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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들 ㅣ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평점 :
"고통이란 몰이해인 거야. "
"그건 진짜라고. 그걸 몰이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존재하지 않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 고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상태야. 그리고 고통이 오면, 그걸 알지. 진실을 아는 것처럼 안단 말이야. 물론 사회 조직이 하는 것처럼 병을 치료하고, 굶주림과 불공평을 막는 것은 옳아. 하지만 어떤 사회도 존재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해. 우리는 고통을 막을 수 없어. 이런 고통이나 저런 고통은 가능할지 몰라도 고통 자체는 안된다고. 사회는 오직 사회적인 고통,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줄 수 있어. 나머지는 남는 거야."
p.89
"전체를 볼 수 있으면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행성, 삶 ......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돌멩이가 보이겠지. 그리고 매일 매일 삶은 힘겨운 일이고, 당신은 지치고 패턴을 잃어버리지. 거리가, 간격이 필요한 거야.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달로 보면 돼.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죽음이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보는 거야."
p.263
"똑같이 낡은 위선이에요. 삶이란 투쟁이고, 가장 강한 것이 이기는 법이에요. 모든 문명은 근사한 말로 피를 숨기고 증오를 덮는 거고요!"
p.305
"자, 우리는 시간이 <지나간다>고, 우리를 지나쳐 흘러간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우리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면서 항상 새로운 시간을 발견해 내는 거라면 어떻겠습니까? 책을 읽는 것과 조금은 비슷하겠군요. 책은 모두 표지 사이에 한꺼번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려면 항상 첫 페이지에서부터 시작해서 규칙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죠. 우주를 아주 커다란 책이라고 치고, 우리는 아주 작은 독자라고 치는 겁니다."
p.307
어슐러 K 르귄, <빼앗긴 자들> 中
+) 이 책에서 등장하는 쌍둥이 행성, 우라스와 아나레스는 서로 전혀 다른 체제 아래 유지되고 있었다. 200년 전 우라스의 빈부 격차와 남녀차별에 반기를 든 혁명가 오도에 의해 시작된 아나레스의 아나키즘 실험은, '평등하고 모순되지 않는 사회'라는 목표를 지향하며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주의와 집단주의에 의해 유지되던 아나레스는 한계 상황에 이르러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고, '자발적 조직'이라는 단체의 주도 아래 물리학자인 쉐벡이 두 행성의 교류와 발전을 위해 우라스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우라스에는 국가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또다른 모순으로 가득차 있었다. 쉐백은 실망하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엿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아니, '평등이냐, 자유냐'의 고전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두꺼운 분량만큼 천천히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인데, 쉐백이 우라스와 아나레스에서 사람들과 나누게 되는 대화 하나 하나에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우리 나라의 소설 <광장>과 매우 흡사한 구조로 구성된 작품이다. 결국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제 3국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던 배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물리학자인 '쉐백' 또한 우라스와 아나레스 사이에서 방황하고, 양 쪽 국가의 모순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의 가족이 있는 아나레스로 다시 탈출한다. 결말이 좀 다르지만 주인공이 양쪽 체제 안에서 평등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