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정 무역 재단은 개발 도상국의 농장을 인증하고 감사하는 세계 공정 무역 상표 협회와 별개로 운영된다. 영국 공정 무역 재단은 자신의 로고를 사용하는 영국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로고를 사용하는 영국 기업을 최대한 늘리는 활동을 벌인다. 당연히 많은 기업과 계약할수록 사업은 성공적이다. 따라서 공정 무역 로고에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제휴를 맺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공정 무역 로고를 알리는 것도 그들의 전략이다.

p.124

 

최초의 다국적 기업들은 대부분 사회적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캐드버리는 퀘이커교의 엄격한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받아 노동자들에게 공공 주택을 제공했고, 노예를 쓰는 농장에서 생한한 코코아는 쓰지 않았다. 도브, 바셀린, 립톤 등을 보유한 다국적 대기업 유니레버는 월리엄 레버가 설립한 회사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늘 깨어 있던 그는 직원들을 위해 집과 시청, 심지어 아트 갤러리까지 갖춘 마을을 세웠다.

p.485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나쁜 일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p.489

 

변화를 바란다면 그 기본은 우리와 대기업의 관계이고, 좋은 관계가 다 그렇듯 관계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물론 변화는 소비자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오스와 아프카니스탄에서 보았듯이 정부에서 악랄한 관행을 금지하고 최선을 권장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소비자로서 우리의 역할은, 장바구니에 넣는 윤리적 상품의 비율을 계속해서 늘리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기업이 윤리적 계획에 착수하거나 새로운 윤리적 상품 판매를 시작한다고 할 때 이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우리 모두 의사 결정을 통해 기업을 조종해 기업의 운영 방식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결국 책임은 우리 모두가 져야 한다.

p.503

 

 

코너 우드먼,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中

 

 

+)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공정무역'의 이면을 들여다본 책이다. 깨어있는 소비자라면 한번쯤 공정무역 상품에 관심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방 안 어딘가에 한 두개쯤 공정무역 상품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공정하게 거래된 상품일까.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정 무역이 사실은 대기업에게 유리한 공정 무역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저자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공정 무역' 제품으로 알려진 것들의 원료나 재료 혹은 제품의 생산 과정을 살펴본 결과 전혀 공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생산자들에게 그만큼의 타당한 보상은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하고 있는 지금의 일에서 밀려나지 않기를 바랄 뿐. 다국적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생산자들에게 최소한의 이익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정무역이 거래가 아닌 곳에 비해 이득이 더 큼을 비교하여 자신들이 충분히 아량을 베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랍스터를 잡는 원주민들은 특별한 보호장비 없이 심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그로인해 그들의 수명은 매우 짧아진다. 아편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 일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특별히 없다. 정부에게 아무 것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아편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의 노동자들은 야근을 강요받고 수없이 쓰러지며 때로는 죽어나간다. 하지만 그들 모두 생존하기 위해 견딘다.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은 그 회사에서 일하는 것 뿐이니까.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소위 공정 무역을 실시한다는 회사와의 거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언급대로 이런 행태를 바꾸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공정무역을 실시하는 회사에서 진정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공정무역 광고의 효과를 노리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살피고 선택해야 한다. 또한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점에서 소비자들은 공정 무역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 기업들이 기만하는 소비자가 사실 기업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당장, - 도법 스님의 삶의 혁명
도법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각적인 기쁨을 쫓으면 쫓을수록 삶은 힘들어집니다. (중략)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사람들의 존재의미를 사실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면 우리가 타인을 대하고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세상의 실상은 제 역할을 하게 되고 빛이 납니다.

p.28

 

 삶이 몸에 안맞는 옷처럼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삶을 벗어버리거나, 바꿔 입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나는 언제나 두 가지를 명심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는 현실에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내용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라는 '여실지견'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행동하는 대로 이루어지므로 언제나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언제나 직접 법의 길, 다르마(진리)의 길을 가면 그만큼이 바로 붓다의 삶이 됩니다.

p.65

 

절대 자비가 절로 나오는게 아닙니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자꾸 마음을 내야 합니다. 마음을 내고, 내고 또 내면 당연히 무르익을 수 있습니다.

