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책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완독 후 그 책의 주요 쟁점이었던 '신-믿음'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을 읽고 있다.

만약 두 책 중 하나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도킨스를 더 추천할 거다. 그만큼 중요하고 지금 더 필요한 책. 도스토예프스키가 전하는 인류애보다 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 더 시급하므로! 물론 두 개 다 읽으면 금상첨화!

도스토예프스키는 장편소설에서 내내 과학적 합리주의, 이성주의 폐해를 부각했지만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 모두가 악랄한 회의주의나 미치광이가 되는 건 아니니까. 도킨스처럼 쓴다면 더 나은 세상이 더 빠를 듯! 신에 기대지 않는 진정한 인신 사상 아닐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많은 문제를 살피며 소설을 쓰면서 ‘하느님 없이 인간이 어떻게 선량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결론에 이른 거 같은데, 그가 세상을 떠난 100년 뒤 나온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에 바로 그 문제를 다룬 챕터도 있어서 지금 내가『만들어진 신』을 읽는 것.


리처드 도킨스 언술 정말b
내가 올해 최고 ㅋㅋㅋㅋㅋㅋ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능가하려 하고 있어! 두께보다 재미가 더 우월!

 

 

 

 

 

 

 

 

 

 

 우리는 자유, 권리, 상호 존중, 문화의 다양성을 거론하며 타인의 종교를 인정해 왔지만 그것이 뿌리 깊게 내린 부조리의 씨앗인 걸 간과했다. 신념이 아닌 쓸모로 종교의 선행과 사회 기여, 개인들이 누리는 행복을 강조한다고 해도 인류 역사에서 종교 명분으로 행해진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악행과 폭력, 사회 분열, 파탄의 증거는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다.

세상엔 다양한 인간이 살 수밖에 없으니 적당히 타협하며 더불어 살자? 잘못된 걸 바로잡자는 데는 찬성하면서 종교는 예외? 내가 위에 인용문을 가져왔듯이 도킨스는 온건한 종교조차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공개 초청장"이라고 했다.
📎
"사건이 터진 뒤에는 성직자들과 사회 지도자들(그런데 누가 그들을 뽑았던가?)이 죽 나서서 극단주의가 ‘진정한’ 신앙의 왜곡된 형태임을 설명하면서, 관계를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신앙이 객관적인 정당화가 없다면, 왜곡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기준이 없다면, 신앙의 왜곡이라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자라면 그의 이성과 논리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종교의 허점과 조잡함에 눈 감는 혹은 눈치채지 못하는 자가 정확하고 명철한 사고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순교의 대가, 천국의 보상, 지옥의 징벌, 이단 몰이, 원죄와 속죄, 하나님의 권능...' 이런 숱한 걸 믿고 따르는 게 정상인가, 합리는 어디 있는가? '기적'을 믿는 건 차라리 순진할 정도다.

당신이 종교인이고 이 논지가 불만이라면 이 책에서 도킨스가 조목조목 따지는 것을 논박해보라. 이 문제에서 종교인들은 늘 그래왔듯 "그래도 신은...!" 같은 소리로 스스로의 망상을 과시하며 스스로를 설득하는데 끝나지 않고 다른 이들까지 오염시킨다. 그런 식으로 인류가 맹신과 무지와 반목 속에서 수 천 년을 살아온 게 너무 안타깝다. 나는 이제 타협으로 종교를 묵인하고 싶지 않다.


도스토예프스키 선생 읽다가 참 멀리까지 가고 있네ㅠㅠ;;;

 

☞『만들어진 신』 리뷰 : http://blog.aladin.co.kr/durepos/10229305

 

 

 

 

 

● 도서관 일지

 

나카마사 마사키 『자크 데리다를 읽는 시간』 (arte)
ㅡ 일본의 철학 탐구 참 부러운 면이 있다. 아즈마 히로키 『존재론적, 우편적 : 자크 데리다에 대하여 』(이것도 예전에 내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ㅎㅎ 나는 사람들 잘 안 찾는 책 희망도서 신청자ㅋ)도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도 기대됨!

