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들은 시간과 새로운 기술이 우리에게 준 증거를 반영하며 발전해야 한다. 미국의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은 가능과 불가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더 가능성이 큰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그는 미확인 비행물체의 존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주변 세계의 지식에 따르면, 비행접시와 관련한 보고는 알려지지 않은 외계 지식에 대한 이성적 노력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진 지상 지식에 대한 비이성적 노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의 분자구조 해명 및 유전정보 전달 연구로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와 함께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내가 이 상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이다. 그녀는 과학 역사상 가장 부당하게 대우를 받은 여성 중 한 명이었는데 상을 받기 4년 전에 사망했다. 영국의 생물 물리학자였던 그녀는 브래그 부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DNA 구조를 밝히기 위해 X선 촬영에 몰두했다. 이 작은 분자들에 반사된 X선은 사진판에 영원히 남게 되었는데, 그 당시 가장 정확하고 명확한 것이었다. 특히 그녀는 특별한 사진을 발견하고 51번이라는 숫자를 붙였다. 그러나 왓슨과 크릭은 그녀의 허락 없이 그것을 사용했다. 또한, 그 사진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를 발전시켜나갈 중요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그 원자 자체는 영웅도 악당도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아무도 탄소나 질소 원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매일 우리가 먹는 음식 속에도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을 조합하면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시안화물cyanide이 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그 자체로는 악의가 없는 원자들 사이의 미묘한 재배치에 있다. 또한, 복용량도 중요하다. 카페인에도 독성이 있지만 이걸 마시고 죽으려면 24시간 이내에 커피 100잔 이상을 마셔야 한다.
티메로살의 경우에는 수은이 체내에서 제거될 수 있는 분자로 줄어든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 투여할 화합물에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십 년간의 독립적 연구 끝에 티메로살이 함유된 백신과 자폐증에는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대부분 선진국의 의무 백신 접종 프로그램에서 티메로살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이 화합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에 관해서 토론하고 있고, 부모가 자녀의 백신 접종을 거부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경우 3가 백신을 맞은 아이들의 비율이 1996년에는 92%였는데, 2009년에는 73%로 감소했다. 그 결과 백신으로 보호할 수 있는 병들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결국엔 티메로살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부제를 제거한 국가에서 자폐증 발병률이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자료들을 비교해 보면, 자녀의 몸속에 생선 섭취로 쌓인 수은의 양이 전체 예방 접종으로 쌓인 수은의 양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왜 국그릇은 사과 파이보다 훨씬 더 빨리 식을까?

그 해답은 바로 대류 작용에 있다. 상승하는 액체는 차가워져서 내려오고, 열기가 있으면 밖으로 열기를 내놓기 위해 다시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반대로 속이 꽉 채워진 사과 파이는 점성 때문에 액체가 빨리 움직이지 못해서 겉 부분이 빨리 식는다. 또한, 내부에서 올라오는 열은 훨씬 느린 전달 방법인 열의 전도를 통해 겉으로 올라온다.

태풍도 대류의 좋은 예이다. 거대한 태풍이 불면, 구름의 왕이라고 부르는 적란운이 생기는데, 이것은 놀라운 자연 현상 중 하나이다. 작은 물방울과 빙정이 쌓여 거대한 층을 이루는데 높이가 무려 20km까지 나타난다. 이것은 그릇 바닥에서 장국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지상 근처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상승할 때 형성된다. 뜨거워진 공기는 더 가볍기 때문에 상승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따뜻한 공기가 팽창하고 냉각되면서 올라가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공기 내에 충분한 습기가 있고 온도가 빨리 떨어지면 다른 현상이 발생한다. 즉, 습기가 응축되고 작은 물방울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열이 방출된다. 다시 잠열이 나왔다. 액체가 증발할 때 잠열을 흡수하고(주변 냉각), 반대 과정(응결)에서는 잠열을 방출한다. 그렇게 되면 공기가 열을 유지하면서 위로 올라가려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미소 입자와 같은 물방울들은 우리 앞에 기류를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구름이다.

