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몽환적 느낌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죽음의 문턱에선 할아버지를 통해
보여주기를 원하는데
내포와 상징의 모호함과 지나침으로 의미가 청소년 수준에 맞게 잘 전달될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
정서적으로 다른 이질감이나 이들의 생활도 우리네와는 너무 달라
(그렇지만 이러함에도 어떤책은 스토리의 탄탄함이 이를 극복하게 이끌어주기도 하는데)
상황을 이해하거나 감정에 몰입하거나 하는데 장애적 요소가 되는건 분명한 사실.
그럼에도 이런 장애를 넘어 의미를 따라가 파악해 내고 감동까지 이어가기엔 헉~~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열 다섯살 소녀 제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면서 느껴야할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의 고통 또한
할아버지의 죽음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며
할아버지의 죽음후 깊은 슬픔에 잠겨있지만 결국은 더 많은 내일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한다.  
이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한 이야기 구성치고는 아주 모호한 점이 많아
책장을 덮고도 뭔가 이해되지 못한 찝찝함이 남겨졌다.
할아버지와 리버보이와의 관계성이 무엇인지..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계속 호기심만 불러일으키며 지루한 장면을 반복하는데
참 지치게 만드는 부분도 많다.
그럼 리버보이와 제스의 관계성은 무엇일까?
이것도 결국 모호하게 끝나버린다.
전개될듯 될듯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는 이야기자체가
참 답답했고
이런 메세지를 주는 더 좋은 문학을 차치하고
이 책이 명성을 날리는건 단순히 베스트셀러의 함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한다.
소지루한 책읽기였다.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지?"
"일생이라고?"
"강의 일생일 수도 있고."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어떻게?"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것을 만나든 간에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알고 있니?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
"아름답지 않은 건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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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로 대한민국 한바퀴 - 좌충우돌 전국 자전거 여행기
방승조 지음 / 청년정신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재기발랄한 couple의 자전거 여행기쯤 되시겠다.
이 책 한권으로 서울출발, 서해, 제주도, 남해, 동해로 한바퀴 휘릭릭~ 돌게 된다.
우리가족은 자동차 여행을 즐기지만 여행길에 보면
도로에서 때론 산등성이에서 이렇게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는 라이더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여행길에서 자전거는 확실히 자동차 보다는 느리긴 하지만
스쳐지나는 풍경을 속속들이 눈에 담을수 있고
또 자동차가 가지 못하는 구석구석을 다닐 수도 있고
가다가 맘에 드는 곳에서는 이것저것 생각 안하고 마냥 쉴 도 있겠고...
무엇보다 경비도 절약되고...하는 잇점이 많다.
그리고 느리다는 것도 상대적이다. 책속 couple을 따라가다보면
군을 넘고 시를 넘는게 어째 금방금방 쉽게 되는것 처럼 보인다.
(물론 본인들은 죽어라고 페달을 굴려서 간거지만 어쨌든) 
이렇게 제주도를 포함해 대한민국을 빙~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25일.
해볼만 하지 않은가...

책의 저자는 프리애니메이터가 직업이다.
(그래서 챕터마다 그날의 주요포인트를 만화로 그려주는데 그 읽는 재미도 솔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한달여 걸리는 여행을 감행할수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서도 날마다 PC방을 찾아 메일을 확인하고 작업을 하는 수고를 하지만
어쨌든 한곳에 매인 직장인은 아니니..직장에 매인 많은 이들이 부러운 점이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연인끼리..ㅋㅋ

전체적 구성은 하루하루 날짜별로 단락을 나누어 여행후기를 적듯 편집되었다.
일목요연하기도 하고 독자로서는 정말 하루하루 여행하는 느낌이 들게도 만든다.
그러나 책의 깊이감은 전혀없다.
처음 이런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이 couple도 자전거 전국여행은 처음이었다고)
동기를 부여하거나 그리 많은 준비나 고민없이도 가능하구나 하는 자극제는 될 수 있다.
여행지의 구체적인 소개라든지 여행에서 만난 이들과의 에피소드 같은건 가뭄에 콩나듯하고
couple 여행이다보니 둘이서 매번 토닥토닥했던것(그렇기때문에 부제가 좌충우돌?? 심하다~ㅠ), 그래서 어떻게 화해했다는거,
맨날맨날 뭘 사먹었는지, 어디서 잤는지...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날짜마다 또 반복되고 있어 정말정말 지루하기도 하다.
그나마 위트를 가미해 놓은 덕분에 조금은 참고 읽을수 있었던듯.. 