 

에티엔 발리바르 『마르크스의 철학』 (오월의 봄)
ㅡ 명성 자자한 발리바르 책은 처음 읽는데 오~ 기대

 

 

리처드 화이트 『자연 기계 : 인간과 자연, 환경과 과학기술에 대한 거대한 질문』  (이음)
ㅡ 흥미로운 책 같은데 아무도 관심이 없네-_-... 그래서 내가 읽어 보기로!

 

 

 

 

지난번 희망도서 받은 지 이틀 만에 희망도서 또 도착;
두 달 치를 왜 한꺼번에 주는 거야ㅠㅠ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괜찮아 -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1권』 (현대문학)
ㅡ 컴버배치 커버가 아니라니! 급실망ㅜㅜ;;

 

마이클 셔머 『도덕의 궤적 :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바다출판사)
ㅡ 베스트셀러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저자이자 과학적 회의주의 잡지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의 과학적 회의주의를 맘껏 느껴보자! 768쪽 벽돌 책;;;

 

찰스 퍼니휴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 우리 마음속 친구, 뮤즈, 신, 폭군에 관한 심리학 보고서』(에이도스)

ㅡ 미리 보기로 읽고 더 읽고 싶어서 도서관의 옆구리를 찔러 받아내다^0^)

 

 

 

 

 

 

 

 

 

 

 

 

 

● 2018년 7월 내가 산 책

도서관 책은 비싼 거, 내 책은 경제 사정상 저렴이;_;);

알라딘은 시집 한 권도 무료배송이다!
굿즈 고르는 게 너무 피곤해서 당장 읽고 싶은 이수명 시집 『물류창고』만 사려고 했더니 슬라보예 지젝 외 『나의 타자』(인간사랑, 2018)에 등장하던 밀란 쿤데라 『정체성』이 중고도서로 둥둥 떠다니길래 겟~
바닥난 알라딘 원두도 공수~
역시 당일택배 알라딘 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다가 고전소설 특유의 문체 때문에 살짝 졸음이 오려고 하던 게 싹 달아남@◇@
이수명! 이수명! 시인 이름을 운동선수 응원하듯 부르고 있는 나~~~

난 이수명 시인의 시크한 지리멸렬(형용모순;)이 좋더라~

 

노점의 순간에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어도 좋아

여름에 우리는 만난다. 만나서 혼잣말을 한다. 여름에는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고 여름에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언제라도 좋아 우리는 단번에 서로의 목을 부러뜨린다. 이대로 어질러진 테이블이 좋아

ㅡ 이수명, 『물류창고』,「여름에 우리는」  중

 

안 사면 아쉽고a 급박하게 살 책도 없고 해서 굿즈 고심만 조금 하고 삼ㅋ;;;

여성 구매자 비율이 높아서 그런지 대체로 맘에 드는 굿즈가 문학/에세이류에 몰려 있는데 굿즈 때문에 그쪽만 계속 살 수 없는 노릇. 이번엔 전문서적 중심으로 사려고 노력!

가방 부자;; 에코백 또 생김;;; 준다는데 안 받긴 그렇잖...'▽');;


☆ 수학 패턴 에코백_레카만 수열
- 처음 나왔을 때부터 파스칼 삼각형 디자인 가방 갖고 싶었으나 더워서 블랙 가방 기피; 다른 베이지에 비해 오렌지빛 도는 독특한 색감과 재질.


