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카,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절망감에 빠졌어. 식욕이 내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건 오래지. 오래된 생존의 습관. 맹렬한 이빨들. 가축과 다를 게 뭐람. 당신은 ˝절망˝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 하지.

 
˝진정한 절망이란 자신의 목표를 당장 그리고 영원히 지나쳐버린 그런 것˝

보일러도 고쳐서 집도 엄청 따뜻한데 나는 절망이란 사치의 집에서 떨고 있는 셈이군. ˝나는 왜 내 안에 머물지 않는 것일까?˝

당신은 무슨 음악을 듣고 힘을 얻었어? 음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글에만 몰두했다고 말하면 어쩐지 슬플 거 같아. 당신 일기장 보기가 두려워지잖아. 공연장은 자주 갔던 거 같아. 당신 일기의 첫 장은 무희 에두아르도바에게 치르다시를 또 춰 달라고 요청한다.
˝지금 함께 가자˝라고 말하는 춤
˝지금 함께 가자˝라고 말하는 이미지
멋진 발들
멋진 발들
˝허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당신 꿈도 들여다보고 당신 편지도 들여다보고 이 세계 참 웃기지. 이 상상의 질서 체계 속에서 우린 소란스럽고 그녀, 그, 그들을 증오해. 도대체 뭘 찾겠다는 건지. 단지 뭘 찾았다고 떠들고 싶은 건지 모르지. 무료하니까 허망하니까.



최초의 기록이 회계라는 건 인간을 설명한다. 소유는 우리의 존재 증명.
노래가 되지 못한다면 모두 지워져도 좋아, 나는.
빵을 한 입 또 베어 물고. 식었어. 괜찮아.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벽에 붙어 있던 오래된 테이프를 뜯었다. 보일러를 껐다.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가 밤을 울린다.

 




Khalid - 8TEEN


But I think I‘ll be okay

I‘ll be okay

Let‘s do all the stupid shit that young kids do

It‘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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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3-07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태운(?) 빵 한조각 ㅡ 봄몸살이 무기력증처럼 와서 기운이 안나는 중인데 어쩐지 나른한 느낌의 글을 읽으니 어쨌든 힘을 내야 할 것 같네요 .
모처럼 이 새벽에 이웃이 세탁기를 돌리는 소릴 듣고 있어요 . ㅎㅎㅎ ( 사실 그렇게 느껴지는 코고는 소리!)
봄 기운은 전염성 강함 지수를 별표로 해놔야함~^^

AgalmA 2017-03-07 14:33   좋아요 1 | URL
세탁기형 코골이ㅎ
계절이 바뀌어가는 걸 느껴서 일까요? 기분이 영 우왕좌왕입니다. 언제는 평탄했는가 하면....

[그장소] 2017-03-08 03:24   좋아요 1 | URL
아아~ 저만 그런게 아니라니 ~^^ 이거 안심되는걸요? 저도 우왕좌왕 중 ~^^

겨울호랑이 2017-03-07 1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카프카를 아직 읽지를 못했지만, (슬프게도, 카프카 뿐 아니라 읽지 않은 작품이 훨씬 많지요ㅜㅜ) Agalma님께서 좋아하는 작가라는 것은 알고 갑니다.ㅋ

AgalmA 2017-03-07 14:35   좋아요 2 | URL
문학 좀 안 읽는다고 겨울호랑이님 인기가 사그라들진 않을 겁니다ㅎ 문학 안 읽고도 그 정도 지덕체 갖추고 계시니 더 놀라움ㅎㅎ

겨울호랑이 2017-03-07 14:46   좋아요 1 | URL
이런... 인기라니요....모르는 분들이 보면 연예인인줄 알겠네요..ㅋ 그저 좋게 봐주시는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개인적으로 Agalma님을 비롯해서 몇몇 분들께서 쓰신 리뷰를 보면 많이 감탄합니다. 다른 이들의 이론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글들을 보면 특히 그렇습니다. 그에 비하면 아직 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지요..ㅋㅋ

AgalmA 2017-03-07 14:54   좋아요 2 | URL
이기적 유전자 육아 버전 글쓰신 분이 왠 겸손을ㅎㅎ
걸음마로 변장하고 계시지 마시죠ㅎ~
겨울호랑이님의 착실 정리도 따라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죠^^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는 일이니.
저는 필 꽂히는 대로 쓰는 터라 좀 부끄러운 부분이 많죠^^a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목적보다 제 생각을 들여다보는 목적이 더 강해서...