p.105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살, 죽음 같은 것은 무거운 주제이지만 명료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살고 싶은 것입니다. 현재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로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연기론적 세계관, 관계론적 사고방식입니다. 이 말이 무엇이냐면, 때로는 "너를 위해서 내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네가 없는 내가 존재할 수 없지만, 내가 없는 너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없이는 네가 없기 때문에 너를 위해서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p.213

 

 

도법 스님, <지금 당장,> 中

 

 

+) 사람은 왜 살아야 할까, 나는 누구인가. 등등 불교계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볼 화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종종 생각했던, "사람은 왜 살아야 할까."에 대해너무 자기 중심적으로만 고민했던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살면서, 삶과 죽음 앞에 지나치게 이기적일 때가 많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네'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 버린다.

 

이 책은 '지금 당장,'의 실천 의지와, '지금 당장'을 직시해야 모든 문제의 출발선에 설 수 있음을 설명한다. 어제, 그리고 내일에 대해 집착하기보다 지금 당장, 오늘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면 어제와 내일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해결될 삶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경전의 구절들을 스님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사회와 개인의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이들

봄의 앞다툼 속 먼발치에 피어 있는 무명초

하루나 이틀 나타났다 사라지는 덩굴별꽃

중심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많은 눈물 흘리면서도

비켜선 것들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산 자들의 행렬에 뒤로 물러선 혼들

까만 씨앗 몇 개 손에 쥔 채 저만치 떨어져 핀 산나리처럼

마음 한켠에 비켜서 있는 이들

곁눈질로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비켜선 무늬들의 아름다움이었는데

일등성 별들 저 멀리 눈물겹게 반짝이고 있는 삼등성 별들이었는데

절벽 끝 홀로 핀 섬쑥부쟁이처럼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비켜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한쪽으로 비켜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비켜선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 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잠깐 빛났다

모습을 감추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류시화,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中

 

 

+)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돌이고, 꽃이며, 주변에서 만나는 자연이었다. 그것들이 시인에게는 주변의 것이 아닌 자기 것으로 내재되면서 동일시되고 있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자연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다시 주목하였고, 그것이 사람의 기본적 태도임을 증명한다. 그의 시는 과학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느끼는 순간 바로 적어 내려간 듯 자연스럽게 설레는 감정이 묻어난다.

 

내가 류시화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감수성을 건드리는 몇 개의 문장들 때문이다. 이는 예전에도,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에 그가 변하지 않는 필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내게는 매력적이다. 이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며, 사람이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라도, 사람이라면 간직해야 할 기본적 사상들이 그의 시에는 담겨 있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명상 그 이상의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류시화 시인의 시를 명상글 혹은 잠언글로 매도하는데,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된 평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명상이면 안될까? 잠언이면 부족할까? 시가 간직한 기능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라면, 그의 시는 분명 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본다.

 

다만, 변함없는 그의 필력에서 발전없음을 보는 독자라면 내가 딱히 변명을 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의 필력은 타락 혹은 세속에의 때묻음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발전이라 여기기에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무작정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 후회 없는 결혼을 꿈꾸는 여자들이 알아야 할 것들
남인숙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생활에서도 기획, 영업, 정치 능력은 필요하다. 결혼 생활을 잘해내며 가족에게 존중받는 여자들은 은연중 그런 능력들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p.21

 

실패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들이 적절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이유는 대부분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 수준이 높은 여자들은 집착이나 소유욕이 아닌 건강한 사랑을 할 줄 알고, 남편의 존중과 사랑도 더 많이 받는다.

p.28 

 

나는 모든 여자들이 결혼하기 전에 드라마 속 그녀처럼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일에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결혼은 이전에 감히 생각도 못해봤던 싫은 일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 과정이며, 그것을 피할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크다.

p.38

 

결혼 생활을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단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바로 '인내심'과 '연기력'!

p.174

 

"세라비(이게 인생이야)! 세라비! 힘들어도 받아들여!"