 

☆ 알라딘 배색 보냉백(옐로우)
- 귀여운 걸 보면 못 참겠다-ㅁ-)// 날 원망하며 가진다! 도시락 싸 다녀야징ㅋㅋ

☆ 문학과 지성 시인선 맥주잔 : 심보선 / 오늘은 잘 모르겠어
컵 재질도 두껍고 완전 내 스타일이얌!
바로 씻어 맥주 부어~~~
이병률 머그 며칠 만에 깨먹은 악몽을 생각해 조심조심... 다른 맥주잔도 있어야 할 거 같은....아, 괴로워ㅜㅜ 굿즈 욕심 버리자고 지난번에 이수명 시집만 쏠랑 산 거 후회되네;_;)

 


굿즈 감상하느라 책은 뒷전;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민음사)
- 질 들뢰즈 책은 수시로 모으는데 이 책도 이제야 소장. 감동ㅜ0ㅜ 그래, 돈 벌어서 이런 데 쓰는 거지! 흥흥

존 M. 히턴 『비트겐슈타인과 정신분석』 (필로소픽)
- 비트겐슈타인과 정신분석을 엮으면 무슨 소리가 나올까 느무느무 궁금!
대학교재/전문서적 5만 원 이상일 때 주는 굿즈 받으려고 아껴두고 안 사고 있었다. 반가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 서커스출판상회에서 낸 하이젠베르크 『물리와 철학』도 맘에 들어 구색을 위해 이 출판사 걸로 세트로 맞춤~

이영광 『끝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ㅡ 살짝 감상하다 보니 제대로 읽어봐야 할 거 같아 샀다. 사은품 맥주잔 탐도 좀 나고;


 

 

 

 


굿즈마니아 소장욕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 책 라디오@@

알라딘 19주년 기념 굿즈 공세에 무척 바빠졌다
<빨강 머리 앤> 책 라디오도 주문하려니 현재 품절이라 기다려야 된다ㅜㅜ
어쨌거나 <자기만의 방>이라도 가져서 다행

내 애청 라디오 채널 kbs 1fm 클래식 방송 93.1(서울)을 바로 잡아보다. 마침 좋아라 하는 <명연주 명음반> 시간
주파수 깨끗하게 잘 잡히고 아이고~ 내 보물이 또 늘었네 ✨
딴 것도 갖고 말 테야!

세로형 여름 천가방(아무튼 외국어)
ㅡ 작고 얇기 때문에 두꺼운 책은 힘들고 시집 하나, 휴대폰, 카드지갑 등의 소품 휴대가 적절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출판사)
ㅡ 종이책으로 이미 가지고 있고 완독도 했지만 분량에 비해 쉬운 책은 아니라 수월한 재독을 위해 전자책 재구매. 유시민 작가 추천이 아니어도 이 책의 우월함은 펼쳐 보면 누구나 알게 됨~ 나도 적어도 3번은 읽을 테닷



마이클 셔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ㅡ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개만 절레절레해서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이런 책을 읽고 정보를 널리 알리고 싶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내 나름 독서의 뜻. 책의 의미도 독서도 나만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컬러의 말 : 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  (윌북)
ㅡ 예술에 관한 책은 언제까지나 내 관심사

 

 

 

 

 

 

 

 

 

 

 

 

● 나 혼자(?) 이 여름 고전 탐독의 시간

 

 

늘 염두에 두고 있던 플로베르  『감정 교육 』1, 2권을 다 읽었다. 

기이하게도 플로베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두 1821년생이다. 특히 도선생은 나와 같은 전갈자리좌ㅋㅋ(커트 보니컷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에서 그랬듯 웃자고 하는 소리)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두 사람 다 아버지가 의사였고 세상을 일찍 떴다. 20대 중반에 첫 간질 발작을 경험한 것도 흥미롭다. 이 경험은 그들 작품에 상당히 많이 반영된다.


 

"우리 각자는 마음속에 고귀한 방을 갖고 있지요. 난 그것을 벽돌로 막아버렸지만,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요.”(플로베르)

"멍청이가 정말 날 피곤하게 한다고! 어떤 견해를 퍼뜨리려면, 내가 볼 때 가장 공정하고 가장 강력한 방법은 전혀 아무 견해도 갖지 않는 거야.”(『감정 교육 1』, 데로리에)

1권 느낌은『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위대한 개츠비 』와 『연인』 중간? 

1848년 프랑스 혁명과 정치 사회상이 더욱 부각되는 2권은 분위기가  다르다.