그는 1940년도에 MIT의 방사선 실험실에서 레이더 스크린 설계에 참여하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면 과학 관련 기업이 사회와 관련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일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라고 글을 썼다. 그리고 이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원자탄용 타이머 시스템 전자 장치를 담당했다.
브룩헤이븐 계측 그룹에는 발사체 궤도와 튀어 오르는 물체를 시뮬레이션하도록 설계된 아날로그 컴퓨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위치를 계산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게임에 관한 히긴보덤의 생각 속에는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이것은 제어 시스템과 전자 이미지, 이용 가능한 컴퓨터, 그 당시 대중화되기 시작한 독일 트랜지스터 및 화면 상의 오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에 대한 엄청난 경험이었다. 3일 만에 그는 〈테니스 포 투〉의 디자인을 끝냈다.
(중략)
그러나 그 게임은 상업적 특허를 받지 못했다. 1958년에서 1959년 사이에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방문객이 참여한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다. 오늘날 비디오 게임은 우리 사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 가장 많이 침투한 발명품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다. 대부분의 네트워크 주소에 들어가는 약자인 ‘www’는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물리학자가 고안했다.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는 브라우-앙글레르-힉스의 보손을 발견한 유명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로 세간에 화제를 뿌린 바로 그 실험실이다. 팀 버너스리Timothy John Berners-Lee는 세계 곳곳의 입자 물리학 실험실에서 생성된 많은 양의 정보를 자동으로 신속하게 공유해 달라는 과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는 1989년에 www와 함께 컴퓨터가 서로 통신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토콜인 하이퍼텍스트 전송 규약Hypertext Transfer Pro-tocol(약자인 ‘http’는 즐겨 사용하는 검색 엔진에 쓰는 네트워크 주소 앞에 씀)과 그 외 오늘날 인터넷 검색을 하게 해준 기술들을 만들었다.

종종 위대한 혁신이 일어날 때처럼, 이 발명도 중대한 사건으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그 개발 덕분에 폭넓고 새로운 응용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디오 게임과 ‘www’는 물리학 연구소에서 전혀 새로운 발명을 의도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탄생했다.

여기에서는 농약과 비료 및 유전 공학이 마치 악당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악당을 물리치는 농업 덕분에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더 건강하고 맛있고 환경을 보호하는 자연산 유기농 제품을 얻는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열띤 과학 토론을 보면 이런 제품들의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인다.

첫째, 비료와 살충제가 그렇게 나쁜 걸까? 분명 어떤 화학 물질에 독성이 많이 함유될 수는 있다. 따라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것은 의약품과 세제, 음료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합성 제품뿐만 아니라 자연산 제품에도 똑같이 중요하다. 우리 밭에서 자란 버섯이 자연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치약보다 더 치아에 좋은 건 아니다.

그리고 유전공학도 생각해 보자. 유전공학은 해충에 대한 내성이 강하고, 과일의 크기와 영양가를 높이고, 더 먹음직스러운 색과 맛 등 우리가 원하는 특징을 가진 새로운 종을 만들기 위해 식물의 DNA를 개량한다. 우리는 그렇게 얻은 제품이 건강이나 생태계에 해로울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해온 품종 개량 역시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단지 훨씬 천천히 진행되었을 뿐이다. 여기에선 우연히 돌연변이가 일어나길 바라고, 다음에 경작하는 생산물이 더 좋아지게 개량한다.
찰스 다윈은 이 과정에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것은 특수한 환경에서 더 잘 적응하는 형질을 지닌 돌연변이가 진화를 끌어낸다는 이론이다. 품종 개량에서는 그것을 원하는 대로 선택한다. 예를 들어, 옥수수는 천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볼품없는 조상인 테오신테teosinte만 있었다. 이것은 키가 몇 센티미터 되지 않고 낱알도 얼마 붙어 있지 않는 옥수수의 근연종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수천 년간 그것을 길들여 오늘날의 옥수수로 변형시켰다. 즉, 인간은 약 만 년 동안 유전공학의 한 형태를 실행했다.

오늘날 식물이나 동물의 DNA에 원하는 유전자를 직접 넣을 수 있게 되면서 농산물을 개량하는 데 필요한 수천 년의 시간이 절약되었고, 이렇게 이 과정이 크게 발전했다. 다시 말하지만, 규제는 필요하다. 아직은 우리의 건강이나 환경을 위협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건 아니지만, 몇몇 비양심적인 과학자들과 사업가들, 정치인들이나 조사관들의 관행에는 규제가 필요하다.