노력하는 게 힘들 때마다 나는 "세라비!"를 외친다. 노력하기 귀찮아서 포기해버리면 나중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삶의 영역에서건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고 노력해야 하는게 어쩔 수 없는 우리 삶이다.

p.179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특징이 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이제까지의 불행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데다가 앞으로 노력이라는 것을 힘들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p.257

 

남편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으면 그 방향으로 자존심을 북돋워주면 된다.

p.284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와의 관계에서 절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은 평생을 함께할 수 없을 사람을 남편감으로 골랐을만큼 멍청하지 않다.

p.418

 

 

남인숙, <나는 무작정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中

 

 

+) 이 책은 결혼한지 15년이 지난 저자가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 혹은 결혼한지 2~3년 정도된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저자의 결혼생활을 바탕으로, 작가는 결혼이 새로운 직장생활의 시작이라고 믿고 결혼이라는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점들에 대해 언급한다. 더불어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 살아감에 있어서 어떻게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적당한 인내와 연기력이 필요하고, 공동의 목표가 필요하며, 상대방에 대한 기대보다 나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물론 이 책은 여자들의 입장과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에 남자들에게는 좀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적어도 여자들이 결혼생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결혼하기 전의 심리가 어떤지 알려주기에, 결혼 전 예민한 여자들 때문에 괴로운 남자라면 혹은 신혼 초 다툼이 종종 있는 남자라면 읽어도 좋을 책이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나 이 책의 내용에 굉장히 공감했다. 그리고 결혼생활이란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내 친구의 농담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항상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꺼야."라는 의견이 옳은 것 같다. 하지만 부부가 서로에 대한 소소한 관심을 유지하고, 아무리 친해도 서로 지켜야 할 예의는 지키며, 각자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높인다면 결혼생활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 (물론 여자 입장에서는 언제나 어려운 시댁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아, 이건.... 정답이 없으리라. 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이 간절하게 돈을 필요로 할 때는 결코 주지 않으면서 돈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더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치약이나 샴푸를 선물로 받는데,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권 봉투가 자꾸만 선물로 들어와서 수천만원씩 서랍에서 썩어갔다.

p.271

 

"우린 정말 치열하게 사랑했어. 그렇게 죽을 만큼 사랑했다는 점이 중요한 거야. 끝까지 잘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끝나더라도 크게 여한은 없어. 인생을 건 진짜 사랑은 그 자체로 훈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헤어지게 마련이니까."

p.369

 

"아무리 잘 버티는 사람이라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일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흔한 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일격이 되기도 하니까."

p.386

 

 

심윤경, <사랑이 달리다> 中

 

 

+) 이 소설에는 돈이 부족하지 않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자꾸 더 돈을 필요로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일류대를 졸업한 인텔리 엄마는 트럭운전사 출신이지만 엄청난 돈을 번 아빠와 결혼했다. 하지만 아빠의 바람으로 황혼 이혼을 하게 된다. 역시 일류대 출신이지만 돈을 제대로 관리 못해서 사업하는 족족 망하고 빚쟁이에 쫓기는 작은오빠, 돈이 많으면서도 가족에게 구두쇠처럼 구는 이기적인 큰오빠, 이들 모두를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정작 이혼한 아빠에게서 받은 신용카드를 매달 몇 백만원씩 쓰는 혜나가 그들이다. 

 

혜나의 시선으로 가족들의 관계가 구성되는데, 혜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비판하면서 자기 또한 그들처럼 생활하고 있음에 늘 괴로워한다. 시도때도 없이 술을 마시고 남편과의 관계를 동네 친구 정도로 여기다가,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한다. 그 새로운 사람이란 설정도 혜나에게서는 사랑이고, 혜나의 입장에서는 동지이며, 상처를 간직한 인물이다. (실상 그 상처가 두드러지게 표면화되지 않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 남자의 가족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와 연결성이 떨어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듯 보이지만, 상당히 현실적이다. 경제적 스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분위기의 가족이야 흔하지 않을까. 흥미로웠던 것은 '혜나'라는 인물이었다. 가족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딱히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답답한 기분을 술로 풀어내려한다. 현실에는 이런 모순적인 인물이 많지 않을까.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조금씩 모순을 안고 살아가니까 말이다.

 

조금 아쉬운 점은 혜나가 만난 '정욱연'이란 남자와의 관계 설정이 너무 조급하게 흘러간 것이 아닐까 싶다. 좀 더 인연이 될 만한 꺼리를 제시하든가, 아니면 철저하게 계산적인 관계가 소설의 흐름상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그래도 읽는 내내 재미있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