아무 생각없이 일상이 지루해 아주아주 가벼운 여행기를 읽고 싶은 분은 읽어도 된다.
만화, 사진 섞인 편집, 가끔 톡톡 튀어주는 작가의 멘트..이런게 있어
내용의 부실함을 조금은 메워준다.
이들처럼 couple 라이딩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라이딩 투어, 내 발을 올려 자전거 페달을 밟아 전국에 족적을 남기는 여행의 개념에서 벗어나
여행지에서 좀 더 느긋하게 유적지 답사를 하고
문화재나 미술관 감상을 하는 등 슬로우 투어의 한가닥으로
내면의 깊이를 더하는 여행의 주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류의 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어느날 어딜 가서 어떤 장면을 보았고
그 장면 사진삽입, 그리고 맛집소개, 길찾기...천편일률이다.
좀 더 깊이있는 여행책의 등장을 기다린다.

 


깃발이 흔들리는 걸 

보고서야 바람이 이는 것을

알았네.

 

흔들려 아프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네.

사람의 마음은.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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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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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한 권의 만화를 읽는거지만
만화작가에게 그것도 수채화 만화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든 여정인가가
〈작업 노트〉에 적혀있다. 코믹하게 쓰려고 애는 썼는데 어째 징징거리는걸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한권의 만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힘든 작업이 있었는가를 알기나 하냐?
또는 좀 알아주라~는 징징거림.
어쨌거나 작가의 글을 읽으니 힘들기도 했겠구나싶은 마음은 든다.
그 많이 나눠진 칸칸을 일일이 채색을 하자면...
작업 노트는 만화책이 만들어지기까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그건그렇고..
내용에 있어서는 내용이 진부한 감이 없잖아 있다.
이미 소재로 많이 쓰여진 이야기들, 여기서 또 다뤄지고 있고..
각각의 찌질한(책속 캐릭터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일컫는) 인생들의 찌질한 이야기.
진부하다고는 하나 현사회의 문제를 만화라는 형식으로 다루고자하다보니
형식때문에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잘리는 부분들이 이야기맥을 끊는다.
만화의 한계인가..싶기도.
차라리 채색을 포기하고 허영만씨처럼 내용에라도 충실히
자신의 생각을 소롯이 담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니면 좀 가벼운 소재의 만화를 다루면서 채색을 시도했더라면...
<작업노트>에 적힌 작가의 수고로움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 만화.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만화도 사회문제를 건드리고
만화작가의 의식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에서
최규석님의 앞으로의 행보에 건투를 빈다. 

너희들은 이제 기계가 될 거다.
하루 열두 시간 넘게 햇빛도 안들어오는 교실에서 시험 치고 평가하고 두 달을 반복하면.
우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우리한테 좋은 학벌이 필요해? 아니잖아.대학에 안 가면 만화 못 그리나? 아니거든.
그러는 쌤도 대학 갔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나처럼 똑똑한 사람도 대학에 가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더라고. 다른 걸 볼 기회가 없었어. 대학에 가면 뭘 하는지도 몰랐지만 대학에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도 가르쳐 주질 않았어. 그냥 겁만 줘. 무슨 폭탄 돌리기도 아니고... 자꾸 다음 단계로 넘기기만 하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는 학자금 대출 채무가 남았지. -p.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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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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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책을 좋아라한다.
그냥 읽으면 좋을 책도 좋지만 그런류의 책은 거기서 그뿐이다.
누군가는 자꾸 머리를 비어주는 책을 찾는데
나는 왜 자꾸만 문제를 던져주는 책에 손이 갈까?????