겨울호랑이 2017-03-07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의식에 흐름‘에 따라 글쓰는 것은 아무나 하고 싶다고 되는 것 아니지요...피카소의 그림을 아무나 그릴 수 없지만, 피카소가 보이는 사물을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아닌 것을 보더라도, 물처럼 자유롭게 글쓰는 것은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쓰는 글이라고 사료됩니다..ㅋ

AgalmA 2017-03-07 15:00   좋아요 2 | URL
항복(-0-)/ 뭔진 모르지만 제가 잘못했습니다ㅋ

겨울호랑이 2017-03-07 15:03   좋아요 2 | URL
Agalma님, 항상 좋은 글과 그림, 음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Agalma님과 좋은 이웃분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행복합니다.^^: (박근혜만 아니면 더없이...ㅋ)
 
천상의 비벤덤 북스토리 아트코믹스 시리즈 6
니콜라 드 크레시 지음, 이세진 옮김 / 북스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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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 바다표범, 개, 노벨사랑상, 도시, 악마, 헤모 사피엔스(피 대신 사람을 수혈), 합체들 이 모티프로 누구든 내러티브를 짤 수 있겠지만, 내러티브와 그림이 상호조응하는 이 완성은 오로지 니콜라 드 크레시만의 것! 스토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그림의 교향악으로 보여준다. 스토리는 교수 같은 눈으로, 그림은 아이 같은 눈으로 즐기게 만드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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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5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6 05:48   좋아요 2 | URL
좋은 작품은 이런저런 잣대를 놓고 흠뻑 빠져 들어 동참하게끔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감상자가 적극적일 필요도 있죠^^아이들이 이게 참 잘 되죠ㅎ 어른이 될수록 자기 선입견이 많아 그게 좀 어렵긴 하더라고요.

[그장소] 2017-03-08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스토리는 교수 , 그림은 아이 !! 왜 저는 그런 시선을 나눠주시지 않은 걸까요 ..시무룩 ( 하느님 맙소사!) ^^
역시 번뜩이는 사유!^^

AgalmA 2017-03-08 16:43   좋아요 2 | URL
하느님 맙소사ㅋㅋ 그장소님은 놀랄 땐 아버지 부르시던데 이번엔 농담조이신 듯ㅎ

[그장소] 2017-03-08 16:47   좋아요 2 | URL
ㅎㅎ 예리하심~ 제게도 흔하게 주면 그게 어디 축복 이겠어요? 남발이지..ㅎㅎㅎ

AgalmA 2017-03-08 16:52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의 예리하심을 준 신은 제 신과 좀 다른가 봄ㅎ? 좋아좋아, 이참에 다신론 하자! ㅎㅎ 그래서 세상엔 무수한 축복이...ㅎ

[그장소] 2017-03-08 17:0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아 , 그 철지난 유머를 또 꺼내게 만드시네요~ 천둥 번개 우뢰의 유래에 부처 하느님 알라신 등등이 모여 당구 한게임 치는중에 발생한단 우스갯말 잊으신건 아니죵? 으르르르르~ 쾅~ 번쩍!!

