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인본주의 1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김희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초반부에서 토마스는 ‘테레사와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를 고민한다. 12세기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했다면 20세기 토마스는 같이 사느냐 혼자 사느냐 문제로 씨름 중이다. 그는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 하는지 아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인생이란 완성작일 수 없고 무용한 초벌 그림이라고 한탄한다. 독일 속담을 떠올리며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고,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도 말한다.

내가 이 대목을 떠올린 것은 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에서 ˝단 하나의 유일한 대상만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같다˝, ˝완전히 홀로 남은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유사한 인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테레사가 대상으로 나타남으로 인해 테레사가 있는 삶, 혼자 사는 삶, 이 두 가지를 비교하는 사유라는 세 개의 의미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번 생을 처음 그리는 초심자 토마스는 소설 속에서 무수한 대상(여성), 의미장을 찾아다녔고 겪었다. 마치 한 번만 사는 허무를 그렇게라도 만회하려는 사람처럼. 우리도 공감하다시피 대개 인간이 이렇다.
(*의미장: 어떤 것, 특정한 대상이 특정한 양식으로 나타나는 영역)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마스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저 생각은 한 번 뿐인 세계, 통합할 수 없는 세계, <하나의 전체로서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지방 자치, 예술사, 물리학, 거실 등의 무수한 대상영역**들이 의미장 속에 무한히 맞물려 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동시에 다루지 못하는 혼란 속에서 전전긍긍한다.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는 사실 너무 의미가 많아 방향을 잃은 상태와 같다. 우리는 이런 복잡함을 단순화하고 싶어 했고, 이는 현대의 과학적 사고와도 맥이 닿는다.
(**대상영역: 특정한 종류의 대상들을 포함하는 영역. 이 안에서 대상들은 서로 이어주는 공통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자연과학(물리학 기타 등등)도 대상영역 중 하나일 뿐이라 논박했다. 마침 같이 읽고 있는 《신의 입자》도 대단히 공격하고 있다. 뜻밖에 '신의 입자' 대항마를 만나다^ㄷ^);; 궁극의 입자를 발견하더라도 지금의 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발견은 아쉽게도 협소한 결과 발표라 하겠다. 다음 표현을 보자.

˝퍼트넘이 크립키의 논증에 덧붙였듯, 나는 나의 입자와 동일한 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했어야 한다. 물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주에 입자가 분산되어 있을지라도!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입자는 내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다른 구성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우리는 우리 몸과 같은 게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몸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크립키와 퍼트넘의 논증은 다만 우리가 입자와 논리적으로 동일한 게 아니며, 바로 그래서 존재론적으로 우주로 환원할 수 없는 수많은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한마디로 물질적 일원론은 틀렸다. 무수히 많은 대상(예를 들어 인문로서의 우리)이 존재하며, 이 대상을 우리는 엄밀하게 지시할 수 있고, 그 논리적 동일성은 물질적인 성분과 철저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 틀린 것이다. ˝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그간의 철학, 자연과학 둘 다 전체를 굽어볼 전망이 불가능하다는 걸 간과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절대이념(헤겔)은 그 자체 안에서 나타날 수 없다. 절대이념이나 세계가 존재하려면 그 상위의 포괄이 있어야 한다. 이는 ‘무한 퇴행‘이나 ‘프랙털‘(자기 자신의 무수한 많은 복제로 이루어지는 기하학 형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나타날 의미장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속성이든 모두 가지고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에 맞게 해석한 세계만 알 뿐이다. 지금까지 모든 세계관은 틀렸다. ˝모든 세계관은 있지도 않은 것의 그림˝이었다. 저 위 토마스의 세계관에도 이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세계관이란 본질적으로 세계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에 가둔 세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존재자 전체를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인간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처럼 강요하는 게 곧 세계관이다. ˝
하이데거 <세계관의 시대> 논문에서


