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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 살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제인구달과 이효리가 손을 잡고 있는 표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채식주의자인 이효리와 꿈꾸는 황소라는 제목을 보고 아마도 육식에 반대하는 이야기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2010년 제인 구달이 옮긴이에게 좋은 책이니 꼭 읽어 보라는 짤막한 메시지와 함께 보내준 책이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을 보니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보내주신 것 같다는 생각에 공동번역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옮긴이의 말에 담고 있다. 옮긴이 최재천. 얼마전 서울동물원에서 돌고래쇼의 일원으로 일하던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결성된 제돌이 방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니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이론적인 감상의 책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효리와 제인구달의 표지 사진이 있는 띠지를 벗겨내면 진짜 소의 털같이 느껴지는 진짜 표지가 나오는데 나는 띠지를 벗겨낸 이 책표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왠지 더 진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표지다.

"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는 것, 그보다 잔인한 운명은 없다!"
모든 것은 주어진 삶에 익숙하게 느끼지 않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황소에 관한 이야기다.
" 말을 탄 사람들이 으르렁거리는 개들을 몰고 와서 더 좋은 목초지로 우리를 데려 갈 테고,
그러면 우리는 다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를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죽고 말 것이다.
우리가 굶어 죽으면, 그들 또한 굶어 죽는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이곳의 법칙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소들과 함께 기다린다. 사람들은 이곳을 고웰 농장이라 부르고, 나는 나 자산을 에트르라고 부른다. 내 이름은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이다."
목장에서 사육되는 소중 하나인 에트르. 에트르는 자신에게 이름을 붙이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숫소다. 하지만 다른 소들도 사람들도 누구하나 에트르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다. 에트르만이 틀에 박혀 메마른 풀을 먹고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사는 유일한 소다. 짐승이 아닌 생각을 지닌 소.
우리의 식탁에 오르내리는 고기의 제공자! 소가 아니라 주인공 에트르는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며 목장에 갇혀 사는 소들에 대한 이야기, 생각들을 들려준다. 처음에는 이런 말도 안되는 설정에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동안하게 되는데 점점 에트르에게 푹 빠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소를 감정이 있는 생명체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송아지였을 때 나는 엄마의 젖무덤에 내 얼굴을 묻곤 했다.
"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는 것, 그보다 잔인한 운명은 없다!"
모든 것은 주어진 삶에 익숙하게 느끼지 않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엄마가 없는 지금은 숨을 장소가 없다. 나는 끔찍한 소다.
이 목장에서 가장 못생긴 황소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시냇가에서 물을 들이켜는 것보다 비가 왓을 때 생긴 물웅덩이에서
빗물을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에트르는 다른 소들과 떨어져 자신만의 사색을 즐기고 울타리 바깥의 넓고 푸른 들을 하나둘 마음에 담는다.
우연히 다가온 '내암소'에게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엄마의 품에서 느꼈던 따뜻함도 느낀다. 하지만 동물의 세계는 냉정하고도 욕망이 지배하는 법. 목장의 1인자 숫소에게 '내암소'를 빼앗길뻔 한다. 죽도록 숫소에게 밟히면서도 "내암소"를 뺏길수 없어!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에트르. 평범하고 못생긴 소 에트르는 처참하게 무너지지만 다시 돌아온 "내암소"를 용감하게 지키며 둘 사이에 수송아지도 태어난다.
숫소 에트르가 '내암소'에게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새끼를 헌신적으로 키우고 보살피는 모습에 인간보다 더 끈끈한 부성애를 느끼게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에트르=소라고 생각되기보다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된다. 그래서 치명적 결말에 다다를 수록 더욱 먹먹한 아픔을 느끼게 되는가보다.
에트르의 눈을 통해 목장에서 소가 도살되는 장면을 정말 리얼하게 접할 수 있다. 아마도 실제로 이런 장면을 보게 된다면 다시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사람처럼 참 잔인한 동물도 없다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살기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더 나아가 돈을 벌기 위해 행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도 끔찍하게 다가온다.
에트르의 입장에 동화가 되고 나니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소들이 무참하게 목이 잘리고 내장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자체가 정말 왜 육식을 그만둬야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얼마전 읽었던 한봉지 작가가 들려주는 소방귀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햄버거 패티를 위해 소를 키우는 것이 자동차 매연보다 환경오염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먹기위해 소를 무더기로 가둬놓고 살육하는 건 정말 다시한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자꾸 소가 아니라 에트르가 떠오르게 된다.
"미안해.미안해!미안해!" 나는 비명을 지르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내 몸 안에 갇혀 나오지 않는다.
내 뿔을 자른 남자가 커다란 관을 그녀의 두 눈 사이에 놓는다.
"검은 황소가 칸막이 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있다. 죔소가 목을 감고 있다.
검은 황소는 전혀 반항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검은 황소의 뿔을 자르고 이마에 구멍을 내고
거꾸로 매달아 목을 따고 가죽을 벗기고 발굽을 자르고 내장을 빼내고 작은 조각으로 나눈다.
이 야만적인 풍경은 나를 압도한다."
"가끔 나는 내가 지금처럼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울타리 밖을 내다보기보다는 울타리 안을 바라보며 사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울타리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한 번 느낀 감정을 무시하며 사는 것은 옳지 않은 것같다. 이건 사실이다."

꿈은 이루워질 수 없기에 꿈이라고 했던가!
꿈꾸는 황소 에트르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버린다.
'소'의 눈을 통한 이야기, 생각하는 소라니 정말 말도 안되는 우화지만 가슴 뭉클한 눈물을 뽑아내는 깊은 이야기였다.
에트르. 정말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머리에 울타리 안의 소들을 바라보는 에트르의 모습이 남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바로 채식주의자가 되자!라고 결심하지는 않겠지만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생각은 확실하게 달라질 것 같다.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체를 인간이라는 특권으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을 꼭 한번 권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