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비밀의 방 - 제10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55
조규미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출판시장에서 아동출판물의 질적, 양적 성장은 자타가 공감하는 바이다.

예전 전집으로 묶어 질보다 양적 측면에 치우쳤던 아이들 책이 이제는 책형태도 다양하게 매일같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어쩌면 이런 상상을 했을까 싶게 아이들 심리를 제대로 표현한 책들로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책을 친구삼아 지내게도 되었다.

이런 아동출판물과 더불어 눈에 띄게 성장한 분야가 있다면 단연 청소년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났던 중․고등학교 시절 청소년을 위한 문학이라고는 데미안이나 어린왕자 같은 외국인에 의해 쓰여진 문학이 대다수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과서에 실린 발췌글의 저작을 읽고 싶어도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불과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지금은 오히려 책은 쏟아져 나오는데 아이들이 책읽을 시간이 없는 풍토가 되었음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청소년 문학은 이제 각 출판사에서 고료를 내걸고 공모전을 할만큼 성장했다.

이 책 「열다섯, 비밀의 방」도 푸른책들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단편부문 수상작 4편을 모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받고 잠시 당황했는게 얼마전에 읽은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도 올해 푸른문학상 수상작이었던걸로 아는데 어찌된거지? 했다.

그래서 출판사 홈피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 푸른문학상 수상이 새로운 작가상과 미래의 작가상으로 나뉘어 수상된다는 것이다.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는 미래의 작가상 수상이고 「열다섯, 비밀의 방」은 새로운 작가상 그것도 단편 수상인 셈이다.

굳이 이렇게 나눈 이유는 단편으로 작가에 등용한 이들(새로운 작가수상자)이 결국은 완성도 높은 장편으로 커나가게 하는 것(미래의 작가수상자)도 있겠고

더많은 작가의 발굴과 좋은 작품을 선정하고자 하는 취지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교통정리를 일단하고서.

 

4편의 이야기 소재는 각각 다르다.

왕따, 자아, 성정체성, 친구, 진로 등 요즘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고민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세상의 다양한 것들에의 호기심을 닫아걸고 생각의 연결고리를 모두 끊은채 공부 하나만을 강요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공부보다 더 진지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기성세대에게는 이들의 고민이 얕고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기를 지나는 때엔 당면한 일들이 가장 크고 힘들었다는 것을 잠시 떠올려보면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냥 흘려들리지 않는다.

이 글들 또한 어차피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에 의해 쓰여진 글이 아닌 그 시기를 지난 이들에 의해 쓰여진 글인지라 어쩌면

아이들의 고민을 꿰뚫어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에 예의주시하며 관심기울여온 이들에 의해 쓰여진 글이기에 독자는 간접적이나마 우리 청소년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조금이나마 가깝게 다가가보고자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 하지 않고자 한터공원으로 달리는 진수, 민기를 통해 늘 마음 한켠에 남겨진 상처를 치유했기를..

화진이는 연아를 만난후에 또다른 자아를 만나고 헤어지고 하지는 않았을까?

승찬, 때론 절망이 희망으로 착각처럼 보여도 괜찮을 것 같은데..

진우야, 이제 친구들을 믿고 너 자신을 믿으며 그렇게 나아가도 되겠어.

 

오늘도 우리 청소년들, 미래의 행복이 아닌 오늘을 누리며 즐겁게 살 수 있기를..

그래서 미루어 놓은 행복이 아닌 오늘 행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곳에서 작품 전편을 볼 수 있다.

http://www.prooni.com/html/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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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엄마 중학교 완전정복 - 99% 학부모가 헛고생하고 있다
김민서 지음 / 라온북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대치동이 대한민국 교육 1번지인가? 그렇다치고

이 책은 대치동에서 지난 7년동안 만난 4,000여명의 중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작가가 상담하고 분석한 것들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담아 기술해 놓은 책이다.

내년에 중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가 있기에 요즘의 중학교는 어떻게 변모했는지(분명 내가 중학교를 다닐때와는 다를테니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냥 중학교 완전정복이라고 해도 될텐데 굳이 대치동 엄마를 들먹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곳이 학구열이 높은데다 괜찮은(?) 학군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자녀 공부에 욕심많은 엄마들의 주요 활동지이기도 할테고..

작가는 그래서 엄마들이 요즘의 중학교가 어떤지에 대해, 그리고 소위 사춘기에 접어드는 그 또래 중학생들의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시시콜콜 언급해 준다.

