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The Aluminum Group - Little Boy

 

 

 

첫째 밤 - 비약의 대가를 만나다

사사키 아타루는 진정한 지성들은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쁜 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는 비평가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려는 전문가를 거론했다. 책의 명령에 휘둘리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창조의 독립성을 강조하려 한 뜻은 알겠다. 니체와 그리스도교를 통해 임신-세계를 다시 낳는 것의 의미를 가져오며, “쓰는 이유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남자라는 것의 부끄러움이 아닐까”(질 들뢰즈)라는 말을 이치에 맞는다고 했다. 저자가 아감벤에게 사전 정도 찾아보고 말하라고 맹렬히 비판했듯이 나도 저자의 논리 연결들을 보며 무리한 귀납을 하고 계시군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철학을 개념의 창조라고 말한 들뢰즈를 인용한 건 수긍하겠지만, 부끄러워하는 남성의 도피 같은 수태 과정이 창조라는 식의 연결은 내겐 비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타인이 쓴 책은 근본적으로 이해(읽고 번역) 할 수 없고, 알아버리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걸 알면서도 반복해 읽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카데믹한 의 숭상으로 보인다. 새로운 발견과 정보로 추종자가 되는지 편견을 타파하는 주체자가 되는지 저자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 읽기들이 그가 숭상하는 반복해 읽는것보다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저자의 어떤 에 대한 혐오와 어떤 에 대한 열광(무의식과 대면하는 읽기와 쓰기)이 모두 과했다. 그의 다독, 다상량에 대한 내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둘째 밤 - 문학이 혁명의 근원?

저자는 혁명과 폭력과의 관계를 거부하며 언어의 혁명으로서 마틴 루터를 데려왔다. 마틴 루터는 성서를 읽고 또 읽으며 세계의 질서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이단으로 내몰렸지만 루터는 언어로 이 깨달음을 알리려 했고 그의 성서는 민중에게 퍼져 나갔다. 그는 읽고 다시 쓰는 자가 된 것이다. 저자는 루터가 정초한 독일어가 독일 철학과 독일 문학의 기반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루터파는 교회법 관할에 있던 사항을 세속국가 법률의 관할 하에 이행하는 법 혁명을 이뤄냈으며 이는 현대에도 계승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중세 해석자의 혁명이 현재의 복잡성을 설명할 중요한 단서라는 건 잘 알겠다. 이에 대한 내 판단은 일단 유보했다.

 

 

셋째 밤 - 종말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말에 동의

문맹인 무함마드는 읽을 수 없는 신의 계시를 읽음으로써 코란(‘읽는다는 것’)을 이 세계에 가져왔다코란 원본은 이슬람에서 책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며 신의 아들도 아님을 강조한 무함마드는 폭력의 법을 따르지 않고 반복해 읽는 자였고, 책을 읽는 자신이 미쳤는지 아니면 세상이 미쳤는지 하는 물음 속에서 자신과 세계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일체감을 깨달았다.  여기서 일체감이란 자신의 죽음의 순간과 모든 타자, 모든 세계의 죽음의 순간과 일치시키는 절대적 향락상태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나치와 사이비 종교와 많은 종말론들은 이런 사고로 현실을 변질시켰다. 아감벤과 코제브도 비판 대상이 되었다.

병든 사고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은 문학이 해왔다며 저자는 조이스와 베케트를 예로 가져왔다.

앞선 장에서처럼 '수태'를 어떻게든 연결하려는 억지가 느껴졌는데, 무함마드와 어머니를 연결하는 논리 전개만 빼면 대체로 수긍할 만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말세다라고 말하며 세상을 더욱 죽이는지.

 

 

넷째 밤 - 종말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새로운 것에 대한 인간의 열광을 조소하며 저자는 그 반대의 역사로 로마법 대전의 예를 들었다. “6세기부터 11세기 말까지 600년 가까이 완전히 망각에 묻혀있던 로마법 대전이 11세기 말 피사의 도서관에서 발견되면서 유럽은 법 개념과 법률 용어를 대량 입수하게 됐다. “로마법을 주입받아 고쳐 쓰인 교회법은 범유럽 공통법으로 탄생(‘중세 해석자 혁명’) 했다. 이 새로운 법을 추축으로 교회가 성립되었고, 그것은 근대국가, 근대 관료제의 기원이 되었다. 이 법질서에 귀속된 인간은 재생산의 법적 대상이 되었다. “근대법, 근대국가, 근대주권, 회사, 신탁, 계약, 조합 등 근대 자본제의 원형체제 속에 자연히 인간도 이양되었다. 법문은 좀 더 정교히 수정되어 정보와 데이터베이스가 되었으며 정보에 의한 통치를 쉽게 만들었다.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비롯된 정보와 폭력과 주권의 삼각형으로 구성되는 세계’, 제도적인 것의 세계는 유럽의 한 버전에 지나지 않으며, ‘세속화라는 가면(유럽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전략 병기, 개종, 정복) 속에 전 세계에 수출된 것이라는 르장드르와 저자의 주장은 타당해 보였다. 다른 무의식을 지배하는 무의식인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중세 해석자의 혁명이 세계의 법과 무의식을 더 공고히 한 혐의는 보이지 않는가? 자유롭다 말하지만 온갖 훈련을 통해서 탄생하는 예술과 문학의 아이러니는 재생산들의 종말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 순수성이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할 문제 아닌가. 어떤 것도 본질로서 있을 수 없는데 우린 지금 무엇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지.

