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247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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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소묘'

 

 

누가

발자국 속에서

울고 있는가

 위에

가볍게 뜬

소금쟁이가

만드는

파문 같은

 

누가

하늘과 거의 뒤섞인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가

편안하게 등을 굽힌 채

비치 거룻배처럼 삭아버린

모습을 보고 있는가,

누가

고통의 미묘한

발자국 속에서

울다 가는가

 

 

박형준, <춤> 中

 

 

+) 시인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박형준의 이 시집에는 시인이 말하려고 하는 '무언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숨긴 것인가 고민도 해보았지만 숨겼다기 보다 오히려 애초에 그것이 있었는가 의심이 드는 작품들이 많다. 생명의 신비나 자연의 경이로움을 논하기에는 그의 작법이 너무 낡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시인이 바라보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이기 보다 시인의 사상의 틀 안에서 재구성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신선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소재의 문제인지 시인의 시상 전달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박형준 시인의 진지함이 이번 시집에서는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듯 하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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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 - 12년차 집시 세라의 인생사용법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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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그의 인력거 위에서 흐허헉 흐허헉,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날 한참을 지켜보았다. 부스럭부스럭 인력거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 비닐봉투를 열더니 뭘 하나 꺼내서 날 준다. 둥그런 비스킷이었다.

"이거 먹고 울지 마. 사는 거, 힘들어. 별일 다 있어. 그래도, 노 프러블럼."

p.22

 

"나이가 드니까 등에 멘 보따리에서 하나둘씩 뭔가가 빠져 나가요. 남들은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아쉬워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가뿐하니 좋을 수가 없네. 젊을 때는 그 안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었는지 항상 어깨가 결렸다우. 70살쯤 되니 짊어지고 다녔던 걱정거리들이 어디론가 술술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니만 80살을 넘어서니 세상에 어린애들 등에 메는 가방처럼 납작하고 가벼워져버리지 않겠어? 그래서 그걸 메고 요즘은 헤헤헤, 애들마냥 지내요.";

p.47

 

"두 개의 토마토를 싱싱하게 오래 보관하는 법을 알아? 서로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거야. 딱 포개 놓으면 금방 포개진 부분부터 물러지지."

사납도록 명료하다. 토마토도, 사람도 명료한 쪽이 현명하게 사랑을 오래 누린다.

p.50

 

낭비하지 못하는 삶은 아름답지 않다. 실용적일지는 몰라도. 꼭 필요한 것만을 꼭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백화점에서 고른 선물처럼 두근거리는 황홀함을 선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아름답고 멋있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한다. 돌이켜 보면 행복한 기억이란 거의 모두 근사하게 낭비했던 기억들이다.

p.65

 

목적이 있으면 보지 못한다. 삶을 잃어버린다. 여행객들이 언제나 토박이들은 알지 못하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p.69

 

"꿈에서도 웃으라!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순간에 웃도록 하라.

그러면 '웃을 수 없는 순간'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두가 깊은 절망과 슬픔의 나락에 빠져 있을지라도 희망을 갖고 웃는 단 한 사람이 있으면 능히 헤쳐나올 수 있다.

그대가 그 첫 번째 웃는 단 한 사람이 되어라."

p.165

 

힘내서 힘껏 즐거워하세요!

우리 살아 있는 이유, 오직 그것 하나니까요.

 

순간의 즐거움에 깨어 있으세요!

이것이 인생을 심각하게 살 용의가 없는 사람들의 행동강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당신이 승자입니다.

p.192

 

 

곽세라, <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 中

 

 

+) 작가의 용기가 부러운 책이다. 안정적이었던 직장 생활을 벗어나 인도로 떠난 작가는 그 뒤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현명한 깨달음을 얻고, 의외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 그럴수록 삶은 더 자유롭고 신나게 변해간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5개 국어가 가능한 사람이기에 좀 더 빠르게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굳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생을 심각하게 살지 말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어차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인생은 심각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인력거 아저씨의 말대로 인생, 별 일 다 있을테니 울지 말자. 걱정하지 말자.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저자는 심각하게 살지 말자고 외치는데, 나는 가볍게 그리고 넉넉하게 살자고 외친다.

 

인생이 뭐 별거가, 라는 말은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많음을 격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이다. 목적없는 여행 혹은 '떠남'에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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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다 창비시선 26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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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위의 흰 눈'

 

간밤에

 

마당에 내놓은 의자 위에 흰 눈이 소복이 내렸다



가장 멀고 먼 우주에서 내려와 피곤한 눈 같았다, 쉬었다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친 눈 같았다

 

창문에 매달려 한나절,

 

성에 지우고 나는 의자 위에 희 눈이 쉬었다 가는 것 바라 보았다

 

아직도 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아직도 더 가야 한다고

 

해살이 퍼지자

 

멀고 먼 곳에서 온 흰 눈이 의자 위에 잠시 앉았다 휘어 가는 것

 

붙잡을 수 없었다

 

 

유홍준, <나는, 웃는다> 中

 

 

+)  이 시집은 보여지는 것에 주목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여지는 것들이란, 사실 그대로라기 보다 시인의 시점에 초점을 두어 시인이 바라보는 관점으로 쓰여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자. '다방에 관한 보고서'는 철저하게 시인이 조사한 자료에 의해서 전개된 시이다. 시인은 사실적인 면에 자신의 의견을 살짝 보태는 방식으로 이번 시집을 이끌고 있는데, 솔직히 사실의 발견에 치우친 면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보통 대중의 눈과 시인의 눈이 특별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시인이 자신만의 시를 창작하는데 독특한 시선이 있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는 그 독특함이 없다. 보여지는 만큼 자신이 본 만큼 서술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그것이 서술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한계라고 생각된다.

