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고 ] 이 페이퍼는 특정 학교 출신이 향수에 젖어 쓰는 두서 없는 글이니,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

매주 토요일 읽는 신문의 북색션에 '피아노 치는 변호사'라는 (썰렁한) 제목의 책이 소개되었다.
박지영 변호사라..... 알고보니 중학교 고등학교 후배였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런 류의 자서전은 보지 않는데, 책 소개에 보니 의외로 중고교 시절의 이야기가 많아서 주문하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의 전공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마디로 하자면, 정말 열심히 살아온, 그리고 임파선암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싸워 이겨낸 참 존경스러운 후배이다.
중고교 시절에 대한 감상적인 추억은 과연 타 학교 출신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공감이 갈지는 미지수이지만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읽기에 즐거웠다. 모처럼 옛날 생각에 반나절 푹 잠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예원 입학 시험을 두고 쓴 내용은 조금 과장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수년 전부터 렛슨을 받으며 준비한다느니, 예원 입시를 위해 학교의 경시반에 들어가려 한다느니, 예상문제집이 있었다느니.... 하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물론, 전공 악기는 최소한 3년쯤 전부터는 시작해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옛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이런 글은 이번이 아니면 영영 쓸 핑계도, 쓸 감상도 들지 않을 것이기에 이번 기회에 쓰고
ventilation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주절거리려고 한다.
이 때의 추억은 마치 '나의 살던 고향' 같은 향수가 피어오르게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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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에 어리버리 했던 것은 나만은 아니었겠지.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담임선생님이 '이력서'를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이력서라니?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쓸 '이력'이 얼마나 되기라도 한가?
나는 초등학교 어디 졸업,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때 연주회 한 것 이외에는 쓸 게 없었다.
그 연주회도 그나마 피아노 학원에서, 그리고 렛슨 선생님이 제자들 합동 연주회를 한 것이었다.
초라한 나의 이력서와는 달리, 다른 친구들의 이력서를 힐끗 보니 참 다들 대단했다.
무슨무슨 콩쿠르 입상,
언제언제 연주회, 협연.
학교에서는 학생회장이니 부회장이니
무슨무슨 장학생상을 받았다느니....
어떤 애는 반에서 반장 한 것을 이력서에 써 넣었다가 다른 애들이 '그것도 이력이라고' 웃는 통에 울쌍이 되기도 했다.
그럼 반장도 못한 나는 모냐. ㅡㅡ;;
그뿐이 아니었다.
나는 한 학기가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는데, 누가 수석 합격한 애라더라,
담임 선생님께 꾸중 듣는 저 애가 모모 재벌 집안 아이더라,....
언젠가는 아버지가 급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알고보니 장차관의 딸인 경우도 상당수였다.
그런 아이들도 그냥그냥 묻혀서 지냈었다.
아마도 특목고나 특목 중학교에 진학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당시는 외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가 없었기 때문에 이 학교에 이런 사람들이 더 모였는지도 모르겠다.
1학년의 첫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표를 받고 나면 반 60명( 당시는 반 정원이 60명이었다.) 중에 다섯명 정도를 빼고는 울면서 교무실을 나온다.
나중에는 울면서 교무실을 뛰쳐나오는 학생을 보면 '하, 저애, 1학년이구나' 하고 달관하게 된다.
나는 첫 시험에서 반에서 11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하게도' 울지 않았다. 그정도 성적 나온 것에도 감사했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의 친구는 첫 시험에서 반에서 5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 와서 어머니에게 맞아서 멍이 든 곳을 보여주었다. 그 친구 경우를 보니 우리 엄마는 천사 같았다.
'전설적인' 연습과 훈련을 받았다는 선배 혹은 동기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렸다.
모 남자 선배는 여름방학이면 집의 연습실에서 몇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으면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더운 여름에 팬티바람으로 연습했다느니,
모모 유명 교수는 연습을 안해오면 렛슨하다가 흥분해서 슬리퍼를 벗어 박자를 쳐주다가 그걸로 등짝을 때린다느니....
후배인 누구는 중2인데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협연한다느니....
동기 누구는 국제 콩쿨에 입상했던 선배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탔다.....
이런 전설 하나하나 뒤에는 피눈물나는 연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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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학교도 장점은 있다.
'나잘났네' 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지내다보니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둥글둥글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남는 것은 간판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공감이 가는 소절이 있다.
