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수업 - 삶을 창조하는 법상 스님의 마음학교 1
법상 글.그림 / 무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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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애초부터 과거에 얽매여 해보지도 않고 막아서는 겁니까. 모든 가능성에 대해 거부하지 말고, 막아서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통째로 받아들여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방어벽을 깨고 자유로워지는 길이에요.

p.31

 

항상 깨달음은 나에게 오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온다는 표현도 좀 그렇고, 항상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어디로 갔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초대만 하면 문 앞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던 행복도, 진리도, 사랑도, 깨달음도 그 모든 진리의 요소들이 줄지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p.51

 

 세상을 향해, 삶을 향해 나를 완전히 열어 둔 사람에게는 만나는 모든 사건, 모든 이들, 모든 사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바로 나를 일깨워 주기 위한 깨우침의 일이 됩니다.

 그래서 내 삶에서 등장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할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 그 모든 일들이 나에게 흘러와서 흘러가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완전히 나를 허용하는 겁니다. 그럼 그 일이 진리의 일이 되고 부처의 일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매 순간순간 우리에게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이제껏 제가 말씀드린 방어벽을 업애 주기 위한 목적으로 나에게 찾아옵니다. 만약에 어떤 새로운 일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방어벽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p.62

 

 과거에 얽매여서 현재를 해석하면 새롭게 살아나갈 수 없습니다. 과거에 갇힌 채 새로운 한계의 가능성, 어쩌면 과거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 그 가능성조차 과거에 묻어버리는 우(愚)를 범하는 꼴이 되고 말지요.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일어납니다.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과거에 걷히고 얽매여 있음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과거의 견고한 토대 위에서 항상 현실을 판단하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p.84

 

만약에 여러분이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면 과거를 불러들여서 현재를 해석하는 그런 일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순간의 경험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과거의 경험으로써 퇴행하게 만들면 안됩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늘 보아 오던 것이라는 익숙한 어떤 것으로, 혹은 이미 알고 있다는 기지의 어떤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생생한 의미를 축소시킬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새로운 현재가 나에게 주고자 하는 전혀 새로운 깨달음과 가르침을 과거로써 닫아버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p.118

 

우리는 겉으로 '빨리 나아야 하는데, 빨리 나아야 하는데' 하고 바라겠지만 사실은 이 마음이 무엇을 연습시키거나 하면 '심장이 안 좋다'는 에너지, '심장이 나쁘다'는 주파수의 파장과 자꾸만 공명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장은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심장에 붙박여 있는 그 노이로제 같은 마음을 놓고 그 마음을 비워 버리면 되는데 오히려 더나쁘게 마음을 연습한단 말입니다. 비우지 못하겠고 놓아 버리지 못하겠다면 오히려 반대로 이 생각, 이 의업, 이 의지라는 것을 역이용하면 됩니다. 심장을 향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혹은 '심장을 다시 건강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감사와 사랑이야말로 이 우주의 모든 밝고 건강하며 청청한 모든 파장과 공명하는 최고의 진언이기 때문입니다.

p.168

 

 

 그 어떤 외부의 경계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왔다갔다 하는 삶이 아니라 중심에 딱 뿌리 내리고 그것을 자유롭게 바라보면서 거기 휘둘리지 않고 걸림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 삶의 본질은 사실 아주 즐겁고 생기롭게 누리는 것입니다.

 본성을 거슬러 살지 말고 다만 본성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내가 공연히 문제를 만들지 말고 애써 만들지만 않으면 그 자리가 부처의 자리다'라는 것입니다.

p.236

 

 자기 스스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나는 이렇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이 있으면 부처도 그 틀을 깨주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나의 능력을 한정 짓고 있는 이상 그 능력은 내 스스로가 깨야 되는 것이지 부처가 와도 여러분의 그 자기한정과 제한된 틀을 못 깨줍니다.

 진리는 '언제나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먼저 나를 열어두고 스스로 자기를 가두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p.288

 

 

법상, <삶을 창조하는 행복수업> 中

 

 

+) 이 책을 통해 내가 갖고 있는 '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았다. 나는 종종 나라는 사람을 틀지워 놓고 내가 그것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음을 실망스럽게 바라보곤 했는데, 결국 그렇게 나를 만든 것은 마음을 열지 않고 스스로를 한정시켜 버리는 내 잘못이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자 애써야겠다. 부정적인 마음은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고 그것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법이다.