AgalmA 2017-03-08 17:04   좋아요 1 | URL
우주 빅뱅과 딱 맞아 떨어지네요ㅎ

[그장소] 2017-03-08 17:1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일 때려치우나 마나 하루 종일 고민하고 지쳐서 돌아오니 《천상의 비벤덤》이! 아까워서 비닐을 못 뜯겠어요 >ㅁ<);;
고맙습니다. ㅇㅇㅇ님(초성으로 적을까 말까....)
제가 혹시라도 그림 판 돈이 생긴다면(그림 열심히 그리라고 이 책 주신 거 아니까...) 그 돈으로 ㅇㅇㅇ님 까까(마이구미 같은 거 말구;) 사드께요.
고흐는 유일하게 그림 판 돈으로 무엇을 했지? 물감 샀던가....

오늘 1일 1그림 못 그린 거 반성. 파스텔도 챙겨 다니기 시작했는데... 흑)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상대하지 않으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말에 푹 찔리고 만다....

그리고 비닐을 뜯었다. 《천상의 비벤덤》을 이기겠단 뜻은 아니고 초대에 기꺼이 응하겠단 뜻으로.


온통, 너무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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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5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5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05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ax도 나쁘지 않아요. ^%

2017-03-05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5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5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3-05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술을 못 마시는 관계로 전 웰치스를 ㅋㅋ

AgalmA 2017-03-05 00:58   좋아요 3 | URL
웰치스ㅋㅋ 탄산음료에 취하던 애가 있었는데, 콜라 1.5 리터를 끼고 배시시 웃던 모습이 생각납니다-ㅅ-;
술을 안 드셔서 겨울호랑이님이 젊어 보였던가 봅니다(얼굴색 안 변하고 말함. 마치 본 거처럼 말함)

겨울호랑이 2017-03-05 01:01   좋아요 3 | URL
앗. 저를 보신 적이 없으실텐데요.
ㅋㅋ 별로 동안은 아니어서 ㅋㅋ 감사히 좋은 말씀 접수합니다

AgalmA 2017-03-05 01:06   좋아요 3 | URL
겨울호랑이님의 지에 대한 갈구와 겸손함은 ˝청년˝같은 데가 있어요. 서재 분들도 그걸 다 느끼실 걸요^^ 이 말도 접수 퀵서비스로 보내요~~

겨울호랑이 2017-03-05 01:10   좋아요 2 | URL
^^: Agalma님의 좋은 말씀을 들으니 기분 좋네요.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에 놀러만 다니다보니 뒷북으로 책을 읽게 됩니다.ㅋㅋ 많이 부족하지만 Agalma님과 여러 이웃분들 덕분에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어 항싱 감사드립니다^^:

AgalmA 2017-03-05 01:16   좋아요 3 | URL
저도 며칠 전에 그 말 했더랬죠. 뒤늦게 공부열에 빠져서 늙어 고생이라고ㅎㅋㅎ;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밤새서 책보는 것도 이젠 너무 힘들고 모든 게 불만인 이 때! 앎과 지독한 사랑에 빠지다니ㅠㅠ 너무해! 그래서 겨울호랑이님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에 공감하고 저도 힘을 얻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2017-03-05 0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6 0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6 0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6 06:13   좋아요 2 | URL
보일러가 고장나 세수도 찬물에 하고 요며칠 더 힘들었어요ㅜㅜ 낼은 새 보일러로 고쳐 주겠다니 좀 나아지려나...
날이 밝아 오네요. 일하기 싫어 노래를 부르며 오늘도 시작되려나 봅니다.
좋은 꿈, 하루 함께 하길/

2017-03-06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7 14:45   좋아요 3 | URL
보일러는 빨리 고쳤는데 뒷처리를 제게 남기고 가서 ㅜㅜ
염려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7-03-08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음 그 누군가는 좋겠네요! 까까를 꼭 받을듯 하니~ 그림은 당연 잘 풀리실거라고 믿어요! 그럼 그럼~! ㅎㅎ
 
플라톤의 위염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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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알라딘 북플 기능 중 ˝읽었습니다˝에 대해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게 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읽은 책에 대해 리뷰나 페이퍼를 쓰지 않은 사람들에겐 책을 언제 읽은 건지 등 소소한 기록이 된다는 것을 막 깨달은 참이다.
그래서 내가 일전에 읽고 리뷰를 쓰지 않은 이 책을 떠올렸다. 다시 읽을 때 진지하게 논해 보려고 묻어 두었으나 지금 간단히 기록을 남기고 다음엔 뭘 다르게 볼 지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이 책과 내용에 대해 한 사람이라도 더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과 함께.


