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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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조리 찢으면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끝이 나겠지. 남편에게 걸었던 희망이 사라진 것보다, 그런 남편을 믿었던 내가 더 측은했다. 부질없는 희망은 빨리 버려야 했다.

p.126

 

"어지간하면 참아. 결국 후회하게 되어 있어."

"어지간하지 못하면."

"그럼 참지 말고."

p.146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지나가게 된다. 그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내일모레면 말복이었다. 삼복더위가 지나면 곧 선선해지고, 금세 추워질 것이다. 세상에 사람처럼 간사한 것은 또 없었다.

p.149

 

 

김이설, <환영> 中

 

 

+) 소설을 읽는 내내 착잡했다. 내가 만약 담배라도 피울 줄 알았더라면 한 대 피워물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이 작품은 기존의 여느 소설들에서도 본 듯한 익숙한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무능한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 젖먹이를 떼어놓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여자. 한 가족을 책임지게 되면서 차차 자신의 마음도 몸도 잃어가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팔자라고 말해버리기에는 여자의 삶이 너무나 탁하다. 딱하다 못해 탁하다. 나는 소설 속 여자를 줄곧 그 시선으로 보았다. 그럼 여자가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편했을까. 충분히 예상되듯 여자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이 먹먹해질정도로 씁쓸했던 것은 바로 여자가 자신의 불행한 상황 앞에서, 더 최악의 불행을 상상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합리화라면 합리화랄까. 뜻없는 웃음만 연발한다. 미친 여자처럼. 아마 여자는 미치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 속 여자의 상황이라면 나라도 충분히 그렇다. 이 소설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현실의 암울한 면을 조근조근 씹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제시한다. 사람 사이의 예의나 인간에 대한 예의 따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 소설에는 해결책이나 안타까움은 없다. 그저 문제, 위악, 최악 등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현재의 곳곳에 숨겨진 현대인의 위악을 끄집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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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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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몸 구석구석에 일상의 무게에 길들여진 각질이 가득합니다. 이 각질은 습관이 만든 것도 있고, 살아가며 받은 상처가 굳어진 것도 있지요. 문제는 이런 각질이 환경에 적응하고 즐기고 맛보는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마음속 깊이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감각이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p.57

 

삶은 추억이란 열매를 섭취하고 새로운 기억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추스르는 과정입니다. 행복한 기억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격려하지만, 잊고 싶은 기억은 반복적으로 마음속 깊이 투과되어 상처를 냅니다. 상처(scar)와 별(star)은 단 하나의 철자로 인해 차이가 드러납니다. 상처가 숙성되어 향기가 날 때, 저 하늘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비추는 별이 되는 것이지요.

p.65

 

옹기 속에서 장이 숙성되는 건 옹기가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요. 상처를 강제로 봉합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옹기는 다시 유기적인 호흡을 시작할 것이고, 또 다른 나는 '현실에서 힘든 나'를 위해 오랫동안 그 상처를 껴안아 곰삭혀줄 것입니다.

p.69

 

행복의 진보는 덧셈이 아닌 뺄셈의 진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말을 생각해봅니다.

 

행복은 채움이 아닌 비움을 통해, 새로운 능력과 희망을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p.76

 

 

김홍기, <하하 미술관> 中

 

 

+) 이 책은 미술치료에서 고통을 다루는 방법들을 적용하여,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림을 통해 우리의 내면에 반창고를 붙이기도 하고, 우리 내면의 고통과 마주하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요즘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그림(사진)이 대부분이다.

 

나는 젊은 작가들의 그림과 마주하며 신선하고 경쾌한 작품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드러내고자 한 것이 무엇이건, 그것에 주목하기보다 독자로서 그림을 바라보며 내 안의 나와 마주한 순간에 집중했다. 이 책은 그림을 보여주며 미술심리치유의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그림을 통해 천천히 스스로와 마주하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자. 특별한 의미없이 그저 그림을 보고 싶다고 해도, 이 책은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우선 그림에 다가서는 작가의 표현들이 전혀 어렵지 않고, 인간과 삶 그리고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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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 수학 오디세이 1
말바 타한 지음, 이혜경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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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물질이 없는 한 우리들이 행복하기란 어렵다네.

운이 나쁜 사람들에게 행복을 이야기하지 말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할 때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사랑해야 하니까.

p.212

 

"그 암울한 암굴 감옥의 벽에서 잠깐 동안이라도 그와 같은 처지에 있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해결책이지. 숫자만으로 해결하려 들면 이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네."

p.224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자격이 없다."

p.245

 

진실은 아무리 여러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입니다.

p.280

 

 

말바 타한,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 中

 

 

+) 이 책은 '셈'에 능한 목동 '베레미즈'를 우연히 만난 '타드 마이아'의 기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수학자인 저자가 만들어낸 허구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여행을 다니면서 '셈'을 활용한 산수, 수학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산수나 수학을 싫어하는 청소년들에게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공부인지 알려주는 데 적합한 책이다.

