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맨발로 희망을 쏘다
로리 홀스 앤더슨 지음, 홍주진 옮김 / 개암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인생이란 불확실한 것, 위험은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고 군대에 대항하는 음모 자체가 의회에 의한 것이라고들 수근거린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도록 하라.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죽는 것은 단 한 번이다. 우리의 모든 일들, 모든 목적과 추구하는 바가 이 중요한 사건에 딱 맞기를....
- 연방 하원의원 에이브러햄 클라크가 엘리아스 데이튼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p.113
"나보고 다시 스파이를 하란 말이니?"
"들어 봐, 우리의 자유는......."
나는 말을 막았다.
"이 바보야, 넌 눈 뜬 장님이야.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유를 줄 것 같니? 천만에. 자기들의 자유 외에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야."
p.205
"얘는 노예야. 자유인으로 대해 줄 수 없어."
p.298
마담은 내 영혼마저 묶어 놓을 순 없어.
그래. 마담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더한 고문은 무엇인가? 채찍질인가? 나는 피를 흘릴 수도 있고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담은 더 이상 루스를 해칠 수 없다. 또한 내가 영혼을 내어 주지 않는 한 나의 영혼을 다치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은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p.309
로리 홀스 앤더슨, <맨발로 희망을 쏘다> 中
+)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는데, 나는 책장을 넘긴 순간부터 다 읽을 때까지 한번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한숨이 계속 나왔고 내면에서 분노가 일었다. 그렇게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사람들은 잔인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봉건제도 하에서 있던 일과 다르지 않을까. 아니, 왜 사람들은 조금만 권력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드는 걸까.
이 작품은 230여 년 전 미국 독립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흑인 소녀가 자유를 찾아 많은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그리고 있다. 우리 나라에 존재했던 '종'의 개념이 서양에서는 '노예'로 존재했던 것이다.
인간의 본질, 인간의 본능인 자유를 억압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책은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두 부류로 나누어 제시한다. 식민지하의 억압에 반발하여 전쟁을 하는 사람들과, 노예제도 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는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외쳤던 그 순간에도 노예는 자유를 꿈꾸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열 세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사람들에게, 아직 열살도 채 안된 소년을 팔아버리는 사람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몹시 분노했다.
주인공 소녀 '이사벨'은 자기와 몸이 아픈 동생의 자유를 위해 처음부터 노력한 똑똑한 아이였다. 하지만 부모가 죽으면서 아이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거의 대부분 거짓말을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아이가 믿은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두 아이의 믿음을 져버렸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하지만 그 한 사람도 소녀의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물론 결정적인 도움을 주긴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아이가 혼자 힘으로 친구를 구하고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흑인 노예의 자유에 대해서는 눈감아 버리는 독립군들의 이중적 태도와 노예의 자유를 전쟁에 이용하는 영국군으로 인해 상처를 받지만 이사벨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 어떤 고난도 자유를 향한 이사벨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이사벨의 자유는 자신이 되찾고, 자신이 지킨다.
어쩌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어른들보다 이사벨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진정 자유를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희망을 놓지 않고 그 희망을 위해 직접 몸을 움직이는 사람. 그게 바로 이사벨이다.
이 작품은 역사소설답게 기존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서양의 역사와 동양의 역사를 비교하게 만드는 책이다.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좋은 역사소설이 많을텐데, 번역의 문제로 늘 우물 안 개구리 신세밖에 되지 못하는 우리 문학에 대한 안타까움이 되살아나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