 

 

●다섯째 밤 - 다음 아침을 기다릴 뿐인 아침

20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가 탄생한 뒤 농경, 목축, 자본의 축적에 의한 경제활동은 1만 년의 역사에 지나지 않고, 예술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밖에 되지 않았고, 문학이 탄생한 이래 90퍼센트는 완전한 문맹이었다. 이런저런 제반을 살필 때 문학은 너무도 젊은 예술이며, 생물종의 평균수명은 400만 년이라는 고생물학자의 통계를 가져와 인류 멸종은 터무니없다 저자는 강조했다. 인쇄술이나 종이의 발명이 이 읽고 쓰기의 세계를 대단히 발전시켜 왔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구전성(口傳性)이 구전성(舊典性)으로까지 발전했다고 보기에, 인간이 유용성을 발견한 모든 것을 인류가 끝날 때까지 가져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말, 종언 타령엔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저자는 마무리에서 니체나 푸코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나 블랑쇼가 없었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몰랐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그들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었느냐고. 당신이 그 책들을 읽고 미치고 이렇게 쓰게 되기까지 과연 자유로웠냐고. 이 생각의 자유로움은 비평가와 전문가를 합한 또 다른 의 모습은 아니냐고나는 그의 이 글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를 따지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야전과 영원입문서일 뿐이고 향후 사사키 아타루는 야전과 영원을 깨는 다른 글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도 기도하는 비평가와 전문가 어느 부류에 분류될 테니까. 언어와 인간의 이 체계들을 이토록 추적해봤으니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 혁명을 담으려는 언어의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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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12-15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집에 있는데.. 여태 못 읽고 있는데 이 글을 보고 나니 좀 망설여지긴 하네요. 저도 <야전과 영원>의 도입이라 생각하고 산 책인데, 흠...^^;; Agalma님 글을 보니 저자의 지적인 엘리트주의(?)가 눈에 띄어서 불편하게도 보입니다..

AgalmA 2016-12-16 02:11   좋아요 1 | URL
이 책 호불호가 있는 편이더군요. 저자 사사키 아타루처럼 열광하던가 싫어하던가 극이 확실히 나뉨^ㅁ^; 이럴 경우는 특히 직접 읽어볼 수 밖에 없죠. 저도 <야전과 영원>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이 책을 읽어본 건데, 애독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도올 선생 같은 어조 때문에 읽기가 너무 괴로웠어요. 아무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역자를 비롯해 사람들이 그 웅변성에 점수를 더 줬지만 웅변성이 강한 글일수록 논리가 더 철저해야 되죠. 비약과 무리한 수사가 많으면 제가 이 리뷰에서 따진 거처럼 바로 허점이 드러납니다. 이 책이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라지만 다루는 내용이 대체로 철학인데 너무 나이브해 보였습니다. 이 책의 수많은 리뷰들에서 열광과 호기심이 대다수였고 주장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는 게 많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리뷰쓰느라 일주일 넘게 책을 고민하며 스트레스 많았습니다ㅡㅜ 제가 갸웃하는 점들을 제대로 짚으려면 아사키 타타루보다 더 치밀해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시대라 흔히 일컬어지는 중세에서 해석자를 발견하고 종말적인 바로 거기서 사실 대혁명이 있었다는 역발상 논제는 신선한 구석이 있어요^^
이 책 때문에 <야전과 영원>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졌습니다;;그 책 이전에 ‘데뷔작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다는 아사다 아키라 <구조와 힘>(1983), 아즈마 히로키 <존재론적, 우편적>(1998)을 더 읽고 싶어요.
<존재론적, 우편적>은 읽다가 중단된 상태인데, 이 책 소재도 문체도 제법 맘에 들더군요^^

아무튼 집에 사사키 아타루 책이 이미 있으시다니 언젠가 읽긴 하시겠군요. 건투를 빌어요^^/

북다이제스터 2016-12-15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읽고 뭔가 한참 이상하다고 느낌만 들고 글로 잘 옮기지 못했는데요.
Agalma님이 아주 시원하게 조목조목 말씀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12-1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6-12-15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북플에서 [그장소]님이 좋다고(?) 내지는 읽었다고 하신걸 보고설라므네 혹하여 바로 구입했더랬지요., ㅋ~.
근데 내용이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라서...책장에 고이 모셔뒀습니다.
님의 이 리뷰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별 하나로 가늠할 뿐입니다.
아까비~ㅠ.ㅠ

sslmo 2016-12-15 19:01   좋아요 1 | URL
근데 말입니다, Agalma님~!
1일 1그림은 개점 휴업이란 말씀이십니까?