 표백」은 기성화된 사회를 완성단계에 있다고 보는 작가의 논지에서 출발한다.
이전세대와 달리 뭔가 거창한 것을 이룰 명분도 명목도 없는 지금의 세대가 작가의 생각엔
무척 억울했나보다.
멋져보이고 좋은건 기성세대에게 다 뺏기고
지금의 젊은세대는 찌꺼기만 겨우 찾아 그마저도 서로 갖겠다고 싸운다는 식이다.
사회를 보는 눈이 아주 시니컬하다.
작가의 이런 도전적 생각에 기성세대 부류에 속하는 나의 입장은
누구나 자기세대는 손해를 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억울한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엔
그 다음 오는 세대가 또다른 명목을 들고 억울해 할 것이다.
그렇게 뭔가를 이루어가야 하는 세대는
미완성에서 비롯되는 뭔지모를 불안과 쫓김, 조급함, 일이 잘안될때는 원망과 억울함 같은
피해의식과 동행해야 하며 싸워이겨야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 다 이룬 틀안에서 안정적일 것이라 보이나?
그대가 이 틀안에 들어오면 그때와는 또다른 피해의식이 있고
기성세대 또한 그것들과 피터지는 번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표백」 을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후(後)'를 살지 않은 상태인 '금(今)'으로는 얼마든지 제기할수 있는 문제이고
그 세대에서는 반향이 될 만한 거리다.
나도 이 세대라면 아마 작가의 항거에 대리만족을 하며 열의를 보내지 않을까 싶으다.

이야기는 와이두유리브닷컴에서 알수 있듯이
세상에서 더이상 자신의 빛을 찾지 못하리라 여기는 젊은이들이
'자살'이라는 일탈행위로 사회에 일으키는 파문과 함께
자기네 세대의 절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자살'이라는 행위가 도발적이기에 이 책을 둘러싸고 호불호가 나뉠것으로 여겨진다.
작가가 문제제기를 함에 굳이 '자살카페'를 소재로 한 것은
젊은세대의 절망수위가 이정도임을 사회에 알리기 위한 잇점과
책자체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아닐까한다.

초중반부에서 비롯되는 흥미와 궁금증은 뒤로 가더라도 좀체로 줄지 않는다.
오히려 카페운영자의 정체를 둘러싸고 더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서서히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풀어내는 작가의 생각은
(세연의 동생 세희와 적그리스도라 불리는 주인공의 대화를 통한)
어째 자신도 자신의 주장과 스스로 생각하는 기성세대를 포함한 주변인의 반론 사이에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듯하다.
잔뜩 문제제기만 해놓고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몫이라고 떠넘기듯 만다.
그리고 지금세대의 대변인인양 문제를 던지고 이런저런 논리를 펼쳐놓고는
정작 말미 몇줄에 그 세대의 주장을 뒤엎는 디스이즈더리즌닷컴 개설 운운하는 모습은
오히려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격이 아닌가...
진정 그 세대를 위한 책인가?에 물음표가 달리는 결말이다.

책을 덮으며 저자의 말처럼 지금의 20대, 전후좌우를 봐도 길이 없는듯 깜깜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일테다.
그러나 그 느낌을 기성세대 누구든 통과의례처럼 치뤘던 것이고
그 미로를 헤쳐나오면 또다른 미로가 있으니 단단히 각오하며 세상을 살아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혼자'라면 엄두가 안날 세상지만 '여럿'이기에 손을 맞잡고 갈수 있는 희망이 있고
그 '여럿'으로 지금껏 세상은 존재하고 있다라고.
'혼자'일 것이냐? '여럿'가운데 하나일 것이냐?
선택의 문제만 남았다.
 