안토니오 타부키 <플라톤의 위염>은 제목 때문에 위엄! 있어 보이는데, 얇지만 매우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지성인의 의무‘에 대해서. 이 주제는 장 폴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참여문학‘으로 설득력있게 말하던 게 생각난다. 타부키도 참여에 뜻을 같이 하지만 결이 좀 다른데, 창작에서가 아니라 현실 참여에서 지성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방식보다 인식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섬세하게 짚어가며 고민하고 있다.

이 책은 지성인의 임무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냉소적인 칼럼에 타부키가 반박하면서 시작한다. 타부키는 극좌파 투사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아드리아노 소프리와의 서한을 통해 논쟁을 부각시켜 더 넓은 공론화를 이끌려 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네르바 성냥개비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민 교육에 무감각한 밀라노 시장의 잘못된 행정에 대해 지성인이 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 그를 바꾸도록 설득할 수 없으니 시장의 손자들은 옳은 판단을 하도록 지성인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이성적 교육에 힘쓰면 된다고 비꼬기도 하면서. 움베르토 에코의 논쟁적이고 해박한 저서들을 생각할 때 매우 의외이다가도 시장의 손자들을 생각하듯 대중의 이성적 미망을 깨우게 하려고 책을 썼다면 또 이해되기도 했다.
불을 끄는 것은 소방관의 임무이지만 불을 낸 사람을 찾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사회의 정신적 성숙을 위해 누가, 얼마나 많이 노력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역사도 자국과 권력층의 이익과 합리화를 위해 기술하고 있는 현실이 이미 상존한다. 이에 대한 안토니오 타부키의 호소를 인용하며 이 짧은 리뷰를 닫는다. 오늘 촛불집회 참여하지 못하는 애석함과 미안함을 이 책의 깊은 뜻을 성냥개비 불씨로나마 나르는 역할로 대속하며. 내가 에코 같아 보일지 타부키 같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읽었습니다˝를 내가 다르게 생각하게 된 오늘처럼.

"... 증기기관이 무대에 등장한 순간, 경제학자나 지리학자는 육로를 통한 운송 방식들의 변화에 대해 경종을 울리거나, 그런 변화가 장차 가져올 이익이나 불편함을 분석할 수 있었다. 아니면 100년 후에 그런 발명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지를 증명하기 위한 연구 수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역마차 회사들이 파산하거나 최초의 증기기관차가 도중에 멈추던 순간, 그들은 아무것도 제안할 것이 없었으며, 어쨌든 마부나 기관사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혹시라도 그들의 품위 있는 의견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는 마치 위염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플라톤을 비난하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칼럼 글 중에서)

브로흐가 말하는 "시적인 것의 임무"는, 예술가가 비트겐슈타인의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극히 제한적인 논리를 극복하게 해주는데, 단지 아는 것만 허용하는 그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를 에코의 글은 모델로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지성인에 대한 내 해석은 달라지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 그러니까 어떤 일에서 지나치게 완벽하고 매끄러운 논리는 얼음판처럼 그 위에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할 때의 비트겐슈타인을 더 선호합니다. (기억나는 대로 인용하자면, 그는 "거친 땅바닥과 마찰력을 달라"고 말했지요.) 지성인의 임무는 (나는 예술가의 임무라고 고집하고 싶습니다만) 바로 그런 것입니다, 친애하는 아드리아노 소프리 씨. 그러니까 위염 치료법을 찾지 못했다고 플라톤을 비난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지성인의 ‘기능‘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산발적인 기능이지요.)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예전에 [일 코리에레 델라세라]에 실린 글에서, 지성인들을 하나의 제도로 만들고 싶어하는 어느 ‘수다쟁이causeur‘에게 대답하면서 바로 ‘기능‘에 대해 말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조이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는 벤야민은? 또는 랭보는? 그들을 모두 버릴까요? 가죽 장정본으로 만들어 우리의 귀중한 책장 속에 보관할까요? 아니면 ‘쓸모없는 물건‘으로 다락방에 처박아둘까요? 그리고 파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모든 신비에 대해 "나는 안다"고 주장했던, 우리의 사랑하는 파솔리니는 어떻게 할까요? 그의 ‘앎‘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벌써 그를 잊었나요? 나는 잊지 않았고, 친애하는 소프리 씨, 당신도 잊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래도 1974년 <나는 안다Io so>라는 제목으로 나온 그의 글을 인용해보는 것이 아마 쓸모없지는 않겠지요.