"긴장 안 하는 것이 실력이고
긴장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실력이다
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진리를
피아노 공부 15년동안
징글징글하게 대가를 치러가며 깨달아 갔다 "
중학교 생활에 익숙해지고 나서 초등학교 반창회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같은 중학교에 갔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분위기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겨우 중학생인데도 반에서 엘리트와 비엘리트가 확연하게 갈리는 것이었다!
엘리트라 자타가 생각하는 친구들은 앞에 나와서 진행하고 상품도 주로 자기들끼리 나누어갖고 하는 동안에
비엘리트 친구들은 앞에서 누가 무어라 떠들든 관심 없이 자기들끼리 수다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왠일인지 엘리트 친구들보다는 비엘리트 친구들 심정에 더 동조가 되는 것이었다.
역설적이게 비엘리트의 심성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 지금은 돌아가신 - 교장선생님의 당부가 이런 사고를 대변한다.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서 어른이 되었을 때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이다, 내 집안이 어떻다, 내 친구 중에 누가 유명하다 허영심을 가지지 말고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을 내새울 수 있도록 책임감 있는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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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은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이전에는 쉽게 쳤던 곡들을 이제는 익숙하기 치지 못하니 피아노를 치면 그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곡들도 고등학교, 중학교 ---- 요즘은 초등학교때나 치던 곡들도 제대로 못치니 홧병이 날 지경이다.
고등학교 때도 소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수십번씩 수백번씩 반복했고
특히 쇼팽의 곡을 칠때면 원죄의식 강한 나의 성격상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몰입할 수 없어 괴로웠다.
전공을 할 때도 마음에 들기 어려웠던 내 피아노 소리가 전공을 그만 둔 후에는 더 듣기가 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아예 치지 않게 된 지가 20년이 되었다.
그대신 음악을 듣는다.
음악도 피아노가 아닌, 현악을 주로 듣는다.
피아노는 남이 치는 것이라도 그 치는 속내를 자꾸 분석하게 되기 때문에 순수하게 듣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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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그래도 몸에 베어서 고마운 것이 있으니,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습관과 지구력이다.
한정된 시간에 실기와 필기를 다 해야 하는 만큼, 자투리 시간이라도 활용하는 요령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중학교 때 한번은 '악기를 하지 않는 친구들은 그 많은 시간 동안 도대체 무얼할까?' 라고 말했다가
엄마와 이모의 눈흘김을 받기도 했었다. 이건 지금 생각하면 눈흘김 받아 마땅한 말이다. ^^;;
고3때까지도 내신 때문에 피아노를 놓을 수가 없어서 오후 4시 수업이 끝나면 밤 9시 넘어서까지 피아노를 치고 나서야 10시쯤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도 비슷한 시간에 독서실에 왔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학생들은 그때까지 학교에서 '야자'를 하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음악을 하는 것보다 공부를 하는 것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음악을 하는데 왜 지루하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런데 분명히 악기를 다섯 시간 공부하는 것이 공부를 다섯 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지루하다.
왜냐면 공부 다섯시간을 하는 동안의 내용은 계속 바뀌는 내용이지만,
악기 다섯 시간은 같은 곡의 반복, 반복, 반복이기 때문이다.
어디 하루 뿐인가? 한 곡을 시작하면 최소한 3-4주, 길게는 2-3개월씩 같은 곡을 수십 수백번 반복하는 것이니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도 질릴 만 하다. ---- 그럼에도 질려하지 않으니 전공하는 것일게다.
내가 의대에 진학해서 전혀 배우지 못했던 이과 과목들을 쫓아갈 수 있었던 것은 지구력 덕이었을 것이고,
대학생 때 학교 안팎의 동아리 다섯 개 이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활용 요령 덕이었을 것이다.
의대생 시절에 동료 의대생들의 '시간 낭비에 대한 무심함' 에 짜증나곤 했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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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제 대충 넋두리를 다 풀은 것 같다.
박지영 변호사가 천 번은 들었다는 질문, '어떻게 음악을 하다가 이쪽으로 진로를 바꾸었어요?'
이것은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실례이다.
분명히 말하건데, 음악을, 예술을 '제대로' 하는 것은 왠만한 전문직을 뚫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 음악을 계속할 자신이 없어서 바꾸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