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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 - 12년차 집시 세라의 인생사용법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그의 인력거 위에서 흐허헉 흐허헉,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날 한참을 지켜보았다. 부스럭부스럭 인력거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 비닐봉투를 열더니 뭘 하나 꺼내서 날 준다. 둥그런 비스킷이었다.
"이거 먹고 울지 마. 사는 거, 힘들어. 별일 다 있어. 그래도, 노 프러블럼."
p.22
"나이가 드니까 등에 멘 보따리에서 하나둘씩 뭔가가 빠져 나가요. 남들은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아쉬워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가뿐하니 좋을 수가 없네. 젊을 때는 그 안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었는지 항상 어깨가 결렸다우. 70살쯤 되니 짊어지고 다녔던 걱정거리들이 어디론가 술술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니만 80살을 넘어서니 세상에 어린애들 등에 메는 가방처럼 납작하고 가벼워져버리지 않겠어? 그래서 그걸 메고 요즘은 헤헤헤, 애들마냥 지내요.";
p.47
"두 개의 토마토를 싱싱하게 오래 보관하는 법을 알아? 서로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거야. 딱 포개 놓으면 금방 포개진 부분부터 물러지지."
사납도록 명료하다. 토마토도, 사람도 명료한 쪽이 현명하게 사랑을 오래 누린다.
p.50
낭비하지 못하는 삶은 아름답지 않다. 실용적일지는 몰라도. 꼭 필요한 것만을 꼭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백화점에서 고른 선물처럼 두근거리는 황홀함을 선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아름답고 멋있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한다. 돌이켜 보면 행복한 기억이란 거의 모두 근사하게 낭비했던 기억들이다.
p.65
목적이 있으면 보지 못한다. 삶을 잃어버린다. 여행객들이 언제나 토박이들은 알지 못하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p.69
"꿈에서도 웃으라!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순간에 웃도록 하라.
그러면 '웃을 수 없는 순간'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두가 깊은 절망과 슬픔의 나락에 빠져 있을지라도 희망을 갖고 웃는 단 한 사람이 있으면 능히 헤쳐나올 수 있다.
그대가 그 첫 번째 웃는 단 한 사람이 되어라."
p.165
힘내서 힘껏 즐거워하세요!
우리 살아 있는 이유, 오직 그것 하나니까요.
순간의 즐거움에 깨어 있으세요!
이것이 인생을 심각하게 살 용의가 없는 사람들의 행동강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당신이 승자입니다.
p.192
곽세라, <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 中
+) 작가의 용기가 부러운 책이다. 안정적이었던 직장 생활을 벗어나 인도로 떠난 작가는 그 뒤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현명한 깨달음을 얻고, 의외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 그럴수록 삶은 더 자유롭고 신나게 변해간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5개 국어가 가능한 사람이기에 좀 더 빠르게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굳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생을 심각하게 살지 말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어차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인생은 심각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인력거 아저씨의 말대로 인생, 별 일 다 있을테니 울지 말자. 걱정하지 말자.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저자는 심각하게 살지 말자고 외치는데, 나는 가볍게 그리고 넉넉하게 살자고 외친다.
인생이 뭐 별거가, 라는 말은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많음을 격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이다. 목적없는 여행 혹은 '떠남'에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