평이죠. 그 평이 온당하려면 그렇게 인상평 툭 던지지만 말고 뭐가 어떻게 어려웠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죠. 자기 앎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날 게 두려우니까. 그리고 제대로 규명하자면 귀찮으니까. 보통 투덜대는 글들이 100자 평인 게 왜겠습니까.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글은 100자 평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틀릴까 봐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내 속에서만 반추하는 앎은 밖으로 나오면 곧 문제점이 드러나죠. 그래서 우린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보완 수정해 나가죠. 대화와 논증 등 무수한 난관들이 있긴 하지만 이 전 과정이 담긴 언어가 인류 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죠.

그런데요. 친절히 설명하자고 길게 쓰면 또 길다고 난리ㅋㅋ 어렵고 길면....묵념(_ _)...
리뷰 쓰는 사람들 직원 아닙니다. 부족한 점을 조언하는 건 좋지만 부탁인데 서로에게 갑질하는 고객처럼 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얘기는 아무리 논의해도 끝이 안 보이는 논의이긴 합니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호랑이 2017-03-23 15: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무조건 정리할 수도 없고, 정리 또한 주관적인 내용 정리가 되겠지요. 그러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다른 생각도 한 편으로는 듭니다. 제 생각을 제가 잘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제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정리가 공유되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리뷰를 읽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렵겠지만, ‘친절한 리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galmA 2017-03-23 15:05   좋아요 5 | URL
아마 글쓰는 모두의 바람이겠죠. 이심전심이 되기를.

2017-03-23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6:49   좋아요 5 | URL
구구절절 옳은 말씀^^ 이런 글을 왜 저만 보게ㅎ;;;
리뷰 잘 쓰지도 않는 사람이 품평 따진다는 것도 완전 공감요^^
리뷰를 열심히 써보면 그 과정의 어려움을 잘 알아서 다른 사람 글에 쉽게 감놔라 배추놔라 하기 어렵더라는^^;
좋은 글 쓰려 노력하는 사람 격려해줘서 더 좋은 글 쓰게 만드는 게 더 이득인데ㅎ 그건 공공의 영역인 거고 개인 대 개인 영역으로 오면 첨예하게 따지게 되는 거 같아요. 동물들의 서열 정하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ㅎㅎ

2017-03-23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23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는 사람의 수준까지 고려하면서 리뷰를 쓰는 일은 힘듭니다. 어떤 이의 수준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썼는데, 그 사람이 제 글을 안 볼 수 있어요. 그냥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쓰는 일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글 내용에 문제점을 발견하면, 고치면 되고요. 여러 번 읽어봐도 제가 이해하지 못한 책은 리뷰 쓰기를 포기합니다. 반쯤 읽었어도 ‘아예 읽지 않은 책’으로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

AgalmA 2017-03-23 22:46   좋아요 4 | URL
쉽게 쓴다는 건 어떤 기준이 필요한데 가장 보편적인 게 타겟층을 정하는 거죠.
동화도 아이 상대, 어른 상대가 있잖아요.
대부분의 글은 SF 판타지류 같이 마니아층이 확연히 있다거나 문학에서 작가들이 흔히 하듯 상상의 독자를 두긴 어렵죠.ㅎ
이제껏 한국 마케팅의 문제점은 이 타겟층 설정의 엉성함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흔히 수백억 들여놓고 망하는 영화들이 좋은 예죠. 상영관 많아도 많은 공감대 얻지 못하면 소용없죠ㅎ
책 내서 팔아야 하니까 뜻에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아니라 sns와 인터넷문화 속에서 글도 이런 읽는 이를 고려한 상황에 민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글을 읽는 사람들의 환경은 2차원의 책읽기 문화와 많이 다릅니다. 즉각적 정보를 원하는 추세는 더 확산될 겁니다.
요즘은 내용을 더 압축해 보여주는 ˝카드리뷰˝까지 등장해서 리뷰 쓰기 더 어려워졌죠.
더 짧게! 더 눈에 띄게! 더 재미있게! 어휴ㅎㅎ

cyrus 2017-03-23 18:24   좋아요 3 | URL
저는 글을 짧게는 못 쓸 것 같아서, 책의 특징을 소개하거나 글의 핵심 내용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넣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밑줄 긋기’ 같은 인용 기능은 북플에서 보면, 본문과 구분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인용문을 jpg 파일 형태로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지 파일을 넣게 되면, 제가 원하는 크기의 이미지가 나타나지 않아요. 아무리 적합한 크기의 이미지로 저장해도, 한 번 올려놓으면 생각보다 크게 나옵니다. 파일 크기를 줄일수록 글자 형태가 흐릿하게 나옵니다. 이 문제는 예전에 유레카님이 언급했습니다. 알라딘 서재가 사진 리뷰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

AgalmA 2017-03-23 19:09   좋아요 3 | URL
cyrus님이 말씀하시는 형태는 이미지와 글이 모두 합쳐진 형태의 jpg여야 할 거 같은데요. 그 정도면 이미 책 편집 툴 수준이죠. 분량도 적지 않은데 그 정도로 만들면 책 낼 땐 편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수정하거나 추가할 내용이 생기면 더 피곤해질테니 완벽을 기하려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시간 소요가 많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플래쉬로 제작한다고 해도 그것도 시간소요... 이 시간에 책을 더 읽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날 거 같은...
사람에 따라 일의 진척은 분명 다르겠지만^^;
저도 요즘 1일 1그림 그리면서 그림 독서일기 추진하려고 맘 먹어놓고 막상 책 다 읽고 그리려면 어찌나 귀찮은지ㅋㅋ

새아의서재 2017-03-23 2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박 공감! (지금은 버스안, 흔들흔들거리면서, 고개도 끄덕끄덕)

AgalmA 2017-03-25 11:13   좋아요 3 | URL
서재와서 이 얘기는 계절 바뀔 때마다 늘 하게 되는 거 같은데요ㅎ;; 역사가 왜 반복되는지 살짝 이해도 된달까요. 같은 고민, 같은 불만이 늘 반복되니까요.
사람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글 썼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장문의 어려운 글 쓸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짧은 평, 우스개 소리 그런 거 위주로 쓸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서재라고 해서 누구나 다 프로페셔널하게 글 써야 한다면 부담스러워서 어디 글 쓰겠나요. 양적 풍요 속에 질적 풍요가 더 생산적으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구나 좋은 글 쓰고 싶죠. 그건 무수한 과정 속에서 나오는 것이죠. 다들 나름의 목표는 가지고 있겠죠. 서로를 격려해주며 좋은 환경 만들어 가면 좋은 글 쓰는 사람들도 더많이 모일 거고 그런 분위기에서 서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에서 또 이런 글을 써 봤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7-03-24 13:54   좋아요 3 | URL
대박 공감 2!!

위의 글도 좋지만, 위의 아갈마님 댓글에도 공감합니다.
서로를 격려해주며 좋은 환경 만들어 가면 좋은 글 쓰는 사람들도 더 많이 모일 거라는 말씀에도요.
글이 어렵네, 쉽네, 길이가 기네, 짧네, 감상이네 생각이네... 아이구야...

[그장소] 2017-03-28 0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리뷰쓰는 사람은 직원이 아니란 말에 풉~ 웃고 가요 . 그 말이 젤루 공감!!

AgalmA 2017-03-28 00:23   좋아요 2 | URL
자기 생각, 감정, 표현 중요한 건 알겠는데 우선주의는 워워~

[그장소] 2017-03-28 12:09   좋아요 1 | URL
음음 .. 그 말도 공감 요! 우선 주의는 우산 주의 . ㅋㅎㅎ

AgalmA 2017-03-28 22:27   좋아요 1 | URL
핵우산 주의되시겠죠ㅎ;;

[그장소] 2017-03-29 00:00   좋아요 1 | URL
우산으로 핵을 막앗~ 그 우산 비싸겠죠? ( 아...필요 없음 만들어 질 일도 없구나..) 그럼 비싸고말고 할게 없나...^^;;
우선 주의 ㅡ 경고 , 취급주의 ㅡ ㅎㅎㅎ 비슷한 걸까요?