하이데거의 저 표현도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가둔 어긋난 것이라고 말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논점은 이것이다. 그간 우리는 삶을 환상이나 물질 다발 취급하는 오류에 숱하게 빠져 왔지만 물질 대상과 똑같이 사실들-논리 법칙이나 인간의 지식-도 존재하며,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의미장 안에 나타난다는 ˝의미장 존재론˝(새로운 리얼리즘 접근법)이다.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가  하나의 대상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 동일시하며 따르는 '물신숭배' 성격으로 서로 경쟁을 벌인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이에 대해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의견을 <그 아래에 두며> 일종의 소속감을 느낄 <주체>를 찾는다는" 크 라캉의 분석은 아주 예리하다. 물론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종교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나아간 의미탐색'이라는 긍정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논증에서 비약의 느낌도 받았지만 하이데거 <숲속의 빈터> 개념처럼 우리 인식의 특성이라 생각하며, (능력 부족한 나 대신) 많은 분야들의 논리 허점, 선입견을 깨는 도전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인물이나 정치 문제 혹은 예술 작품의 이해는 생물학이나 수학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완전히 자의적이거나 단순한 취향 문제도 아니다. 과학적 세계관은 우주, 곧 자연 과학의 대상 영역이라는 특권적인 사실 구조만 중시함으로써 인간 실존의 의미는 건너뛰어 버리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우주에는 실제로 의미 문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것은 전혀 다르다.

과학적 세계관은 합리성의 왜곡된 인식에 기초한다. 과학적 세계관은 이해를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에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거나 폐기하는 방법만 인정한다. 이런 종류의 방법은 분명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다. 우주라는 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가설과 검증이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간과 의미의 이해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정신 혹은 의미를 해석하며 접근하는 가운데, 이를테면 소통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방법을 쓰면서 의미의 이해에 다가갈 뿐이다. 정확히 이 점을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이자 유명한 해석학자인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상기시켰다.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언어다.> 숱하게 인용된 이 문장은 가다머의 대표작 『진리와 방법』에 수록된 것으로, 예술 작품 해석과 인간 세계의 이해는 우리의 자연 이해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진리 탐구가 가설과 검증이 없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게 자의적이라거나 완전히 제멋대로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인간을 일반화라는 방법을 써서 이해하지 않는다. 어떻게 인간을 이해하는가는 우리 인성의 표현이며, 우리 인성은 먹고 자고 짝짓기 하는 습관을 모두 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인성은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 작품이다. 바로 그래서 현대 회화와 연극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의 화가이자 배우라는 암시를 담아내 왔다. 인간은 살아 있는 창의성이다. 창의성과 상상력과 독창성은 인성의 특징이다. 자연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인성을 무시하는 학문은 성립할 수 없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며 가장 독창적인 학자 중 한 명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언젠가 이런 글을 썼다.

"시대정신은 자연과학의 그 어떤 사실과 마찬가지로 객관적 사실일 것이다. 이 정신은 시간과 무관하며, 이런 의미에서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세계의 특징을 드러낸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이 특징을 이해하도록 만들려 시도한다. 이 시도로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 양식을 빚어낸다.
창작 과정과 표현 양식의 형성 과정은 과학과 예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게 아니다. 과학과 예술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의 언어를 빚어낸다. 이 언어로 우리는 현실의 서로 멀리 떨어진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이런 상이한 부분들을 서로 맺어주며 맥락을 만들어 내는 개념 체계는 서로 다른 예술 양식과 마찬가지로 이 언어의 다른 단어들 혹은 단어군일 따름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03-12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께서 아침에 올려주신 글에 대한 리뷰를 쓴 후 이 글을 읽으니, 논점이 더 명료해지네요. 답글을 달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제 한계군요.ㅋ Aglama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절대이념(헤겔)은 그 자체 안에서 나타날 수 없다. 절대이념이나 세계가 존재하려면 그 상위의 포괄이 있어야 한다. ‘는 글을 읽으니 유클리드의 <기하>의 증명과정이 생각나네요. 5가지 기본 공리에서 출발한 그의 증명과정에서 연장선을 긋으면서 닮음, 비례를 활용하는 증명과정이 나옵니다. 이러한 과정은 아마도 그 자체 내에서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일종의 ‘확장‘을 통해 비유로써 표현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기독교의 신(神)의 대표적 속성 ‘전지-전능(全知-全能)‘ 자체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완전성‘과 상충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안다면(전지) 굳이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미 될 것과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실체(그것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다른 어떤 사물도 필요하지 않는 상태에서 실존할 수 있는 그런 사물=신)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의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던져봅니다.^^:
Agalma님께서 읽으신 책과 제가 읽은 책 내용 중 함께 생각할 부분이 정말 많았군요.^^: 재밌습니다.