다 읽고 나서 왜 이 소설이 사랑 소설만이 아닌 역사 소설인지 깊이 통감했다. 그리고 이 시기, 사상과 돈, 정치적 급변 속에 산 작가들의 삶, 작품, 생각들에 내가 왜 특히 끌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펭귄클래식은 작품마다 해설을 대신하는 서문이 인상적인데 펭귄클래식『감정교육』의 제프리 윌 서문도 읽어볼 만하다.

 

 

 


 

 

 

 

 

 

 

 

 

 1. 새로움 2. 솔직함 3. 클로즈업 4. 인과적 실험의 실행 가능성이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치가 종합한 빅 데이터의 네 가지 힘이다. 자세한 설명은 책에서 확인/

현실에서 많은 거짓말을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본심을 밝히는 무수한 사람들 덕에 빅 데이터는 의도치 않은 힘을 지니게 된 듯하다. 나심 탈레브처럼 빅테이터 회의주의자들도 있지만 물리학 탐사에서 혁신적인 도구였던 ‘현미경과 망원경’에 버금가는 혁신적 도구가 ‘디지털 데이터’라고 말하는 세스의 주장이 허황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래 전망 보고서보다 더 가깝게 빅 데이터를 실생활에 적용할 아이디어 제시도 좋았다. 바로 추진되지 않는 이유가 짐작되지 않는 바 아니지만. 재밌는 정보가 많으니 빅 데이터와 심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가볍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책들을 사고 빌리고 읽느라 한 주 내내 더위보다 책 빚쟁이에게 더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거짓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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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16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다른 건 죄다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코히 비루만이 눈에 들어오네요...

날이 많이 더운가 봅니다.

AgalmA 2018-07-18 01:25   좋아요 0 | URL
아하하^^; 비루가 빨리 식어 넘 슬픈 여름이네요ㅡ.ㅜ

2018-07-16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7-18 01:26   좋아요 1 | URL
돈 많아서 책 탕진가 되고 싶어요-ㅋ-)

겨울호랑이 2018-07-18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AgalmA님께서는 ˝신-인간˝ 명제에 빠지신 듯 합니다.^^:) 신이 세상(world)을 만들었다면. 신의 존재는 세상을 넘어선 우주(universe)차원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사람이 세상에 속하기 때문에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창조론적 관점에서도, 괴델의 증명의 연장선상에서도 그렇다 여겨지네요. 그런 의미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 신을 믿는 이들이 스스로 생각과 행동을 통해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가진 이들 중 상당수의 행태가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더 하기에, 신에 대한 회의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신론이 퍼지는 세상을 탓하기보다, 무신론이 퍼지도록 종교를 가진 이들(저를 포함한)이 먼저 반성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AgalmA 2018-07-20 22:48   좋아요 1 | URL
<만들어진 신> 리뷰 정리하면서 말씀하신 부분들도 짚고 넘어가고 싶었는데요. 바빠서 미뤄지고 있네요ㅜㅜ

일신론-이신론-범신론 구분없이 마구잡이로 신을 거론해 혼란을 양상하는 것도 현재 문제죠. 리처드 도킨스는 온건한 종교의 묵인도 극단주의까지 허용하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악덕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신을 생각한 것은 결국 현실을 제대로 통솔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성 문제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그게 현재까지 이어온 관습이 된 것이고요.
반증불가능성 때문에 신 개념을 용인하는 논리순환으로 빠져서는 안 될 것이겠고요.
 