AgalmA 2017-03-29 00:06   좋아요 1 | URL
뭔가 지키려고 하면 뭔가 내치게 되어 있잖아요.
우산은 뭐랄까. 그만큼의 공간 속에서 나도 보호하고 세상도 그저 비내리게 하는 아담한 도구 같아요.
대상이 핵이면 정말 슬픈 일이지만ㅎㅎ;

핵우산의 실질적인 뜻은 좀 비굴하죠. 핵이 없는 나라가 핵있는 나라의 보호를 받겠다는 뜻이니;;

[그장소] 2017-03-29 00:10   좋아요 1 | URL
아..진짜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음..슬슬 정치 쪽으로 이야기가 기어가는 것 같네요 .
지키려면 내치게된다ㅡ 끄덕끄덕~
 

가난해서 중학교도 중퇴하고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 사무원, 공장노동자로 살았던 그가 작가라는 소위 지성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하인... 그래서 그가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썼던 거구나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자살에도 실패하고, 정신병원에도 입원해 봤지만 사는 건 녹록지 않았다. ‘쓰기‘와 ‘걷기‘는 그의 일상, 그의 친구, 그의 안식. 그의 죽음은 쓰기와 걷기 사이에서 마침내 벌어진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56년 크리스마스 아침 산책을 나간 길에서 홀로 눈밭에 쓰러져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문장에서 저절로 묵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소설들, 어쩌면 산문에 더 가까운.
첫 단편은 시인에 대해서.
두 번째는 죽음에 대해서.
세 번째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모자와 외투는 순식간에 눈으로 하얗게 변했다. 주변의 모든 사물도 사람도 다 마찬가지였다. 천지는 소리가 없고 불빛만이 반짝였다. 마치 지금 이 세상에는 오직 정겨운 집만이,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온통 즐거운 기분만이, 오직 다정한 대화만이, 말할 수 없는 행복만이 넘치는 것처럼.
그 지식인은 지금 분명 눈이 소담스럽게 쏟아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그도 눈을 보고 기뻐할까? 분명 그렇겠지! 이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내리는 눈에 기뻐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나. 눈 내리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 다 그 아름다움에 탄복한다.
그 순간 나는 여러 아이들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다시 한 명의 아이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를 가슴에 껴안은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아직 말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상상 속에서 집을 갖고 있었다. 집 앞에서 개가 짖었다. 명랑한 여인이 착한 남편을 기다렸고 아이는 책상에 앉아 학교 숙제를 했다. ‘눈이 내리면 내 마음은 행복한 시민계층, 행복한 가장의 심정이 되어버리는구나. 무의식중에 아몬드, 오렌지, 대추야자를 먹으며 크리스마스트리의 전나무 가지가 촛불에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는구나. 온 세상의 축제의 향기가 내 앞에서 넘실거리고 나는 기꺼이 한 명의 착실한 남자가 되어버린다. 튼튼하고 강직한 가장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늑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
나는 바닥에 앉아 잠들 때까지 그대로 있고 싶었다. 그러면서 눈 위에 뭔가를 써보기로 했다. 여기 자연상태와 마찬가지로 내 시에도 눈송이들이 어지럽게 흩날리기를 바랐다. 여기서 내가 느끼는 그리움이 표현으로 나타나기를 바랐다.」


 

아, 그는 크리스마스 아침 죽어가면서 바닥에 시를 쓰고 죽어 갔을지도 모르겠다. 슬펐겠지만 그 순간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이미 생각해 봤잖은가.


카프카가 발저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거 같다. 두 사람의 글은 마치 쌍둥이 같다. 교육을 혐오하는 것까지도.

한겨울 이 책이 나왔으면 좋았을걸. 겨울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글이 너무 아름다워 참을 수 없다. 방법은 간단해. 지금 읽고 겨울에 또 읽으면 되지.
산책자가 걷는 숲의 줄기 하나를 가져온 듯한 연두색 끈, 이제껏 본 책 끈 중에 가장 아름답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상처 난 손가락이 쿡쿡 쑤신다. 눈이 쌓이듯.

 

 

 

 

 

Matthew Bourne - Meniscus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3-2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3:40   좋아요 2 | URL
요즘은 배수아 작가 자기 책보다 번역서가 더많이 보여요ㅎ; 이러다 자기 본업을 넘어서겠음ㅎㅎ 이미 넘어섰나a 배수아 작가가 번역한 게 다 제 취향이라 얼마나 좋고 감사한지^^

2017-03-22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3:44   좋아요 2 | URL
죽음을 특히 비장하거나 더 과장되지 않게 사실적인 느낌으로 담고 싶었는데 확실히 어렵습니다... 장식적인 걸 제거하기가 어려워요.
음악은 재고 따지고 할 거 없이 걍 제 취향;

새아의서재 2017-03-23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승원과 그림느낌이 비슷해요. 서정성 같은거요

AgalmA 2017-03-23 14:01   좋아요 0 | URL
문득 생각난 일화가 있는데... 지인에게 제 1일1그림 그린 거 보여주니까 대뜸 ˝만화잖아˝ 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서 참 많은 걸 생각했어요. 순수예술과 만화를 구분하는 차이에서 반드시 나오는 어떤 격하, 세대에 따른 문화를 대하는 차이, 그 사람이 (어떤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있는가에 따른) 그림을 대하는 자세 등등...
암튼 요즘 자주 하는 고민과 또 엮입니다. 나는 만화적인 그림 외에 다르게 표현할 수는 없나.

말씀하셔서 그런가 한승원 그림체 느낌도 받을 수 있겠습니다^^ 한승원 작가는 누구 영향을 받은 걸까요.
제 그림체 영향은 <올훼스의 창>을 그린 이케다 리요코를 빼놓을 수는 없을 듯;

이러저러 그림에 대해선 글만큼 고민이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3 0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델센의 성냥팔이 소녀도 그처럼 추위에 떨다가 죽어갔지요... 동화 속에 나오는 몇 안되는 죽음이긴 합니다만, 소녀는 크리스마스에 죽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역시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여 동화에서 감정을 끌어다 쓰는 겨울호랑이입니다.ㅋ ^^:

AgalmA 2017-03-23 13:57   좋아요 1 | URL
<성냥팔이 소녀> 책 작년에 구입해놓고, 지난 겨울 너무 정신없어 못 읽고 지나갔네요ㅎ;
옛날 읽었던 기억으론 성냥을 켤 때마다 따뜻한 집, 음식 그런 게 나왔던 걸로 아는데 마지막이 뭐 였는지 가물가물...다 읽고 나면 알려 드릴께요ㅎ

모든 걸 완벽히 아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저는 요즘 겨울호랑이님께 제일 부러운 게 그많은 책읽기가 아니라 연의를 통해 배우는 게 뭘까...하는 거임ㅎㅎ 각자 그런 부족함을 느끼고 사는 거죠. 뭐ㅎㅎ

겨울호랑이 2017-03-23 14:02   좋아요 1 | URL
^^: 저도 연의를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연의가 아플 때는 ‘아, 엄마도 내가 아플 땐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하는 공감도 배우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것을 연의한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하는 고민을 던져주지요.. 그런 면에서 ‘딸‘이지만, ‘선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2017-03-23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7:16   좋아요 1 | URL
아뇨. 제가 저 일화를 얘기한 건 달걀부인님 평이 그렇단 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볼 때 각자의 생각을 가져오는 게 흥미롭다는 뜻^^
혹 제가 불편을 드린 거면 죄송요^^; 불쑥 떠오른 생각인데 어쩌다 달걀부인님 댓글로 엮이게 된 건지도요^^

AgalmA 2017-03-2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고 나니까 발저 핀 배지 주는 행사에, 한 권만 사도 알라딘 굿즈 주는 행사도 하고 너무하잖아!
알라딘, 진짜 이러기야!!! 왕왕!!!
그러게. 좀만 참지 그랬어. 후후)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웃겨지는 나. 현명은 내 거울은 아닌 것이다. 지켜주는 나와 망치는 나 속에서 무수한 왕복운동. 독서도 그림그리기도 글쓰기도 사실은 나를 보지 않기 위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소비는 이미 그렇다고 증명되었다.)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서문에서 발 하라리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메시지를 통해 한국인 뿐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해당할 중요한 말을 했다. 어디서나 올림머리에 공을 들이며 수사망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 현재의 박근혜 씨에게 더 잘 들릴 말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

불을 다스릴 줄 알게 되면서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랐다.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지식의 나무 돌연변이‘)가 사피엔스 뇌의 배선을 바꿔 인간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인지혁명'이라 부른다. 전설, 신화, 신, 예술 같은 허구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상상의 질서' 창조) 기술과 조직 방법을 터득해 집단 문화(종교, 정치 체제, 교역, 사법 체계)를 강화해 나갔다.

