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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ㅣ 서가명강 시리즈 18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우리는 더 좋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현재 자신이 누리는 평안함을 사소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지금의 형편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인간은 또한 미래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기대하던 즐거움을 막상 누리게 되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가 많다.
이에 반해 동물은 그렇지 않다. 동물은 어떠한 즐거움에 대해서도 미리 기대하면서 환상을 품지 않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동물은 고통도 언제나 실제로 있는 그대로 느낄 뿐이다. 동물은 어떤 고통을 몇천 번 겪더라도 맨 첫 번째 느꼈던 고통을 그대로 느낄 따름이다. 동물들이 고통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처럼 삶을 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동물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바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가장 쉬운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어렵다.
p.72~74
사람의 일생은 전체로 보면 비극이고 부분 부분만을 보면 희극이다. 사람들 각자는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소소한 불행에 대해서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하고, 소소한 행운에 대해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 날뛴다.
p.84
쇼펜하우어는 인생과 인간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만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인생에 대해서 퍼붓는 냉소는 우리가 삶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거리를 두면서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동안 대단한 일로 생각하면서 집착했던 것을 하찮은 것으로 보게 되면서 평온한 마음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p.133
우리는 자신의 타고난 성격을 인식하려고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올바르게 인식된 성격을 쇼펜하우어는 '획득 성격'이라고 부른다.
그는 획득 성격에 근거하여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산다.
쇼펜하우어는 성격을 고치는 것은 '자신의 성격에 구현되어 있는 예지적 의지, 즉 물 자체로서의 의지를 거스르려는 의지'를 행사하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의지가 자신에 대해서 모순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p.153~154
명랑한 성격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 내적인 재보 중에서도 행복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명랑한 마음이다. 다른 재보가 없이도 이 명랑한 마음만 있으면 저절로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명랑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즐거워할 만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그가 명랑하다는 것이다. 명랑한 마음이라는 재보는 어떤 재보로도 바꿀 수 없기에 명랑한 마음에 필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p.176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어떤 객관이 아름답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속한 종의 이데아를 특별히 잘 표현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객관에서 표현되고 있는 이데아가 존재의 질서에서 좀 더 높은 단계에 있다는 데에 있다. 인간은 우주적 의지가 가장 최고도로 자신을 표현한 것이기에 인간이 다른 어떤 사물보다도 아름답다.
p.237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권태에서 오락가락하는 삶이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삶이 원할 만한 것이 아님을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삶에서 겪는 고통은 인간이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인으로서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가르침도 불교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p.302
박찬국,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中
+) 이 책은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상 다 읽고나면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삶과 사람을 깊게 분석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철학자 같다. 무조건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가치관의 소유자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가 철학적 사상을 펼치는 논리에는 대부분 확실한 근거가 드러난다. 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주장에 비판을 가할 수는 있지만, 근거없이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사유 체계는 아닌 것 같다. 그가 삶의 어두운 면에 주목한 것은 우리가 고통으로 가득찬 인생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알보고면 고통으로 가득찬 인생에 사람들이 너무 집착하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괴롭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을 읽을수록 불교의 세계관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중반을 넘어섰을 때 저자가 알려준다. 그가 인도철학과 불교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였다는 것을.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그 어떤 것도 집착하지 말고, 즐거운 일은 즐거운 대로 고통스러운 일은 고통스러운 대로 흘러가도록 그냥 두면 될 것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명랑한 마음으로 살면 그 어떤 상황도 명랑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한결 가볍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