물류창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510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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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창고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하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떠오른다. 슈뢰딩거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확률 문제를 말할 때의 역설이다. 미시 세계에서 하나의 전자가 확률적으로 위치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다면 물류창고는 거시 세계의 사물이라 그럴 수 없을까. 언어가 상징 기호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양자역학에서 대상에 대한 관찰자의 관측 행위가 대상의 상태를 결정하듯이 언어에서도 서술자의 인식 행위가 대상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어의 특성상 읽는 자의 해석도 감안해야 하지만 대상을 선택하고 배치를 결정하는 서술자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래서 나는 이수명의 물류창고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이수명의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무한증식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보르헤스) 같은 세계는 이번 시집의 첫 시에서도 바로 드러난다. “무덤 속을 미친 듯이 빙빙 돌았다”(「나의 경주용 헬멧」) 이수명 시는 늘 그렇듯 주체와 행위자, 공간 모두 모호하다. 무덤 속에서 빙빙 돈다는 자체가 불편한 모순을 체험하게 하는데 그렇다면 이 무덤은 누구의 것? 사실 이건 무덤이 아닐 수도 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 물건들이 계속 사라지고 증식하는 시공간은 이 시집 전체를 언어의 물류 창고로 보이게 만든다. 오늘과 밤을 잃었는데 오늘과 밤은 계속 온다(「밤이 날마다 찾아와」). 풀이 한 포기도 없는데 모두 모여 풀을 뽑는다(「풀 뽑기」). 죽음은 죽음을 죽인다(“모두들 죽음으로부터 다시 한 번 / 튕겨 나와 / 무언가로 죽음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디야 커피」). 최근은 점점 더 최근으로 갱신되지만 끝을 알 수 없다(「최근에 나는」). “이미 깨어 있어서 / 언제나 깨어 있어서 / 다시는 깨어나지 못해 아무도 나를” 깨울 수 없다(「물류창고」, 29페이지).
    
1부에 집중적으로 제시된 「물류창고」 열 편의 연작시 속에는 미시 세계의 파동과 전자들의 움직임들처럼 명확히 관측할 수 없는 것들로 혼란스럽게 섞여 있다. 우리나 오늘과 내일의 구분도 중요하지 않고 연극을 하든 말이 안 되는 무슨 대화를 하든 큰 의미가 없다. 가야 할 배송 물건과 돌아온 반송 물건이 섞여 있는 중첩의 장소인 물류 창고니 이상할 게 무언가! “자신이 왜 그렇게 흰 목장갑을 끼고 있는지 몰라 장갑 낀 손을 내려다”(마지막 「물류창고」 시, 50페이지) 보는 이해 불가능한 상태만이 체셔 고양이의 미소처럼 남을 뿐이다. 
    
2부의 첫 시는 무한을 계산해내던 칸토어(혹은 칸토르)의 무한집합론이 연상된다.

“숲 속에서 네가 나왔는데 화분을 들고 서 있었는데 화분에는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아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너에게 말했지 화분은 단단하지 않다고 네가 붙잡는 대로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있다고 너는 말했지 시신을 찾는 사람들이 여태 숲속에 있어서 숲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시신이 텅 비어 있어서 시신에는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아서 시신이 없다. 처음부터 없다. 하지만 시신을 찾는 사람들이 여태 숲속에 있어서 숲을 늘리고 늘려서 그렇게 숲을 들치고 마침내 시신이 발견되는 것이다. 시신으로 나를 몰아내는 것이다. 나는 없다. 처음에는 없다. 시신이 웃는다. 숲속에서 네가 나왔는데 너는 누구의 시신인가, 너는 화분을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 묻는다.”

ㅡ 「너는 묻는다」 시 전문

애초에 없는 것을 만들고, 없음(시신) 속에 있음(숲)을 넣는 기묘한 상황! 이러한 역설 상황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거의 유사한 뒤통수로 돌아오는 중이다”(「녹지 않는 사람」). 안부는 돌고 돌아 내게 다시 묻고(「안부 기계」), 집은 연립으로 도달하며 알 수 없게 되고(「연립주택」), 모든 것이 노면 위를 지나가지만 우리는 상태와 순간만을 볼 뿐이며(「노면의 발달」), 눈이 오고 숱하게 겪었고 눈으로 보면서도 우리는 매번 놀란다(「투숙」). 우리는 그저 공처럼 개처럼 이상한 운동 상태에 있다(「오늘의 경기」, 「원주율」, 「머릿속의 거미」, 「계속」). 살아 있다면 우리는 정말 지쳐야 정상 아닌가. 
    