AgalmA 2017-03-12 09:1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이 책 재밌게 읽으실 듯^^
기하학도 이 책에서 여기저기서 다루고 있어요. 특히 칸트부터 포스트모던까지 이어지는 구성주의 까는 게 참 재밌어요ㅋ ‘희다/검다‘ 양쪽을 다 아우르는 ˝대각선언어˝ ‘희검다‘ 설명도 재밌었죠^^ 참인 명제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지만 부적절해보이는 ‘희검다‘는 어쩔래! ㅎ
데카르트는 이원론에서 벌써 실컷 까였어요ㅎ; 사유 실체와 물질인 연장실체로 나눈 근거가 뭔가? 두 개의 실체를 전제한다면, 두 개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왜 스물두 개가 아니고 두 개인가?....
이 책에서 안 까이는 사람들이 없음ㅋㅋ
그래서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칭찬하는 사람들 책 찾아볼라고요ㅋ 얼마나 뛰어나면 이런 사람에게 칭찬을 듣나! ㅎㅎ

겨울호랑이 2017-03-12 08:39   좋아요 1 | URL
Agalma님 추천 도서로 담아 놓겠습니다^^:. 보아하니 이 책에서 비판받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할 것 같네요..ㅋ 깊이있는 독서를 만들어 주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Agalma님 덕분에 즐거운 생각 얻고 갑니다^^:

호빵 2017-03-13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유클리드의 기하인가요? 첫 공리인가에서 계속 뻗어가는 것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비슷하게 접목되는 건가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빨책으로만 들은 저로선 읽을 책 목록에 몇개가 함께 올라가네요 ^^
 

유시민 작가의 중요한 지적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잘못만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잘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포함된 것‘

그 말은 지금 내게도 사무치게 다가왔다. 나도 앞으로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을 할 것이다. 타인과 나, 모두를 위한 적절한 대응, 적절한 반성 그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박근혜 씨는 오늘 바로 청와대를 나가지 않았다. 증거 인멸 등이 의심되는 자신을 위한 적절한 대응이긴 하겠으나 적절한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여 주지 않았다. 타인을 배제하는 몰염치는 늘 박근혜 씨의 특징이었다. 염치 종결자! 개인적 불행으로 인한 성격 형성인 걸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나. 정치의 의미를 오로지 권력 쟁취로만 본 사람. 이 한 사람, 이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볼 때 인간에 대해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볼 수 있는지...

오늘 박사모 모임의 탄핵 인용 반대 집회 속에 2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고 안타까웠다. 박근혜 씨로 인해 허무하게 끝까지 죽어나가는 사람들.... 정말 이렇게까지 가야 할 만한 사람인가, 당신이.



즐거운 축제 장일 거라 생각한 내일 토요일, 박근혜는 청와대를 당장 나가라! 촛불집회로 또 나가야 하는 일이 있을 줄은 몰랐네. 왠지 계속 가야 할 거란 예상은 했지만 이유가 이런 것일 줄이야; 어휴....



유시민 작가 헌법 대변도 재밌었음ㅎ


대선 전 개헌 논의에 대해서...