오늘도 야근이신가요?
저녁 뜨뜻하고 맛난 걸로 챙겨드시고,
제이티비시 뉴스 보면서 트라이 투 해보는건 어떠신지~^^

AgalmA 2016-12-15 19:32   좋아요 0 | URL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읽는 스테디셀러라고 해야 할텐데...뭐랄까. 요즘 일본 사상가의 지식 총서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센티브 먹고 들어가는 것도 없잖아 있다 싶습니다.
이 책은 기존의 딱딱한 철학서 문체와 다르다는 게 큰 장점으로 통한 거 같은데, 쉬운 전달력과 내용의 질과 깊이는 다른 차원이죠. 이 책이 깊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공감과 옳음을 동치해 평가하는 감상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저자의 선언에 말려 버렸다고 할 수도 있어요.
주체적으로 읽고 사유하기 그 과정의 중요함을 끌어내려 한 취지는 좋았지만 맥락을 잘 이끌어내지 않고 ‘무지는 나쁘지 않다‘ 식으로 가볍게 툭 던지는 게 책임감 없어보였어요. 에세이로 써서 그런 거 겠지만 <야전과 영원>에 대한 신뢰성을 많이 깎아먹는 경솔함이었습니다. 저자의 성격이 그런 것이도 하겠지만, 그렇게 툭 내지르는 뼈있는 선언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건 보편적이면서도 문제적입니다.

AgalmA 2016-12-15 19:16   좋아요 0 | URL
그림은.... 제 게으름을 탓할 밖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무기력이 심해지고 에너지 쓰는 게 너무 괴로워요. 나쁜 생활습관이 너무 몸에 배어서....
1일1그림 노력해 볼께요ㅡ.ㅜ

sslmo 2016-12-16 09:12   좋아요 0 | URL
저랑 별개 다 찌찌뽕이십니다.

님은 아직 ‘나이가 들수록 무기력‘을 얘기할 단계는 아니실듯 한데~(,.)
저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는걸 느낌니다, 체력이.
암튼 님의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재료; 연필과 흔한 색연필, 소요시간: JTBC 뉴스 듣는 동안)

1일 1그림이 아니라 띄엄띄엄 그림이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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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6-12-13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싸~^^
제가 1빠로군요~^^
오늘 님이 좀 한가하신가 봅니다. 이렇게 사람이 일에 쫒기지 않으면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는군요. 그림이 완전 멋집니다. 색연필로 만들어낸 그라데이션도 그렇고, 선도 과감한 것이 한두번 그려본 솜씨가 아니시군요.
부러워라, 췟~(,.)

AgalmA 2016-12-13 21:54   좋아요 1 | URL
철야 상황이라 스트레스 해소로 그렸어요ㅎㅎ; 연신 일 처리 물어보는데 그림그리고 있고ㅎ;; 저 참 먹고 살기 힘든 족속;;

sslmo 2016-12-13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전 그러고 보면 토욜날 오전 근무 하는게 지랄 같을때도 있지만, 헐렁한 시간이 있는 직업.
하지만 퇴근무렵이면 몸이 파김치가 되어 마찬가지로 먹고살기 힘든 족속~--;

힘내세요~, 저녁이랑 야식이랑 넉넉히 챙기셔야 합니다~ㅅ!

AgalmA 2016-12-13 22:19   좋아요 0 | URL
먹고 살기 힘든 족속이라 말한 건 사무실은 바쁘다고 아우성이고 눈앞에 일이 잔뜩 쌓여 있는데 태평하게 그림 그리고 있는 저를 약간 비웃으며 말한 거였어요ㅎㅎ
평안한 밤 되시고 내일도 즐거운 그림 그리는 시간 잘 챙기시길^^/

yureka01 2016-12-1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블로그에 하루에 한 컷은 포스팅이었는데 이걸 못합니다.ㅎㅎㅎ 사진은 그림과 달리 아무거라도 찍어서 걸면 되는데 그 아무거나 라는 이게 어렵.흐규...그림 참 독특합니다.^^.

AgalmA 2016-12-14 07:38   좋아요 0 | URL
그림도 낙서가 될 게 아니라면 맘에 드는 그림 만들기 쉽지 않아요^^ 사진을 아무거나 찍는다고 의미있는 게 안 나오듯 그림도 좀 그래요. 실컷 그렸는데 맘에 안 들면 속상하더라고요. 글 쓰면서 좋은 이야기거리로 전개되어 가듯이 그림도 그리다가 좋은 아이디어쪽으로 흘러가면 좋은데 제 경험상 좋은 그림은 아이디어와 영감에서 출발할 때가 많아요. 꾸준히 노력해야 발전한다는 게 관건. 창작은 다 비슷비슷한 듯.

북다이제스터 2016-12-1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넘 멋진 그림입니다.
앞으로 꼭 1일1그림 해 주세요. ^^

AgalmA 2016-12-14 06: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사장님 눈치보며 그린 보람이 있네요ㅎㅎ
계획성...그게 제일 문제.
오늘도 일찍 출근하셨겠구만요. 건강 잘 챙기시길~

나와같다면 2016-12-1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퍼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고, 슬퍼하는 사람과 같이 슬퍼하는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음보살이 생각나네요..

