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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았는데요, 이거 다쓰면 사려구요. 촉촉하고 뭉침이 없어요. 뜨지도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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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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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현실주의적이라는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만 대체로 우리들의 삶이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해서는 안 되며,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에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실주의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입니다.

p.34

 

 사람이 모두 남에게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령 지금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면 깜짝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며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반대로 어린아이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로써 미루어볼진대 측은해 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 맹자    pp.224~225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p.242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무위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p.282

 

 

신영복,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中

 

 

+) 이 책은 신영복씨가 고전 강독이란 강좌에서 진행하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부역>, <논어>를 비롯한 책과, 맹자, 공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 등의 사상들을 작가의 관점으로 읽어내고 있다. 천천히 성현들의 말씀을 듣는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기존의 알고 있던 말씀들도 새롭게 다가온다. 독자가 이해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부분들을 저자가 비교적 쉽게 풀이하고 있어서 딱딱한 책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달달 외워서 봐야 하는 시험도 아닐진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동양고전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하게 되어서 좋았다. 어느 시대에서나 통하는 것은 분명이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 관계라는 면에 주목한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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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한 생각
일관스님 지음 / 아름다운인연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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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소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벽암록>에 나오는 말씀이다.

p.15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에게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p.24

 

늘 마음에 축복을 가까이하는 삶은 축복된 삶과 가까워질 것이고, 늘 비관적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스런 삶과 가까워질 것이다.

p.34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 선한 이들도 이따금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었을 때 선한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p.64

 

과거의 삶을 알고 싶으면 현재의 처지와 생활을 보면 되고, 미래의 삶을 알려고 한다면 현재 우리들이 어떻게 행동하며 사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p.73

 

 

일관 스님, <날마다 한 생각> 中

 

 

+) 평일 낮의 서점은 사람들이 적다. 북적이지 않고 조용해서 한쪽에 앉아 이 책을 다 읽었다. 나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고자 한다면 좀 더 밝고 따뜻해져야 한다. 좋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하루를 보내야지 싶다. 사람이 교만하면 못쓰는 법인데, 작은 일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보면 혹시 내가 교만해진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과거가 궁금하면 현재를 보고, 미래가 궁금하면 현재를 보면 된다는 말. 참 지혜로운 말이다. 굳이 궁금해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어차피 한 순간 한 순간이 오늘을 만들과 내일을 만드는 것을.... 오늘 하루는 인상을 쓰기보다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말자.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하루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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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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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평화로웠다. 다음 날에도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 더 머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무엇도 그의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p.25

 

바람도 씨앗들을 퍼뜨려 주었다. 물이 다시 나타나자 그와 함께 버드나무와 갈대가, 풀밭과 기름진 땅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가 한 일이라고 의심했다면 그의 일에 훼방을 놓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의심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나 관리들이나 누군들 그처럼 고결하고 훌륭한 일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계속할 수 있다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pp.45~46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中

 

 

+) 한 사람의 노력을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잔잔하고 커다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오랜 시간동안 한 사람이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수만 개의 씨앗들이 다 잘 자랄 수는 없듯이, 그는 분명 여러번의 고난을 겪었을텐데도 불구하고 평생 씨앗을 심고 나무를 가꾸었다. 그리고 그 사막같은 지역에 꽃이 피고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인간의 삶에서 나무의 소중함과 숲의 소중함,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끈기와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연을 위해서, 지구를 위해서,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나무가 자라는 몇 십년 동안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경험했을 '그'를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없이 자신만의 주관대로 삶을 살아온 '그'를 보면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용기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마이클 매커디의 판화가 이야기와 함께 제시된다. 일반 색채 그림보다 판화가 오히려 이 이야기의 묘미를 살려준다. 삭막한 마을과 나무가 자라고 있는 마을까지, 그 변화가 선 하나하나에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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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지적 망국론 + 현대 교양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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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문제든 그 문제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고 지금 무엇이 필요하며 누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정확한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 문제해결에 참가하는 전문가도 전문 영역을 초월한 시각을 가질 수 잇는 제너럴한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다.

그런 인재를 사회에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학생을 전문 과정으로 밀어넣어 좁은 영역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전문 영역까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기 위해 새로운 리버럴 아트를 구축하는 것이다.

p.52

 

빵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지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갖추려 하는 지식이다. 그런 지식의 총체가 교양이다.

p.134

 

프랑스에서도 교양은 아는 게 아니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적인 사색이란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추론을 만들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정답이 있는 문제에만 매달려 그것을 머리 속에 입력한 우등생이 승자 취급을 받는 일본의 중‧고등교육과는 근본적으로 교육방침 자체가 다르다.

p.143

 

교양은 지(知)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를 경멸하고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얻은 지식뿐 아니라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양성된 지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이며 그런 인격을 가진 사람이 ‘교양인’으로 불리는 것이다.

p.145

 

 

다치바나 다카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中

 

 

 

+) 도쿄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 책을 통해 일본 최고의 명문인 도쿄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함에 대해서 탄식한다. 비단 그것은 일본 도쿄대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학생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우쳐 기본적인 교양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이 점에 대해서 틀에 짜여진 문부성의 입시위주의 교육과 획일화된 수업이 큰 문제임을 지적한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스스로 더 이상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중고등교육에서 받아온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선생이 전하는 것을 받아적고 그것을 암기하여 시험을 보는 것에 익숙해있다. 저자가 자율적으로 시험 문제를 내고 답안을 작성하게 하자 많은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했는데, 수준 낮은 답안은 물론 기본적인 문법이나 단어 선택 혹은 문장 구성력이 떨어지는 답안을 작성했다. 이는 학생들이 몇몇 과목에 치우친 공부를 암기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결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흔히 말하는 교양을 기르기 위해,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대학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본의 교양학부가 사라지듯 우리 나라의 교양학부 또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대입 전공은 학생들의 통합적 사고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저자는 교양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교양’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자칫 교양의 경중을 헷갈릴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저자는 단순한 예로 인문학도와 공학도의 대화를 든다. 그들은 서로의 분야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몰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공학도가 읽은 문학책은 거의 없고, 열역학 법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인문학도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아, 물론 이건 평면화된 대화의 구성이므로 예외적인 경우가 있음을 충분히 인정하자. 다만 인문학도인 나는 왜 그렇게 공감이 되는지 부끄러웠다. 나 또한 과학적 지식에 대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하다. 그건 저자의 지적대로 나의 분야가 아니므로 당당하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달라지고 있다. 멀티가 가능한 사회에서 서로의 분야를 넘나드는 일은 당연하다.

 

다시 말해서 현대사회에서 전문화된 영역의 전문가는 넘쳐난다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그들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다. 그들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지도자는 전문 영역의 깊이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통합적 사고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교양의 가치도 높아져야 한다. 현재의 대학교육은 다양한 분야의 통합적 사고를 높이는 것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교양있는 지성인의 양성을 위해 대학이 나서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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