끝장을 바라고 있지만 이 운동을 아무도 멈출 수 없다. 3부의 시들은 그래서 더 절망스럽다.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고 있다. 하얀 직사각형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네모난 유리 창문들, 현관문들이 줄지어 있고 이불이 혼자 춤을 춘다. 기우뚱거리며 떨어질 듯 날아오를 듯 위태롭게 떠다닌다. 도약 중에 잠깐 접히다가 두 번 다시 같은 모양으로 접히지 않는다. 저 이불은 너무 많은 직사각형을 가지고 있구나,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고 있다. 이불은 어떤 소식도 세상에 전하지 않는다. 먼지를 쏟아낼 뿐이다. 먼지들은 자리를 바꾸면서 떠돈다. 어떤 먼지는 다시 이불에 달라붙는다. 빙빙 돌면서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먼지 속에서 이불은 언제 멈출지 모른다. 무엇을 겨누지도 못하고 각도를 맞추지도 못하고 어떻게 멈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혼자 춤을 출 뿐이다.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고 있다. 커다란 직사각형을 계속해서 흔들어대고 있다. 저 이불을 누가 그만

빼앗았으면”

ㅡ 「이불」 시 전문

수도 서울은 삶의 장소가 아니라 ‘소멸’ 좌표에 더 가깝고(「여기서부터 서울입니다」), 아무리 부서져도 정작 갈 곳도 없고(「흥미로운 일」), 어지럽게 떠있다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덤불 가운데 식탁보」). “비는 길고 계속 길어서 모든 비가 이어져” 있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모든 것들은 바닥에 흩어져 있다(「나의 중얼거리는 사람」). “눈을 뜨는 순간 모두 찢겨져 뒤로 물러난 듯이”(「우리를 제외하고」) 이수명의 시들은 끔찍하게 갇혀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누구도 예외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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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0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7-07 16: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수명 시인 데뷔 때부터 좋아해서 신간 나오면 늘 부리나케 찾아봤죠. 여전히 좋아요. 읽고 싶게 시를 쓰는 시인의 공이 크겠죠 :)
 

 

 

♥신해철 오르골♥
♥일상으로의 초대 오르골♥
강헌『신해철』 리뷰 이벤트 당첨 선물
신해철 굿즈! 얼마나 갖고 싶었던가!
한 달 만에 받았네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했더니 made in japan, sankyo -ㅁ-)"
이 귀한 걸 택배가 다른 데로 가서 tag 훼손ㅜㅜ... 택배기사님 미워😢

˝나는 결코 그의 명복을 빌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그는 여전히 나와 같이 살아갈 것이므로.
우리가 그를 호명하고 그의 음악이 가진 감동을 나누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 숨 쉴 것이므로˝
ㅡ강헌

˝일상으로의 초대˝ 태엽을 많이 감으면 약간 댄스풍이다가 느려지면서 끝날 즈음 뚝 끊기는 맛이 넘 슬프고 좋아요😭😭

살아 있을 때 많이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
as가 안 되기 때문에 신줏단지 모시듯 해야 함. 벌벌)))
감동의 눈물.... 고마워요💕 돌베개 출판사

 

● 책 선물 -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 』

 

심각하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읽고 있는데 갑자기 "택배요~~" "읭?"

얼마 전에 더 퀘스트에서 나온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드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도 샀는데 또 반가운 책을 내셨더군요!