AgalmA 2016-12-14 07:35   좋아요 0 | URL
나와같다면님 해석이 더 멋지시네요. 아마 저 천 자락이 ˝피에타˝(제 그림이 그런 급이다란 뜻은 아니고) 느낌을 줘서 그런 인상을 받으신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렇게 천으로 감싸인 이미지들은 종종 종교적인 느낌을 많이 주니까요.
멋진 감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보슬비 2016-12-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묘한 그림~~ 아갈마님의 그림 솜씨 탐나요~~

AgalmA 2016-12-14 06:52   좋아요 1 | URL
감사요^^ 보슬비님도 1일1그림에 동참을? 그림그리는 사람들은 자료로 모으는 그래픽노블 집에 많으시잖아요ㅎ 따라 그리기만 해도 공부 많이 되실텐데요^^

책읽는나무 2016-12-14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릿속에 있는 무언의 형상을 종이에 그려내는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단 생각을 늘 하곤 했었는데 요즘 특히나 더 합니다.
묘사가 아닌 상상화 그림을 멋지게 만들어 내는 아갈마님의 그림도 예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어요.
레이저가 발사되어 서재가 구멍이 뚫릴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

AgalmA 2016-12-14 08:30   좋아요 1 | URL
그림 참 오래 그렸죠. 그 약간의 재주로 밥벌이도 하고 있고요;
밤새도록 만화 베끼고ㅎㅎ 방학되면 더 신나서 스토리 짜서 만화책 만들고ㅎ 만화방에서도 트레싱지로 만화 베낀 적도 있어요ㅎㅎ
화실에서 데생, 수채화, 정밀묘사 공부도 하고 그림 배우러 학교도 갔었고... 평생 노력한 거에 비해 큰 성과는 못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부족한 게 보이니까요. 창작은 늘 그 순환인 듯. 배우고 아쉽고 또 배우고 하나 완성한 뒤의 짧은 기쁨 뒤에 또 그리고. 글쓰기 과정도 마찬가지더군요.
결국 나와 삶 전체의 대화, 나와의 싸움^^
같은 INFP끼리 잘 아시죠? ㅎㅎ
 

 

Gidon Kremer plays Weinberg - Cello Prelude op.100 No.5 (live, 2016)    

      

 

기돈 크레머의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흐린 겨울 저녁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었다.

ECM 레이블에서 나온 기돈 크레머의 바인베르크 연주는 마음 속 무언가를 분명히 건드린다.

유대계 폴란드 작곡가인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는 홀로코스트를 피해 소련에 정착했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애제자였다고 한다. 전쟁의 슬픔이 깃든 듯한 연주가 매우 인상적이다.

 

 

 

  • 1-1. Sonata No. 3 Op. 126 (1979)
  • 1-2. Trio Op. 48 (1950)
  • 1-3. Sonatina Op. 46 (1949)
  • 2-1. Concertino Op. 42 (1948)
  • 2-2. Symphony No. 10 Op. 98 (1968)
  •  

    KREMERATA BALTICA, GIDON KREMER [MIECZYSŁAW WEINBERG] (ECM, 2014)

     

     

     

    사실로 말하면 바인베르크 음악에 대한 관심은 이 앨범의 아트웍 때문이었다. 

    Alexei Vassiliev의 사진을 떠올리게 했다.

    고전적인 초상사진의 명확한 선예도가 Alexei Vassiliev의 사진에는 없다.

    오히려 경계를 지움으로써 더 관심을 사로잡는다.

    공기처럼 부유하는 색들이 인식을 돕지만, 그것은 무엇을 향한 방향인가.

    지워지려는 찰나의 강렬함.

    결코 분리되지 않는 물질들, 세계들.

     

     

     

     

     

     

     

     

     

     

     

     

     

     

     

     

     

     

     

     

     

     

     

     

     

     

    바인베르크의 사라지기 직전의 날카롭고 서정적인 선율과 Alexei Vassiliev의 사진은 그래서 퍽 잘 어울렸다.

    여기 딱 어울리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모리스 블랑쇼.

     

     

     

     "반짝임은 소멸을 위한 반짝임이다."

     

     

    "희망은 종종 비탄의 고뇌일 뿐이다. 희망은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절망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술은 불행의 의식이지 불행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카프카의 엄격성, 작품에의 의무에 대한 성실성, 불행의 의무에의 성실성은 인생에 실망한 많은 나약한 예술가들이 자기만족을 찾는 허구의 천국에서 자신을 구제하도록 하였다. 예술의 목적은 몽상도 '건설'도 아니다. 진실은 알려질 필요도, 묘사될 필요도 없다. 진실은 자기 스스로조차 알지 못한다. 그것은 지상의 구원이란 것은 성취될 것을 요청하는 것이지 그것이 가능한지 질문을 던지거나 그 형상을 그려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이 설자리는 없다. 엄격한 일원론은 모든 우상을 제거한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예술은 정당화되지 않지만, 적어도 카프카에게만은 예술은 정당화된다. 왜냐하면 예술은 바로 카프카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의 '밖'에 있는 것과 묶여 있기 때문이다. 또 예술은 친밀성도 휴식도 없는 이 바깥ㅡ외곽의 심연을 표현하며 우리가 우리들 자신과도, 우리들의 죽음과도 가능성의 관계를 더 이상 맺지 못할 때 불쑥 솟아나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이 '불행'의 의식이다. 예술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자, 더 이상 '나'라고 말할 수 없는 자, 그와 동시에 이 세계, 세계의 진실을 상실한 자, 그 유형에 속한 자들, 휠덜린이 말했듯이 신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들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 비탄의 시간 속한 자들의 상황을 묘사한