흥미롭게도 농업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겨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더 잘 먹고살기 위한 인간의 궁리는 비슷했던 모양이다. 불규칙한 먹거리 생활인 수렵채집보다는 안정적인 먹거리 생활인 농업을 선택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 이건 산업 혁명 시대나 자본주의 시대나 다들 생각하던 바 아닌가. 요즘은 개천 용 승천설이 퇴색되긴 했지만. 오, 인간이여. 그런데 혜택도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중략)
역사상의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굶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중략)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ㅡ<제 2부 농업혁명> 중


자유, 평등, 행복을 우리는 알고 있고 추구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우리가 만든 '상상의 질서' 이며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하는데, 내가 '신'을 믿고 싶다면 바로 신자가, '돈'을 따른다면 바로 자본주의 신자가 될 수 있다. 원한다면 둘 다 그보다 더 많은 것도 될 수 있다. 아주 쉽지 않은가. 고통과 책임은 뒷일이다.

거의 모든 농경과 산업 사회에서 가부장제가 표준이었고 그래서 보편적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남성의 근력, 폭력성, 조직력, 유전자 등의 요인들을 고찰해보며 여성보다 나은 특별한 요인은 아니라고 말하며 가부장제에 대한 속 시원한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 현재 들끓고 있는 페미니즘을 생각해 본다. 여성이 사회에 많이 진출해 기반이 넓어진 것이 중요한 변곡점일 것이다. 더 많은 분야에 확고하게 자리매김한다면 대놓고 남성 우월 어쩌고 소린 못할 거다. 기술 발달로 지능, 외모, 성별 거의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올 텐데 끝까지 남는 건 그것들을 획득하느냐 못 하느냐의 권력 투쟁일 거다. 결국 남녀 대결의 이 문제는 계급 투쟁과 흡사하다. 동물들을 거리낌 없이 가축이나 실험재료로 쓰고,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고, 흑인을 노예로 착취하며, 타 종족을 정복이나 계도의 대상으로 본 인간의 '지배심리' 가 가장 위험한 요인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럴싸한 말로 바꾸면 생산적인 경쟁심리‘, ‘권력욕‘ 이겠지만, 이겨서 더 얻어서 그토록 행복한가? 또다시 밀려오는 허기와 갈망은 없으시고? '자본'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면서. ‘국민과 소비 공동체‘라는 상상의 공동체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뭐 그런 건가.

인간 대 인간으로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자신을 낮추고 복종하는 대표적 두 가지가 있다.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인본주의)˝다. 둘 다 공통적 속성은 신념이다. 이 '상상의 질서' 속에서 우리는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다는 기치 아래 인본주의 바탕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와 과학은 한 쌍의 바퀴로 굴러왔다. 과학혁명으로 유럽인들이 세계를 제패한 광경이 책에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니 읽어 보시길. 행복은 개뿔, 여기서도 '권력'과 '정복'이 주요 키워드다.
˝자본주의는 오직 자본주의자만이 운영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공학과 사이보그공학까지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신의 자리까지 멀지 않았다. 환경파괴, 생명존중은 효용성 앞에 늘 무력해진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기술로 자멸할지 새로운 종이 탄생할지 우린 모른다.
이즈음에서 유발 하라리가 좋은 질문을 담은 거울 하나를 보여 줬는데, 나는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이 페이지 때문에 이 책에 별 5개 주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 거울을 당신에게도 보여주며 이 리뷰를 끝낸다.


 

주관적 안녕을 묻는 설문은 우리의 안녕을 주관적 느낌과 동일시하고, 행복의 추구를 특정한 감정 상태의 추구와 동일시한다. 많은 전통철학과 불교를 비롯한 종교는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다.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ㅡ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ㅡ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 생각, 호불호를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들은 분노를 느끼면 ‘나는 화가 났다. 이것은 나의 분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피하고 또 다른 감정을 추구하느라 일생을 보낸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특정한 감정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행위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함정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행복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 전체는 오도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가 충족되었느냐의 여부, 쾌락적 감정을 즐기는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된 질문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고대의 수렵채집인이나 중세 농부보다 이런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을까?
학자들이 행복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아직 초기 가설을 만들어내고 적절한 연구방법을 찾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확고한 결론을 채택하고 논의를 마무리 짓기에는 너무 이르다. 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수많은 접근법을 되도록 많이 알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자의 자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짜이고 풀어지느냐에 대해서,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기술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03-22 0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의 생각을 암기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밤을 새신듯 합니다 ㅋㅋ 대체 언제 주무시는지요?

AgalmA 2017-03-22 06:53   좋아요 2 | URL
총균쇠를 아직 못 읽어서 이 부분은 아마 겨울호랑이님이 잘 아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총균쇠가 이 책을 쓰게 된 영감을 줬다고 하는데, 제 짐작엔 제가 밑줄긋기로 인용한 저 부분이 유발 하라리가 가장 아쉬워서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아, 총균쇠를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ㅜㅜ 어쩔 수 없죠. 쩝....

잠은.... 사람들이 설마 이 시간에.... 할 때 자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ㅎ 참 비정상적으로 꿋꿋하게 살고 있는 자이지요..ㅎ
굿모닝요,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17-03-22 07:18   좋아요 1 | URL
^^: 또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이 책이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저는 지금 <역사의 연구>를...ㅋ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호 영향 관계에 있는 책을 찾아가다보면 끝이 없는 듯해요. 마치 SNS 연결망처럼 관련이 있어서 찾아가다보면 ‘사포의 시집‘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랫만에 ‘굿나잇‘ 같은 ‘굿모닝‘ 인사를 받아봅니다. 편한 낮 되세요. Agalma님^^:

AgalmA 2017-03-22 07:30   좋아요 1 | URL
토인비ㅋ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닌 듯하네요. 저도 총균쇠 읽으면 그 과정 아니 거치지 못하리라 싶으니까요ㅎ;; 프레이저, 레비스트로스 기타 등등 얼마나 줄줄이 고구마 줄기로 엮이게 될지ㅎㅎ;;
겨울호랑이님의 유쾌한 하루 기원드립니다. 전 지금 크리스마스가 한창인 소설을 읽어 머릿속이 한밤에다 함박눈ㅋ 인간은 참 다차원 허구동물ㅎㅎ

겨울호랑이 2017-03-22 07:34   좋아요 1 | URL
ㅋ 이런.. 저도 그렇지 않아도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와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를 대기하고 있던 참인데 바로 언급하시니 딱 걸렸네요.ㅋㅋ Agalma님 푹 쉬시고 재충전하시기 바랍니다.

2017-03-22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2 18:54   좋아요 1 | URL
미래나 과거로 갈 필요도 없이 이 순간에 대한 만족이 중요한 거 아닌가 합니다.
비교와 경쟁과 갈망으로 우린 늘 이 자리를 지옥으로 만들죠. 나 뿐만이 아니라 타인까지도. 나를 살핀다면서 타인을 통한 비교잣대로 끝없이 괴롭히니 참....
모든 사람들이 천사가 될 필요도 없지만, 보통으로도 만족을 모르는 세상이니 이 부대낌 끝이 없네요^^;

cyrus 2017-03-22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총균쇠>를 읽지 않고, <사피엔스>를 읽었어요. 반대로 읽어보면 제가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한데, 두 권 모두 두꺼운 책이라서 도전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


AgalmA 2017-03-22 18:53   좋아요 0 | URL
cyrus님 도전의식 잘 아는데 뭘 그러세요ㅎㅎ~ 두툼한 책 자주 읽으시더만요~
올해 안에 전 <총균쇠> 꼭 읽을거임! 아직 반년 넘게 남았으니 호언장담ㅋ

북다이제스터 2017-03-22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넘 재미있지 않으셨나요?ㅎㅎ
꼭 <지대넓얕> 읽는 기분....^^