 

나는 청소년기에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수학과 과학이었는데. 특히 수학에는 정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셈'의 신비로움에 여러번 감탄했다. 숫자 4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갖가지 공식들을 통해, 아니, 그것이 1, 2, 3, 4 등등의 수를 만들어냈을 때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웠다.

 

내가 만약 수학을 이렇게 놀랍고 신비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싫어했을까. 나는 가끔 수학이나 영어를 다시 기초부터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건 이제라도 내가 그 학문들이 매우 흥미롭고 신비로운 것이라는 걸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산수, 수학이 굉장히 흥미로울 수도 있다는, 매우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 청소년 대상의 소설이지만, 수학에 흥미라 없는 사람들 누가 읽어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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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원리 - 스마트버전
차동엽 지음, 김복태 그림 / 동이(위즈앤비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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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미의 라이벌은 어디입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와타나베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제의 와타미입니다."

p.28

 

"감옥 문창살 사이로 내다보는 두 사람, 하나는 흙탕을 보고 하나는 별을 본다."

p.89

 

- 인생의 좌표가 될 명언이나 말씀 구절을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수시로 암송하자.

- 나의 삶에 절망, 두려움, 우울증 등이 밀려 올 때 지혜의 말씀을 빛으로 삼아 몰아내자.

- 곤경에 직면한 이웃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며 위로하자.

p.116

 

"삶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을 우리에게 준다."

p.155

 

"이제 우리는 아주 쉽게 이 세상의 행복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외롭거나 용기를 잃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존중하는 몇 마디의 말을 건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무심코 건넨 친절한 말을, 당신은 내일이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일생 동안 그것을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

p.184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7-38)

p.256

 

 

차동엽, <무지개 원리> 中

 

 

+) 이 책의 저자 차동엽 신부는 가톨릭 사제이지만 대중 작가이자 강연가로도 널리 알려진 분이다. 저자가 특정 종교라고 해서 이 책이 특별히 종교성을 띈 것은 아니다. 특정 종교의 구절들을 빌려온 것은 사실이나, 읽는 이로 하여금 명언이나 격언처럼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특히 예수님이 '용서'에 관해 말씀하신 부분에 깊은 감동을 받았는데.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행위에는 나 자신의 심신을 보살피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책은 풍부한 예화들을 바탕으로 삶의 지혜를 전해준다. 희망과 실천과 통합의 무지개 원리를 통해 인생을 행복하고 의미있는 길로 인도한다.

 

삶의 목적을 찾고, 매사 하는 일에, 그 순간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것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지혜를 찾으며, 꿈을 품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또한 말과 습관을 다스려서 자신의 의지를 계발하고,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성공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알기 쉽게 여러 예화와 명언, 격언들을 동반하여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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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사는 집 문지 푸른 문학
조명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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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것들을 현재에 붙들어놓는 일은 예술가만이 할 수 있다면서 이모는 지금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멈춰있는 상태라고 했었다. "어렵니? 네겐 아직 어렵겠지. 하지만 사진을 찍어 보면 알 수 있어. 멈춤, 멈춤. 그 반복이 바로 움직임이란 걸 말야. 예를 들면 넌 늘 그 모습 그대론데 그런 상태가 계속돼서 자라고 움직이고 사는 거라고."

p.84 

 

아무리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행되기 전에는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은 일,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하지 않은 일들은 흘러간 강물처럼 사라져버리고, 가슴에 남아서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란 어째서 예정도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p.92

 

엄청나게 술에 취한 상태로 내 방에 들어온 이모가 너처럼 어린애가 뭘 알겠냐면서 어쩌고저쩌고 주절대던 끝에 한 말이 생각났다. 순진하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것으로, 좋은 의미에서 덕목이 아니라 죄악이라고. 사람이 순진하기만 하다면 발전이란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p.150

 

 

조명숙, <농담이 사는 집> 中

 

 

+) 이 소설은 가족 이야기를 고등학교 2학년 '영은'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은 영은은 수학 문제집 풀기로 슬픔을 달래는 엄마와 함께 산다. 또한 늘 웃으며 이런 저런 옷을 다시 수선해서 새로운 옷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취미인 할머니도 함께 산다. 그리고 아버지가 외국인(다른 가족들은 모두 그를 '코끼리'로 부른다)이라 믿고 핀란드로 찾으러 간 씩씩한 사진작가 이모도 같이 산다.

 

그런데 사실 가족들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하는 그 '코끼리'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그저 농담일 뿐이다. 하지만 코끼리는 그들 각자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 어려운 순간을 견디게 만드는 그런 존재이다. 할머니에게도, 이모에게도, 엄마에게도, 그리고 영은에게도. 그 코끼리가 그들의 집에 농담으로 존재하게 되면서, '농담이 사진 집'이란 이 가족에게 희망이며 서로를 끌어안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책이 청소년 대상의 소설이 아니라 성인 대상의 소설이라도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다만 코끼리의 상징성이 가족들에게 각각 연결되는 부분이 살짝 인위적으로 느껴져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가족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우정, 다문화권 사회에서의 고민들을 엿볼 수 있기에 가볍지만 진지하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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