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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광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도쿄 일기 & 읽기
김정운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한국의 논객이 일본 우익 언론에 출현하여 서구화로 일본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에 한탄하는 글을 쓴다던가 하는 일이 있다. 그들에게 일본은 마음의 고향격이다. 버릇없는 서구 자유주의도 아니고 배은망덕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아닌 것으로, '자기다운 것'으로 설정한 것이다.
'자기다운 것'이란 대체로 (메이지 발명품인) 일본다운 것으로, 일제 식민 교육을 통해 조선인이 자기다운 것으로 여기게 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패전과 해방 후에 천황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하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형식은 뿌리 그대로 살아남았고 이제는 현대 일본을 훈계할 지경이다. '유도리 교육' 따위가 일본을 망쳤다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일본 열광>의 지은이에게서 암암리에 느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일본에서 권위의 실체는 사라졌지만 권위의 절차는 남아있다고 언급한다. 일본에 대해 미묘하게 비판적이지만 절차가 남아있음을 훌륭하다고 여긴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다른) 목표도 없으면서 권위도 절차도 없다. 목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일본에 비교해서 한국은 상태가 매우 불량해보임을 지적할 뿐이다.
저자가 지나가듯 언급한 "목표"란 문제를 파고들어갔다면 <일본 열광>은 전혀 다른 책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 사회가 외면한 목표는 무엇인가 혹은 우리 사회에 가능한 새로운 목표는 무엇인가라고 묻게 될 것이고, 그랬다면 386 세대의 재미없는 시절도 암중모색의 한 시기로 뜻있게 자리매김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목표없어 보이는 현재의 한국도 긍정적인 각도에서 볼 여지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는다.
그럼 그가 칭찬하는 (일본의) '절차'란 것은 뭘까? 개인은 불편해지더라도 사회는 안정적이 되게끔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적 불만이 있어도 사회 전체를 위해 각자를 자발적으로 억제하도록 하는 내면화된 관습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좌우는 물론이고 상하의 위계질서까지 존중해주는 마음가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위치를 스스로 중시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 사전에도 없는 "상대적 박탈감" 따위에 놀아나면 안된다. 뭐 대충 이런 식이다.
물론 개인이 불편해지고 사회는 안정되는 시스템은 부작용이 있음을 저자는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본을 본보기로 보건데) 부작용 따위는 즐겁게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 한국 사회가 (일본과 다른) 새로운 목표가 분명히 없다면 일본처럼 부작용을 감수하며 사는 것도 충분히 즐겁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그 부작용의 고통을 덜어주는 수많은 진통제 상품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세계 각지에 잘 팔리는 문화가 되었으니 이 정도면 근사하지 않은가?
저자는 일본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개의 있다 없다 식의 책들이 일본을 단지 글장사를 위한 주전부리감으로 삼는데 그치는데 반해 이 책의 저자에게 일본은 일종의 아버지급이다. 단 저자는 '일본'이란 아버지의 멋짐과 후짐을 다 보는 착한 아들이다. 그래서 일본 문화의 유아적인 면조차 그에겐 비판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또 막 나가는 한국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나름 훌륭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이 책으로 일본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첨부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쓸만한 첨부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일본에 대해 이렇느니 저렇느니 단언하는 습관을 가진 이들을 위한 색다른 재료 정도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