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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표지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암벽에 매달린 채 한 줄의 자일에 의지해 누군가를 지탱해주고 있는 모습. 서로의 목숨을 내주며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안자이렌. 서로를 자일로 연결하면 파트너와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는 그 의미를 책을 덮은 이제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오르지 않으면 안 돼. 마음 속에 울리는 안자이의 소리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그 17년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기 위해. 1985년 8월 12일 모드 것은 그날 시작되었다." - 13page
"어쩌면 이것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은 그런 곳이니까요." - 313page
인생의 오십을 훌쩍 넘긴 노장과 파릇한 이십대의 청년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산 '쓰이타테이와'를 오르고 있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서로를 연결해주는 자일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은 왜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산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던지며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장은 유키 가즈마사라는 지방 신문기자이다. 그리고 이십대의 청년은 그의 친구 아들. 이 둘은 산을 오르며 17년 전의 사건을 떠올린다. 현실에서 말할 수 없었던 진실들을 산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에게 하나 둘 털어놓게 된다.

17년전 그 날. 승무원 15명, 승객 509명을 태운 점보제트기가 추락했다. 제대로된 현장르포를 위해 유키는 성공 여부를 떠나 누구보다 애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날 그는 약속을 한가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금 힘겹게 오르고 있는 '쓰이타테이와'를 청년의 아버지와 오르기로 한 약속. 약속 당일 산을 오르고 있다는 연락 대신 의문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된다. 그는 무슨 이유로 왜? 알 수 없는 길에 쓰러져 있었던 것일까? 4명만이 살아남고 520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 속에서 정신없이 특종을 향해 맹진하던 유키앞에 젊은 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살을 했던 모치즈키의 사촌이 나타난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려 했던 모든 일은 갑자기 한순간에 유키에게 닥쳐왔다. 그 순간이 바로 산을 오를 때 흥분 상태가 극한에 달해 공포감이 마비된다는 클라이머즈 하이일지도 모른다. 마비가 풀리는 순간 더이상 오르지 못하고 멈춰버리게 된다는 순간.
"유키는 무의미하게 쌓인 나이를 저주했고 인생의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나타난 모치즈키 아야코라는 순수한 여성을 저주했다." - 405page
유키는 현장르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참사의 특종 앞에서 그의 신념이 흔들린다. 가족의 생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유키는 생각을 돌릴 수 있을까. 자신을 향해 태양처럼 빛을 밝혀주는 믿음직한 아내가 자신이 사직서를 써도 자신을 향해 계속 빛을 밝혀줄지 유키는 장담할 수 없었다.

"열세 살이 된 준은 어두운 눈동자를 가진 소년으로 자랐다. 아버지로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전해줘야 했던 걸까.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도대체 자식에서 전해야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유키는 알지 못했다." - 20 page
"뼈 속까지 스며드는 고독.....
얼굴이 떠올랐다.
유미코...... 준......유키
있는 것만으로 좋다. 단지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마음 같은 건 통ㅇ하지 않아도 좋다.
혼자는 싫다. 저 창고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더 이상...... " - 136pgae
"혼자 살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혼자 사라져갔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 102page
불행한 어린 시절을 살았던 유키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집에 있는 것보다 직장이 더 편했고 혼자사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과거는 현실에서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이상의 탈출구란 보이지 않던 순간 올풀린 실타래마냥 그 사건을 계기로 바뀌기 시작한다.
유키가 담고 있는 고민과 걱정들은 내 아버지, 내 남편이 겪고 있는 현실의 것들이다. 알고는 있지만 보지 않으려고 했던 그들의 생각들을 유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다. 현장르포를 다루는 긴박한 상황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보다 유키가 갖고 있던 어릴 적 아픔을 극복하는 것. 틀어져버린 아들과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병원에서의 그 때 말이지, 나는 네가 아닌 준을 끌어안고 있었다고 생각해. 네가 매달려줘서 너무 기뻤어. 그렇지만 사실은 그게 준이기를 바랐다." - 114page
17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입밖에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유키와 청년은 한 고지, 한고지씩 오를 때마다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한다. 유키의 눈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 오해를 풀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부분은 가슴 뭉클하게 감동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순간에서도 아들을 생각하는 유키의 마음에 부정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발생 당초에는 아무리 경악과 떨림 속에 받아들였다고 해도 뉴스라는 것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신선도를 잃게 되고 마침내는 '부패'한다.
- 359page
"무거운 생명과 가벼운 생명, 중요한 생명과 그렇지 않은 생명
신문은 잊어버렸겠지요. 아버지, 위대하지도 않았고,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질 것 없으니까요. 작고, 가볍고, 중요하지 않은 생명이었으니까...... 그래서 중태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갔던 것을 기자는 잊었겠지요.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379page
"저의 아빠와 사촌 오빠의 죽음에 울어주지 않았던 인간들을 위해서, 전 울지 않겠습니다. 가령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사고로 죽어간 사람들이라도." - 396page
유키라는 한 남자의 고뇌에 대해서도 담고 있지만 신문기자에 관한 이야기였던 만큼 대중을 향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는 대중매체들. 그 속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하기보다 사건 그 자체를 올린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엔 무관심하다. 핸드폰이 없던 호출기 시절의 이야기나 스마트함을 즐기는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주목을 끄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옥하는 이야기들은 많지만 사건의 당사자나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기사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워진다.
비난과 애정보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이 책 속의 한 여인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소리없이 잊혀져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린다.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제대로 공감할 수 없는 것일테지만 감각을 자극하는 이슈만을 쫓는 행위만이라도 이제는 그만둬야겠단 다짐을 하게된다. 세상엔 뉴스 1면을 장식할 생명이 있고 작고 그렇지 못한 생명이 있다는게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볍고, 중요하지 않은 생명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 속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겨본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있는 힘껏 달린다. 넘어져도 상처를 입어도 패배를 맛보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계속 달린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헤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클라이머즈 하이. 오로지 위를 바라보며 곁눈질도 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 오른다. 그런 인생을 보낼 수 있다면." -430page
처음 표지와 소개문구만 보고 산행이야기와 극박한 특종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가 마음을 울리는 부성으로 눈물 짓기도 하고 과연 특종을 잡을 것인가!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놓지 못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빵터졌다. 재미있게 읽었다!라는 표현밖에 더 붙일 것이 없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