    다. 예술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주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술에 기원이 있기는 하나, 그 기원은 또 하나의 다른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세계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카프카가 예술이 허용하지 않는 도약을 성취하는 곳, 또는 그 도약을 성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곳은 바로 이 지점이라는 것을 ㅡ 그것이 그의 작품에서라기보다는 그의 종교적 체험을 표현하는 메모에서이지만 ㅡ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두 세계를 확정적으로 구분 짓는다는 것 속에는 유혹, 그렇게 쉽게 해결해버리고 싶은 유혹이 있다는 사실을 카프카가 고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Mieczysław Weinberg - String Quartet n°5 op. 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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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lmo 2016-12-13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의 공간 옆에 모니스 블랑쇼로군요, 엑박 떠요~--;
    어차피 품절인 책이라 어쩌지 못할 테지만 말예요.
    기돈 크레머랑 바인 베르그, 이 쓸쓸한 겨울 저녁이랑 잘 어울립니다, 황량한 것이.

    ‘침잠하지 않도록, 주의‘라고 상기가 필요할 듯 해요, 제 자신에게~!

    AgalmA 2016-12-13 18:22   좋아요 1 | URL
    제가 읽었던 <문학의 공간> 구판도 챙기고 싶어서 엑박이어도 굳이 넣었어요.

    침잠해도 숨쉬러 떠오를 날 있겠죠. 수영을 내내 떠오른 채 할 순 없는 거 잖아요~_~

    sslmo 2016-12-13 18:24   좋아요 1 | URL
    이 댓글 완전 맘에 들어서 챙기려고 댓글 남깁니다. 참 좋습니다, 좋아요~^^

    cyrus 2016-12-14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인물들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등장하는 흐릿한 형체와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

    AgalmA 2016-12-14 08:42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 그림들과도 비슷하죠^^ 이런 주제성을 선호하는 작가들이 있다고 봐야겠죠.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쏜살 문고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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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피츠제럴드를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로 꼽았다고 하는데, 하루키가 피츠제럴드에게서 가져온 정수(精髓) 청춘과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읽어왔던 피츠제럴드 작품을 관통하는 줄기였다.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와 함께 광기에 가까운 사교계 향락 속에서 살았다. 그런 생활이 창작의 거름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불안정한 재정 상황과 알코올 중독에까지 이끌어 그는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 삶의 면면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 그가 더 살았다면 이 책에 실린 다시 찾아온 바빌론같은 진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 많이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이쯤에서 음악 큐~)
        

    Acoustic Alchemy - Silent Partner

     

     

    다시 찾아온 바빌론은 대공황이 오기 전 세계 곳곳에서 흥청망청 살았던 미국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찰리 웨일스는 대공황으로 재산과 가정을 잃고 재기를 하려 안간힘이다.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지만 가정을 다시 꾸리기는 쉽지 않다. 아내는 이미 사망했고 술과 생활을 철저히 관리하며 처형에게 맡겨둔 딸을 데려와 가정을 꾸리려 하지만, 함께 유흥을 즐겼던 예전 인연들은 그의 다른 모습을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의 훼방으로 찰리는 딸을 데려오기 어려워진다. 이 줄거리는 피츠제럴드 실제 삶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 아내 젤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외동딸을 양육하며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던 상황 말이다.
    이 단편의 마지막 문단은 청춘의 상실에서 어른의 상실 시기로 넘어가는 걸 잘 보여준다.

     언젠가 그는 또다시 이 도시에 돌아올 것이다. 언제까지나 그에게 돈을 지불하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는 아이를 원했고, 그 사실을 제외하고는 이제 중요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혼자서 그렇게 많은 멋진 생각과 꿈을 가질 수 있는 젊은이가 아니었다.  (본문 中)

     

     

    피츠제럴드는 목격한 사건이나 체험을 작품에 많이 반영하는 작가였다. 기나긴 외출은 아내 젤다의 정신 병원 입원을 소재로 상상력을 입힌 것 같다.

    조현병으로 입원한 22살의 킹 부인이 퇴원하기 전, 여행을 떠나려고 남편이 그녀를 데리러 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녀 상태가 다시 악화될까 봐 병원 측에서 그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귀찮아할 때쯤에도 매일 그녀는 의식처럼 옷차림에신경 쓰며 남편을 기다린다. 삶을 꾸리려면 어느 정도 미쳐야 다르게 말하면 어느 정도 자신만의 궤도를 고수해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결론이다. 삶에서 정상과 비정상 정도 구분은 정말 쉽지 않다.
         
