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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워리 마미
신중선 지음 / 청어 / 2007년 3월
평점 :
자신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 바로 엄마 불행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적응해서 살아가는데 왜 내 엄마만 유별난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내 엄마는 서글프고 시시때때로 불행하다. 엄마가 빨리 현실을 깨달아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거기서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찾길 바란다.
그나마 금이 간 연립조차 구할 돈이 없어 단칸방에서 사글세를 사는 사람도 지천에 널려 있음을, 또한 비바람을 피할 집마저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엄마가 하루 빨리 자각해 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당치도 않은 꿈은 하루 빨리 버리고(내 유학도 포함하여) 비디오대여점 아줌마로서의 역할에서 보람을 찾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p.75
모든 일의 발생에는 반드시 조짐이란 게 있다. 다만 그 초기증상을 간과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정작 일이 벌어지고 나면, 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지? 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서 급작스런 불행을 던져주는 질병이란 없다. 멀쩡하게 먹고 있던 인절미가 기도를 막아 급살을 한다든지 길가다 불한당 만나듯 자동차에 받히는 경우 혹은 생면부지의 미친놈에게 칼침을 맞는 재수 옴 붙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신체에서 이상을 일으켜 나타나는 질병인 경우 반드시 사전 예고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 몸은 적어도 그 정도의 예의는 갖추고 있다.
p.79
"우리 결혼할까?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하재, 결혼 까짓 꺼 하자더라. 그래서 물었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하려고 하느냐고."
"그랬더니?"
"대답이 예술이었어. 한 여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싶대. 거짓으로라도 내가 좋다는 마은 끝내 하지 않더라. 나도 여잔데, 좀 야속하더라."
p.272
신중선, <돈워리 마미> 中
+) <돈워리 마미>의 화자는 엄마의 딸이다. 그러니까 딸의 시선으로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유지한다. '나'의 엄마는 수많은 딸 중에서 가장 촉명하다가고 착각한(?) 할아버지 덕분에 중학교를 세 번이나 재수하고, 몇 개월의 짧은 유학을 경험했는데도 대학을 못간 여자다. 결국 젊은 시절 엑스트라로 살다가 결혼식에 들어선 신랑이 하루만에 부조금을 들고 나르면서 혼자 살기 시작한 여자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모의 기대로 인생을 망쳤다고 믿는 엄마가 자신의 딸에게 기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쉰을 넘긴 나이에도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엄마는 능력이 안되는데도 딸을 유학 보낸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듯, 그녀의 딸을 통해 자신의 꿈을 대리만족 하려고 한다. 허영심이 대대로 내려온다고 해야 할까.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남자 김동민씨는 백수다. 엄마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날 위인도 못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남자는 사랑하는 첫사랑을 만나 엄마 곁을 떠난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남자.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던 남자랑 같이 살다가 결국 그와도 헤어지게 된다.
이 소설 속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왜 타인에게 의지하려 들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본인의 삶임에도 자신과 관계된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엄마의 모습이 답답했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말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주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이 할 일을 정해야 한다. 자신의 꿈을 딸에게 투영시키는 것도 안되고, 자신의 사랑을 남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안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어야 후회가 없는 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안타깝다고 생각되었다.