"나는 안다, 나는 안다, 쿠데타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책임자들의 이름을. (왜냐하면 사실 그것은 ‘권력‘의 보호 체계로 설립된 일련의 쿠데타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1969년 12월 밀라노 학살 책임자들의 이름을."
"나는 안다, 1974년 브레시아 학살과 볼로냐 학살의 책임자들의 이름을."
"나는 안다, 그러니까 옛날 파시스트들이나 새로운 파시스트들, 그리고 무지한 자들을 조종한 ‘정상頂上‘의 이름들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나는 지성인이고 작가이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추적하려고 노력하고, 글로 쓰는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오래된 사건마저도 조직해보고자 노력하고, 총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치적 구도의 무질서하고 단편적인 조각을 함께 모아보려고 노력하고, 자의성과 광기와 신비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논리를 다시 세우는 것을 모두 상상해보려고 노력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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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4 11: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었습니다’ 기능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북플 뉴스피드에 남게 돼서 다른 분들이 포스팅한 글을 보기가 불편해요. 저는 ‘읽었습니다’ 입력하고 나면 바로 삭제합니다. ‘기록이 흔적’이기 때문에 같은 의미의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AgalmA 2017-03-04 12:24   좋아요 3 | URL
저도 cyrus님과 같은 의견이고 제 기록도 바로바로 삭제^^ 누가 거기에 좋아요 누르면 삭제하기 미안해서 신속하게 지우는 것도 은근 스트레스죠;;
하지만 다른 이들에 대해선 개인의 기록장 차원에서 보자면 수많은 ˝읽었습니다˝를 지우는 내 불편 감수해야 겠지요~_~

페크pek0501 2017-03-04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가의 임무에 대해서 ˝작가의 임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숨김없이 묘사하는데 있다.˝라는 말을 지지합니다.
작가는 교훈이나 주제를 꼭 나타낼 필요가 없이 현실 그대로 정확히 포착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보통 사람으로선 볼 수 없는 작가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말이죠. 요즘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여러 편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확고해지더군요.

-‘후기‘ 비트겐슈타인, 그러니까 어떤 일에서 지나치게 완벽하고 매끄러운 논리는 얼음판처럼 그 위에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할 때의 비트겐슈타인을 더 선호합니다. - 이 말도 지지하는데 제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작가가 주제나 결론을 명확히 드러내면 오히려 허점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만다고 봐요. 작가도 놓친 어떤 것을 어떤 독자나 평론가는 뽑아내기도 하기 때문이고, 또 이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기도 해요.

님의 페이퍼를 흥미롭게 읽고 쓴 저의 사견이었습니다.