AgalmA 2017-03-22 19:28   좋아요 1 | URL
처음엔 역사서 답군 했는데 동물 문제에서 엄청 핏대를 올리셔서 채식주의자이시겠구나 했다가 점점 자기계발서로 가는 분위기ㅋ 막판엔 종말론적 sf 소설 같은 대미ㅋㅋ 이런 다양한 특징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역사서였어요^^ 역사 이야기야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던 내용이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살피는 인간미가 많이 느껴져서 좋더군요. 냉철한 합리성, 과학적 분석력 그런 것도 좋지만 역시 인간 독자를 끌어들이는 건 이런 매력 아닌가 한다는^^...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된 걸 테고. 지대넓얕도 그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ㅎ

북다이제스터 2017-03-22 19:27   좋아요 1 | URL
아, 그렇네요. 미처 생각 못했는데요.
인간 미 아니 사피엔스 미...ㅋㅋ
 
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학 역사에서 탐사 영역이 확장될 수 있었던 대표적 도구로 ‘망원경과 현미경‘을 꼽는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적 영역을 입자물리학이 다루면서부터 1970년대 이후에는 ‘초대형 입자가속기와 고성능 감지기, 거기서 나온 방대한 데이터(분류가 끝난 것은 ‘표준모형‘)‘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거 같다. 1970년대 이전 ‘안개상자‘, ‘거품상자‘ 등등의 중간 단계도 기억해 둘만 하다. 저자는 갈릴레오가 낙하 실험을 했던 피사의 사탑이 최초의 ˝천연 입자가속기˝라고 경의를 표했다. 갈릴레오의 낙하 실험은 거의 2000년 동안 물리학의 발전을 막아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법칙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예는 수학적 계산이 부족한 철학의 문제점이라고만 볼 수 없다. 자유낙하 문제뿐 아니라 모든 물리학에서 대천재였던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 상기해보라. 결국 우리 각자의 시대적 인식적 한계라 봐야 할 텐데 인류 역사에서 이러한 점은 역사를 좌우하는 큰 걸림돌이다.

탈레스(기원전 6세기)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다. 물이 기본 원소가 아니라 산소와 수소로 만들 수 있는 화합물이라는 사실은 화학자 라부아지에에 의해 18세기에서야 증명되었다.
인류 중에는 ‘씨앗 속의 씨앗‘을 궁금해하고 찾는 이들이 있다. 저자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최초의 입자물리학자는 데모크리토스였다. 저자는 ‘만물의 최소단위인 아토모스(원자)‘개념을 제안한 데모크리토스(BC 460~370)에서 출발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 중심부에는 원자핵이 있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1980년대 이후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분류는 쿼크 6개, 렙톤 6개로 구분된다. 여기에 중력을 제외한 세 종류의 힘을 매개하는 매개입자들도 같이 따라다닌다. 매개입자는 유식한 말로 ‘게이지 보손‘이라고 하는데 QED(양자전기역학)의 광자, 약력의 W+, W−, Z0(중성 흐름), 쿼크와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인 강력의 글루온을 칭한다. ˝광자는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후 1923년에 아서 콤프턴이 엑스선 산란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다. 중성 흐름은 1970년대 중반에 발견되었지만, W 입자와 Z 입자는 1983~1984년에 CERN의 LHC(스위스에 위치한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글루온은 1979년에 ‘공식적으로‘ 발견되었다. ˝
게다가 쿼크는 세 가지 색도 있고 모든 입자는 각각에 대응하는 반입자 파트너도 갖고 있다. 우리가 꿈꿔온 우아하고 단순한 원리와는 다르게 엄청 복잡해 보인다-_-;
원자가 분해되면서 ‘반지름이 0이고 크기가 없는데 질량을 가지며 전하를 띠면서 자전하는 해괴한 성질의 입자인 전자‘가 나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재밌었지만.

˝루이스 캐럴의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체셔캣(웃는 고양이)‘를 떠올려보자. 고양이는 웃는다. 그런데 몸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새 고양이는 온데간데없고 미소만 남는다. 이제 자전하는 전하 덩어리를 떠올려보자. 덩어리의 몸집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새 덩어리는 사라지고 스핀과 전하, 질량, 그리고 미소만 남는다......" 

 

물질 입자에 매개입자를 추가한 표준모형이 현재 물리학자들이 알아낸 ‘우주의 격렬하고 꾸준한 운동을 말해주는 비밀‘이다. 이 입자들이 발견되고 증명되는 과정의 어려움과 장구함이 이 책 전체를 통해 펼쳐지니 자세한 건 책 속에서 확인해 보시길. 이 책이 어쩌다 700 페이지가 된 게 아니다ㅎ. 2주간 열심히 읽어 왔는데 마무리에 다다르니 저자는 무너지는 소리를 한다. ‘꼭대기쿼크‘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매개변수가 너무 많으며, 중력이 누락되어 표준모형은 아직 미완성이라고 한다. 1993년 이 책 출간 후 1995년 ‘꼭대기 쿼크‘는 발견되었다. 중력에 양자이론을 적용한 양자중력 이론이 제대로 형성되었을 때, 원자보다 작았을 태초의 우주를 우리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이론으로는 수학 논리로 중무장된 이론물리학 ‘대통일이론‘, ‘구성모형‘, ‘테크니컬러‘, ‘초중력‘과 ‘초대칭‘, ‘초끈‘, ‘만물의 이론‘ 등이 있다. 많은 이론들이 실험물리학으로 검증되긴 요원해 보이는데, 이론물리학에 호의적이지 않은 실험물리학자 리언 레더먼이 저 이론대잔치를 질타하는 건 살짝 공감이 되긴 한다.

 


불완전한 표준모형에 새로운 타당성을 부여하는 스타로 ˝힉스장(또는 힉스 입자)˝이 등장했다. ˝질량이란 입자의 근본적인 속성이 아니라, 입자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교환하면서 획득한 후천적 성질˝이라는 힉스의 주장에 따르면, 힉스장은 모든 입자가 질량을 갖는 것과 우주의 ‘숨은 대칭‘, ‘자발적 대칭 붕괴‘를 설명할 수 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이 ‘신의 입자‘는 2013년 발견되었다. ˝맥스웰 시대의 물리학자들은 빛(전자기파)을 매개하는 매질이 우주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매질을 ˝에테르˝라고 불렀지만, 21세기 우리는 그것을 이제 ˝힉스 입자˝라고 부른다.

드디어 힉스 입자도 발견되었고, 뭔가 더 추가되고 발견되어 1000 페이지 짜리 물리학 역사 책이 또 나와도 이번 공부로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들도 뭔가 쓰고 있겠지.
이 책에서 저자는 에이허브 선장의 집념이 수백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묘사된 허만 멜빌《모비딕》의 내용과 결론이 실망스럽다고 했지만, ‘신의 입자‘를 쫓아 수백 페이지 달려오며 사람들에게 설명할 땐 적절한 비유와 데모크리토스가 등장하는 희곡 형식을 쓴 이 스토리텔링(과학 작가인 공동저자 딕 테레시의 역량으로 짐작)도 내겐 《모비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허만 멜빌이 전달하려 했던 것도 ‘신의 입자‘만큼 인간에겐 중요했던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관계를 ‘내부 공간과 외부공간의 연결‘이라 말했듯이 나도 문학과 과학의 관계가 인간에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판지로 만든 가면일 뿐이라네. 하지만 합리적이면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불합리한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실체를 드러내곤 하지. 그러니 무언가를 부수고 싶다면 가면을 부숴 버려야 하네!"
ㅡ에이허브 선장


 

저자가 《모비딕》에서 인용한 저 문장을 보면, 눈에 보이는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실체˝는 우주의 지금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암흑물질˝이나 엄청난 에너지를 보유한 ˝힉스입자˝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ps)
1. 힉스입자 발견에 대한 옮긴이의 후기는 있지만 저자의 직접 보론이 없는 관계로 이 책에 별 4개를 주려다가 《모비딕》에 별 5개를 주었기 때문에 공평하게 이 책에도 별 5개를 준다. 노벨상까지 받았음에도 ˝송로버섯을 찾자마자 주인(이론물리학자)에게 빼앗기는 돼지˝ 처지라 말하는 실험물리학자의 노고와,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숨어 있는 힘을 찾아 치열했던 노력에 내가 할 수 있는 감사의 인사로.

2. 대척점에서 서로 말하는 듯이 보이던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http://blog.aladin.co.kr/durepos/9203111 와 결론이 같아서 미소지었다.