        
    분별 있는 일 피츠제럴드와 젤다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미래가 불확실해 파혼당한 피츠제럴드는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몰두해 1920낙원의 이쪽으로 경제적 여유와 인기를 얻어 젤다와 결혼하는데 성공한다.
    이 단편에서 조지 오켈리는 존퀼 태리에게 청혼하지만 불안정한 경제력 때문에 거절당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 다시 돌아온 조지는 그에 대한 사랑이 싸늘하게 식은 존퀼을 마주하며 그들을 감싸고 있던 사랑의 마법들이 무대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도 익히 알듯이

     

     

    그녀야말로 갖고 싶은 고귀한 그 무엇이었고, 분투한 끝에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옛날 어스름 속에서나 산들바람 살랑거리던 밤에 주고받은 그 속삭임은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본문 中)

     

    해외여행은 장편 소설 밤은 부드러워의 전신인 작품으로,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경험이 녹아있는 단편이다. 유산을 상속받고 여유로워진 젊은 미국인 부부 니콜과 넬슨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견문을 넓힐 겸 세계 여행을 다닌다. 니콜은 성악을, 넬슨은 그림을 공부할 계획이었지만 허영과 사람들과의 유흥 속에서 피폐해지기만 했다. 환상 공포 소설에서 볼 법한 멋진 엔딩 장면이 이 소설의 별미였다

     

    한참 후에 부사다(알제리 중북부의 오아시스 도시)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장의 유랑객들이 모자 달린 외투를 둘둘 감고 꼼짝 않고 누웠을 즈음 그녀도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잠이 들었다. 삶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계속되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입으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선례도 생겨난다. 그래도 이 같은 사랑 싸움은 상당히 오래 견딜 수 있다. 그녀와 넬슨은 젊은 시절에 외로웠다. 이제 그들은 살아 있는 세계의 맛과 냄새를 원했으며, 지금까지는 서로에게서 그것을 갈구했다.   (본문 中)


     

    피츠제럴드 자신이 재밌으려고 썼다는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그 때문이었을까. 피츠제럴드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판타지 특성으로 가득한 단편이었다. 다이아몬드의 형형한 빛처럼 인간의 부에 대한 환상, 부를 둘러싼 인간의 양태들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도덕적인 훈계조로 끝나 우화 같았던 게 흠이었지만 의외성 때문에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로알드 달 소설 같았다고 하면 감이 오실 런지?  

     

     

    삼십 분 후에 황혼이 어둠으로 변했고, 말없이 마차를 끌던 흑인이 어둑한 앞쪽에 서 있던 불투명한 물체에게 인사를 했다. 물체는 흑인의 인사에 대한 보답으로 빛나는 원반을 비추었는데, 그 원반은 측량할 수 없는 밤의 사악한 눈처럼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차가 그 원반에 다가간 후에야 존은 그것이 커다란 자동차의 미등인 것을 확인했는데, 그 자동차는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차보다 크고 위엄이 넘쳤다. 주석보다 화려하고 은보다 가벼운 금속의 몸체가 반짝이고, 바퀴통에는 초록색과 노란색의 기하학적인 물체가 무지개처럼 박혔는데, 존은 그것이 유리인지 보석인지 감히 물어보질 못했다.   (본문 中)

     

    키스마인이 한숨을 쉬며 별을 올려다보았다. "대단한 꿈이었어. 입을 거라고는 이 드레스 하나뿐인 데다가 무일푼인 약혼자와 여기 있다니 정말 이상해! 그것도 별빛 아래에서 말이지. 전에는 별이 있다고 인식해 본 적이 없어. 늘 다른 사람에게 속한 커다란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했지. 이제 별이 두려워. 별은 모든 게 꿈이었다고, 내 젊음이 모두 꿈이었다고 느끼게 해."

     존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이 모든 이들의 젊음은 꿈이야. 일종의 화학적인 광기야."

    "미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존이 침울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들었어. 그 이상은 나도 몰라. 어쨌든 일 년 정도 우리 서로 사랑하자. 그게 우리로서는 유일하게 신처럼 마취될 수 있는 시도이니까. 이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들이 있어. 또 다이아몬드와 환멸이라는 시시껄렁한 선물이 있겠지. 음, 그건 마지막에 갖고 무시해 버릴래."   (본문 中)

     

     

    겨울밤 한가하게 읽기 좋은 작품 구성이었다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 다른 책도 찾아보니 작품 선별이 다 훌륭했다. 디자인도 예쁘고 가격도 저렴해서 어제 한 권 또 주문했다.(과연 무슨 책일까요~)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으로 세계문학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그래서 명칭을 쏜살문고라고?) 추천할 만한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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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lmo 2016-12-12 1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좋아요~,
    어쩌자고 이렇게 사랑스럽단 말입니까, 췟~ㅅ!

    전 님의 서재 음악들, 맹세코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__)

    쏜살 문고, 흥미롭지만 당분간은 자제해야 합니다, 불끈~!

    AgalmA 2016-12-12 18:07   좋아요 1 | URL
    😊 그런데 사랑스럽다고요? 제 글이 그런 게 아니라 그건 아무래도 피츠제럴드의 문장들이 이 글에 가득해서 그런 느낌을 주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하루키도 푹 빠졌던 거 겠죠^^

    음악도 가져온 약간의 제 수고만 있었을 뿐이지만 좋다고 하시니 저도 빙그레^^

    쏜살문고 좀 고민인 게....책이 앙증맞아서 도서관에 신청해도 되나 싶어 그냥 샀어요ㅎ;;
    적은 분량의 책은 도서관에 신청하기 좀 그래요. 공공재를 쓰는 거니까. 저는 주로 무겁고 비싼 자료성 책 위주로 희망도서 신청해서 대출할 때 후회가 많음요ㅋ;; 무겁고 대출기한에 쫓기고;;;
     
    제사(題詞)에 대한 단상

     

     

     

     

     

     

     

     

     

     

     

     

     

     

     

    찬미가

     

     

     

    아무도 우리를 또 다시 흙과 점토로 빚지 않으리라.

