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잽 - 김언수 소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이게 잽이라는 거다. 어깨와 주먹에 힘을 빼고, 툭툭, 주먹으로 치는 게 아니라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빨리 꺼내온다는 느낌으로 팔을 뻗는 거야. 툭툭, 스텝을 밟으면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툭툭, 발의 움직임을 따라 몸에 리듬을 타면서, 툭툭, 상대가 짜증이 나도록, 상대가 초조해지도록 툭툭, 계속해서 날리는 거야. 그럼 알아서 무너져. 잽으로 다 무너뜨린 다음 한 방에 보내는 거지. 해봐."
p.28
사람들은 사기꾼이 거짓을 파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사기꾼은 환상을 파는 직업이다. 그리고 그 환상은 거짓보다 진실에 훨씬 가깝다. 진실에 가까운 환상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갈 수 없는 곳에 가려하고, 자신이 움켜쥘 수 없는 것들을 움켜쥐려고 한다.
p.47
김언수, <잽> 中
+) 이 소설집은 '잽'을 비롯한 몇몇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 소설들은 대부분 마치 소설 '잽'에서 묘사하는, 이를테면 '툭툭' 치고 재빨리 빠지는 느낌의 작품들이랄까. 삶의 어둡거나 자조적인 부분들을 툭툭, 치고 빠지는 느낌이다. 깊이 있게 파고들어 묵직한 무게감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구성이나 인물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말 그대로 삶의 여러 면모에 '잽'을 툭툭 날리고 빠지는 것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마무리도 안되는 소설들인가 싶었다. 어쩐지 뒷맛이 깔끔하지 않아서 마무리가 되지 않고 끝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보니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유도한 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상투적인 삶의 반복이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데, 그 속에는 현대인의 불안이나 권태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시인 '이상'의 작품 <권태>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만큼 사람들의 삶에서 지루해서 불안한 면들을 저자는 잘 잡아내고 있다.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의 경우에는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글쓰기'의 '고통'에 대해 소름끼치도록 잘 전달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뒤가 깔끔하게 느껴지지 않던 것은 아마도 씁쓸한 느낌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툭툭, 잽을 날려 상대가 초조해지도록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은 인생이 우리에게 되풀이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