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 - 개인의 운명과 세상의 방향을 결정지을 10가지 제언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권기대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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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수로 수십억 인류에게 생활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을 멈추라고 설득하겠는가. 그리고 인간들이 서로서로 관련되고 엮이는 것을 우리는 막을 수 없다. 기술의 혁신을 막을 도리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당면한 여러 가지 위험을 지금보다 훨씬 더 절실히 인식하는 것, 그런 위험들에 대비하는 것, 우리 사회가 회복 탄력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갖가지 충격과 반동을 견딜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로부터 배우고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p.41~42

20세기 최대의 정치 논쟁은 정부의 크기와 경제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 그러니까 정부의 양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서 가장 중요해보였던 것은 정부의 '질'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바이러스를 잘 통제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일부는 큰 정부를 가지고 있지만, 작은 정부의 국가들도 그에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들에 공통되는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유능하고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며 신뢰받는 국가, 다시 말해서 '질 좋은' 정부였다.

p.55~57

미국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 장애는 그것이 주 정부의 지자체 단계에서 되풀이되기 때문에 몇 배로 심해진다. 예컨대 이번 팬데믹에 맞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은 서로 시샘하며 자신들의 독립만 지키려는 2684개의 주, 지역, 부족 담당 부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주 복잡해졌다.

여러 주 정부들이 투자와 노동력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그것이 성장을 부추기게 된다. 그러나 경계를 모르는 질병과 맞서 싸워야 할 때는, 이처럼 누덕누덕 기워 붙인 권위는 악몽일 뿐이다. 기준의 파편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진에서 특히 심각하게 드러난다.

p.68~69

지금의 팬데믹과 미래의 여러 가지 위기를 헤쳐 나갈 때 우리는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그 전문가들도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p.129

전염병이 만들어 낸 가장 현저한 불평등은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사이에 드러난다.

우리가 (가능성이 매우 큰 일이지만) 또 다른 팬데믹과 맞닥뜨린다면, 우리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의 본질적인 형태여야 한다.

p.215

만약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협력의 틀을 찾지 못한다면, 제약받지 않는 국수주의의 경쟁이 판을 치는 세계를 만날 것이다. 참으로 끔찍한 위험성인데도, 엄청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 제약받지 않는 국수주의적 경쟁의 세계에 담긴 위험은 참혹하다. 그리고 엄청나게 과소평가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두 나라인 미국과 중국이 (우주의 군사화에서 사이버공간의 무기화까지,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군비경쟁으로 불이 붙은) 무제한 분쟁으로 빠져든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다.

p.292

이처럼 통합과 고립 사이의 긴장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팬데믹은 각국이 눈길을 국내로 돌리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머리가 트인 지도자라면, 팬데믹이나 기후변화나 사이버 전쟁 등의 문제에 대해 유일한 해결책은 밖으로 (더 많고 더 긴밀한 협력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터이다.

p.301

파리드 자카리아,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 中

+) 이 책은 국제 정책 자문가로 활동중인 저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겪는 전세계의 동향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처럼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 대해 저자 나름대로 열 가지 주요 쟁점들을 찾아 몇 가지 의견을 제안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은 그런 재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한다. 또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 책에는 그런 부분들의 여러가지 입장을 정리해주고, 나라별로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제시하며, 잘못된 소문에는 근거를 들어 반박하기도 한다.

세계가 하나처럼 열린 자세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이제 자의반 타의반 닫힌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 않은 나라와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자국이 아닌 타국을 오고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자는 이런 시대에 개인과 기업,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가가 어떤 태도로 현실을 타개해야 하는지 언급해준다.

소통과 협력, 전문가의 책임있는 조언과 그 조언에 귀를 기울일 자세, 권력을 쥔 사람들 간의 알력보다 소외된 약자 혹은 약소국들을 위한 배려, 문을 닫기 보다 문을 열어 협력하고 이 상황을 극복할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태도,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도, 양극단의 상황을 넘어서려는 노력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객관적인 자료들을 인용한 부분도 있고, 저자의 의견에 여러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분량이 좀 있어서 읽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이지만 비교적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어서 편히 읽을 수 있다. 코로나에 대처하는 여러 국가 및 정부 그리고 개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된 책이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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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 - 홀가분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조슈아 필즈 밀번 & 라이언 니커디머스 지음, 신소영 옮김 / 이상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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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물건을 소유하고, 적은 일에 집중하고, 방해 요소를 줄이는 일은 우리에게 많은 시간과 자유와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세상에 기여하고, 성장하고, 열정이 샘솟는 일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갖게 되면 불만과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면 걱정과 근심은 적어지며, 삶의 의미를 충분히 좆는다면 진정 중요한 것만 남고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에는 덜 신경 쓰게 된다.

p.56

미니멀리즘은 중심에서 물러나고, 행복에 다가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욕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잘못되었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인생의 핵심이 되지 못할 뿐이다.