어느 한 시인이 "한 잔의 와인 속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라고 했다. 시인들은 이해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기에, 아마도 우리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와인이 담긴 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 우주를 보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물리적 요소들이 있다. 소용돌이치는 액체, 유리잔에서 일어나는 반사, 그리고 상상력이 추가시키는 원자들, 그리고 바람과 기온에 따른 증발. 유리잔은 지구의 암석을 정제시켜 만들었기에 그 원자 구조로 우주의 나이와 별들의 진화 비밀들을 알 수 있다. 와인에는 어떤 화학 성분이 들어 있을까? 어떻게 조합된 걸까? 여기에는 효모와 효소, 그리고 여기에 반응하는 물질들과 생성된 결과물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일반적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모든 삶이 발효라는 것. 수많은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야 와인의 화학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지켜보는 줄 알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와인의 이 생생한 검붉은 빛을 보라! 우리의 보잘것없는 지성으로 와인 한 잔을 놓고 이 우주를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심리학 등의 부분으로 나눈다고 해도, 자연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걸 기억해라. 그러므로 이제 그것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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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장점은 여러 가지인데 내게는 과학 공부에 좋은 자극제다. 《테넷 tenet》 관람 후 즐거운 과학 공부가 또 시작되었다.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법칙의 특성』 읽다 보니 놀란이 《테넷 tenet》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말고 즐겨라"라고 한 건 과학계 명언가 파인만한테 배운 거 아닌가 싶었다. 대칭성이 강조된 영화 이미지도 파인만의 '물리법칙의 대칭성' 챕터에서 영감을 받은 거 같고. 워낙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니 그의 책을 안 봤을 리 없고 파인만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았을 듯. 봉고를 연주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이기도 했던 파인만과 통하는 게 많았을.

 

"나는 오늘날 양자 역학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강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라.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형상화시켜서 꼭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긴장을 풀고 즐기는 기분을 갖기 바란다."

ㅡ 리처드 파인만 『물리법칙의 특성』

 

 

 

그러나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는 그럴싸한 말이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각과 경험, 직관으로 접근하기에는 이 영화는 논리로 움직이고 구조적 짜임새가 상당하다.

이해 안 된다고 말들 많지만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한 권만 봐도 거론된 난제들이었다.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각본을 봐줬다지만 《인터스텔라》보다는 시각적 구현이 잘 안된 거 같다. 익숙하지 않은 사고까지 해야 하니 사람들이 어려움을 호소할밖에.

몇몇 액션들은 좋았는데(그동안 찍은 영화 액션 총출동. 군사 동원은 《덩케르크》 영향ㅎ?) 놀란의 이전 영화에 비해 씬들이 매끄럽게 붙지 않아서 좀 지루했다. 창작자가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만들지 못한 책임일 수도 있지만, 물리적 구현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시간 여행은 무수히 다뤄졌기에 예전처럼 뿅 하고 왔다 갔다 하는 식으로 얼렁뚱땅 표현하면 코미디가 되기 십상이라 고민이 많았을 듯. 논리적으로 풀자면 양자 얽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서사를 얹어 시각적으로 푸는 건 SF 물의 어려운 과제다.

이 영화는 이해의 어려움보다 설득되지 않는 게 많다.

 

그림 1)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1.

영화 속 '회전문'은 입자/반입자 쌍의 시간 이동을 시각적으로 적절히 표현했다. 괴델은 우주 전체가 회전한다고 봤는데, 그렇게 시공을 보면 출발하기 이전 시점으로 돌아오는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 이 전제를 따르려면 빛보다 빠른 여행이어야 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빛보다 빠르기는 어려울 거 같아서? 웜홀에서 딸에게 중대한 정보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웜홀'로 시간 여행을 제시했다. 그래서 더 공상 과학 판타지 같다는 소릴 듣는 거 같다;;; 지금까지 제시된 시간 여행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가설이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엔트로피를 되돌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시간 여행을 제시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 법칙의 대칭성을 논하며, '회전'은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인버전(엔트로피의 역전)을 이용한다면서 거꾸로 움직이는 건 맛보기 정도로 짧게 보여주고 대부분 스토리에 맞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2.

드니 빌뇌브 영화 《컨택트(Arrival)》와 원작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때와 같은 물음이 남는다.

시간 여행의 역설 '무모순적 역사 접근(consistent histories approach)'

영화에서도 언급된 '할아버지 역설'이 여기 해당하는데, 시간 여행이 가능해 과거로 간다 해도, 기록된 역사는 바꿀 수 없다는 것. 과거와 미래는 정해져 있고 우리는 역사를 따르는 위치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 테넷은 인류의 파멸을 막을 운명이고 피할 수 없다. 죽음의 결과를 받아놓고 살아가는 인간 삶과 마찬가지로.

시간 여행의 역설은 다른 것도 있다. 시간여행자가 기록된 역사와 다른 대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대체 역사 가설(alternative histories hypothesis)', 물리 법칙들이 거시적인 물체가 과거로 정보를 운반하는 것을 막는 '시간 순서 보호 가설(chronology protection conjecture)'이다. 호킹은 '대체 역사 가설'을 '파인만의 역사합산'과 비교한다. 파인만의 방법은 우주가 단 하나의 역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개연성을 가진 수많은 역사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각각이 개별인 만큼 가시화된 역사는 모순이 없어야 하는 동일한 역사여야 하므로 그의 방법은 '무모순 역사 가설'과 비슷하다.

