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번 읽었던 책인데
어제 문득 하은이가 이렇게 묻는다.
"엄마~ 두루미가 어떻게 생겼어?"
여지껏 이 책을 읽었으면서도 한번도 두루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이유인즉 앞장과 맨뒷장에 사진은 아니지만 아카바 수에키치의 훌륭한 삽화가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떤 연유인지 하은이는 느닷없이 '두루미'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럼 두루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찾아볼까?"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을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두루미에 대해서 실어놓은 책 발견,
보리에서 나온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도감에
두루미에 관한 사진과 내용이 짧게나마 실려있다.
두루미는 일반적으로 '학'이라고도 하며 머리부분은 빨갛고
날개깃은 까매서 날개를 접으면 까만꽁지처럼 보인다고 그런다.
그리고 겨울동안에는 우리나라에 머무르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러시아로 날아가는 겨울철새임을 알려준다.
여기까지 읽고서야 하은이는 "두루미가 이렇게 생겼구나~" 그런다.
하은이와 이렇게 짧게나마 두루미를 관찰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니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들이 새롭게 들어찬다.
요헤이를 찾은 아가씨의 머리를 묶은 수건이 빨간빛을 띠는 것도 두루미의 형상이 그대로 포개지는 효과를 주고
이야기의 배경이 눈내리는 겨울인 점도 두루미의 생태를 감안한 설정이라는 것,
그리고 두루미가 철새인 점에 착안한다면 이 아가씨가 요헤이 곁에서 영원히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복선까지도 받을수 있다.
일본의 여러 전래그림책을 접해 보건대 우리네 그것과 별반 다를바 없음을 느낀다.
전래그림책이 띠는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나 할까..
이 '두루미 아내'에서도 그 전래의 정형은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데
같은 패턴의 이야기가 세번 반복되어져 나오는 점(아내가 세번에 걸쳐 베를 짜는 이야기)이나
깨뜨려서는 안될 금기사항이 제시된다는 점(베를 짜는 동안 절대로 들여다 보아서는 안되는 점),
그리고 결국은 그 금기사항을 깨뜨리는 바람에 일이 틀어지는 내용이 그렇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는 가난한 총각인 요헤이,
눈쌓인 길에서 화살을 맞아 버둥거리고 있는 두루미를 간호해준 덕분에 아리따운 아내를 맞이하게 되고
그 아내가 짜주는 베를 팔아 행복하게 살게 되는데
조금씩 금전의 유혹으로 생긴 욕심과 호기심때문에 금기사항을 어기게 되고 아내를 잃게 된다는 이야기는
사람의 욕심이나 호기심이 얼마나 원초적인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인간을 보건대 그들 또한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과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으로 결국은 낙원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모든것이 주어진 낙원에 살면서도 자족할 줄을 몰랐던 태초의 사람..요헤이도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감사히 여기기 보다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의 욕망으로 인해 결국은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자행하고 말았다.
멀리 날아가고 있는 두루미를 뒤쫓아 쳐다보는 요헤이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흐릿하게 그려진 얼굴위로 너무도 또렷이 망막에 그려진다.
긴 목과 다리, 새하얀 털..그 고고한 자태만큼이나 깊은 뜻을 지녔던 두루미의 희생이 애닮다.
책을 읽은 후 하은이에게 물어본다.
왜 두루미가 떠난것 같으냐고..
당연히 들여다 보지 마랬는데 들여다 봐서 떠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라면 안들여다 봤을텐데..그런다.
글쎄?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온갖 불행의 씨앗도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었고
금단의 열매사건도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는데 과연 그럴수 있을까?
나라면? 나라면 역시나 요헤이와 무엇이 달랐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