‘ 대통령 개인의 잘못이었지 헌법이 문제가 있어서 이 사태가 일어났습니까? 내가 헌법이라면 주먹 쥐고 억울하다고 나올 거 같습니다.‘


ㅋㅋㅋ 상대 진영을 난감하고 딱하게 바라보는 박주민 의원과 유시민 작가 표정도 정말 ㅋㅜ)
분노하고 웃고, 이게 정치지 삶이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다이제스터 2017-03-10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헌재 판결이 개인에 대한 논의뿐이라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새월호에 대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무혐의를 준 듯 한 판결에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AgalmA 2017-03-10 22:41   좋아요 0 | URL
네, 박주민 의원이 강하게 지적한 문제점이었죠.

yureka01 2017-03-11 0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형사적인 문제는 끝까지 파헤쳐야죠..

AgalmA 2017-03-11 05:16   좋아요 2 | URL
온국민이 들고 일어나야 이 정도 바뀌니 그것도 참 어찌 될 지...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이 무한 고통ㅎ;
 

 

의자는 하나의 물음표 같다. 거기 앉을 때 나는 쉼표가 된다.


1일 1그림을 그릴 때마다 이 좋은 걸 나는 왜 꾸준히 하지 않았는가 자책한다. 물론 그림이 맘에 들었을 때나 하는 여유로운 소리다.
한국 전통문양들은 아름다운 게 꽤 많다. 루브르 박물관 그림들보다 왜 많이 알려지지 않는지에 대해 생활 깊숙이 스며든 사대주의라고 해야 하나요. 시스템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요... 오늘 그림에는 모란문과 국화문을 응용해 봤다.
어쨌든 오늘 그림은 다 그리고 보니 내일 박 길라임 씨가 원하는 컨셉 아닐까 싶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03-10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10 00:08   좋아요 1 | URL
자유방임으로 놔두면 너무 나태해져서 약간의 강제가 필요한 거 같더라고요. 특히나 저 같이 게으른 사람에겐ㅎ;

서니데이 2017-03-10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프린트가 다양한 타일이 많아요. 집의 현관에 시공된 것 보면 예쁘더라구요.^^

AgalmA 2017-03-10 00:40   좋아요 2 | URL
사진은 서울 시내 커피집 바닥인데 벽면엔 자개농 문짝으로 벽 전체를 장식해 놓았죠^^ 벽 자체가 액자인 듯이~ 예전 생각나 문 열고 싶어지기도 하고요ㅎㅎ
모던한 것도 좋지만 크로스오버 잘된 장식도 멋지죠^^

단발머리 2017-03-10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하.... 첫번재 사진은 커피집 바닥이군요. 저도 근사하다 생각중이었어요.

아래 그림은 오늘 중요한 결정을 맞게 될 박 길라임씨에게 정말 잘 어울리네요.
Agalma님의 1일 1그림의 주인공이 되다니, 박 길라임씨 영광인줄 알아야 할 텐데요,
오늘 날이 날인지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

AgalmA 2017-03-10 12:22   좋아요 1 | URL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라 저 바닥 타일은 예전 것입니다. 멋스러움이 절로 묻어나는 시간을 거쳐서 더 그렇겠지만 요즘의 치밀한 디자인보다 이상하게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왤까 늘 생각하게 됩니다.
탄핵 인용! 우리 모두 고생 많았어요ㅜㅜ!!

겨울호랑이 2017-03-10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의 ‘모란‘과 ‘국화‘의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 제가 못 찾는 듯 합니다..^^: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께서는 무슨 꽃이 주어진 것인가요?