인생의 핵심은 훨씬 복잡하고 심오하지만 미니멀리즘을 통해 보다 단순하고 실질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p.92

놓아버리는 법을 배워라.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때로는 어떤 일을 아등바등 붙잡고 있기보다 그저 놓아버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일이 해결되기도 한다.

p.110

혼자만의 시간을 만드는 5가지 방법

일찍 일어난다 / 독서 시간을 정한다 / 산책을 한다 / 운동을 한다 / 집중에 방해되는 것을 없앤다

p.186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은 시간이다.

p.207

만약 지금 '해야 할까' 혹은 '하지 말아야 할까' 중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여온 문제가 있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면 된다. 분명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옳은 일을 하면 좋은 점은, 단지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전혀 기대하지 못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p.209

조수야 필즈 밀번, 라이언 니커디머스, <미니멀리스트> 中

+) 이 책은 '미니멀리즘'을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의 삶을 홀가분하게 만들 수 있는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인 여유라고 이야기한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두 사람이 각각 인생에서 충격적으로 경험한 어떤 일을 계기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해고, 가족의 아픔이나 죽음 등등 우리가 한번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볼 만한 일들이다. 저자들은 넓은 집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살다가, 작은 집에서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게 된다. 물론 자의의 선택에 의해서 그런 삶을 시도했다. 그들은 천천히 미니멀리즘의 삶에 젖어든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미니멀리즘의 삶을 시작한 그들은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도 깨닫게 된다. 또한 그러면서 주변의 타인들을 돌아보고 손을 내미는 넉넉함까지 알게 된다. 그들이 언급하는 미니멀리즘은 정리와 정돈 그리고 버리기를 포함하여 적게 소유할수록 더 행복해지고 따뜻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에게도 그렇겠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고 저자들은 언급한다. 읽으면서 다시 한번 손에 움켜쥐고 있거나 무언가에 집착하려고 할수록 더 불행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물건의 소유가 아니라 내게 줄 수 있는 여유가 진정한 행복이지 않나 돌아보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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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
이정섭 지음, 최진영 그림 / 허밍버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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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된 아픔을 해소할 수 있는 법이 있을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적립된 아픔을 사라지게 하는 법은 없다고 믿는다. 아픔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번뇌를 잊어버리라는 현자의 말 한 마디로 아픔을 잊기에 우리 대다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쌓인 아픔만큼 즐거움 역시 적립돼야 살아갈 에너지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

p.67

많이 읽히고 안 읽히고를 떠나 세상에 유위미한 글이라면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과, 그걸 표현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세상 구석구석의 디테일을 세심하게 빨아들이 후, 자기만의 해석을 더붙여 금이란 형태로 내뿜는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후천적으로 얻기 어려운 성격적 자질이 필요한데 바로 소심함이다. 감히 말하건대 소심함은 좋은 글쟁이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p.87

ㅡ소심함에서 비롯한 당신의 방어막이 누군가에게는 무심함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ㅡ주변의 누군가가 무심해 보인다면 그 사람은 상처많은 소심이일 수도 있고요.

p.146

좀탱이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은 쾌락에서 온다. 쾌락은 우리가 아는 즐거움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행복한 삶이란 인생 전체를 따졌을 때 즐거움의 총합이 가장 큰 삶이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골고루 즐거워야 한다. 즐거움엔 한계 체감의 법칙이 있고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에 한순간의 즐거움에 인생을 올인하는 것은 '안 즐거운 일'이다.

행복을 계산기 두드리듯 재는 무척 좀스러운 입장인데...... 이 방법이 참 쓸모 있더라. 이루기 어려운 목표에 행복감을 올인하지 않고,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자잘한 것들에 분배하기. 그 자잘한 행복이 다가왔을 때 분명히 인식하도록 종이에 적어둔다.

p.151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건, 인생이 혼자이길 바라서가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채운 에너지로 더욱더 즐겁게 함께 지내기 위해서다.

p.199

이정섭,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中

+) 이 책은 스스로 소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며 자기가 얼마나 소심한지 보여주고 있다. 그 사례들은 꽤 구체적인데 소심한 선택과 행동, 생각 등이 잘 드러나 있어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재미있게 웃은 부분도 있다. 저자는 소심해서 속상한 부분만큼 나름의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이 상처를 덜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나 글 속에 녹여내며 소심하지만 분명한 생각과 행동들을 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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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라, 나 이 생에도 그대를 만났네
덕현 지음 / 법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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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가장 암울한 것은 이 거친 생을 살아가야 할 이유나 목적이 도무지 잡히지 않고, 나와 세상을 개선시킬 여지나 희망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는 숙명적 사실이다.

p.28

"그럼 부처님께서는 무슨 즐거움으로 살아가십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래는 무욕의 즐거움으로 살아가느니라."

행복하라. 그러나 행복을 구하지는 말라. 구하지 않을 때 그것을 얻을 수 있으며, 두드릴 필요도 없다. 그 문은 원래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처님의 다른 행복론을 실천해보라.