 

과거의 경험에 얽매이면 현재가 그 정도 수준으로 밖에 구성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다. 매순간이 새로운 것이라면 그것이 설사 과거와 비슷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과거에 틀지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나는 왜 그것을 모르고 모든 것을 과거에 연연하여 생각했을까. 일상이 아무리 비슷해도 무언가 조금씩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늘 새로운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면 과거에서 벗어나자.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들은 자꾸 되새기는 것보다 한쪽으로 미뤄두고 그와 정반대인 따뜻하고 좋은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부정적인 감정들을 저 멀리 미뤄두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일단 그렇게 다른 것에 관심을 쏟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커져버린 불안이나 분노가 조금씩 작아진다. 그건 그 감정이 사라진다기 보다 그것에 관심을 쏟았기에 커졌던 것이 본래 상태로 조그맣게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지나 과거를 돌이켜보았을 때 미친 듯이 화를 냈던 것들이 기억나지 않거나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제일 먼저 내가 지금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그런 뒤에 그것을 한쪽으로 자꾸 쳐내야 한다. 그런 생가은 커질수록 힘이 강해지기 때문에 나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기 전에 자꾸만 저쪽으로 밀어버리자. 그리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입밖으로 그 부정적인 것에 대한 말도 꺼내지 말자. 말할수록 불안과 분노는 커지니까. '다 잘될꺼야'라는 생각, '복 받을꺼야'라는 생각, '감사해, 사랑해'라는 생각을 불러들이자. 긍정의 힘은 현실을 바꾸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으니까.

 

종교를 떠나서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가 읽어도 좋은 책이다.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논리적인 책이라 신뢰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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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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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준비는 갖추어져 있어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모든 일은 필요한 때에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여행을 경험해야 합니다. 삶에서 당신이 하게 될 가장 중요한 경험이 될 거에요. 당신은 바로 이 일을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신이 당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p.30

 

'절대로'란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도 나는 그 단어를 내 사전에서 지워 버리려고 노력해 왔다.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게 있고 싫어하는 게 있지만, '절대로'라는 다짐은 삶의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아무리 '절대로'하고 맹세를 해도 그 맹세는 오래 가지 않는다.

p.67

 

이 사람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이 우주 속에 일시적인 변덕이나 우연 또는 무의미한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p.79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는 다른 사람들의 전통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때 그것은 나 자신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p.114

 

삶을 돌이켜보면 때로는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존재의 어떤 차원에서 보면 그 당시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행동이었고, 언젠가는 그것이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내디딘 발걸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p.147

 

마음의 평화를 비는 유명한 기도가 내 마음에 떠올랐다.

"바꿀 수 없는 것은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마음과,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와,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p.252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中

 

 

+) 이 책은 작가가 '참사람 원주민 부족'과의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해 깨달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주민들은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을 살아간다. 문명인들이 그들의 삶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이지, 정작 그들의 삶은 오히려 우리보다 평화롭고 따뜻하며 행복하다. 먹이가 내 앞에 등장할 때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얻으려고 하는 것, 사람 사이의 다툼이나 시기 따위는 없는 삶, 자연이 요구하는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삶이 그들의 모습이다.

 

문명인인 작가가 그들과의 만남을 갖게 된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진 텔레파시 때문이다. 작가도 모르게 그 메시지가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본의 아니게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작가는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그들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 경험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두려웠다. 자연 속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원주민들은 그것이 우주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일이 필요한 때에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생각이 그들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떤 슬픔과 고통도 한결 줄어들 것이고, 어떤 기쁨과 행복 앞에서도 자중하게 될테니 말이다. 상당히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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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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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기억상실뿐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 루이스 부뉴엘

p.53

 

나이가 들면 중풍이나 노쇠, 뇌 손상 등으로 그때까지의 생활 즉 고도의 정신 생활이 예상치 않게 빨리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는다해도 자신이 인생을 살아왔고 자신의 등 뒤에 과거가 있다는 기억은 남으며,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뇌를 다치기 전 또는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는 힘껏 노력하면서 살았다.'라고. '인생을 살았다'라는 의식은 인간에게 때로 위안을 주기도 하고 때로 쓰디쓴 회한을 주기도 하지만, 역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이러한 의식조차 없어진다.

p.88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수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늘 눈앞에 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 비트겐슈타인

p.93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中

 

 

