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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끝없을것 같은 삶의 연속선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준비도 없이 죽음이라는 불청객을 맞게 된다.
태고적부터 되풀이되어 온 우주의 질서임을 알면서도 죽음이란 것은 살아숨쉬고 있는동안만큼은 나와 상관없는 것인양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내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 지우개를 둔양 그렇게 잊고 지내던 죽음은 어느날 날아든 지인의 비보(悲報)에 황망해하며 다시 기억의 저편에서 아주 가깝게 다가서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삶과 죽음이란 것은 동전의 양면이나 손등과 손바닥처럼 항상 공존하고 있는 것을 삶에 급급한 인간의 뇌가 자꾸만 죽음을 망각하도록 스스로를 체면걸고 살아가고 있는것이 아닌가싶다.
인간이 죽음앞에 낯선 얼굴로 대할때 그 낯설음은 막연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죽음앞에서 삶을 구걸하게 하거나 인생을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 죽음을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숨쉬는게 힘든것에서 시작해 몇 년후 걷기가 힘들어지고 급기야 잠자기가 힘든 상태에 이른 시점에서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그는 근 위축성 측색 경화증, 일명 루게릭 병 진단을 받는다.
병은 하루하루 그의 생활을 침범하고 그의 육체는 껍데기만을 남긴채 속속들이 부서져 내린다. 마치 폭풍앞 흔들리는 촛불과 같이..
이 책은 그런 그의 마지막 3개월을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모리의 삶에 대한 성찰을 녹취한 것을 정리한 제자에 의해 출판된 책이다.
자신에게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그저 일상을 대하듯 호들갑떨지 않으면서 관조적인 태도로
살아온 나날을 반추하고 그 날들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실타래 풀듯 한올한올 풀어내어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그가 일상처럼 받아들인 죽음처럼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죽음을 앞둔 노교수라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깨친양 거창하지도 않고
마지막 남기는 말이니 그럴듯하게 꾸밀만도 한데 정작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이 그저그러려니 귀흘려 들을 이야기인듯 보인다. 그리고 분명히 삶의 문제에 부딪쳐있지 않은 이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해, 자기 연민에 대해, 죽음에 대해, 나이 듦에 대해, 돈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느 부분도 새로운 논리와 견지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읽는 와중에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그의 생각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사랑을 갈망하며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해 고민을 하든 토론을 하든 그의 지향점은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되고 간과되어온 일상적인 것에 귀결된다.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은데 시나브로 지나쳐버리는 것들에의 따뜻한 어루만짐..그럴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그의 마지막 강의를 경청하게 되는 것이다.
생의 어느때 느닷없이 찾아드는 불행을 만나는 순간 내 영혼이 모리의 강의를 기억하고 살았다면 모리가 그러했듯 죽음을 일상처럼 초연히 맞이할수 있지 않을까싶다. 찾아온 불행앞에서 자기연민에 빠져지내기 보다 생전에 장례식을 치루며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 아껴둔 말을 들려주고 뜨겁게 포옹해주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렇게나마 작별 인사를 가지게 된 것을 멋진 일이라 여기며 기쁜(?) 장례식을 치룰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 삶만큼 경이로울수 있음을 알려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20대 지인에게 권했더니 일독후 하는 말,
"저는 이 책이 어째서 필독서 리스트에 올랐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단면적으로 보는듯해 씁쓸하다.
책의 진가를 몰라보는 20대가 원망스러워 하는 말이 아니라 삶은 태어나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어진 것이지만 죽음이란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요 젊은이나 늙은이,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시시각각 삶의 곁을 스치는데 그들에겐 여전히 죽음이란게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것 처럼 보이며 모리의 경종을 귀흘려 넘김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모리가 말했듯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는 것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배우게 된다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매일같이 죽음을 상기하며 살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아껴 사람을 사랑하기를...눈맞춰 주기를..그의 말에 귀기울여 주기를..삶의 쳇바퀴에 밀려 이 소중한 것을 놓치며 살지 않기를 권고한다.
이렇듯 '죽음'이라는 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면서 철로에 서 있었으며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명히 알고 있은 모리 선생님은 작가 미치만의 은사가 아닌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지는 어느 누구나의 은사가 되어 명강의를 들려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랑안에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으며 그 기억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누구와 함께 있으면 완전히 그와 함께였다.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세상에 오직 그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매일 아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런 태도로 대해준다면 세상사람들은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
"나는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것은 함께 있는 사람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을 뜻해.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지난 주에 나눴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 ..나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직 자네 생각만 하지."
브랜다이스 대학 시절, 선생님이 그룹 과정 시간에 이런 생각들을 가르치곤 했던 일이 기억났다.
당시 나는 이런 생각에 콧방귀를 뀌었다. 대학에 뭐 이런 수업이 다 있나 하고.
주의를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고? 그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한데 지금 나는 그것이 대학에서 배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
죽음은 전염되지 않아. 삶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죽음도 자연스럽다네.
"죽음을 앞두고 후회되는 한 가지가 뭔 줄 아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다 전해주지 못한 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