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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ㅣ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책의 스포트라이트는 없는 자들을 비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불빛은 외사외과에 닿지 않았다. 외상외과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미미하게나마 예산과 정책들이 만들어졌으나, 과거 수많은 국책사업들이 그러했듯 대부분 허망하게 날아갔다.
만약 내가 외상외과가 아닌 일반적인 임상과를 전공했다면 아마도 세상의 무서움과 한국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목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중증외상센터 설립 과정에서 실제 한국 사회가 운영되어가는 메커니즘을 체득했다.
3%
대한민국의 웬만한 큰 조직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의료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1%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는다. 안 될 경우를 걱정할 것 없다. 정 안 되면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그뿐이다..... 나쁜 보직을 감수할 자세만 되어 있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다. 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상황에 밀려 해임되면 그만하는 것이 낫다......
12%
밥벌이의 종결은 늘 타인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버티는 것이 나은 법이며, 나 스스로 판을 정리하려는 노력조차 아까우니 힘을 아끼라는 그의 말이 나는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30%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는 사안의 중요성보다 누가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에서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중증외상 분야뿐인가?
36%
나는 아쉬운 소리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내 태도가 내 뜻과 달리 보일 수 있음을 알게 됐으나 고쳐가지 못했다. 다만 그런 내 태도가 진정으로 보건복지부 관료들을 걱정해서인지, 아니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더는 외상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필요한 일들조차 청하지 않는 것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77%
- 밥 벌어먹고 살게 되었으면 돈 욕심은 더 내지 마라. 어머니는 의사가 된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얼마만큼이면 충분합니까?
-시장기를 스스로 없앨 정도면 된다. 어머니의 답은 어머니처럼 곧았다.
92%
이국종, <골든아워 1> 中
+) 책을 읽는 내내 이국종 의사의 한숨과 체념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닫힌 조직 구조는 그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다. 새로운 용기나 도전 같은 건 그들에게 도발로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은 딱 한 가지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것'
외국에서는 응급의학과와 중증외상센터가 우리나라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적어도 긴급한 환자들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기느라 길에서 몇 시간씩 허비하다가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 최소한의 기본인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중증외상센터를 만들 때는 엄청난 예산과 수많은 시민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 가족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이 병원 저 병원 차로 옮겨 다니다가 길에서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끔찍하다.
책을 읽는 내내 '협조, 공문, 공식, 책임, 관료, 조직' 등의 단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이해하기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마음이 들리는 듯 했다. 그는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뿐 아니라 그 곁에 있는 그의 팀원들도 너무 고맙고 감사하며 훌륭한 사람들이다.
저자가 말하는 '원칙'을 나는 너무 이해하는 사람이고, 그 원칙을 지켜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의 두번째 책을 읽을 때 내가 깜짝 놀랄만한 기쁜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응급헬기를 마음껏 띄워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그래도 그 헬기소리에 항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중증외상 분야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그 분야를 전공하려는 전공의들도 늘어났다, 라는 그런 행복한 내용이 담겨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