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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에요.”
p.88
게다가 동화책을 사주면서 할머니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밑줄을 그어두라고 일러주었다. 그건 할머니가 백과사전을 읽을 때 익힌 습관이었다. “나중에 커서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읽어보렴. 그러면 네가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을 거야.”
p.93
내가 배낭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얼른 배낭 입구 끈을 조였다. “답답해요!” 소리치는 나에게 아버지는 짐이 되는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즐거운 일만 상상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왜 짐이 되는 상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알았다고 대답했다.
p.138
윤성희, <구경꾼들> 中
+) 몇 년 전 본의 아니게 소설을 손에 들기가 어려웠던 때, 나로 하여금 '소설'을 다시 한번 되새겨준 소설이 윤성희의 소설집이었다. 윤성희가 썼던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게 되면서 그녀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 견고한 구성에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윤성희의 첫 장편소설을 읽고 나는 계속해서 감탄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견고한 짜임새의 플롯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는 작가의 성실함과 끈질김이 스토리와 플롯이 제대로 갖춰진 소설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윤성희 작가는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하면 한 가족의 모습을 전체 틀로 잡고 그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이다. 물론 중간중간 그들과 얽힌, 아니, 그들이 '구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구경'이라는 단어가 자칫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 작품에서 구경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연계하여 생각해야 한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고, 자신의 삶을 통해 타인의 삶을 본다. 또한 같은 사건이었으나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으며, 예상했던 뻔한 결과를 한 순간에 뒤집어버릴 수도 있음이 인생임을 알게 된다.
어이 없는 사고로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정의로운 행동으로 또 한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그들 가족은 내면의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한다. 비슷한 삶을 발견할 때까지, 두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여행을 떠나거나, 회사를 관두고 사돈 댁의 족발 장사를 배우거나, 군대를 가거나, 죽은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밥을 떠놓거나 등등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죽은 가족을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이 잊지 않으려는 것이든, 죽음이라는 것을 인정하려는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가족들은 가족이었던 그들을 어떤 기억으로든 남겨두려 한다.
나는 이 소설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삶이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또 비슷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삶이란 그렇게 조금은 다르면서 조금은 비슷한 역설적인 것이 아닐까. 긴 소설을 탄탄한 플롯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게, 전혀 허술하지 않게 쓴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모처럼 성실하고 진지한 장편소설을 읽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