AgalmA 2017-03-10 12:52   좋아요 1 | URL
다 그리고 박 길라임 씨 생각을 한 거지 그리기 전에 박 길라임 씨를 생각한 건 아녔어요^^;
하지만 모이게 된 것들을 해석하는 재미 차원에서 보자면...
모란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향기가 없죠. 그래서 그 꽃말로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 상황에선 ‘부귀 영화‘가 가장 어울리는 듯ㅎ
국화의 꽃말은 ‘청순, 고결, 평화, 정조‘가 있습니다.
두 꽃 다 ‘성실‘이 포함되는데, 어떻게 성실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죠. 나쁘게만 성실했던 박 길라임 씨의 최후에도 어울리는 듯ㅎ; 우리는 평화를 얻고ㅎ;

겨울호랑이 2017-03-10 15:17   좋아요 1 | URL
^^: 그럼 Agalma 님의 작품은˝ ‘탄핵심판‘은 앞으로 청순하고 고결하게 성실하게 살라는 국민의 선물˝이라는 의미가 되겠네요..ㅋ

AgalmA 2017-03-10 13:15   좋아요 1 | URL
음...일단 감옥에서 성실히 좀 사시고 나머지 생은 알아서 성실히.....ㅎ;;

2017-03-10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0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0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방사능을 측정하는 장비로는 버펄로보다 가이거계수기가 훨씬 정확하다˝
(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신의 입자》)

《컨택트》 영화에서 헵타포드 우주선에 갈 때 방사능을 두려워해 카나리아를 가지고 간 장면은 하나의 미장센이기도 하지만(고요 속 새 울음소리!) 아날로그성, 생물성을 더 우위에 두는 인간 습성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도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의심과도 연결할 수 있다. 수학, 물리학 등에 사람들이 어려움 내지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도 유사할 텐데, 보통 사람들은 이해가 어려운 계산적 수치보다 기존의 양상 - 경험, 물질적 결과를 더 선호한다. 신뢰가 선호에 끌려다니는 건 늘 안타까운 일이지. 기계의 오류, 한계를 늘 지적해왔지만 알파고 능력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기 시작했다. 급속히 데이터화 되어가는 현실에서 디지털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어도 인간은 언제나 마지노선을 가지고 싶어 하지. 마지막 마지노선이 늘 자신이라는 걸 잊고서. 안 보이는 신을 믿듯이. 신의 유무에 대한 인식은 과학자들이 끝없이 원자를 깨고 들어가듯 우리가 철저히 자신을 깰 때 가능할 것이다. 니체는 19세기 식으로 깨려 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식은 다윈?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적어도 인문학자는 아닌 거 같다. 21세기 방식은 누구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궁금하다.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 키가 198센티미터였다니... 왜 그림들은 그를 왜소하게 그렸단 생각이 들지. 워싱턴 링컨 기념관의 링컨 동상이 거대해 보여도 198센티미터면 업적이 아니어도 수긍할 만하다!

《신의 입자》 읽으면서 나는 이런저런 딴 생각 순환선... 갈 길이 멀군.
하지만 전자기학(전자)과 상대성이론(빛의 속도), 양자역학(플랑크상수)의 핵심이 담겨 있다는 ‘미세구조상수‘ 137 하나는 잊지 않게 배웠다. 저자는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곤경에 빠졌을 때 137이라고 쓴 푯말을 들고 있으면 물리학자나 물리학 학생들이 이 중요한 숫자를 알아보고 도와줄 거라고 말한다.
너무 오지에 가면 소용없을 텐데. 언어도 안 통하는데 숫자 표기를 알아볼까 싶지만; 137이 666처럼 악마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생각하는 원시 부족을 만나면 어뜩해! 헤이조그 영화 《피츠카랄도》 생각나네. 피츠카랄도의 하얀 증기선을 부족의 구원자로 예언된 하얀 신의 모습이라 생각해 부족이 배가 밀림을 통과하도록 온갖 희생을 감수했던 이야기가. 믿음, 인간의 심리 작용은 우릴 너무 쉽게 움직인다. 그러니 자유의지도 늘 의심스럽지. 배움, 앎 또한 인간의 집단 최면 작용이라면? 인간 종은 세상에 불가해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비주의자들 같다. 암튼 또 신 얘기. 무슨 얘기만 하면 신 얘기로 도돌이표...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에서 damn을 빼면 쉽게 신의 입자(God Particle)가 되지만, 신 얘기는 신나는 얘기는 아니지. 어쩌면 질소만 가득한 과자봉지 같을 수도 있다는.... 이 과자가 네 고..아니 과자냐. 산신령을 등장시키지만 산신령을 갖거나 되고자 하는 건 아니고 내가 과연 도끼를 얻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그런 이야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벤투의스케치북 2017-03-10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념이 자연스럽고 성찰적이시네요.,, 제 리뷰의 무미건조함을 반성하게 하는 글입니다. 다시 한번 읽고 새 리뷰를 쓰고 싶어지네요...자연스러운 연결, 참 좋습니다...^^