이 세상은 사실 허점투성이여서, 야심만만한 젊은이가 나타나 초패왕이나 카이사르처럼 칼을 휘두르면 적들은 마분지로 만든 인형처럼 무너지고 말 것 같았다. -p.13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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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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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차이의 스콧과 헬렌.
1932년 뉴욕 생활을 청산한 니어링부부는 미국 버몬트 남부로 이주해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삶을 택한다.
이들이 버몬트로 이주하던 당시,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불황이라는 세계 정황이 이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도시생활에서의 불안정한 생활을 떠나 조화로운 삶,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넉넉한 삶을 꾸리는게 그들의 간절한 바램이었다.

 

우리는, 불황과 실업의 늪에 빠져서 파시즘의 먹이가 되어 버린 사회를 떠나 버몬트로 이사했다.
이것은 시대의 특별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p.4머리말에서
부부의 삶은 어떤 이들에 의해 '도시에서 경제수단을 잃은 패배자들의 도피'라고 매도되기도 했지만
1932년~1952년에 걸친 스무해 그리고 이후 메인의 하버사이드에서 여생을 마치기까지 
그 오랜 시간을 물질 문명에 저항하고 자연주의로 살았던 니어링 부부의 삶을 들여다 볼때
그것은 '도피'가 아닌 차라리 '저항'이자 '혁신'이었다고 감히 말한다.
어쨌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또 인간으로서의 삶에의 조화를 이루며 그들 스스로가 만족하며 삶을 마감했다면
개인적으로는 분명 성공적인 삶이었으리라.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 그것은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목표였다. 스코트와 나도 지난 반 세기 동안 그 일에 참여해 왔다.
전체로 보면 우리가 그것에 기여한 것은 얼마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진지한 마음으로 그 일을 시작해 쉰 해가 넘는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어 갔다. -p.217
이 책엔 부부가 시골에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세운 삶의 원칙과 집짓기, 먹을것, 살림 꾸리기가 소개돼 있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이들이 막연히 시골생활을 동경해 귀농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모든 일들에서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는 점이다.

그들 스스로가 정한 열 두가지 삶의 원칙은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경험이나 형편에 따라 때론 고쳐지기도 하지만
그 원칙 하나하나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부부가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데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원칙을 살펴보자면~
필요한 것의 절반쯤을 자급 자족할 것, 필요한 것들을 손수 생산할 것,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가진 돈만으로 치를 것,
능률적으로 단풍 시럽(수입의 대부분)을 생산할 것,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을 것, 집짐승을 기르지 않을 것 등등이다.
도시민으로 산다면 절대 할 수 없는 것들, 이윤 추구의 경제에서 될수 있는 한 벗어나 자족하며 낭비하지 않는 것.
이것이 그들 삶의 대원칙이 아니었을까.

부부가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할 때 그들 가까이 머물렀던 이웃들의 삶은 그럼 어떠했을까?
 

버몬트의 이웃들은 우리가 이렇게 계획에 따라 짜임새 있게 사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이들은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사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그이들은 대개 정오에 점심을 먹었는데, 밖에서 일을 하거나 외출할 때가 아니면 그것이 하루 가운데 딱 하나 정해진 시간이었다. 나머지는 제멋대로였다. 그이들은 보통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나가지만, 무슨 일이 있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일하러 나가려는 마음을 금방 거두어들였다. 누군가 자기 집에 찾아오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손을 놓고 수다를 떨었다. 어떤 때는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일할 마음이 생기면, 그 때 기분에 따라 일 거리를 정했다. 일을 마치면 그이들은 쓰던 연장을 그 곳에 버려 두고 돌아왔다. 다시 그 연장을 쓰려고 할 때, 그것을 찾아 반나절을 헤맬 때도 있었다. 아침에 비나 눈이 올 것처럼 보이면, 그 곳 사람들 말 그대로 '퍼질러' 앉아 있었다. -p. 62
책에서 니어링 부부가 기술했지만 그들의 이런 생활을 볼 때 공간적 잇점만 가지고서는 그 삶이 저절로 조화로와 지는 것이 아닌게다.
그들이 버몬트를 택한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을 삼기 위함이 아닌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기 위함인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웃들은 먹고 사는 것에 그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으리라.
조화로운 삶은 물질적인 내 몸을 단순히 그럴듯한 공간에 둠으로써 저절로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농촌이나 산촌으로 가면 그런 삶이 쉽게 살아지리라 여기겠지만)
사는 것, 먹는 것, 생각하는 것, 몸을 쉬는 것 등 내면과 외적 환경이 고루 균형을 이루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을때 이루어지는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스스로 원하기만 하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다음은 책에 수록돼 있는 피터스가 남긴 말이다.