 

˝이봐요, 내가 당신을 창조했어요. 당신은 내 생각의 산물입니다. 당신의 존재에 이유와 목적을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선사한 장본인은 바로 나였습니다! 나의 생각과 설명이 없었다면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무용지물로 남았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ㅡ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신의 입자》, p709

 

 

 

 

*‘먼지‘에 대한 페르미의 영감은 시적 직관에 가까워서 아름다웠다. 시가 아니라 수식으로 채워가는 장면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그렇듯이 페르미도 수학게임을 좋아했다. 한번은 그가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유리창에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제 하나를 떠올렸다. "저 먼지가 제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이 쌓일 수 있을까?" 동료들은 "밥 먹다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며 의아해했지만, 페르미는 아주 심각했다. 그는 자연의 기본상수에서 시작하여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절연물질을 서로 들러붙게 만드는 유전체의 인력 등을 고려하여 냅킨 위에 수식을 써 내려갔다.(답이 얼마로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맨하튼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 어느 날 로스알라모스(Los Alamos)에서 한 물리학자가 차를 몰다가 코요테를 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소식을 접한 페르미는 "자동차-코요테의 상호작용(접촉사고)은 일종의 충돌 사건이므로, 빈도수와 발생장소를 추적하면 사막에 거주하는 코요테의 개체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사실 몇 개의 사례로부터 전체 사건발생횟수를 추적하는 것은 입자물리학자들의 일상사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3-20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1 18:28   좋아요 2 | URL
과학 분야 중에서도 물리학은 어렵다고 소문났잖아요ㅎ; 고전물리학은 그나마 나은데 양자역학 나오면 더 ㅎㄷㄷ...ㅎㅎ 마지막 장에서 여기까지 같이 온 독자는 과학교양인 소리 들을 만 하다며 칭찬ㅋ
되도록 수학 공식은 피해서 설명해 주는데도 용어며, 개념 등이 생소하니 찬찬히 이해하며 따라가자니 읽어 나가는 시간이 더디긴 했습니다만 책 속에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못해도 반 이상은 이해하게 돼요^^ 양자이론 부분은 한 번 읽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지만^^;
그간 제가 여러번 이 책에 대해 페이퍼도 썼던 게 워낙 내용이 방대해서이기도 하지요ㅎ; 물리학의 중요 내용들, 발견들, 용어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리뷰 하나로는 어림 없을 거 같아 이 리뷰는 대략만 소개했어요^^ 관심 있다면 책을 직접 읽고 소화해야 할 거라 생각해서. 책을 오래 읽다보니 중간중간 인용하려고 했던 내용 상당수는 삼켰습니다ㅋㅎ;;
읽는 사람들이 어려워 할까봐 <모비딕> 같은 문학 요소나 에피소드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 이 글도 그리 쉽게 읽히진 않나 보네요^^;;
책을 쓴 저자는 더 어려웠겠죠ㅎ; 그래도 대중서로는 잘 쓴 책이긴 합니다. 과학전문 칼럼니스트이자 과학 작가인 딕 테레시와 같이 쓴 효과가 있었던 듯^^

겨울호랑이 2017-03-20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 어려운 여정 마치신 것을 축하드려요. 천체 물리학도 경제학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주(universe)을 다루는 ‘거시 물리학‘ 과 전자 단위의 세계를 다루는 ‘미시물리학‘으로 나뉘어 분석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이 둘 간의 관계가 어떻게 조화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micro-cosmos 세계를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7-03-20 19: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번 완독 축하는 정말 축하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ㅎ 서평 써야한다는 목적의식 때문에 초집중했던 터라 빨리 끝을 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ㅎ
뉴턴 때까지도 결정론적 세계관이었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확률해석을 계산에 넣지 못했죠.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들의 이론은 거시 세계의 물리를 설명하는데는 무리가 없으나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차원이 달라지죠. 질량도 거의 없는 것들이 움직이는 데다가 속도도 큰 의미가 없죠. 중력보다 전자기력과 약력과 강력 세 힘이 더 중요하고, 새로운 현상을 보게 만드는 건 고에너지 차원인데 거기서도 기존의 법칙들이 계속 무너집니다. 에너지불변 안 되고요ㅎ 대칭성불변 안 되고요ㅎ
그래서 중력과 양자역학이 서로 만나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양자중력이론이 중요해지는 것^^

겨울호랑이 2017-03-20 16:58   좋아요 1 | URL
^^: 거시 세계를 설명하는 법칙과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법칙의 변곡점(만일 연결되었다면) 또는 둘을 구분하는 단절점이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혹 저만 모르고 있나요? ㅋ

AgalmA 2017-03-20 17:16   좋아요 1 | URL
위의 제 댓글에 이미 나와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중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거시세계를 대부분 중력의 힘으로 설명해왔지만 미시세계는 아직까지 중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안 나왔고 전자기력, 약력, 강력 세 힘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확률적 세계죠. 또한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법칙들의 예외현상이 미시세계에는 대단히 많다는 것.
더 자세한 건 이 책 읽으시면 정리하실 수 있으실 듯^^ 이 책 여기저기에서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러게 서평단 신청하셨으면 좋았잖아요ㅎㅎ

겨울호랑이 2017-03-20 17:15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더 알아갑니다. 제가 출판사에서 요청하는 글은 잘 못 쓰는 편이라 참여 못했네요. 모르는 것은 「Agalma의 입자」의 저자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ㅋㅋ 감사합니다. 너무 고생하셨어요

AgalmA 2017-03-20 17:1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리뷰 정리 솜씨를 아는데 뭘 그러세요ㅎ 읽고 리뷰 쓰셨음 본인에게도 다른 분들께도 큰 이익이 되었을텐데!
입자는 고사하고 손바닥만한 입지라도 줄어들지 않게 저도 공부 열심히 해야겠어요ㅎㅎ
당분간은 흥미를 끄는 서평모집이 또 안 나오길 바랍니다; 이젠 미뤄뒀던 제 지극히 주관적인 관심분야 책을 좀 읽어야 할 듯ㅎㅎ;

cyrus 2017-03-20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신의 입자> 구판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구판과 최근에 나온 책을 비교하면서 읽어봤어요. 구판이 오래된 책이라서 외국어 표기가 어색했어요. 좋은 출판사, 좋은 번역자를 만났으면 <신의 입자>가 일찍 나왔을 겁니다.

AgalmA 2017-03-20 16:53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안 나왔을 리가 없는데 나오긴 나왔었군요^^ 이 책 보고 나니 힉스입자와 암흑물질 최신판을 이제 봐야 할 때 같습니다^^
 
강화도의 기억을 걷다 - 옛사람의 손길과 우리 발길의 만남
최보길 지음 / 살림터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화는 지세(地勢), 분위기, 곳곳에 퍼져 있는 유적들을 볼 때 경주와 매우 흡사하다. 강화에는 청동기시대부터 한국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와 유적도 많아 경주보다 한국 역사를 더 많이 보여주는 장소라 할 수 있다. 헌데 경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씁쓸한 점이 있었다. 너무 많기 때문일까. 방치되어 있는 유적들이 꽤 많다는 생각을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인 봉은사의 것으로 알려진 ‘하점면 5층 석탑(보물 10호)‘, 신라의 미소나 백제의 미소처럼 고려 혹은 강화의 미소를 보여준다고 할 ‘하점면 석조여래입상(보물 615호)‘이 시골 산속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이 책은 강화와 연결된 한국의 여러 역사와 문화,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어 유익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밑줄긋기로 소개한다/

고려산이라는 이름은 몽골의 침략으로 도읍을 강화로 옮긴 고려 정부가 강화도를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같도록 꾸미는 과정에서, 개성에 있었던 고려산과 같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련산은 장수왕 4년 천축조사(인도에서 온 고승)가 고려산 정상에서 날려 보낸 청, 백, 황, 적, 흑색의 오색 빛깔 연꽃이 내려앉은 곳마다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현재에도 흑색 연꽃이 떨어진 흑련사를 제외하고는 청련사, 백련사, 황련사, 적력사(적석사)는 부처님을 향한 수행과 기도의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청, 백, 황, 적, 흑 다섯 색깔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색으로 오방색이라고 합니다. 황색은 오행 가운데 흙으로 중심부의 색이고 오방색 중에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여겨집니다. 황제만이 황색 옷을 입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요. 청색은 나무에 해당하며 방위로는 동쪽을 의미하고, 창조, 생명, 그리고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 백색은 쇠에 해당하고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고, 적색은 불에 상응하고 남쪽과 정열과 열정을 상징합니다, 끝으로 흑색은 오행 가운데 물을 나타내며 북쪽과 인간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이렇듯 고구려 장수왕 때 인도의 고승을 통해 뿌려진 오방색의 소망은 그 떨어진 자리마다 지어진 절을 통해 세상으로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 다섯 색깔의 사찰 중 청련, 황련, 적련(적석), 백련사는 있지만 ‘인간의 지혜‘를 뜻하는 흑색 연꽃만이 피고 있지 않습니다.
ㅡ‘강화에 불교가 들어오다‘ 중