AgalmA 2017-03-10 01:15   좋아요 1 | URL
서로 쓰는 성향이 다른 것이지 벤투님이 반성까지 하실 정도의 글은 아닌데요;; 페이퍼식 글쓰기는 벤투님이 더 많이 잘 쓰시잖습니까~
분명 허점 많겠지만 이런 식으로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게 습관이라...

겨울호랑이 2017-03-10 0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순간 신(神)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깊이 들어가도 신을 발견할 수 없고, 멀리 바라봐도 신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러다가 틸틸(치르치르)와 미틸(미치르)의 ‘파랑새‘처럼 주변에서 발견하거나, ‘미운 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AgalmA 2017-03-12 19:49   좋아요 1 | URL
서양철학에서 이오니아 학파(그리스 자연철학자들)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진보적이고 혜안이 밝았는데도 묻혔죠. 그들의 직접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가장 문제적이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들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지만 자기식으로 해석하는 변형이 또 있었죠. 저자는 <신의 입자> 2장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이 ‘원인‘ 분석적 사유자였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목적‘적 사유에 치우쳐 신을 상정할 수 밖에 없는 철학틀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리스 철학자도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도 원인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게 3000년 넘게 지속되었고요. 중세 때는 퇴보하기도 하면서.
현재도 끝없이 쪼개고 들어가는 과정 중이죠. 과거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원소라 통칭하던 걸 ‘쿼크와 렙톤‘까지로 발견한 상태이지만 어찌 될 지 또 모르죠. 천동설과 지동설 경우처럼 오늘의 탄핵 인용처럼 새로운 관점이 나오면 우린 또 새로운 배치를 시작할테니... 아, 이러다 댓글로 리뷰쓰는 식이 될 거 같아 여기서 마무리할께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댓글 늘 감사드립니다^^/ 박 길라임 탄핵도 되고 오늘은 좋은 날~

겨울호랑이 2017-03-10 12:26   좋아요 1 | URL
과학의 발전이 과거의 ‘추상적 사유‘를 보다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과학의 발전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추월하지는 못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빛‘보다 빠를 수는 없는 것처럼요.ㅋ Agalma님 글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생각의 속도‘와 ‘빛의 속도‘ 중 어느 것이 더 빠를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아직 읽지 않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포인트로 저장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독서 포인트 제공에 감사합니다.^^: Agalma님 행복한 금요일 오후 되세요!

AgalmA 2017-03-10 12:42   좋아요 1 | URL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니 사유의 틀에 갇히면 오도가도 못하는 거죠ㅎ;;
기술에 대해선...지금까지는 효용적인 것으로 많이 운용되었다면 현재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그럴 테고요. 핵 경우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스스로 불러들인 격이잖아요ㅎ; 멀리 보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 인간의 문제. 쯧쯧....

신의 입자 읽으면서 쿼크와 렙톤이 서로 뭉치고 흩어지면 무엇이든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걸 생각할 때 인간의 사유 속도는 당연히 더 느릴 거란 생각을 저는 하게 되네요^^ 우리의 생각이 그 물질의 모임 속에서 만들어진 2차 가공물이라는 현실적 추론 아니더라도.