+) 이 책은 작가가 말한 바 있는 '주체성 신경학'에 대한 연구서이다. 정확히 말하면 임상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환자들은 그들이 지닌 병 때문에 괴롭기도 하고 때로 즐겁기도 하다. 또한 본인의 병을 알고 있기도 하고 그것이 병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 부분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줄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비교적 긍정적으로 읽게 된다.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큰 테마 아래 여러 환자들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환자의 유형에 따라 다르겠으나 무엇보다 이들이 겪고 있는 병의 원인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했다. 그들이 병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지만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필요하리라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심리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면 권한다. 단, 사례 중심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면에 관심을 둔다면 흥미가 조금 떨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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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8
이혜경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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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우스워. 자기가 생각한 것만큼만 보려고 해.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몸담은 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 생각에만 골몰한 사람이,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제 생각과 잇닿은 곳에서만 반응해 엉뚱해 보이듯,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온 은용에겐 모든 게 살림살이와 결부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빨래가 잘 마르겠구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식중독 이야기가 나오면, 당분간 어패류는 사지 말아야겠구나.

p.77

 

“은용 씬 간이역 같아요. 행복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죠. 행복한 사람들은 급행 열차를 타니까 간이역을 휙 스쳐버려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완행 열차를 타고 다녀요. 그러다가 아무도 없는 간이역을 보고 울기도 해요. 그거, 알아요?”

p.119

 

지난 봄에 투신한 여학생이 남긴 유서의 일부분.

‘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 할 자신 없는 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

이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함에 빼앗김의 방관.

더 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더 이상 죄지음의 빚짐을 감당할 수 없다……. ‘

- 고(故) 박혜정의 유서에서

p.137

 

세상이 바뀌었다고 권력 쥔 사람들 마음이 바뀔 줄 아느냐. 너는 배웠다고 야당 좋아하는 거 같더라만, 야당이 정권 잡으면 뭐냐. 그게 바로 여당 아니냐. 힘 가진 사람들 마음은 같은 골로 흐르는 법이다. 바쁜 것 같으니 그만 가봐라.

p.208

 

 

이혜경, <길 위의 집> 中

 

 

+) 이 소설은 1995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2004년 독일 '리베라투르 상' 장려상 수상한 작품이다. <길 위의 집>은 일종의 가족 소설로 1970년대부터 약 20여년 동안 한 가족이 겪는 사랑과 갈등, 분노와 절망, 그리고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억압받고 성장한 아들들과 딸의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외출했다가 늦은 어머니에게 짜장면 그릇을 던져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 '윤기'는 과거의 큰 상처로 남아 있고, 그러한 모습들이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드러나 대학생이 된 뒤로 두 사람은 계속 부딪친다.

 

그에 비해 비교적 순종적인 큰 아들 효기와 셋째 인기는 아버지에 순응하며 지내는 듯 하지만 이들 역시 순간순간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반항심이 표출된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부장적 인물로 어머니에 대한 억압과 자식들의 삶을 좌지우지 하려는 면이 두드러는 인물이다. 글을 읽으면서 강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은용은 집에서 살림을 맡아하는 인물이다. 은용의 친구가 은용에게 무엇이라도 배우라고, 그렇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나는 깊이 공감했다. 살림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나, 은용 스스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듯 그런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접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을 때, 한심한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원하게 욕을 해대는 은용의 모습에서 억눌려 있는 분노와 욕구의 표출을 보았다. 남자에게 억눌린 채 살아가는 여자의 모습을 한 가족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실상 그 뒤에는 국가, 사회, 관습, 편견 등이 존재했다. 이 작품 속 여성들의 모습은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

 

윤기가 좋아하던 여자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윤기와 결혼한 여자는 매를 맞으며 바람 피우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은용과 은용의 어머니에게 자유란 빨래를 널며 보는 하늘 정도였다. 이 소설은 억압받는 여성의 모습을 비롯하여 가부장적 사회에서 답답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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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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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깜빡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너무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에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박성우, <가뜬한 잠> 中

 

 

+) 이번 박성우의 시집은 <거미>보다 오히려 더 느슨해진 느낌이다. 시라기 보다 유년시절을 회상한 단상 정도라고나 할까. 사물에 대한 응시나 과거 회상, 추억 회귀의 자세는 좋지만 그 정도에서 그쳐 버렸다. 시적 대상에 대한 사유가 부족한 듯 관찰과 회상만이 둥둥 뜬 것 같다. 소통 불가능한 작품들이 많은 최근의 현대시 경향에 비한다면 독자 입장에서 읽기에 부담없는 시집이 되겠으나,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존재하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의 시를 읽은 한 시인이 시는 사치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했다. 그것에는 공감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것이 또한 수수하다는 것은 아닐터다. 담백한 맛이라기 보다 오히려 싱거운 맛이 느껴지니 말이다. 박성우의 다음 시집에서는 생각이 깊이가 더 심화된 작품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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