호킹은 경고했다. "과거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면, 모순에 빠진다."

이 영화의 문제는 '무모순적 역사 접근'(일어난 일은 일어난다)을 내세우면서도 실상 방법은 '대체 역사 가설'이다. 스토리 진행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물리 법칙들은 무시하며 자유롭게 장면을 끌고 나간다.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입자들 사이의 모든 힘 혹은 상호작용이 입자들에 의해서 운반된다고 가정한다. 힘- 운반 입자의 방출(-)과 흡수(+)는 불가결하다. 이 영화 속에서 인버전이 작용하면 총알이 되돌아오는 발사처럼. 물체는 그렇다 치고 인간의 몸과 의식이 미래 정보를 가진 채 과거로 되돌아가는 건 굉장히 인간 중심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인간은 수많은 기억과 정보로 이뤄진 유기 생명체이자 이 세계를 이루는 네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에 영향받는 물리적 원자이다. 그러니까 시간 이동에서 모든 것(가장 불완전한 의식 포함)이 온전한 채 과거로 가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시간 이동에서 각종 정보와 힘들이 충돌하게 되는데, 고전 SF 영화의 충격적 장면처럼 그런 시공간이라면 파리와 얽혀 파리 인간으로 전송되는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다. 호킹이 블랙홀과 웜홀을 설명할 때 온전한 정보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에 회의적이었던 것처럼.

영화에서와 달리 대부분의 시간 이동 이론들은 미래로의 이동은 가능하지만 과거나 정확한 시점으로의 이동이 어렵다 말하는 건 불확정성 원리, 엔트로피(무질서의 증가)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성을 가진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다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상당수의 숨은 정보량을 모르고, 이 시공간의 자연현상은 균형을 이루는 물리 법칙 속에 함께 흘러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10차원을 말하는 끈이론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다른 차원을 볼 수 없는 것도 이 세계의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시공간의 영향 때문이다. 이 영화가 굴러가는 핵심 논리는 '엔트로피를 제어하는(시간을 뒤집는) 인버전 기술로 시간과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는 모든 걸 조정할 수 없다. 불확정성 문제, 현재에 작용하는 중력은 무시된 채 인버전이면 다 될 것 같은 이 영화의 논리대로라면 과거로 사람이 오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정확히 원인의 시작점을 알고 모든 물리 법칙을 제어 가능한 기술력까지 있다면 미래에서 간단히 조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영화가 안 되잖아-_-)...

 

3. 영화 《컨택트(Arrival)》와 원작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진 내 의문 하나가 풀렸다. 빛은 최단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택한다는 페르마의 원리에 따라 테드 창도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썼다. 페르마의 원리에서 도출한 결과ㅡ'미래를 안다는 건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 ->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미래를 안다면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ㅡ에 따라 주인공의 삶과 미래는 무모순적 역사 접근을 따랐다. 나는 빛이 목적론적으로 움직인다는 설명이 도무지 수긍되지 않았다. 이번에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를 읽으며, '파인만의 역사합산'이 합리적 설명으로 이해시켜줬다. "전자와 같은 한 입자는 가능한 모든 경로를 거친다." 즉 빛은 여러 경로로 출발하고 '빛의 최단 시간'은 우리가 도출해낸 결과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은 바꿀 수 없는 인과론적 결론(빛의 최단 시간)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목적론적 결론(빛의 여러 경로)을 실험해보는 과정이었다.

 그림 2) 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4.

이 영화는 '그렇다 치고'가 너무 많다. 미래와 소통하며 인류 파멸을 계획한 빌런 캐릭터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만 등장해 아쉬움이 많은데 정작 그 힘을 가진 미래인의 정체, 그 힘이 이 현실에 어떻게 주어졌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게 영화의 답답함을 더 키웠다. 거두절미하고 시간 중첩이 가능하다는 논리 아래 과거의 것들이 지금 현실에 중첩되며 모든 것이 혼재하고, 사물과 사건이 리플레이되듯 움직이며 '나'가 '나'를 만나는 것 등 근사한 이미지들이었지만 그것은 끝과 시작을 구분할 수 없는 에셔의 그림처럼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나열이지 설득도 근거도 아니다. 그래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과거의 자기를 만나면 존재가 사라지므로 절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온다. 그것은 과학적인 설정이다. 원자는 구성 입자에 대응해 쌍을 이루는 반대 성질의 반입자를 가진다. 리처드 파인만의 이론에 따르면(위 그림 1 참조) 시간을 거슬러 움직이는 반입자와 입자가 만나면 둘은 소멸한다.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과거의 자신과 싸우는 장면은 기묘해진다. 자신을 몰라봐야 하니까 방독면을 쓰게 만든 설정이 이해도 됐다. 그러나 엔트로피를 거꾸로 돌려 인버전된 과거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을 반입자라고 볼 때 이론적으로 (이미 무시되고 있지만) 그들이 못 알아보므로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접촉하는 순간 섬광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이 영화를 분석하면 할수록 나도 억지 가설로 빠지고 있는 것만 같다-_-