아,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책 좋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봐서 다 못 읽고 반납했는데 소장하려고 벼르고 있는 책 중 하나요^^ 루크레티우스 글은 현상학을 벌써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줬어요/

겨울호랑이 2017-03-10 15:19   좋아요 1 | URL
^^: 저는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인간의 마음/제도가 못 따라가서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현대의 재앙이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여러 면에서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 저는 ‘생각(사유)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에 1표! ㅋ ‘빛의 속도‘는 일상의 속도보다 상대속도는 느려지게 되지만 결국은 실현되는 속도인 반면, ‘생각‘의 속도는 다른 차원으로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를 들면, 지금 탄핵한 박근혜 이후 세계에 대해 우리는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빛‘의 속도로는 그런 미래의 여러 차원에 가기 힘들지 않을까...하는 근거없는 상상을 해봅니다.ㅋ

AgalmA 2017-03-10 13:24   좋아요 1 | URL
우리의 지금 시간 개념은 선형적이라 한계가 있죠. 시공간을 나눈 것도 역시나 한계일텐데, 어찌 되었든 다중 우주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실현된 우주도 있을 겁니다. 즉 우리의 현재 사유는 늘 뒤따르는 현상이 아닐지. 기술 재앙에 대해서 우리 맘이 못 따라갔듯이 말이죠.

속도라.... 갈릴레이에서 이미 결론났지만 같은 조건에서는 모든 물질의 속도는 같다고 하죠. 여러가지 요인들이 섞이는 이 땅에서는 무거운 것이 마찰력 때문에 더 빨리 떨어질 뿐이지만. 즉 생각과 빛이 정확히 같은 상황이라는 설정이 필요합니다. 단순 매칭 비교는 인문학적 추론이지 과학적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하지만 겨울호랑이님 추론은 매력적이죠^^

겨울호랑이 2017-03-10 15:19   좋아요 1 | URL
^^: 제 생각이 즉흥적인 생각이라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네요.ㅋ Agalma님 덕분에 이 부분에 대해 더 재밌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시간‘과 ‘속도‘라는 문제가 지금은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만 들지만요.. 저의 개떡 같은 질문에 ‘찰떡‘같이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님 행복한 오후 되세요^^:( Agalma님과 댓글을 쓰다보면 책나오겠어요...ㅋ)

AgalmA 2017-03-10 13:5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사유는 이미 찰떡 같으심^^ 저도 덕분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 유쾌하고 유익합니다. 이런 친구 만나는 거 어려운 일인데, 겨울호랑이님 존재가 참 고맙습니다^^/
우리 둘 다 공부가 부족하다! 매일 한탄하니 책이 언제 나올 지는ㅎㅎ;;;
 

존 윌리엄스와 오에 겐자부로를 섞어놓은 느낌.
표지와 너무도 다른 담담한 문체. 조근조근 얘기하면서 어떤 충격적인 과거 이야길 펼쳐 놓으려고 이러시는가 기대와 함께 두려워지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과거를 덮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니 ‘척하는 삶‘이 맞긴 한데, '척하는 삶'이란 표현을 조롱투로 쓰는 걸 생각할 때 작가가 이것도 염두에 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인상적이긴 한데 표지가 작품 홍보에 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할까. 나부터도 그랬다. 다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삐뚤어진 태도를 보일 수 있고, 심지어 충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 중 무엇이 진정하고 핵심적인 것인지, 또 무엇이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입장에서도 쓸데없이 되풀이해 생각하기보다는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 좋은) 순간적인 실수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나 나름의 경험을 통해 그래야 함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3-0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3-08 16:57   좋아요 0 | URL
척하는 삶 ㅡ 음음 그래요 . 딱 그 표현이 맞겠네요 . ^^

2017-03-08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