작년에 읽은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http://blog.aladin.co.kr/durepos/9325788 )가 인문학/수사학적 접근이었다면 『과학 같은 소리 하네』는 과학적 근거와 사례, 데이터 기반 분석 같다.
헛소리 탐구, 재밌겠다! 아아 그리고 바쁘다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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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7-05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합니다. 어쩌자고 그런 쌩고생을...ㅠㅠ

AgalmA 2018-07-05 21:1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희집에 자주 오는 택배기사님이 아니시라 주소도 정확했는데 엉뚱한 데 두고 가셨더라는... 택배 뜯은 분이 엄청 미안해하며 빨리 돌려 주셔서 다행ㅜㅜ;

겨울호랑이 2018-07-05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 같은 소리하네」는 어쩐지 게르마늄 팔찌를 차고 옥장판을 깐 은나노 침대 위에서 바이오 원적외선을 쬐면서 읽어줘야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ㅋ

AgalmA 2018-07-05 21:52   좋아요 1 | URL
제목이 너무 싼티 나죠ㅋ 정치인들 헛소리 타파 글이라 생활보다는 정치적입니다.즉 옥장판 계열쪽은 아녜요ㅋ...생각보다 내용은 제법 알차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05 21:5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그럼 토마스 쿤 형님쪽 이야기라 다시 짚어봅니다 ㅋ AgalmA님의 멋진 리뷰를 음악과 함께 기다려 봅니다. 책 선물하신 분은 다른 분이신데 제가 너무 요란했네요 ㅜㅜ

akardo 2018-07-05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 축하합니다. 저도 신해철님 팬인데 오르골 당첨되셨다니 엄청 부럽네요. ㅋㅋ

AgalmA 2018-07-05 22:0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이 오르골 받고 싶어서 병 날 거 같았는데ㅎ;; 가문의 영광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05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상으로의 초대」를 들으면 어쩐지 커다란 이벤트 대신 깊은 밤 손편지로 청혼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

AgalmA 2018-07-05 22:18   좋아요 2 | URL
신해철이 경상도 아버지 닮은 구석이 좀 있는 듯. 카리스마 뒤에 장난기와 재롱이 있듯이 거창한 이벤트 보다 이런 은근한 고백이 어울리는 사람^^

2018-07-06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7-06 22:17   좋아요 0 | URL
그 생각만 하면 진짜....아휴...아휴....휴....

sslmo 2018-07-06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립니다.
오르골만해도 부러운데 신해철 오르골이라니요~^^

AgalmA 2018-07-06 22:18   좋아요 1 | URL
넵! 제 보물 목록이 추가됐습니다^^... 눈에 띌 때마다 태엽 감아 듣는데 혹 고장날까봐 자주 들으면 안 되나 걱정도 되고;;

cyrus 2018-07-06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한 달을 어떻게 참으셨어요? ㅎㅎㅎ 정말 큰일날 뻔 했어요. 배송 문제가 커졌으면 몇 달 동안 안절부절했을 거예요.. ^^;;

AgalmA 2018-07-06 22:20   좋아요 1 | URL
일본에서 제작하는 거여서 이렇게 오래 걸렸던가 봐요. 6월 말일에 보낸다는 건 공지로 알고 있었지만 7월이 한참 지나도 안 와서 어떻게 된 건가 물어봐야 하난 소심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배송까지 딴 데로 갔으니-ㅁ-;;;;; 물건 뜯어보신 분이 엄청 미안해하며 빨리 돌려주셔서 이나마도 복이지요ㅜㅜ;;

나와같다면 2018-07-07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게로 와요.. 내 생활속으로..
너무 멋진 고백 아닌가요..?

AgalmA 2018-07-09 00:28   좋아요 1 | URL
이 곡 처음 듣자마자 신해철이 대단한 사랑에 빠졌나보다 했죠^^! 역시나 부인 만났을 때 곡이더군요.
 

재밌는 기록 고마워요^^ 우리 동네에서 1등하려면 한 달에 44권 더 사야 한다 그래서 가뿐히 포기; 그런데 전자책 세트로 산 거는 왜 1권씩으로 계산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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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7-03 07:51   좋아요 2 | URL
제가 월 평균 16권 정도 사는데 거기다 44권을 더 사라는ㅎㅎ;; 그럼 한 달에 60권이니 하루 두 권씩 읽어도 모자랄 지경ㅋ 얇은 시집만 읽어도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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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고, 서스펜스를 잘 살린 강화길, 천희란 단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김금희 작가 작품은 홍상수 풍 영화로 찍으면 재밌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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