인류와 에일리언의 기원을 설명한 리들리 스콧 《프로메테우스》(2012) 같은 후속작이 나오면 많은 게 설명될까. 그러자면 설명해야 할 물리법칙들이 만만찮을 것이다. 놀란 감독 앞으로 영화 찍기 더 힘들 듯. 엔트로피 성질상 이미 이런 식으로 사고한다면 더 복잡하게 가지 후퇴하진 않을 거 아닌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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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 같은 한 쌍의 양들이 동시에 정확하게 예측될 수 없다'라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를 (스토리의 재미를 위해선지) 나름 따르고 있다. 인버전으로 반복해 과거로 돌아가지만 계속 목표를 놓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인버전을 반복한다. 어떤 역사에서는 존 데이비드 워싱턴도 로버트 패틴슨도 죽는다. 이 영화는 '성공' 결괏값만 보여준 엔딩이었다. 대칭성을 고려해 끝에서부터 앞으로 가는 인버전 관람을 한다면 결괏값은 '실패'다.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을 정리하며 '진리'는 우리가 원하는 '운명'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ps)

주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캐스팅 실패였다. 존재감이 너무 없어 영화가 더 흡입력이 떨어졌다. 로버트 패틴슨은 닐 역에 잘 어울렸다. 엘리자베스 데비키 나오는 많은 장면도 그렇고, 정장 차림에 번지점프 작전이라니 거 너무 007 오마주 아니오! 뭐, 어울려서 칭찬.

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 미래 결과 때문에 봐야 했다. 이 영화의 대사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 패러디.

아이맥스도 포기하고 사람 없을 조조로 관람했는데 나를 포함해 총관객 6명.

2시간 30분 정도 보는데 마스크 벗고 음료나 과자를 꼭 먹어야 하는지... 그 넓은 데서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 그러길래 불편했다. QR 코드 체크해서 함부로 위치를 이동해선 안 된다. 호기심과 즐거움 추구도 좋지만 공중 위생을 더 생각하며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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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보셨군요.
저도 보고 싶어 죽겠는데 현실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게 스포될 것 같아 쓰신 첫문장만 봤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보고 소감 나누고 싶습니다. ^^

AgalmA 2020-09-01 21:51   좋아요 1 | URL
놀란 감독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재미가 확실히 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북다이제스터님은 어떤 리뷰 남기실지 궁금합니다/

2020-09-01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9-01 22:42   좋아요 1 | URL
아 마침 저희 집 귀요미가 웃고 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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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31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렇게 재밌는 글이라니... 잘 읽었습니다. 상상력을 촉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올려 주십시오.

AgalmA 2020-09-01 18:04   좋아요 0 | URL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주는 책입니다. 저는 이런 책 좋더라고요^^
 
위험한 과학책 -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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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웹툰은 성차별, 여성 비하 등 불쾌한 시시비비로 연일 시끄러운데 왜 이런 웹툰은 못 만들어! 연애나 돈 얘기에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소재를 다룰 공부 좀 하십시다.

재밌게 잘 읽어서 후속작 『더 위험한 과학책』도 꼭 읽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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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30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험한 더 위험한 좋은 거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도 좀 다양성이 추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목마른거 같은데 :-)
좋은 밤 되세요~

AgalmA 2020-08-30 23:56   좋아요 0 | URL
유명 작가 몇몇 빼곤 생활하기도 어려우니 여유로운 창작 여건이 좋지 않은 건 알지만 한국은 너무 일상툰에 한정되어 있어요.

페크pek0501 2020-08-31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군요. 예전에 제가 읽은 괴짜 경제학이 생각나네요.

AgalmA 2020-09-01 18:04   좋아요 0 | URL
괴짜 경제학도 만화였나요. 찾아보니 재밌을 것 같은 책이네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 설명을 만화로 전달하는 방식 좋은 거 같아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레코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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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구매. 팔 아파서 핸드드립용 분쇄로 주문했는데요. 향미가 덜한 거 같아 귀찮더라도 원두로 주문하는 게 더 나을 듯^^; 향긋한 맛과 향이 비 오는 날에는 정말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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