중학교는 부모와 담임선생님들이 하나하나 친절하게 돌봐주는 초등과정과는 많이 다른데다

진학, 진로가 부쩍 가깝게 다가서니 아이도 부모도 학습적인 면에 쉽게 초조해지고 불안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해 적응기를 가지기도 전에 학기별로, 일별로 해야할 학습거리와 학원스케줄을 잔뜩 세워놓고

본격적인 공부에 돌입할 태세를 취하게 된다. 아이도 중학교에 들어가니 처음엔 분명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잘해보리라 생각하며 자의든 타의든

공부에 다시 열의를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방향도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품게 된 열의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와중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질 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아이도 부모도 중학교 교과과정이 어떤 식으로 구성돼 있고 결국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을 위해 중학교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미리 알고 있다면 우왕좌왕하지 않고 아이의 진로를 위해 내실있는 중학교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중학교 입학부터가 아니라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생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학교시험, 방학 관리비법,

입학사정관제 대비 자기주도학습 전략, 창의적체험활동 관리 등 그리고 달라지고 있는 평가제, 평점제에 이르기까지

중학교 과정에 대해 두루두루 살펴준다. 뿐만 아니라 갓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터득해 가야할 필기법이나 가정통신문 관리,

시험대비 등 알아두면 유용한 거리들도 다루어 준다.

일독하고 나니 중학교 3년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그 안의 구체적인 사항들은 개개 아이들의 성향과 수준, 진로에 따라 적용해 나가면 될 것 같다.

 

중학교, 결국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그리고 대학졸업후 맞닥뜨리게 되는 이 세상이란 넓은 활동무대에서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하며 살것인지를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렇다해서 단순히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보낼 것이 아니라 미래에 갖게 될 역할을 꿈꾸며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소중한 시간이라 여긴다면 학업도 경험도 모두 즐겁게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세대엔 꿈을 꾸라고, 도와주겠노라고 얘기해 주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무턱대고 공부란 것과 씨름을 했는데

요즘은 비록 경쟁은 치열하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한다면 그 길을 보여주는 여러 멘토가 있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대치동 엄마를 내세웠지만 학습적인 부분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싶고

그래서 작가는 자칫 아이들이 학습으로만 내몰려 힘든 중학교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 한권을 읽었다고 중학교 과정에 만반의 대비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책에 수록된 정보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고 대치동 엄마 정도가 되면 이보다 더한 정보도 갖고 있을테지.

하지만 책에서도 얘기하듯 학습은 중학교 과정의 일부일 뿐이고 자신의 진로를 잘세워 거기에 맞는 준비를 해나가는 과정으로써

아이도 학부모도 중학교를 즐기며 보낼수 있기를 주문한다.

자, 이제 준비됐다면 예비중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 모두 파이팅~!!!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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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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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은지는 벌써 오래전이다.

읽는 동안도, 마악 책읽기를 마쳤을때도,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도대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타임매거진, 마이애미헤럴드, 퍼블리셔스위클리 등 내노라하는 서평지에서 극찬을 했음에도 난 도무지 책에 등장하는 부모를 이해할 수도 없고 저자가 책에 등장시킨 가족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극단적 행위예술을 지향하는 펭씨부부는 자신들의 삶에 예술을 고스란히 끌어들여 접목시키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스승이 자녀는 그들이 지향하는 예술에 걸림돌이니 아예 자식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그들에겐 남매가 생겼고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시기에 부모의 예술을 위한 퍼포먼스에 동원되는 삶을 살게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채 부모이기에 그들의 예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가운데 거부감을 갖게 되고 그 거부감은 가족으로서 가져야 하는 친밀감과 신뢰, 사랑없이 일종의 의무감으로 형성된 외형상의 가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 부부에게는 아이들의 마음이나 바램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가족에게는 오직 펭씨부부의 예술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건 오로지 그들이 지향하는, '남들이 보기에 전혀 이해되지 않는 예술일지라도 그들의 삶에 재현되어 삶자체가 예술이어야 한다'는 자신들만의 예술신조와 실현이 있을 뿐이다.

스승이 애초에 아이들이 걸림돌이라 했을때엔 예술에 쏟는 열정이 아이 때문에 분산될거라 염려했기 때문이지만 펭씨부부는 오히려 아이들을 그들의 예술에 참여시킴으로 가족이 동일한 예술을 지향하며 살고있다고 만족한다. 그들에게는 예술만 있을뿐 아이들의 마음은 무시된 채이다. 그런데도 부부는 아이들을 많이 사랑했다고 한다. 부부가 말하는 ‘사랑’이란게 어떤건지 모르겠다. 내가 읽기로 그들은 아이들을 사랑한게 아니라 아이들을 자신들의 예술을 위한 하나의 부속품으로 여겼을 뿐으로 보이는데... 사랑의 방식이 다르더라도 진심이 담긴 사랑이라면 아이들도 이해하고 그들에게 서운해하지는 않았을텐데 아이들은 탈출하듯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는가.