 
"내 생각에, 자연은 사람이 삶을 이어 가도록 세 가지를 주었다. 먹을 거리를 기르는 땅, 세간 살이를 만드는 나무, 집을 짓는 데 쓰는 돌."  피터스, 《돌집》, 1933년

 
피터스가 남긴 말을 볼 때 사람이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연(외적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 또한 도외시 할 수 없는 요소인것 같다.
니어링 부부 또한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먹을 거리를 기르는 땅에서 먹을 것을 얻고 세간 살이를 만드는 나무로 세간 살이를 만들어 사용하고
집을 짓는 데 쓰는 돌로 돌집을 지어 생활했다.
이들이 집을 짓는 재료로 돌을 택한 까닭은 돌이라는 것이 땅과 조화를 이루고 둘레 풍경과도 잘 어울려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는데 있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돌집 짓기'에 할애돼 있고 그 과정 또한 지나치리만치 세세하게 기록돼 있어 읽는 이로서는 지루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기도 한데
그만큼  '집짓기' 다시 말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그들의 노력이 그들이 지향하는 삶과 서로 통하고 있음을 반증해 주는듯 보인다.
부부는 20년 동안 버몬트 숲 속에 머물면서 무려 열 두채의 돌집을 지었다.

 
돌집 짓기에 이어 가장 많이 할애되어 소개되고 있는 것은 '농사 짓기'이다.
이 또한 자연과의 조화임은 분명하다.
돌집 짓기 다음으로 다루고 있는 '농사 짓기'는 반복해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공식품 같은 편리성을 쫓은 음식이 현대인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굳이 서술하지 않아도 지금은 그 유해성이 너무도 명백한데
니어링 부부는 이미 그러한 점을 염두해 두고서 그들의 원칙을 세워 농사를 짓는다.

한 해에 석 달만 서리를 피할 수 있는 밭에서 곡식을 가꾸어 한 해 열두 달 먹을 것(버몬트의 기후상),
가공하지 않은 신선한 음식만 먹을 것,
완벽한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채소와 곡식을 가꿀 것,
땅에서 거둔 것을 통조림 따위로 만들어 보관하는 일을 되도록 줄일 것.
이 원칙들을 요약하면 가공하지 않은 신선한 제철 음식을 먹을 것이 되겠다.

'농사 짓기' 편이 다 흥미로운데 그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산비탈의 비스듬한 열악한 환경의 농경지를 
중국이나 아시아 여러나라를 모델링해 계단식 논을 만들어 경작했다는 점과
그때까지 서양인들이 사용하지 않던 퇴비를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 퇴비경작은 한국인들의 경작에서 차용한 것으로 나온다.
니어링 부부의 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자면 소위 말하는 ‘신토불이(身土不異)’ 딱 그것이다.
땅을 죽이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얻은 퇴비를 사용하면 그 땅에서 나오는 산물 또한 최상의 것을 인간에게 준다는..
추운 계절이 긴데도 제철 채소를 늘 먹을수 있는 방법과 최상의 땅을 만들기 위해 봄부터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농사 짓기'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어찌보면 이 부부의 삶이 이웃의 시선처럼 참 유별나 보이기도 하는데 그들이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인즉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건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책의 말미에 다룬 것은 「버몬트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다.
부부는 '버몬트에서 산 것'에의 가치를 이렇게 말한다.

비뚤어진 세상에서도 바로 살 수 있다는 본보기로서.
여러 가지를 따져 보아도 사회와 만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서.
지금의 사회 질서에 대해 얼마쯤 바람직한 대안으로서.
정치에 대한 태도와 관습에서 벗어나 남과 다른 사람에게는 피난처로서.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열심히 산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
자기 일과 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슬기롭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로서.