AgalmA 2017-03-04 13:11   좋아요 2 | URL
pek0501님 말씀은 에코가 지성인이 잘 할 수 없는 것에선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성질도 있지만, 에코의 결론적 언명을 타부키가 공격하고 있는 것과 더 가깝다고 저는 느껴지네요.

pek0501님이 <어린왕자>를 통해 얻은 배움 ˝보이는 대로 믿지 않는˝ 인식을 통해야 현실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는 것이니 교육도, 나 자신도 모두 극복할 과제입니다.

yureka01 2017-03-04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어요,할 때 북플에 표시되는 피드는 다 지웁니다^.^

AgalmA 2017-03-05 00:06   좋아요 1 | URL
읽었어요, 읽고 싶어요 피드 있음 서재가 깔끔해 보이지 않긴 하죠^^;

[그장소] 2017-03-08 16:33   좋아요 1 | URL
아.. 그런 방법도 있군요! ^^
 

벚꽃을 오래 들여다보며, 누구보다 아름답기 위해 너희들도 경쟁한다지.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자라듯 잎이 날 때부터? 도무지 말이 없어 쉼 없이 말을 걸다 한없는 고요함을 선물받네. 나는 언제부터 한없이 살아있으면서 끝없이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걸까. 두 느낌에 갇혀 때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내 관념 속에서 꽃은 환하게 말이 없고 더 활짝 피고. 이 뻗어나가는 관념의 줄기를 증오하며 입을 닫아도 숨 쉬듯 말이 터져 나오고 꽃망울이 터지고. 아름다움 뒤에 진화의 숨은 줄기를 보고 나는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든 게 시선을 끈다. 피할 수 없다. 아름다움은 끝없이 꽃을 피운다. 하루 더 참고 피고 하루 더 살고 죽고.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아름다움들이 세계를 가득 덮고 있다. 도통 지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아름다웠고 어디서부터 지워지는 걸까. 이해하지 못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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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3-03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모아서 책 한권 내세요.
바로 구입!ㅎ

AgalmA 2017-03-03 21:15   좋아요 2 | URL
ㅎㅎ 죽을 때 싸들고 가려고 열심히 그립니다~ ㅎ 유명해지려면 빨리 요절해야 되는데 이미 늦었고ㅋ;;
좋게 봐주셔서 감사요^-^

북다이제스터 2017-03-03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화사하다. ^^
먼저 오신 봄 기운 듬뿍 받고 갑니다. ^^

AgalmA 2017-03-03 21:16   좋아요 2 | URL
봄이 오긴 오나봐요. 꽃이 그리고 싶었던 걸 보면.

북다이제스터 2017-03-03 21:43   좋아요 2 | URL
그놈의 철야는 대체 언제 끝나나요? ㅠ
전 연초와 비교해서 현재 자본주의 마성에서 10% 벗어났어요. ㅎㅎ

AgalmA 2017-03-03 21:48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ㅜㅜ 하고 많은 일 중에 나는 왜 이런 일을 택해 고생하나 싶기도 하고ㅎ;; 제가 먹고 사는 일엔 젬병이라 이런 멍텅구리 상황인 듯ㅎ;

오~ 북다이제스터님 자본주의를 구슬릴 줄 아시다니 능력자!

북다이제스터 2017-03-03 21:51   좋아요 2 | URL
특별한 건 딱히 없구요, 그냥 내 배 째라! 로 버팅기고 있습니다. ㅋ 자포자기 ㅠ

AgalmA 2017-03-03 21:55   좋아요 2 | URL
배를 째시고 책을 읽으신다고...ㅎㅎ 저도 오늘 일 더 추가는 안된다!(책 읽어야 하거든) 했는데...

북다이제스터 2017-03-03 21:59   좋아요 2 | URL
들켰네요, 눈치 빠르세요. ㅋ
회사 눈치 보면서 틈틈히 요즘 이북으로 페인트 모션 중입니다. ㅎㅎ

북다이제스터 2017-03-03 22:11   좋아요 1 | URL
전 토욜과 일욜도 출근하지만, 그래도 금욜 저녁은 웬지 기분 좋습니다. ㅎ
Agalma 님도 즐건 주말 보내세요. ^^

AgalmA 2017-03-03 22:22   좋아요 1 | URL
저도 금토일 모두 출근하는 사람입니다만, 맘 내키는 대로 무하 전시 보고 와서 철야하는ㅎㅎ;;
북다이제스터님도 건강 잘 챙기시며 즐겁게 다독다독^^/

