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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백영옥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아는 일이, 한 사람의 내면을 훨씬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일임을 나는 거의 확신한다. 거짓말을 할 때 그 사람의 성격이 더 잘 들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p.32
정지우 감독은 주인공 조인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아는 여자. 행복한 여자. 남의 얘기를 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여자."
남의 얘기를 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여자.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p.161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한때 눈부시게 빛나던 재능이다. 가장 잘하고, 제일 익숙하고, 정말 열심히 했던 것들이 결국 족쇄가 된다. 가장 가까이 있던 것들이 가장 멀리 달아나고, 가장 사랑했던 것들이 가장 먼저 배반한다.
p.202
행복이라는 것은 비누 거품처럼 끊임없이 터뜨려야 계속 생겨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p.304
올레를 걸으며 나는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걷는 여행이 울퉁불퉁해진 삶을 위로한다는 걸 아는 나이의 여자들이었다.
p.308
백영옥,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中
+) 내가 가끔 작가들의 산문집을 읽는 것은 소설 혹은 시에서 볼 수 없었던 그들의 매력적인 문장들을 탐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백영옥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그녀만의 문장들이 존재한다는 것. 화려한 문체나 독창적인 문장은 아니지만, 그녀만의 감수성이 살아있는 문장들이 제법 있었다. 아, 백영옥이란 작가는 이런 문장들을 구사했구나.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감상한 영화와 책을,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연결시켜 서정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단상들을 담고 있지만 감상문과 비평문 사이에서 적절하게 자리를 잘 잡고 있다. 주관적 감상과 객관적 가치평가(이를테면 영화나 책, 곧 작품에 대한)가 잘 부드럽게 잘 녹아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서 읽은 사람에게 메시지도 전달하고 간혹 미소도 전해준다. 잊었던 감수성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