    아무도 우리의 먼지에 대해 말하지 않으리라.

    아무도.

     

     

    찬미 받으소서, 아무도 아닌 자여.

    당신을 위해

    우리는 피어나오니.

    당신을 향해.

     

     

    아무것도 아니

    었다네 우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으리니, 활짝 피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의,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꽃술과

    함께 영혼 환하게

    황량한 하늘에 꽃실을 가지고

    우리가 노래했던 심홍색 말의

    꽃관으로 붉게

    가시

    위로, 오 그 위로.

     

     

    *제여매 역자의 말 발췌 인용: 이 시에서 아무도 아닌 자 Niemand'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독일어에서 niemand가 부정대명사임에 비하여, Niemand는 부정의 뜻을 지닌 명사이다. 첼란은 이 단어를 제1연에서 부정대명사로 사용함으로써 성경이 전하는 신의 인간 창조 신화를 부인하고, 2연에의 아무도 아닌 자는 미지의 누군가를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그의 문학은 그가 자신의 문학을 대화의 문학이라고 밝혔듯이 이러한 미지의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한다.

     

     

     

     

     

     

     

    튀빙겐, 정월

     

     

     

    눈멀도록

    설득당한 두 눈.

    그 눈은 순수하게

    솟아올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물 위에 떠 있는 휠덜린 탑을

    그 눈은 회상하는 것이다, 갈매기

    소리.

     

      

    말이 물에 잠길 때

    익사한 목수들이 찾아온다.

     

     

    한 인간이 온다면,

    온다면,

    한 인간이 세상에 온다면, 오늘,

    족장들의

    빛의 수염을 달고 그가 온다면,

    이 시대에 대하여

    말하리라, 그는

    아마도

    단지 랄라랄라 웅얼대리라,

    자꾸자꾸

    또또.

     

     

    (“팔락쉬, 팔락쉬”)

     

     

    - 파울 첼란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제여매 옮김, 시와 진실, 2010)

     

     

    * 제여매 역자의 말 발췌 인용: 1960년에 첼란은 골 사건'이라는 표절 시비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19601월에 독문학자 발터 옌스와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기 위하여 튀빙겐을 방문하는데, 이 시는 이 방문 바로 다음 날 쓴 시이다. 이 시에서 첼란은 튀빙겐에서의 개인적 체험과 튀빙겐에서 말년을 보냈던 휠덜린의 전기적 요소를 도입하여 시적 형상화를 시도하고 있다. “순수하게-/ 솟아올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는 휠덜린의 라인 송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익사한 목수들은 휠덜린 예술관과 관련되어 있는 표현으로 파악되는데, 휠덜린은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짐머라는 훌륭한 목수를 그리스의 조각가와 비유하였다고 한다. 휠덜린은 말년에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으며, 라인 강에서 익사하는데, “팔락쉬, 팔락쉬 Pallaksch, Pallaksch”는 휠덜린이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을 때, 때때로 긍정하는 말(ja)로 때로는 부정하는 말(nein)로 사용한 말이다. 첼란은 여기에서 휠덜린의 문학과 전기를 통하여 이 시대의 문학이 죽음이라는 심연을 관통해야 비로소 진실을 표현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정월 스무 날”은 그가 뷔히너 문학상 수상 시 언급하기도 했는데, ‘1942120유대인 말살 정책이 결정되었던 날이며, 1942년에 수용소에서 파울 첼란이 부모를 잃는 등 유대 민족의 비극과 고통을 상징하는 날짜이다.

     

     

     

    §

    파울 첼란도 휠덜린처럼 1970년에 파리 센 강에 투신해 자살했다.

    아우슈비츠에서 부모를 잃고 수용소에서 돌아왔을 때 그에게 남은 건 언어 밖에 없었을 텐데, 원망스럽게도 그의 모국어는 독일어였다. 유대교에도 회의적이었으나 그가 유대인인 건 전후에도 그에게 내내 주홍글씨로 작용했다 반유대주의와 보수적 분위기가 전후에도 여전해 파울 첼란은 당시 독일 문단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았고, 그의 죽음의 푸가는 아우슈비츠 비극을 미화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우슈비츠 참상과 무도곡을 연결한 것을 꺼림칙하게 여긴 탓이 아닐까 나는 짐작하는데, 산문이 아니라 왜 시였어야 했나를 생각할 때 우리는 좀 더 깊게 봐야 한다.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낮에 또 아침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가 외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가진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1)

        

     

     

     

     

    죽음의 푸가」가 1947년 한 잡지에 최초로 발표될 때 제목은 '죽음의 탱고'였다. 같은 시기에 다른 잡지에 '죽음의 푸가'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표되었다. 제목 때문에 '푸가'라는 음악 형식에 따른 작품이라 오해될 수 있으나 아무 관계가 없다고 제여매 역자는 전한다.  내가 보기에 "새벽의 검은 우유~또 마신다"를 독립한 복수의 성부로 보고 각 연에서 그 주제가 반복된다고 보면 푸가 형식과 아주 관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파울 첼란이 시를 쓸 때 푸가를 토대로 하진 않았을 거다. 다 쓰고 나서 제목을 바꿀 때 푸가와 연결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이런 접점들 때문에 내가 시와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아무튼 '죽음의 탱고'에서 '죽음의 푸가'로 고친 건 잘한 일이다.  