오늘날 우리는 무덤의 격을 능, 원, 묘, 총, 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능이라 함은 왕과 왕비, 원은 왕세자의 왕세자빈 또는 왕세손과 왕세손비, 묘는 왕위와 관계없는 왕족과 일반인의 무덤을 총칭하는 명칭입니다. 또 총은 그 규모로 보아 당시 권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그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 붙여진 이름이고, 분은 발굴이 되지 않아 무덤으로만 추정되는 무덤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얼마 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왕릉인 동구릉과 비교하면 강화의 고려왕릉은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왜 그럴까요?
.... 강화에 있는 고려왕릉의 초라함은 무신정권기 고려 왕의 권력과 비례하는 것입니다.

강화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한 국가의 미래를 위한 ‘모색‘이 아니라 어려움을 잠시 ‘모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강화천도‘는 고종이 아니라 최충헌에 이어 집권한 최우의 생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강화천도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 대몽항전을 위한 돌파구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것은 최씨 무신정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강화에 도착한 최우는 천도 이전 삶과 다를 바 없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으며, 단 한 번도 강화 밖으로 나아가 백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실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고려의 백성들은 강화도에 안전하게 피난 온 조정으로부터 "산과 섬으로 들어가라"라는 수동적 방어책만 들었을 뿐입니다.
ㅡ‘남한의 고려왕릉‘ 중

선원사는 최고 권력자인 최우가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지은 사찰입니다. 백성들을 육지에 남겨놓고 왕과 지배층만이 강화로 옮겨 온 사실과 당시 육지에서 전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백성들을 생각하면, 부처님의 힘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자 절을 지었다는 것이 감동적이지 않고 씁쓸한 웃음만 짓게 합니다.

선원사가 유명해진 것은 송광사와 더불어 고려 후기 2대 승보사철이었던 점도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보관했던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대장경이란 경, 율, 논 삼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경이란 부처님의 말씀이고, 율이란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한 규범을 말하고, 논이란 ‘경‘과 ‘율‘에 스님이 해석한 설명을 단 것입니다. 불교 경전을 인쇄본으로 처음 만든 것은 북송 때 제작한 북송관판대장경인데, 이는 여진족이 세운 금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현종(1011) 때 처음으로 대장경을 조판(초조대장경)하였고, 이후 내용을 더 보충해서 속장경을 만들었습니다. 속장경은 중국, 거란, 일본의 경전을 수집하고 조사해서 동아시아 불교의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했으나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이후 선원사에서 다시 대장경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없어진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을 다시 만들었다고 해서 재조대장경, 고려시대 완성된 대장경이기에 고려대장경, 그 판각본이 8만 1, 258매라는 데서 비롯되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불교에서 인간의 수많은 번뇌를 ‘팔만사천법문‘이라고 부르듯이 ‘팔만 혹은 팔만 사천‘이라는 숫자는 ‘많다‘라는 의미로 여기기도 합니다.

한편 팔만대장경의 제작 전통이 강화도에 고스란히 남아 ‘맹인들의 훈민정음‘이라 불리는 훈맹정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강화도의 부속 섬인 교동에 살았던 박두성이 만든 한글 점자체계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강화에서는 팔만대장경뿐만 아니라 <상정고금예문>도 인쇄되었다. <상정고금예문>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그 편찬 기록이 전해온다. <상정고금예문>은 예부터 고려시대까지 전해오는 예절에 관한 글들을 모아 정리해놓은 책이다.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ㅡ‘인쇄 문화가 꽃피다: 선원사와 팔만대장경 그리고 훈맹정음‘ 중

강화도에는 진강산, 대모산, 형구산, 덕산 등에 8개의 봉수대가 있었습니다. 그중 봉천산 위의 봉천대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제사를 지내는 제단의 기능을 하였습니다. 강화천도기에 개성이 내려다보이는 봉천대에서 행해진 국가 주도의 제사는 외세 침략에 대한 저항이자 민중을 버리고 강화로 천도한 지배층의 안녕을 꿈꾸는 제사였습니다. 강화에 단군과 연개소문 등 민족의 역사성과 자주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에 와서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통신수단인 봉수대로 그 쓰임이 바뀌었습니다.
ㅡ‘봉천산 주변의 고려 불교 유적: 강화의 얼굴 하점면 석조여래입상과 5층석탑 그리고 봉천대‘ 중

보통 조선시대의 형벌은 태, 장, 도, 유, 사의 다섯 가지로 구분합니다. 쉽게 풀어보면 태형은 10대에서 50대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작은 회초리로 때리는 것이고, 장형은 태형보다 무거워 큰 회초리로 60대에서 100대까지 때리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도형이나 유형에 더해지는 형벌이었습니다. 도형은 일종의 징역형으로 일정 기간(보통 1년에서 3년) 동안 관아에 구금하고 일과 시간 중에는 각종 노역에 종사하도록 하였습니다. 유형은 거주 지역을 강제로 옮기는 것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특정한 지역에 유리시켰는데, 사형을 면한 정치범에게 죄를 감면하여 부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형은 조선 시대 형벌 중 가장 무거운 형벌로서 일반적으로 교형과 참형으로 나뉩니다. 교형은 신체를 온전한 상태로 두고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며, 참형은 신체에서 머리를 잘라 죽이는 것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시신을 훼손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역모 등 정치범에게 많이 가해졌겠지요.
조선의 다섯 가지 형벌 가운데 교동과 연관성을 찾아본다면 당연 유형입니다. 교동이 여러 인물들의 유배지로 유명하기 때문이죠. 교동에 유배 온 인물들은 주로 왕족으로 왕위계승에 실패하거나, 반정으로 왕위를 내려놓은 왕족들이었습니다. 강화가 주로 유학의 주류에서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비주류가 된 이들의 고민이 심어져 있는 곳이라면, 교동은 왕족의 유배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비들이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귀양살이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훗날 있을지 모르는 반정에 대비하기 위해 가까우면서도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섬을 찾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이 밖에도 유배지로서 교동을 찾은 인물로는 고려의 희종이 있었고, 조선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로 계유정난에 의해 강화로 유배된 후 교동에서 죽은 안평대군 그리고 임해군과 광해군이 있습니다. 임해군은 광해군의 형으로 광해군에 의해 교동으로 유배를 오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임해군을 교동으로 유배 보낸 광해군 자신도 인조반정 후 이곳 교동으로 유배를 왔습니다. 이렇게 연결시켜보면 역사는 참 재미있습니다. 광해군의 동생뻘인 능창대군도 광해군에 의해 이곳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다른 광해군의 형제들이 죽은 공간은 교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연산군은 이곳 교동에 유배된 지 2달 만에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의 유래는 연산군 때로 올라간다. 연산군은 전국에 채홍사, 채청사를 파견하여 각지의 기생들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기생들 중 궁중에 들어간 기생을 흥청이라 불렀다. 연산군은 흥청이들과 놀면서 원각사를 폐지하고 기생 양성소로 만들었고, 성균관은 유생들을 쫓아내고 유흥장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임금이 흥청과 놀아나면서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에 빗대어 생긴 말이다. 오늘날 ‘흥청망청‘은 사전적 의미로 흥에 겨워 마음껏 즐기며 노는 것, 혹은 계획 없이 돈이나 재물을 마구 쓰는 것을 뜻한다.
ㅡ‘성리학의 전래와 성리학적 통치 질서: 교동향교와 연산군 유배지‘ 중

정제두 선생 묘에서 시작해 영재 이건창 선생의 묘소까지를 걷다 보면 역사 시간에 배운 용어가 떠오릅니다. 바로 ‘양명학‘입니다. ‘해가 지는 마을길‘은 초기 양명학(조선)에서부터 후기 양명학(대한제국)까지의 역사가 담긴 길입니다.