무릇 일체의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을어 행하며

그 마음을 밝히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p.254

사람은 사는 동안 이미 생겨먹은 대로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무수한 행위를 한다. 그 행위들은 뜻 없이 짓고 마구잡이로 일어날 때도 있는 것 같지만, 지혜 있는 눈으로 살펴보면 낱낱의 행위에는 다 원인과 이유가 있고 진행되는 일정한 방식이나 패턴이 있으며,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나 결과 또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필연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p.345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내 겉모습은 어떻게 되어도 관계없다. 나에게 주어진 자리나 주어진 이름 따위는 다 헛것에 불과하니 오로지 대중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무심히 행하며, 내 자신이 본래 부처였기에 오로지 그 불성을 회복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오직 흔들리지 않는 보리심을 견지할 뿐, 다른 것을 돌아보거나 구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라.

p.426

덕현 스님, <행복하라, 나 이 생에도 그대를 만났네> 中

+) 덕현 스님은 법정 스님의 제자라고 한다. 길상사와 송광사, 그리고 간월암 등에도 머무르며 안거를 행하기도 하고 사찰 운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실망하기도 하고, 또 자신이 머무는 절 주변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상처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님은 그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실망하며 때로는 고민하기도 했다. 이 책의 초반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스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후반부는 부처님의 말씀과 이야기를 풀어내며 스님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 명상 에세이집이지만,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스님의 문장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굉장히 상식이 풍부한 분 같다는 것이었다. 철학, 인문학, 과학 등의 지식을 불교의 말씀에 접목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또한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글로 써서 인정하고 고민하고 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공개하기가 어디 쉽던가. 스님에게서 우리와 같은 일반 대중의 면모를 볼 때는 친근하게 느껴졌지만, 그분의 어려운 말씀들을 읽을 때면 또 그만큼 거리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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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김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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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에게는 '소곤소곤'이지만 역시나 병원 어디서도 정확히 들을 수 있는 볼륨이다.

"언니!"

"응"

"오래 살어!"

"그래, 고마워. 동상도 오래 살어!"

진료가 시작되고 먼저 들어온 할매의 진료가 끝날 때쯤 끝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는다.

"같이 오신 할머니하고 친하신가 봐요."

"누구?"

"아까 대기실에서 언니라고 부르던....."

"아, 친하지."

"같은 동네 사세요?"

"몰러, 오늘 첨 봤어."

그러더니 '원장님도 오래 살어.'라고 말하며 나간다.

p.64

'당신 덕분에 참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라고 말해줄 사람이 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100세 넘게 장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아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p.140

"조심해 가요. 계단 특히 조심하고요."

지팡이를 붙잡고 막 출발하려던 할매가 뒤돌아서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웬일이랴."

'뭐가 또 웬일이야'라는 표정으로 할매를 쳐다보자 한 마디를 더 한다.

"안 하든 짓 하믄 디진댜."

'계단 올라오기 힘들다 그러지 말고 계단 없는 딴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말하던 싸가지 없는 놈한테 뭔 볼일이 있다고 몇 년째 저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는 할매가 조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인 고만고만한 동네 병원인데. 뭐 하러 힘들게 저런 고집을 부리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고마웠다.

아, 그 할매 참! 안 하든 짓 하게 만들고 말이야.

p.155~158

"근데 이 한여름에 감기는 왜 걸리는 겁니까?"

"뭐, 여름에도 사람들이 감기 좀 적당히 걸려주고 그래야 저도 먹고사니까요."

내 대답을 들은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깔깔대며 웃다가 사래가 들리는 바람에 또 한참 기침을 한다.

그래, 먹고 살아야지. 먹여 살려야지.

그것 말고 뭐가 더 중요하겠는가.

p.173

"근데 원장님은 하고 싶던 일인가요, 지금 하시는 일이?"

"지금 하는 일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면 끝!"

p.210~211

의사에게는 본인의 감정과 상관없이 환자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적절하게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무관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노동..... 어쩌면 의사의 감정적 노동은 거기까지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폭발할 것 같은 순간이나 반대로 힘이 쭉 빠지는 고단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그 감정의 파도가 뇌세포 안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버텨 나가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입으로는 늘 괜찮다고, 사람은 그리 쉽게 안 죽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나 역시 괜찮지 않을 때가 많다.

p.261

김시영, <괜찮아, 안죽어> 中

+) 이 책은 응급의학 전문의로 살던 의사가 동네 의원으로 살게 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생각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저자는 응급실 의사로 10년을 지내면서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심각한 환자들을 치료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친손자처럼 아껴주던 가족 같았던 할아버지 의사의 유언으로 시골 동네 병원 의사가 된다.

처음에는 응급실과 다른 분위기의 병원에 심심하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궁시렁거림이 짜증나기도 해서 불친절하게 굴기도 했다. 나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대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매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그도 차차 적응하게 되면서 어르신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주고 받게 된다.

이 책에는 짠하면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먹먹하기도 하다가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다가 코끝 찡해지는 순간도 있다. 저자의 냉정한 면모도 있지만 그 밑에 깔린 애정도 보이고, 점차 어르신들을 대하는 방법을 깨우쳐가는 사람의 모습도 나타난다.

어쩌면 어르신들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분들의 기준에서는 자신의 건강을 돌봐주는 의사면서, 동네 친절하고 똘똘한 젊은이 같을 것이고,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함께 나눌 사람 중의 하나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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