     

     

    죽음의 푸가」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말한 아도르노의 반성적 성찰을 되돌려 준 시이다. 나는 이 시에서 고통 속에서도 파울 첼란이 인간 속에서 끝끝내 보려고 한 공존, 부정을 통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긍정의 모색을 본다.

    한국의 많은 시인들조차 파울 첼란 시가 난해하다고 여겨 그를 비의적 hermetisch' 시인이라 말하고 있는데, 파울 첼란 자신도 그것을 부정했고, 그런 규정은 폄하의 의도가 있으며, 최근 파울 첼란 문학 연구 방향도 비의성을 배제하는 추세라고 제여매 역자는 전한다. 파울 첼란 문학관을 봐도 그렇고 그의 수상 연설들을 봐도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시를 쓰려는 시인이 아니었다.

     

     

     

     

    시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하나의 사건이며, 움직임이며, 또한 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방향을 구축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이 질문은 시계의 시침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시는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물론 시는 무한성에 대한 요청이 있지만 시대를 관통합니다. 시대를 관통하지만 그것을 초월하지는 않습니다.”

     브레멘 문학상 수상 연설

     

     

    창조된 모든 것은 생명을 지닌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만이 예술의 유일한 척도이다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파울 첼란이 인용한 뷔히너의 말

        

     

     

     

    죽음의 푸가찬미가가 연결된 듯한 파울 첼란의 다음 詩도 보자.

     

     

     

     

    흙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팠다.

     

     

    그들은 파고 또 팠다. 그렇게 그들의 밤이 지나고,

    그들의 낮이 지났다. 그들은 신을 찬미하지 않았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원했다고 그들은 들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알았다고 그들은 들었다.

     

     

    그들은 흙을 팠고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그들은 현명해지지 않았고, 아무 노래도 짓지 않았다,

    아무 말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팠다.

     

     

    고요함이 찾아왔고, 폭풍우가 몰려왔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나는 판다, 당신이 판다, 그리고 벌레도 판다,

    그들은 판다고 저기서 노래한다.

     

     

    오 한 사람, 오 아무도, 오 아무도 아닌 자, 오 당신!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면, 어디로 갔을까?

    오 당신이 파고, 나도 파네, 나 자신을 당신에게로 파묻네,

    우리 손가락에 반지가 깨어나네.

     

     

    - 파울 첼란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제여매 옮김, 시와 진실, 2010)

     

     

     

     

    찬미가」와 마찬가지로 이 시도 성경의 창조 신화를 신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의 중기 시집인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서시이기도 하다. 인간을 초월적 존재에게 귀속시키지 않고, 창조된 모든 것의 생명력을 강조한 파울 첼란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아무도 아닌 존재들이지만 서로 속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빛날 수 있다고 이 시는 강조하고 있다

     

     

     

    여울 물, 그 위에서

    신들의 안짱다리가

    절뚝거리며 건너온다 -

    어떤

    별의 시간에 너무 늦었단 말인가?

     

     

    - 파울 첼란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시집 마지막 시 허공에》마지막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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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장소] 2016-12-11 0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좋은 시들 잘 보고 가요!^^
    아무도 아닌자의 장미 , 죽음의 푸가 , 극(?)적인 시들...

    AgalmA 2016-12-11 05:51   좋아요 2 | URL
    또 안 주무시고 무슨 책 보고 계세요 ㅎㅎ

    [그장소] 2016-12-11 06:02   좋아요 2 | URL
    자면서도 꿈에 리뷰를 쓰더라고요. 푸핫~^^
    지금은 ㅡ제대로 책도 못 보겠다는, 그래서 그냥 시간보내고있어요. 잡스런 일들 하면서.. 누웠더니 머리 아프고 ㅎㅎ 일어나니 숨 막히고..코 막혀서 ..이런..ㅎㅎㅎ

    AgalmA 2016-12-11 06:11   좋아요 2 | URL
    책 악몽 꾸는 그장소 님 그림 그리고픈 에피소드네요ㅋㅋ
    그장소 님도 참 한 슬랩스틱 하신다는ㅋㅋ

    [그장소] 2016-12-11 07:05   좋아요 2 | URL
    대충 쓴 리뷰가 맘에 걸린 모양 ㅡ 책은 두권인데 그내용이 짬뽕되서 이렇게 썻어야지 ㅡ하는 느낌으로 꿈에나오더라고...그런데 깨서 옮겨보려고하니 , 재채기 한번에 ...응? 뭐였지...감각만 남고 내용은 사라짐..ㅎㅎ;;;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