 

부모가 되었다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한채 자식에게 올인하는 이들도 어리석다.

하지만 펭씨부부처럼 두사람이 똘똘뭉쳐 자식을 도구처럼 여기며 자신들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모습은 책을 읽는내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서구권과 동양권에 엄연히 존재하는 문화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부모와 자녀, 가족의 문제는 형식의 차이만 있을뿐 내면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책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게끔, 그러니까 부모일지라도 아이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 강요가 아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소설로 마무리되면 그나마 이해가 되었을텐데 마지막 부분에 생뚱맞게도 애니가 영화를 찍으며 그들의 부모를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는 마무리는 결국 그들의 예술행위가 옳았다는듯 동의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게 뭐야?" 했다. 가족관계조차 이기적인 관계로 진행되면 펭씨네 가족처럼 이런 가족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가?

하여튼 쉽게 정리되지 않는 책이고 내가 그랬듯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어필되기가 무난하지는 않은듯 싶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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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산책하다 - 문화유산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150년
김종록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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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긴 시간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짧은 시간이다.

150년만 거슬러 올라갈 뿐인데도 우리의 역사현장은 지금과 너무도 달라 마치 타임캡슐 여행을 떠난 느낌이랄까.

그만큼 우리의 근대사는 드라마틱하게 흘러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혀지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삶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대는 억지로 기억하고 싶지않은 아픔이 많기에 굳이 어두웠던 역사의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 않기도 하리라.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복원할 대상이라고.


흔히 역사 청산을 말하곤 하는데 역사는 진솔한 기록으로 복원해야 할 대상이지 청산 대상이 아니다. -p.209

책에 수록된 각 편의 글들은 저자가  「중앙SUNDAY」에 연재한 취재기사를 대폭 보완하였다고 한다.

생생한 그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신문사 선임기자와 함께 애쓴 것, 각 분야의 전문가와 동행 취재했음도 밝힌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 완성도로 보자면 여기저기 미흡한 점들이 많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책을 꼼꼼이 읽는 독자로서 자꾸만 눈에 띄는 오탈자는 물론 현장에서 감회에 젖어 피력하는 저자의 감상이

때론 여느 독자의 감상과 배치될 요소도 있어 보인다. 특히 특정 인물(전직 대통령)에 대한 언급에서는.

또한 현장 답사이기에 저자의 글을 시각적으로 보여줄수 있는 보다 자세한 현장사진의 수록 또한 지방인의 한사람으로 아쉽다. 

책을 읽는 동안 솔직히 책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는데 그게 딱인거다~ 취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끄는 근대의 현장을 들어서는 발걸음은 묘한 설렘을 일으킨다.

어느 장소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워진 건물은 사건의 중심이 되고 시간이 흘러 조금씩 변형될지라도

그것(곳)은 명실상부 ‘역사’가 되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근대의 연장인 현대에 이르러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에 따라 근대의 의미를 축소하고 청산해 버릴것인지,

근대에서 배워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의 바탕이 달라지리라.


‘장소’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공간인 그 장소들은 찾는 이로 하여금 문화적 정체성을 느끼고 의식적인 애착을 갖게 한다. 우리가 수용한 근대의 원형이 있는 그 장소들에서 다채로운 근대의 스펙트럼을 보았고 숱한 역사 인물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때로는 흥분을, 때로는 아쉬움을, 때로는 울분을 느꼈고 격세지감에 빠지기도 했다. -p.5 머리말

우리 근대역사 36곳을 둘러보는 일은 지면으로도 벅차다.

그곳을 둘러싼 자료와 인물을 찾아 들려주며 현대에서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고취하고자 하는 의도는

저자가 먼저 깨닫지 않으면 즐겨하지 못할 일이다.

최근들어 이런 형식의 현장답사를 돕기 위한 책들이 장정도 산뜻하니 많이 나오고 있어 대단히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아 현장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점이 매우 애석하지만 언젠가 서울나들이길에

책에서 초대받은 몇몇곳을 들르리라 이미 예약해 둔다.

책을 읽은후 주위를 둘러보니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무덤덤 서있는 저 건물도, 산도, 나무도

후세대에게는 또다른 이야기가 되어 의미를 지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공간을 찾아 근대를 조망하는 형식을 벗어나 나의 근대사 산책은 이덕일의「근대를 말하다」로 이어질 참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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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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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을것 같은 삶의 연속선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준비도 없이 죽음이라는 불청객을 맞게 된다.