[그장소] 2017-03-03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장하네요 . 어쩐지 !! 그림으로 안구 정화까지 하고 가요! 피지도 못하고 져요 . 저는 ..^^;

AgalmA 2017-03-03 21:38   좋아요 2 | URL
그렇게 못 피면 여기다 자리를 피시죠~ 피식피식ㅎ 철야하고 집에도 못가고 열받아 하며 그려서 더 비장한지도요ㅎ;
다른 분들께도 그러실 테지만 그장소님은 제게 꽃같이 환함을 주시죠^^🌸 그당소님그당소님(혀 짧은 소리) 까까? .... 이 해괴한 애교는 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둡니다))

[그장소] 2017-03-03 21:3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으아~Agalma님 애교에 쓰러집니다~^^

겨울호랑이 2017-03-03 18: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봄이네요^^: 아직은 새싹이지만 그 안에 이미 꽃이 있겠지요..Agalma님 말씀처럼 그 아름다움은 씨앗에서 오는 것인지 따사로운 봄볕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AgalmA 2017-03-03 21:24   좋아요 3 | URL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제 12장 24절 ㅡ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서문에서...

긴 말 대신 이 문장을 보내도 겨울호랑이님은 잘 이해하실 거 같아서 :)

겨울호랑이 2017-03-03 21:43   좋아요 2 | URL
^^: Agalma님께서 이런 저를 과대평가하셨습니다.ㅋㅋ 잘 모르겠는데요. 다만, 제가 Gnosis적인 느낌이 충만한Agalma 미학세계 입구를 헤매고 있는 것 같네요 ㅋㅋ

AgalmA 2017-03-03 22:24   좋아요 2 | URL
영적 지도자로 알려진 라즈나쉬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씨앗은 이미 자신이 자라날 완성체를 품고 태어나는 것이라 하죠. 이는 일견 진화론적인 면에서도 타당한 설명이긴 합니다. 예술에서 미가 완벽성으로 평가되는 것도 비슷해 보이고요.

사이비로 떠들지 않기 위해 저도 공부 많이 해야죠. 갈수록 맘 만큼 진도가 안 나가서 많이 답답하지만요ㅜ;

겨울호랑이 2017-03-03 21:50   좋아요 2 | URL
아, 오쇼 라즈나쉬군요^^: 오쇼 강의를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오쇼 강의의 여러 부분에서 우리나라 함석헌 선생님의 소리를 개인적으로 느낍니다.. 그런데, 솔직히 어려워요ㅜㅜ

AgalmA 2017-03-03 21:53   좋아요 2 | URL
네, 생김도 그렇고 분위기도 함석헌 선생과 비슷하죠? ㅎㅎ 안그래도 함석헌 선생 책을 제대로 읽은 게 없어 함석헌 선생이 쓴 <바가바드 기타> 조만간 읽으려고 하는 중인데 겨울호랑이님이 우리집 서재 상황을 아시나 뜨끔ㅎㅎ
라즈니쉬 장자 강독 좋죠^^

겨울호랑이 2017-03-03 21:58   좋아요 2 | URL
^^: 네. 제가 잘 못 알아듣는 것을 보면 좋은 말씀인듯 ㅋㅋ 「삶의 길 흰 구름의 길」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오쇼의「도마복음 강의」도 좋았어요..^^:

보슬비 2017-03-03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콧구멍에 봄바람 넘어주고 왔는데, 아갈마님의 벚꽃 그림을 보니 정말 봄이 오는가봅니다. ㅎㅎ

AgalmA 2017-03-04 09:44   좋아요 2 | URL
일전에 보슬비님이 벚꽃 있던 잡지 사진 보여주신 걸 나름 제 방식으로 가린다고 가려서 그려 보았습니다ㅎㅎ

yureka01 2017-03-04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봄의 여신을 그렸네요...^^.

AgalmA 2017-03-04 09:33   좋아요 0 | URL
여신을 모시는 시종의 마음으로 그립니다^ㅁ^ 잘 태어나셔야 하는데 조마조마해 하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