양명학은 남송시대 주희가 체계화한 성리학의 관념성 문제에 대응하여 새로운 유학의 한 갈래입니다. 명나라 철학자인 왕수인(호 양명)이 만들었습니다. 성리학은 고려 말에 전래되어 조선의 사상계를 지배하던 학문으로 사물이 지닌 특성을 인정하는 성학(性學)이었습니다. 성리학에서 자연과 사회는 도덕적 본성을 갖는 것이고, 이 안에 속한 사물의 개별성과 등급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리학은 조선 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작용하는 성리학적 명분론으로 자리 잡아 인간 세계의 위계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양명학은 사물이 지닌 특성보다 마음을 통한 자각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통한 자각은 세상을 움직이는 ‘지행합일‘과 ‘양지‘에 이르게 하는 마음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양명학은 ‘결과‘보다도 마음속의 ‘동기‘에 집중한 것입니다. 이미 마음속에 있는 이치가 ‘진리‘라고 생각했기에 진리의 완성은 실천과도 통한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앎‘을 주희는 불완전한 것으로, 왕양명은 완전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주희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함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반면 왕양명은 거짓된 앎을 걷어내기 위한 성찰을 중요시했습니다. 이와 같은 차이는 민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에 관한 ‘친민‘과 ‘신민‘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주희는 본래의 ‘친민‘을 ‘신민‘ 으로 달리 해석해서 민중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가르침은 유학에 익숙한 사대부의 역할로 생각했습니다. 사대부가 민중을 가르쳐야 하니 당연히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사대부의 특권을 인정했습니다. 반면 왕양명은 말 그대로 ‘친민‘에 집중했습니다.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수양하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좋은 앎‘ 곧 ‘양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깨달은 사람, 곧 사대부가 수양을 통해 ‘양지‘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백성과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명학을 수용한 강화학파의 생각이 지금 더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은 성리학의 한계를 넘어선 시각 때문입니다.

입신양명을 위한 유학이 아닌 진리를 찾기 위한 마음속 동기가 강화도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각으로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양명학은 조선 후기에 발생한 실학에도 영향을 주었지요. 물론 양명학파는 조선 사회의 비주류로 살았으나 이미 기득권을 가진 지배층이었습니다. 백성의 고단한 삶을 그토록 애닯게 여겨 많은 시로 풀어낸 이건창도 갑오농민운동에 대해서는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리학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어놓았다는 것과 ‘신민‘이 아닌 ‘친민‘으로 보고자 했음을 들어 강화학파를 조선의 진보 세력으로 보는 곳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습니다.
ㅡ‘성리학을 넘어 양명학으로: 강화학파(정제두 묘와 이건창 생가)‘ 중

중국에서 관우를 모시는 신앙은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했던 명군(明軍)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옵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 무성인 관우의 신앙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명나라는 그들의 신앙을 조선에도 강요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동묘(동관묘)가 세워집니다. 그런데 왜 관우 신앙을 조선에 강요 했을까요? 아마도 여진의 성장 속에 명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기 위함이고, 이를 위하여 명의 원병 참전을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정치적 이유도 있었던 겁니다. 명군이 물러가고 조선의 관우 신앙은 정치적 의미가 점점 사라지고 일상의 신앙으로 변화합니다. 조선의 관우 신앙은 잡귀를 물리치고, 사악한 기운을 극복하려는 성격을 띠게 되었죠.
강화도에는 관제묘가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강화 나들길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에서 한옥마을을 지나는 곳에 북관제묘와 동관제묘가 있습니다. 두 관제묘는 모두 조선 고종 때 세워졌는데, 동관제묘가 1885년(고종 22년), 1892년(고종 29년)에 세워진 북관제묘보다 조금 빠릅니다. 동관제묘는 마여인이 북관제묘는 강화산성 수문장 윤의보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관제묘 사당 내부는 일반적으로 관우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들인 관평과 심복 장수였던 주창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관우를 모신 사당답게 관우를 죽인 여몽의 성과 같은 "여(呂)씨가 들어오면 아무 이유 없이 죽는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오늘날 관우를 모시는 신앙은 원조 격인 중국과 역사적 연관성을 가진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신격화된 한국과 일본에 들어오는 역사적 배경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요코하마를 비롯해 주로 화교들이 밀집한 차이나타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을 떠나 외지 생활을 하는 화교들이게는 그들의 재산과 안녕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필요했던 까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남관왕묘가 먼저 세워졌으며, 명나라 장수의 부상에 따른 요양지에 세웠던 사당이 시초이다. 또한 동묘(1596)는 명나라 황제의 건립 요구에 따라 세워졌는데,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다. 현재 지히철 6호선 동묘역이 있다. 아울러 지방에도 세워졌는데 주로 명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에 있다.
ㅡ‘임진왜란이 남긴 관우 신앙:북관제묘‘ 중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왕의 강화도 입성 여부가 전쟁의 양상을 다르게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병자호란의 승패는 전투력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몽골과 후금의 전투력의 한계를 청이 수병과 홍이포로 보완하였던 것입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민중 봉기나 외세와의 전쟁 때 왕이 강화로 오지 않았습니다. 무기와 전술 등 전투력이 발전하여 강화는 더 이상 요새 기능을 못했지요. 운요호 가건,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에서 강화의 방어선이 뚫려서 외세의 상륙을 허용한 것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ㅡ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강화도:충렬사와 안동 김씨‘ 중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는 주전파와 주화파가 각각 자신의 대외정책을 놓고 논쟁을 벌였지요. 결국 최명길을 중심으로 한 주화파의 논리가 채택되어 청과의 강화가 송파(잠실)에서 체결되었지만, 주전파였던 김상헌의 동생 김상용은 강화성 남문에서 폭약을 장치하고 그대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주전의 논리를 강조한 주전파에게는 성리학적 명분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폭사한 김상용은 이후 불벌의 상황과 맞물려 당대의 충신으로 여겨졌습니다. 훗날 조선 정부에서는 김상용의 시신을 수습하여 그의 충절을 기리고자 했지만 자폭해서 여기저기로 흩어진 시신을 찾기란 어려웠고, 그의 신발이 발견된 곳에 충렬사를 세워 그의 정신을 기리게 했다고 합니다.
국어 시간에 서포 김만중이 유복자 곧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라고 배웠는데,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도 이때 김상용을 따라 자결했고, 현재 충렬사에 그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때문에 강화성 남문을 이야기할 때면 병자호란, 김상용, 김만중의 이야기가 부록으로 따라다니지요.

현재 강화도 면적의 3분의 1은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땅입니다. 강화의 간척사업은 고려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려가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으니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겠지요. 당시 강화로 건너온 사람들의 숫자가 30만이었다고 합니다. 원에 대항하는 시기였으므로 육지와의 물자 교류가 쉽지 않았겠죠. 이런 이유로 강화도에서 왕실과 지배층의 안전을 보장할 자립적 경제구조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쌀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를 확보해야 했지요. 주로 강화도 북쪽에 간척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려를 시작으로 조선 숙종 때까지 강화에는 간척을 위한 대공사가 이루어집니다.
선두포 축언시말비는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 민진원의 지휘아래 이루어진 간척사업의 내용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ㅡ‘조선의 건축과 간척:강화성과 선두포 축언시말비‘ 중

