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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 투옥되어 지낸 수많은 날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철학적인 깨달음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 순간의 깨달음이 깊이 와 닿는다. 마치 달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차분한 그 어조가 오히려 더 강인하고 단호해 보인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미래를 창백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사실 요사이 나는 지난 일들을 자주 떠올리고, 또 그것들을 미화하는 짓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과가가 가장 찬란하게 미화되는 곳이 아마 감옥일 것입니다.
p.59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많은 것을 읽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p.81
화단의 맨 앞줄에나 앉는 키 작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열두 시의 나비 날개가 조용히 열려 수평이 되듯이, 팬지꽃이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벌써 여남은 개째의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 줌도 채 못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양식이 들어 있는지....
흙 한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
p.151
비극이, 더욱이 이처럼 엄청난 비극이 미적인 것으로 승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정직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한테 가해지는 중압을 아무에게도 전가하지 않고 고스란히 짐질 수밖에 없는,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의 '정직함'에 있습니다.
비극은 우리들이 무심히 흘려버리고 있는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열한 갈등의 복잡한 얼개를 그 내부에 감추고 있는가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때로눈 우리를 객석으로부터 무대의 뒤편 분장실로 인도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인식평면을 열어줍니다.
pp.232~233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p.316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