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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평점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과정은 구체적 타당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종종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는 우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내 주장이 철옹성처럼 공고한 법적 안정성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 파격적인 것이 아님에도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상당히 민망한 일이다.
"법적 안정성은 일개 변호사나 활동가가 고려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적 안정성을 걱정할 만큼 이주 노동자나 장애인의 상황이 느긋하지 않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의 안정성은 국민이 고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철옹성처럼 견고하다. 그렇기에 국민이 중시해야 할 가치는 '구체적 타당성'이다.
p.28~30
법원은 국민을 상대로 다양한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고, 과거에 비해 법률 서비스의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국민에게 재판부는 원수보다 먼 사이인 것입니다. 재판부가 친근할 필요는 없으나, 최소한 당사자들이 법률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사이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세상에 나온 두 번째 존댓말 판결문을 받은 유승희 변호사님의 이야기
p.93
패소한 이유가 통째로 생략된 판결문,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버젓이 기록된 판결문,
특정 판례 문구를 기계처럼 붙여넣기 한 판결문.....
지금도 법정에서는 이런 '불량 판결문'이 꽤 자주 탄생하고 있다.
온갖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할 마지막 관문인 법원에서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는 법원을 신뢰할 수 있을까?
p.114
"배운 사람들이 그러는 걸 보고 못 배운 걸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 시민 단체 '지금여기에'와 은유 작가가 간첩 조작 피해자들을 만난 후 기록한 책의 이야기
p.167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 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p.187
재판정에서 하는 말을 녹음하거나 속기해달라고 미리 신청하는 방법이다. 민사소송법 제159조, 형사소송법 제56조의 2는 재판 당사자가 녹음 또는 속기를 신청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p.308
"어떤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 일은 서투르게 할 만한 가치도 있다."
- G. K 체스터턴
p.324
최정규, <불량 판결문> 中
+) 이 글은 현재 변호사인 저자가 불합리하고 부당한 판결에 대해 공개적으로 A/S를 요청하는 책이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인 법원에서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판결문이 넘쳐나고, 일반 국민보다 우위에 있듯 행동하는 법원의 태도에 시정을 요청하는 글이다.
읽는 내내 참 답답했다. 내가 만약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했을 때, 그것을 법적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을 몇 개월 혹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그 판결이 한 두줄의 단평이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면 얼마나 황당할까? 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신분이나 계층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말그대로 그건 규칙이고 약속일 뿐이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 법을 수호하는 분들이라면, 그들이 최우선으로 두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국민이다. 고압적인 자세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법적 근거를 타당하게 대지만 따뜻하게, 그렇게 국민들을 대했으면 좋겠다.
법원과 판사가 친절하다고 우습게 여길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존중하지 않을까? 친절하지만 단호한 판결문, 근거가 타당한 판결문이 우리를 납득하지 않을까? 현직 변호사로서 법원을 향해 이런 외침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을텐데,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한다. 그리고 존경하는 판사님이, 존중할 판결문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