철종은 1863년 33살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죽었다. 그는 부인 철인왕후와 함께 경기도 고양시의 예릉에 묻혔다. 조선의 왕릉은 왕의 권력을 상징한다. 당연히 규모와 예법에 맞게 장례를 치르고 왕릉이 조성된다. 예릉은 황제의 격에 따라 조성된 고동(홍릉), 순종(유릉)과 비교해서 조선의 왕릉 형식으로 조성된 마지막 왕릉이다. 따라서 판위, 금천교, 석계, 비각, 각종 석상 등 왕릉으로서의 격을 잘 갖추고 있다. 석상들만 보아도 규모 면에서 웅장함을 보이고 있다. 재위 기간 동안 세도가문의 위세에 밀렸던 철종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의외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예릉이 조성되기 전 이곳 주변에는 중종비인 장경왕후의 희릉과 인종과 인종비 인성왕후의 효릉이 있었고, 또 중종의 왕릉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종의 왕릉인 정릉은 서울로 옮기고 그때 사용하던 석상들은 한 번 사용한 석상들은 다시 쓰지 않는다는 예법에 따라 그 자리에 모두 묻어버렸다. 철종이 죽고 왕릉을 조성하던 때는 알려진 바와 같이 세도정치가 한창이었다. 몇몇 가문의 권력과 부는 크게 성장했지만 왕실의 재산인 내탕금은 비어 있어 철종 왕릉을 조성하는 게 어려웠다. 이때 중종 왕릉에 쓰던 석상들이 땅속에서 발견되자 왕실에서는 그것을 다시 쓰도록 하였다. 지금 보이는 예릉의 석상은 정릉(중종릉)이 옮겨가기 전 사용하던 석상들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한 철종의 아픔이 느껴진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예릉, 희릉, 효릉을 통틀어 서삼릉이라 부른다. 최근에는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데,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조선의 왕릉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서삼릉 주변에는 농협대학이 운영하는 젖소연구소와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경주마 목장, 경마교육원이 들어서 있다. 주변에는 골프장도 여러 곳 있다. 원래 서삼릉의 영역이었으나 어느새 말과 소에게 넘어간 것이다. 말과 소가 함께 있는 왕릉이라니 조선의 장례법을 생각하면 왠지 어색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를 억압하려 했던 총독부의 음모인가 생각했더니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의 일이라 한다
ㅡ‘세도정치와 강화도령 철종:용흥궁과 철종 외가‘ 중

운요호는 일본 규슈 섬의 나가사키에서 출항했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 역사에서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문화 교류의 허브 역할을 해왔지요. 지금도 나가사키에는 데지마라는 작은 인공섬이 있는데, 일본이 쇄국정책을 취할 때 이곳을 통해 네덜란드와 중국과의 교류만은 허용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난학(네덜란드로부터 받아들인 서양 문물)이 모두 이곳을 통해 전래되었습니다. 나가사키와 인천 그리고 데지마와 강화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서양과 만나는 곳이 되었다는 점, 크리스트교의 포교지이자 순교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사의 측면에서 나가사키와 강화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은 분명 나가사키를 출발해 강화에 도착한 운요호일 것입니다. 여기에 일본이 시작한 침략사건이 끝날 무렵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생각하면, 조선 침략의 첫발과 마지막 발걸음이 나가사키에서 비롯되었지요. 강화와 나가사키는 그렇게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ㅡ‘염하를 따라 걷는 외세 침략과 저항의 역사: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연미정‘ 중

강화도에서 실제로 경험한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은 조선의 해군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근대식 군사력 확충과 특히 해군력에 대한 관심은 강화도에 해군통제영학당을 설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조선 정부는 청으로부터 1,000원의 차관을 받아 통제영학당을 설치함으로써 최초의 근대식 해군 장교 양성의 첫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1893년 10월에 개교한 통제영학당은 이듬해인 1894년 11월 폐교되었습니다. 통제영학당 폐교의 원인은 대외적으로는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의 영향이 컸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을 제치고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했지요.
ㅡ‘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통제영학당지‘ 중

강화에는 다양한 종교 관련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381년에 세워진 전등사와 팔만대장경에 관련된 선원사지 등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개신교 중 감리교 초기 선교에 얽힌 사연 때문에 ‘어머니 교회‘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교산교회, 그리고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단군성지인 참성단과 이를 중심에 두었던 대종교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병인양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순교를 통해 다시 신앙의 불씨를 살려낸 천주교의 갑곶성지, 조선의 해군력 강화 방안으로 설치된 통제영학당의 교관이었던 영국인과 관련된 성공회 이야기도 강화가 다양한 종교의 성지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성공회의 강화 포교와 확산에는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이나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에 비해서 영국에 대한 강화 사람들의 반감이 적었다는 점과 앞서 말한 통제영학당에 파견된 교관들이 영국인이었고 그들의 종교가 성공회였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ㅡ‘서양 종교가 강화에 들어오다: 1. 성공회 강화읍 성당과 온수리 성당‘ 중

강화의 3.1 운동은 서울에 간 유학생들의 신속한 정보 전달과 강화 감리교의 조직망이 연결되어 일어났습니다.
강화읍의 만세 시위는 각 면단위 장터를 중심으로 퍼져 한달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도시가 아닌 강화라는 시골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만세 시위가 일어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강화가 서울과 가까워 3.1만세운동 소식이 신속하게 전해졌고, 두 번째는 정기적으로 시장이 열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등 외세, 특히 일제에 대한 역사 경험으로 저항의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고, 네 번째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화에 강화의 운동을 진압하러 출동한 일본한 일본군은 다음 날에서야 강화에 들어왔습니다.
ㅡ‘식민지배에 저항하다: 강화 3.1운동 기념비‘ 중

강화에는 근대 서양 종교의 포교 과정을 알 수 있는 성공회 강화읍 성당과 온수리 성당, 감리교 교산교회와 서도 중앙교회, 근대 산업의 발달 과정을 배울 수 있는 조양방직 공장과 사무동(1930년대 만들어진 국내 최초 방직공장) , 1960년대 이후 종교계(가톨릭)의 사회 참여와 노동운동 역사가 담긴 심도직물 공장터와 함께 심도직물 상징탑(굴뚝)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 외에도 1890년대 간장 공장으로 세워진 이후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으로 거듭나 항아리를 이용해 발효하던 전통 방식의 막걸리 제조 과정을 알려주는 강화양조장 등이 있지요. 최근에는 인천시와 강화군이 이러한 근대건축문화유산을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보존할 계획을 수립했지만, 강화양조장의 경우 소유자가 화재 위협을 이유로 철거해버림으로써 전통적인 막걸리 주조 시설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공공 기관의 보존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강화의 근대 문화유산 답사를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ㅡ‘강화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서:1928년 주택, 조양방직 공장과 사무동, 심도직물‘ 중

전망대로 들어가기 전 망향단에는 <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흐릅니다.....<그리운 금강산>은 왜 강화에서 구슬프게 울리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곳에 노래비가 있는 까닭은 작사가 한상옥 님과 작곡가 최영섭 님의 고향이 강화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북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부르는 가사는 원래 가사가 아닙니다. 이 노래는 1961년에 작사 작곡되었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가사는 1972년에 변경된 가사입니다.......‘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던 해입니다. - 물론 7.4 남북 공동성명이 남과 북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급조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통일의 원칙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같은 해에 공동성명의 후속 조치로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평양에 간 남측 예술단이 공연 때 부르기로 한 노래였습니다. 원래의 가사로 부르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수정하여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ㅡ‘분단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 중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3-16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0 11:12   좋아요 1 | URL
책만 읽다 온 기분입니다-_-; 낮에 잠깐 움직이고 밤에서 해뜰 때까지는 내내 책 보고ㅎ
그래도 타지에 가니 좋긴 좋더만요. 날 풀리면 더 움직여 봐야죠.

바쁘시더라도 님도 많이 움직이시길^^

2017-03-20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0 19:23   좋아요 1 | URL
아니요. 일 거부하고 놀러갔다가 책만 읽고 온 거ㅎㅎ
강화 나들이는 정말 쬐끔 밖에 못하고 책으로 더 많이 봄ㅋㅋ

2017-03-2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7-03-16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색이 아니라 모면이라는 의미가 강화의 역사인 문구가 눈에 띄네요....

AgalmA 2017-03-20 11:14   좋아요 1 | URL
한국사는 보고 있음 속상하고 화나서 좀 피한 감도 있는데, 이렇게 재밌고 유용한 책을 통하니 배우는 게 많더군요. 한국 근현대사 공부 좀 많이 해야겠다 싶더군요.

겨울호랑이 2017-03-16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조선 참성단 때부터 개화기 운양호 사건까지 강화도는 우리 나라 역사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섬인 것 같습니다... 역사적 의미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단된 현실 때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AgalmA 2017-03-20 11:18   좋아요 1 | URL
지역주의 문제도 있지 않나 싶어요. 관광권으로 개발할 게 많은 거 같은데 강화가 그리 낙후되어 있는 걸 보면...
문제가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죠...
이번주 <그것이 알고 싶다> 아이들 실습 상황 보고 정말 화가 너무 나더군요. 노동 문제가 정말 썩을대로 썩은 한국 어찌 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