 

감상의 나열이 아니라, 사실의 언급이 아니라, 좀 더 시인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아쉬움이 묻어난다. 시가 꼭 독특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지만, 단순이 일상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그것이 시가 될 수 있을까 안타깝다. 더 깊이 있는 사유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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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땅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14
생 텍쥐페리 지음, 송태효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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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폭풍우니, 안개니, 눈 따위에 난감해지기도 할거야. 그럴 땐 자네보다 먼저 그걸 겪은 사람들을 죄다 떠올리는 거야. 그리고 간단하게 생각하라고. 남들이 해낸 것이라면 늘 해낼 수 있는 것이거든."

p.21

 

"맹세컨대, 그 어떤 동물도 내가 해낸 그런 건 해낼 수는 없었을 거야." 내가 아는 한 가장 고상한 이 한 마디. 인간의 자리를 잡아주고, 인간을 영예롭게 하고, 진정한 서열을 복원해 주는 이 한 마디가 내 기억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어.

p.76

 

그의 위대함은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데 있다. 자신에 대해, 우편물에 대해, 그리고 희망을 걸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이나 희열을 자신이 품는다. 그는 저기, 산 자들이 새롭게 지어 가고 있는 것에 책임을 지며, 그 일에 동참해야만 한다. 자기 일의 한도 내에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약간은 책임을 지는 사람인 것이다.

p.78

 

아주 사소한 역할일지라도 그것을 의식하게 될 때야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다 평화롭게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엇인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p.292

 

 

생텍쥐페리, <사람들의 땅> 中

 

 

+) 이 책을 읽으면서 비행사들이 자신들의 직업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가 돌아보게 되었다. 비행 중 추락한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서의 일을 근거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당시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막 한 가운데 떨어졌을 때에도 자신 혼자라고 생각했더라면 쉽게 목숨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였다. 그리고 눈 덮인 산에 떨어진 또 다른 비행사는 동료를 의식 속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그때에도 그들은 함께였다.

 

이 책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혼자서 살아가는 땅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땅을 강조한다. 그것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깊어지는 연대감이고, 그것에 더불어 자연과 함께하는 진실함이 사람들의 땅을 이끌어간다.

 

지금 곤란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앞서 누군가가 이 길을 걸었으리라 믿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남들이 해낸 것은 나도 해낼 수 있으니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책임감을 만들고, 나와 동료에 대한 신뢰가 자신의 직업을 더 가치있고 숭고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을 가르쳐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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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다르게 사는 사람들
유인경.설원태 외 지음 / 경향신문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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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게 아니라 위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거죠.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에요. 희망이 없다고 해서 다 나가 죽을 수는 없잖아. 희망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으로 또 살 수 밖에 없어요.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다. '번뇌를 없애는 데는 고요한 것만한 것이 없고, 부족함을 채우는 데는 근면함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김훈) pp.14~15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걸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국민 다수가 선택했지만 다수가 반드시 옳고 정의로운 것은 아니거든요. 이번 촛불집회는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니라 정부에 바라는 것을 집회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를 진화시키기 위해 아름다운 촛불로 평화롭게 표현하려는 것을 그렇게 강경하게 대응하면 안되죠.

 

인생에선 창의력이 가장 중요해요. 찍어낸 듯한 인생. 남의 것을 흉내낸 인생으로 살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합니다. 자기 인생을 창조하려면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외수) pp.85~89

 

내가 아는 것이 다 진실이나 정의는 아니니까 다른 목소리도 들어봐야죠.

(송해) p.109

 

언젠가 나도 죽겠지. 그럼 일회뿐인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래, 나는 나 살고 싶은 대로 살자.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내 자유의지대로 살자.

(이장희) p.116

 

전 나이들수록 욕망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져야 하고, 또 늙을수록 꿈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꿈이 없이, 소망이 없이 그대로 늙어가면 돈이 많아도 참 초라하고 비참하게 늙어가는 거죠. 하루 아침에 유능한 목수가 될 수는 없잖아요. 나무를 다듬고 못박는 연습을 하듯 평소에 꿈을 키우며 자원봉사나 기부를 통해 의미있는 삶을 준비하면 됩니다. 몸은 늙어도 꿈은 늙지 않거든요.

(최혜정) p.166

 

 

유인경, 설원태 외, <who? 다르게 사는 사람들> 中

 

 

+) 이 책은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경향신문에 실린, 행복한 삶을 사는 일상의 혁명가들을 인터뷰한 글을 모아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남들과 달리,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에 따라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정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삶을 꿈꾸고 그렇게 꿈꾸듯 살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내 주변의 것에 치우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살고 싶은데로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가수 이장희씨의 말대로 한번 뿐인 인생 내가  원하는 살기에도 짧지 않을까. 반성하게 된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일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자유에는 늘 용기가 따르는 법이다. 용기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자, 나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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