이들이 산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독자는 각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평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니어링 부부의 삶은 자신들이 말한 그대로의 가치를 지녔다고 공감해 줄 수 있을것 같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필요치 않은 온갖 물질에 둘러싸인채 필요 이상의 것을 욕심내며 자본획득에만 곤두서 있는 이 비뚤어진 세상에서
그렇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충분한 본보기가 되었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연 훼손 쯤은 감수하는 세상에서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최상의 것을 주고 받을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증명해 주었으며
젊은 시절 대도시에서 한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노후일지라도 적당한 노동과 함께 여유를 즐기며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낼수 있는 삶으로의 충분한 초대가 되었음은 분명하기에.
  

그렇다면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부부의 '조화로운 삶'과 함께 그들은 지역공동체를 꾸리려는 목적이 컸던듯 하다.
하지만 공동체의 특성상 같은 마음을 품는 것에의 한계로 인해 그들은 '이루지 못한 것'의 품목으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개인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잣대로 봤을때 그들의 삶은 소정의 목적하는 바를 엄연히 이루었다고 말할수 있겠다.

남편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의 삶을 향유하고 스스로 택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고
헬렌 니어링 또한 교통사고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며 살았으니 말이다.
스코트 니어링은 눈을 감기 전 아내 헬렌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 

“당신과 함께 있어서 좋았소. 여보, 당신은 매우 훌륭한 동료였소. 매우 사랑스러운, 정말 만족스러운 삶이었소.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을 거요. 좋고, 또 좋았소... 당신과 함께 있어서 좋았소...”《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1997》


모든 삶을 내려놓는 즈음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고백하는 스코트 니어링의 이 글귀는
바쁜 일상속에서 기계의 부속품 같은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듯 하다.

이들의 삶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100여 년 전이니까, 미국이니까, 아이가 없으니까 그렇게 살 수 있었겠지.
이런 우리를 예상이나 했던듯 첫 장에서 부부는 이렇게 도전을 던진다. 

많은 이들이 월급에 기대어 먹고 살며 도시의 아파트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사람들을 살기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기를 옭아 매고 있는 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데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기를 꿈꾼다.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식구들과 친구들의 걱정 어린 충고와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그러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많은 세월을 보내고,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정말로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땅을 일궈서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까?
힘든 농사일을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은 게 아닐까?
시골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누구한테서 배워야 할까? 내가 살 집을 과연 내 손으로 지어 올릴 수 있을까?
밭뙈기를 일구어서 밥상에 먹을 거리를 올려놓을 수 있을까? 집짐승들도 길러야 하지 않을까?
농사일에 얼마나 얽매여 살게 될까? 시골 일은 내 허리를 휘게 만드는 또 다른 중노동이 되지 않을까?
도시 생활과 결별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몇백 가지가 넘는 이런 의문들이 머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우리 두 사람이 쓴 것이다. 나이가 스무 살에서 쉰 살 사이이고,
건강과 지혜와 돈을 아주 조금밖에 못 가진 부부라 해도 누구든 충분히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고 우리 두 사람은 믿는다.

음...니어링 부부가 손수 조화로운 삶을 살았고 나 또한 그 삶을 동경하며 동참하고픈 욕구 또한 강하지만
아직은 현실에 부딪힌 여러 문제(핑곗거리)가 발목을 잡는다.
달리말하면 '조화로운 삶'에의 동경이라고는 하지만 문명에 물든 이 삶에의 결별이 두려운 까닭도 분명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조화로운 삶'이 결코 얼렁뚱땅 살아지는 그런 삶이 아닌
치밀한 계획과 치열하리만큼의 결단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삶이기에 그들처럼 자발적 가난으로의 행보는 그리 쉽지 않을것 같으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저작이 이 시대에 힘을 갖는 이유는
분명 우리의 삶이 지향해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보여주기에,
지나버린 과거의 어떤 삶이 아니라 살고 있는 지금에, 아니 다가올 미래에 일말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당신 부부를 만나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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