태고적부터 되풀이되어 온 우주의 질서임을 알면서도 죽음이란 것은 살아숨쉬고 있는동안만큼은 나와 상관없는 것인양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내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 지우개를 둔양 그렇게 잊고 지내던 죽음은 어느날 날아든 지인의 비보(悲報)에 황망해하며 다시 기억의 저편에서 아주 가깝게 다가서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삶과 죽음이란 것은 동전의 양면이나 손등과 손바닥처럼 항상 공존하고 있는 것을 삶에 급급한 인간의 뇌가 자꾸만 죽음을 망각하도록 스스로를 체면걸고 살아가고 있는것이 아닌가싶다.

인간이 죽음앞에 낯선 얼굴로 대할때 그 낯설음은 막연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죽음앞에서 삶을 구걸하게 하거나 인생을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 죽음을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숨쉬는게 힘든것에서 시작해 몇 년후 걷기가 힘들어지고 급기야 잠자기가 힘든 상태에 이른 시점에서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그는 근 위축성 측색 경화증, 일명 루게릭 병 진단을 받는다.

병은 하루하루 그의 생활을 침범하고 그의 육체는 껍데기만을 남긴채 속속들이 부서져 내린다. 마치 폭풍앞 흔들리는 촛불과 같이..

이 책은 그런 그의 마지막 3개월을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모리의 삶에 대한 성찰을 녹취한 것을 정리한 제자에 의해 출판된 책이다.

자신에게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그저 일상을 대하듯 호들갑떨지 않으면서 관조적인 태도로

살아온 나날을 반추하고 그 날들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실타래 풀듯 한올한올 풀어내어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그가 일상처럼 받아들인 죽음처럼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죽음을 앞둔 노교수라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깨친양 거창하지도 않고

마지막 남기는 말이니 그럴듯하게 꾸밀만도 한데 정작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이 그저그러려니 귀흘려 들을 이야기인듯 보인다. 그리고 분명히 삶의 문제에 부딪쳐있지 않은 이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해, 자기 연민에 대해, 죽음에 대해, 나이 듦에 대해, 돈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느 부분도 새로운 논리와 견지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읽는 와중에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그의 생각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사랑을 갈망하며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해 고민을 하든 토론을 하든 그의 지향점은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되고 간과되어온 일상적인 것에 귀결된다.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은데 시나브로 지나쳐버리는 것들에의 따뜻한 어루만짐..그럴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그의 마지막 강의를 경청하게 되는 것이다.

생의 어느때 느닷없이 찾아드는 불행을 만나는 순간 내 영혼이 모리의 강의를 기억하고 살았다면 모리가 그러했듯 죽음을 일상처럼 초연히 맞이할수 있지 않을까싶다. 찾아온 불행앞에서 자기연민에 빠져지내기 보다 생전에 장례식을 치루며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 아껴둔 말을 들려주고 뜨겁게 포옹해주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렇게나마 작별 인사를 가지게 된 것을 멋진 일이라 여기며 기쁜(?) 장례식을 치룰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 삶만큼 경이로울수 있음을 알려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20대 지인에게 권했더니 일독후 하는 말,

"저는 이 책이 어째서 필독서 리스트에 올랐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단면적으로 보는듯해 씁쓸하다.

책의 진가를 몰라보는 20대가 원망스러워 하는 말이 아니라 삶은 태어나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어진 것이지만 죽음이란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요 젊은이나 늙은이,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시시각각 삶의 곁을 스치는데 그들에겐 여전히 죽음이란게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것 처럼 보이며 모리의 경종을 귀흘려 넘김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모리가 말했듯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는 것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배우게 된다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매일같이 죽음을 상기하며 살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아껴 사람을 사랑하기를...눈맞춰 주기를..그의 말에 귀기울여 주기를..삶의 쳇바퀴에 밀려 이 소중한 것을 놓치며 살지 않기를 권고한다.

이렇듯 '죽음'이라는 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면서 철로에 서 있었으며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명히 알고 있은 모리 선생님은 작가 미치만의 은사가 아닌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지는 어느 누구나의 은사가 되어 명강의를 들려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랑안에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으며 그 기억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누구와 함께 있으면 완전히 그와 함께였다.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세상에 오직 그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매일 아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런 태도로 대해준다면 세상사람들은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

"나는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것은 함께 있는 사람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을 뜻해.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지난 주에 나눴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 ..나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직 자네 생각만 하지."

브랜다이스 대학 시절, 선생님이 그룹 과정 시간에 이런 생각들을 가르치곤 했던 일이 기억났다.

당시 나는 이런 생각에 콧방귀를 뀌었다. 대학에 뭐 이런 수업이 다 있나 하고.

주의를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고? 그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한데 지금 나는 그것이 대학에서 배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

죽음은 전염되지 않아. 삶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죽음도 자연스럽다네.

 

"죽음을 앞두고 후회되는 한 가지가 뭔 줄 아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다 전해주지 못한 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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